무녀도(1936)                                                  -김동리-

 

 

뒤에 물러 누운 어둑어둑한 산, 앞으로 폭이 넓게 흐르는 검은 강물, 산마루로 들판으로 검은 강물 위로 모두 쏟아져 내릴 듯한 파아란 별들, 바야흐로 숨이 고비에 찬, 이슥한 밤중이다. 강가 모래펄에 큰 차일을 치고 차일 속엔 마을 여인들이 자욱이 앉아 무당의 시나위 가락에 취해 있다. 그녀들의 얼굴들은 분명히 슬픈 흥분과 새벽이 가까워 온 듯한 피곤에 젖어 있다. 무당은 바야흐로 청승에 자지러져 뼈도 살도 없는 혼령으로 화한 듯 가벼이 쾌자 자락을 날리며 돌아간다…….

이 그림이 그려진 것은 아버지가 장가를 들던 해라 하니, 나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기도 이전의 일이다. 우리집은 옛날의 소위 유서 있는 가문으로, 재산과 문벌로도 떨쳤지만, 글하는 선비란 것도 우글거렸고, 특히 진귀한 서화(書畵)와 골동품으로서는 나라 안에서 손꼽힐 만큼 높이 일컬어졌었다.

 

[생략 부분 줄거리] : 할아버지의 사랑에는 시인 묵객(시인묵객)들이 끊일 새 없이 찾아들곤 했는데, 어느 날 한 사내가 딸과 더불어 이곳을 찾았다. 두 사람은 달포 동안 머물러 있으면서 그림도 그리고 지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할아버지는 소녀가 그려서 남기고 간 그림을 무녀도(무녀도)라고 불렀다. 내가 할아버지께 전해 들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경주읍에서 성 밖으로 오 리쯤 나가서 조그만 마을이 있었다. 여민촌 혹은 잡성촌이라 불리는 마을이었다.

이 마을 한구석에 모화(毛火)라는 무당이 살고 있었다. 모화서 들어온 사람이라 하여 모화라 부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은 마을의 어느 여염집과도 딴판이었다. 그것은 한 머리 찌그러져 가는 묵은 기와집으로, 지붕 위에는 기와버섯이 퍼렇게 뻗어 올라 역한 흙냄새를 풍기고 집 주위는 앙상한 돌담이 군데군데 헐린 채 옛성처럼 꼬불꼬불 에워싸고 있었다. 이 돌담이 에워싼 안의 공지같이 넓은 마방에는 수채가 막힌 채, 빗물이 괴는 대로 일 년 내 시퍼런 물이끼가 뒤덮여, 늘쟁이, 명아주, 강아지풀 그리고 이름도 모를 여러 가지 잡풀들이 사람의 키도 묻힐 만큼 거멓게 엉키어 있었다. 그 아래로 뱀같이 길게 늘어진 지렁이와 두꺼비같이 늙은 개구리들이 구물거리고 움칠거리며, 항시 밤이 들기만 기다릴 뿐으로, 이미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전에 벌써 사람의 자취와는 인연이 끊어진 도깨비굴 같기만 했다.

이 도깨비굴같이 낡고 헐린 집 속에 무녀 모화와 그 딸 낭이는 살고 있었다. 낭이의 아버지되는 사람은 경주읍에서 칠십 리 가량 떨어져 있는 동해변 어느 길목에서 해물가게를 보고 있는데, 풍문에 의하면 그는 낭이를 세상에 없이 끔찍이 생각하는 터이므로 봄가을철이면 분 잘 핀 다시마와 조촐한 꼭지미역 같은 것을 가지고 다녀가곤 한다는 것이었다. 나중 욱이(昱伊)가 돌연히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 도깨비굴 속에 그녀들이 찾는 사람이라야 모화에게 굿을 청하러 오는 사람들과 봄 가을에 한 번씩 낭이를 찾아주는 그녀의 아버지 정도로, 세상 사람들과는 별로 왕래도 없이 살아가는 쓸쓸한 어미 딸이었던 것이다.

 

[생략 부분 줄거리] : 욱이는 무당이 되기 전 모화가 어떤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였다. 아홉 살 때 아는 사람의 주선으로 어느 절간에 보낸 뒤 한 십 년 간 소식이 묘연하였는데 어느 날 이 집에 나타난 것이었다. 모화와 욱이는 서로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욱이가 돌아온 뒤부터 모화의 집에는 조금씩 사람 냄새가 나기 시작하였다.

 

욱이가 돌아온 뒤(욱이의 귀향-새로운 사건이 일어난 것을 암시)부터 이 도깨비굴 속에는 사람 냄새(따뜻하고 생기 넘치는 분위기)가 나기 시작했다. 부엌에 들어서기를 그렇게 싫어하던 낭이도 욱이를 위해서는 가끔 밥을 짓는 것이었다. 그리고 밤이면 오직 컴컴한 어둠과 별빛만(쓸쓸하고 어두운 분위기)이 차 있던 이 헐려 가는 기와집 처마 끝에도 희부연 종이 등불(사람 냄새, 사랑과 온기)이 고요히 걸리는 것이었다.

[욱이는 모화가 아직 모화 마을에 살 때, 귀신이 지피기 전(무당이 되기 전), 어떤 남자와의 사이에 생긴 사생아였다. 그는 어릴 적부터 무척 총명하여 신동이란 소문까지 났으나 근본이 워낙 미천하여, 마을에서는 순조롭게 공부를 시킬 수가 없어서 그가 아홉 살 되었을 때 아는 사람의 주선으로 어느 절간으로 보낸 뒤 그동안 한 십 년 간 까맣게 소식조차 묘연하다가 얼마 전 표연히 이 집에 나타난 것이었다. 낭이와는 말하자면 어미를 같이하는 오누이뻘이었다.](욱이에 관한 서술자의 요약적 정보 제시.- 새로 등장한 욱이라는 인물에 대해 서술자가 직접 그의 과거 행적을 요약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탄생에서 성장, 그리고 귀향이 제시되지만, 절간에 맡겨진 이후의 삶은 의도적으로 생략함으로써 궁금증을 유발함.)

낭이가 대여섯 살 되었을 때 그때만 해도 아직 병으로 귀가 먹기 전이라 "욱이.", "욱이." 하고 몹시 그를 따르곤 했었다. 그러던 것이 욱이가 절간으로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낭이는 자리에 눕게 되어 꼭 삼 년 동안을 시름시름 앓고 나더니 그길로 귀가 먹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귀가 어느 정도로 먹은 지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두 번 그의 어미를 향해 어눌하나마,

"우, 욱이 어디 가아서?"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절에 공부하러 갔다."

"어어디, 절에?"

"지림사, 큰 절에……."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모화 자신도 사실인즉 욱이가 어느 절에 가 있는지 통이 모르고 있었고, 다만 모른다고 하기가 싫어서 이렇게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대답했을 뿐이었다.

[모화는 장에서 돌아와 욱이를 처음 보았을 때, 그 푸른 얼굴에 난데없는 공포의 빛(심리적 충격과 놀라움)이 서리며 곧 어디로 달아날 것같이 한참 동안 어깨를 뒤틀고 허둥거리다 말고 별안간 그 후리후리한 키에 긴 두 팔을 벌려 흡사 무슨 큰 새가 저희 새끼를 품듯 뛰어들어 욱이를 안았다.

"이게 누고, 이게 누고? 아이고 ……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모화는 갑자기 목을 놓고 울었다.(반가움)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늬가 왔나, 늬가 왔나?"

모화는 앞뒤도 살피지 않고 온 얼굴을 눈물로 씻었다.](모화의 모성애 - 모화가 욱이의 출현에 믿기지 않는 듯 놀라다가 반가움에 눈물까지 보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성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무당이면서 푸른 얼굴의 평범하지 않은 인물에게도 이러한 면모가 담겨 있다는 점이 흥미롭게 드러나고 있다.)

"오마니, 오마니"

욱이도 어미의 한쪽 어깨에 왼쪽 볼을 대고 오래도록 울었다. 어미를 닮아 허리가 날씬하고 목이 가는 이 열아홉 살 난 청년은 그동안 절간으로 어디로 외롭게 유랑해 다닌 사람 같지도 않게 품위가 있고 아름다운 얼굴이었다.(유랑생활을 한 사람으로 볼 수 없는 욱이의 품위 있고 세련된 외모를 묘사함. 이를 통해 그동안 욱이가 어떻게 지냈을지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다.)

낭이도 그때야 이 청년이 욱이인 것을 진정으로 깨닫는 모양이었다. 처음 혼자 방에 있는데 어떤 낯선 청년이 와서 방문을 열기에, 너무도 놀라고 간이 뛰어 말 ―― 표정으로라도 ―― 한마디도 못하고 방구석에 박혀 앉아 오들오들 떨고만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낭이는 그 어머니가 욱이를 얼싸안고,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며 우는 것을 보고 어쩌면 저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낭이는 그 어머니에게도 이렇게 인정이 있다는 것을 보자 형언할 수 없는 즐거움을 깨달았다.)

그러나 욱이는 며칠을 가지 않아 모화와 낭이에게 알 수 없는 이상한 수수께끼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모화와 낭이의 세계관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함.) 그는 음식을 받아 놓거나, 밤에 잠을 자려고 할 때나, 또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반드시 한참 동안씩 주문(呪文) 같은 것을 외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틈틈이 품 속에서 조그만 책 한 권을 꺼내어 읽곤 하는 것이었다. 낭이가 그것을 수상스레 보고 있으려니까 욱이는 그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너도 이 책을 읽어라."(누이에게 기독교를 이해시키려는 욱이)
하고 그 조그만 책을 낭이 앞에 펴보이곤 했다. 낭이는 지금까지 <심청전>(전통적인 것)이란 책을 여러 차례 두고 읽어서 국문쯤은 간신히 읽을 수 있었으므로 욱이가 내놓은 그 조그만 책을 들여다보니, 맨 처음 껍데기에 큰 글자로 <신약 전서>(외래적이고 서구적인 것)란 넉 자가 똑똑히 씌어져 있었다. <신약 전서>란 생전 처음 보는 이름이다. 낭이가 알 수 없다는 듯이 욱이를 바라보자 욱이는 또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너 사람을 누가 만들어 낸지 아니?"
하였다. 그러나 낭이에게는 이 말이 들리지도 않았을 뿐더러 욱이의 손짓과 얼굴 표정을 통해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이건 지금까지 생각도 해 보지 못한 어려운 말이었다.

"그럼 너 사람이 죽어서 어떻게 되는 줄은 아니?"

"……."

"이 책에는 그런 것들이 모두 씌어져 있다."

그리고는 손으로 몇 번이나 하늘을 가리켰다. 그리하여 낭이가 알아들은 말이라고는 겨우 한 마디 '하나님'이었다.(욱이와 낭이의 괴리감. 낭이는 무속 이외의 세계를 거의 접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드러냄.)

"우리 사람을 만든 것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뿐 아니라 천지만물을 다 만들어 내셨다. 우리가 죽어서 돌아가는 곳도 하나님 전이다."

이러한 욱이의 '하나님'은 며칠 지나지 않아 곧 모화의 의혹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욱이와 모화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부분) 욱이가 온 지 사흘째 되던 날, 아침밥을 받아 놓고 그가 기도를 드리려니까, 모화는,

"너 불도(佛道)에도 그런 법이 있나?"
이렇게 물었다. 모화는 욱이가 그동안 절간에 있다 온 줄만 믿고 있으므로 그가 하는 짓은 모두 불도에 관한 일인 줄로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서술자의 직접적 판단이 드러남.)

"아니요, 오마니. 난 불도가 아닙네다."

"불도가 아니고 그럼 무슨 도가 있어?"

"오마니, 난 절간에서 불도가 보기 싫어 달아났댔쇠다."(소설의 무대가 경주인데도 욱이가 평안도 사투리를 쓰는 이유는 욱이가 오랫동안 평양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평양은 원래 기독교 전통이 강한 도시이기도 하다.)

"불도가 보기 싫다니, 불도야 큰 도지……. 그럼 넌 뭐 신선도야?"

"아니요, 오마니. 난 예수도올시다."

"예수도?"

"북선 지방에서는 예수교라고 합데다. 새로 난 교지요."

"그럼 너 동학당이로군!"(기독교와 천도교(동학당)를 혼동하는 모화의 모습에서 시간적 배경을 20세기 전반기로 막연하게 짐작해 봄.)

"아니요, 오마니. 나는 동학당이 아닙네다. 나는 예수교올시다."

"그래, 예수돈가 하는 데서는 밥 먹을 때마다 눈을 감고 주문을 외나?"

"오마니, 그건 주문이 아니외다. 하느님 전에 기도드리는 것이외다."

"하느님 앞에?"

모화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네. 하느님께서 우리 사람을 내셨으니깐요."

"야아, 너 잡귀가 들렸구나!"(모화의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드러나 있으며, 앞으로의 갈등을 암시함. 모자 간의 관점의 차이, 종교적인 차이에서 비극은 싹트고 있다.)

모화의 얼굴빛은 순간 퍼렇게 질리었다. 그러고는 더 묻지 않았다.

 

[생략 부분 줄거리] : 모화가 마을에 객귀 들린 사람이 있어 '물밥'을 내 주고 돌아온 날이었다. 욱이는 모화에게 그런 일은 하나님께 죄가 된다고 말하였고 모화는 그런 욱이에게 신주 상 위의 냉수를 뿜으며 주문을 외웠다. 집 밖으로 나온 욱이는 그 길로 이 지방의 예수교인들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열심히 올려서 사귀 들린 어머니와 누이의 병을 고쳐야 한다고 굳게 결심하였다.

 

욱이가 이 지방 예수교인들을 두루 만나 보고 집으로 돌아온 뒤로부터 야릇하게 변해진 것은 낭이의 태도였다. 그 호리호리한 몸매와 종잇장같이 희고 매끄러운 얼굴에 빛나는 굵은 두 눈으로 온종일 말 한 마디 웃음 한 번 웃는 일 없이 방구석에 틀어박혀 앉은 채 욱이의 하는 양만 바라보고 있다가, 밤이 되어 처마 끝에 희뿌연 종이 등불이 걸리고 하면, 피에 주린 모기들이 미친 듯이 떼를 지어 울고 날아드는 마당 구석에서, 낭이는 그 얼음같이 싸늘한 손과 입술로 욱이의 목덜미나 가슴팍으로 뛰어들곤 했다. 욱이는 문득문득 목덜미로 가슴팍으로 낭이의 차디찬 손과 입술을 느낄 적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하였으나 그녀가 까무러칠 듯이 사지를 떨며 다시 뛰어들 제면 그도 당황히 낭이의 손을 쥐어주며, 그 희뿌연 종이 등불이 걸려 있는 처마 밑으로 이끌곤 했다.

낭이의 태도가 미묘해진 뒤부터 욱이의 얼굴빛은 날로 창백해 갔다. 그렇게 한 보름 지난 뒤 그는 또 한 번 표연히 집을 나가고 말았다.

모화는 욱이가 집을 나간 지 이틀째 되던 날 밤,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곁에 누워 있는 낭이를 흔들어 깨우더니 듣기에도 음울한 목소리로,

"욱이가 언제 온다더누!"
물었다. 낭이가 잠자코 있으려니까,

"왜 욱이 저녁 밥상은 보아 두라고 했는데 없노?"
하고 낭이더러 화를 내었다. 모화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초조한 빛으로 밤중마다 부엌에다 들기름불을 켜고 부뚜막 위에 욱이의 밥상을 차려 놓고는 치성을 드리는 것이었다.

 

[생략 부분 줄거리] : 모화는 치성을 드리며 완연히 미친 것같이 날뛰었다. 낭이는 어미의 날뛰는 양을 지켜보다가 별안간 오한이 들며 아래턱이 달달달 떨리기 시작하였다. 어미와 딸은 한 장단 한가락에 놀 듯 어우러져 춤을 추었다. 두 번째 집을 나갔던 욱이는 다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들 앞에 나타났다. 모화는 오랫동안 욱이의 목을 안은 채 잠자코 울기만 하였다.

 

그 날 밤이었다.

밤중이나 되어 욱이가 잠결에 문득 그의 품 속에 언제나 품고 있는 성경책을 더듬어 보았을 때 품속이 허전함을 느꼈다. 그와 동시 웅얼웅얼하며 주문을 외우는 소리도 들려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보았으나 품 속에서 성경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낭이와 욱이 사이에 누워 있을 그의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떤 불길하고 무서운 느낌에 몸이 부르르 떨리었다. 바로 그 때였다. 그의 귀에는 땅 속에서 귀신이 우는 듯한 웅얼웅얼하는, 주문을 외우는 듯한 소리가 좀더 또렷이 들려왔다. 순간, 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방에서 부엌으로 난 봉창 구멍에 눈을 갖다 대었다.

"서역 십만 리 굶주리던 불기신아, / 한쪽 손에 불을 들고 한쪽 손에 칼을 들고 / 이리 가니 산신님이 예 기신다 / 저리 가니 용신님이 제 기신다 / 칠성이라 돌아가니 칠성님이 예 기신다 / 구름 속에 쌔여 간다 바람결에 묻혀 간다 / 구름님이 예 기신다 바람님이 제 기신다 / 용궁이라 당도하니 열두 대문 잠겨 있다 / 첫째 대문 두드리니 사천왕 뛰어나와 / 종발눈 부릅뜨고 주석 철퇴 높이 든다 / 둘째 대문 두드리니 불개 두 쌍 뛰어나와 / 불꽃은 수놈이 낼룽, 불씨는 암놈이 낼룽 / 셋째 대문 두드리니 물개 두 쌍 뛰어나와 / 수놈이 멍멍 불꽃이 죽고 / 암놈이 멩멩 불씨가 죽고 ……."

모화는 소복 단장에 쾌자까지 두르고 온갖 몸짓 갖은 교태를 다 부려가며 손을 비비다, 절을 하다, 덩싯거리며 춤을 추다, 하고 있다. 부뚜막 위에는 깨끗한 접시불(들기름불)이 켜져 있고, 그 아래 차려진 소반 위에는 냉수 한 그릇과 흰 소금 한 접시가 놓여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지금 막 그 마지막 불꽃이 나불거리고 난 새빨간 불에서 파란 연기 한 오리가 오르는 <신약 전서>의 두꺼운 표지는 한머리 이미 파리한 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모화는 무엇에 도전이나 하는 것처럼 입가에 야릇한 냉소까지 띠며 소반에 얹힌 접시의 소금을 집어 인제 연기마저 사라진 새까만 재 위에 뿌렸다.

"서역, 십만 리 예수 귀신이 돌아간다 / 당산에 가 노자 얻고 관묘에 가 신발 신고 / 두 귀에 방울 달고 방울 소리 발맞추어 / 재 넘고 개 건너 잘도 간다 / 인제 가면 언제 볼꼬, 발이 아파 못 오겠다 / 춘삼월에 다시 오랴, 배가 고파 못 오겠다 ……."

모화의 음성은 마주(魔酒) 같은 향기를 풍기며 온 피부에 스며들었다. 그 보석 같은 두 눈의 교태와 쾌자 자락과 함께 나부끼는 손짓은 이제 차마 더 엿볼 수 없게 욱이의 심장을 쥐어짜는 것이었다. 욱이는 가위눌린 사람처럼 간신히 긴 숨을 내쉬며, 뛰어 일어났다. 다음 순간, 자기 자신도 모르게 방문을 뛰어나온 그는, 부엌문을 박차고 들어가 소반 위에 차려 놓은 냉수 그릇을 집어 들려 하였다. 그러나 그가 냉수 그릇을 집어들기 전에 모화의 손에는 식칼이 번득이고 있었고, 모화는 욱이와 물그릇 사이에 식칼을 두르며 조용히 춤을 추는 것이었다.

"엇쇠, 귀신아 물러서라 / 너 이제 보아하니 서역 십만 리 굶주리던 잡귀신아 / 여기는 영주 비루봉 상상봉에 / 깎아질린 돌 벼랑에, 쉰 길 청수에, 엄나무 발에 / 너희 올 곳이 아니다 / 바른손에 칼을 들고 왼손에 불을 들고 / 엇쇠, 서역 잡귀신아, 썩 물러가라."

이 때, 모화는 분명히 식칼로 욱이의 면상을 겨누어 치려 하였다. 순간 욱이는 모화의 칼날을 왼쪽 귓전에 느끼며 그의 겨드랑이 밑을 돌아 소반 위에 차려 놓은 냉수 그릇을 들어 모화의 낯에다 그릇째 끼얹었다. 이 서슬에 접시의 불이 기울어져 봉창에 붙었다. 욱이는 봉창에서 방으로 붙어 들어가는 불길을 잡으려고 부뚜막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자 물그릇을 뒤집어쓰고 분노에 타는 모화는 욱이의 뒤를 쫓아 칼을 두르며 부뚜막으로 뛰어올랐다. 봉창에서 방문으로 붙어 들어가는 불길을 덮쳐 끄는 순간 뒷등어리가 찌르르 하여 휙 몸을 돌이키려 할 때 이미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몸은 허옇게 이를 악물고 웃음 웃는 모화의 품 속에 안겨져 있었다.

 

[생략 부분 줄거리] : 욱이의 병은 점점 깊어 갔다. 모화는 약도 쓰고 굿도 하고 주문도 외웠지만 욱이의 병은 낫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에 모화의 영검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돌 즈음, 이 고을에도 교회당이 서고 전도사가 들어왔다. 옛날 모화에게 굿과 푸닥거리를 빌러 다니던 사람들까지 예수 귀신이 들기 시작하였다.

 

욱이의 병은 그 해 가을을 지나 겨울철에 접어들면서부터 드러나게 악화되어 갔다. 모화가 가끔 간장이 녹듯 떨리는 음성으로,

"이것아 이것아, 늬가 이게 웬일이고? 머나먼 길에 에미라고 찾아와서 늬가 이게 무슨 꼴고?"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

"오마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죽어서 우리 아버지께로 갈 것이오."

욱이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무어 생각나는 게 없느냐고 물으면 그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의 어미가 밖에 나가고 낭이가 혼자 있을 때엔 이따금 낭이의 손을 잡고,

"나, 성경 한 권만 가졌으면 ……."
하는 것이었다.

이듬해 봄 그가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에 그렇게도 그리워하고 기다리던 현 목사가 평양에서 찾아왔다. 현 목사는 방 영감네 이종사촌 손주사위인 양 조사의 인도로 뜰 안에 들어서자 그 황폐한 광경과 역한 흙냄새에 미간을 찌푸리며,

"이런 가운데서 욱이가 살고 있소?"

양 조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욱이는 현 목사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두 눈에 광채를 띠며,

"목사님, 목사님."

이렇게 두 번 불렀다.

현 목사는 잠자코 욱이의 여윈 손을 쥐었다. 별안간 그의 온 얼굴은 물든 것처럼 붉어지며 무수한 주름살이 미간과 눈꼬리에 잡혔다. 그는 솟아오르는 감정을 누르려는 듯이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양 조사는 긴장과 침묵을 깨뜨리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경주에 교회가 이렇게 속히 서게 된 것은 이분의 공로올시다."

그리하여 그의 말을 들으면 욱이는 평양 현 목사에게 진정을 했고, 현 목사께서는 욱이의 편지에 의하여 대구 노회에 간청을 했고, 일방, 경주 교인들은 욱이의 힘으로 서로 합심하여 대구 노회와 연락한 결과 의외로 속히 교회 공사가 진척되었던 것이라 하였다.

현 목사가 의사와 함께 다시 오기를 약속하고 일어나려 할 때 욱이는,

"목사님, 나 성경 한 권만 사 주시오."
했다.

"그럼 그 동안 우선 이것을 가지시오."

현 목사는 손가방 속에서 자기의 성경책을 내주었다. 성경책을 받아 쥔 욱이는 그것을 가슴에 안고 눈을 감았다. 그의 감은 눈에는 이슬방울이 맺히었다.

 

[생략 부분 줄거리] : 모화는 거의 굿을 나가지 않고, 날마다 그 찌그러져 가는 묵은 기와집 잡초 속에서 혼자 징 꽹과리를 울렸다. 혹 이웃 사람이 찾아가, "모화네, 아들 죽고 섭섭해서 어쩌냐?" 하면, 그녀는 다만, "우리 아들은 예수귀신이 잡아갔소." 하였다. 이 즈음에 모화의 마지막 굿이 열린다. 물에 빠져 죽은 부잣집 며느리의 넋을 건지러 모화는 넋대를 잡고 점점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다가 물 속에 아주 잠겨버린다.

열흘쯤 지난 뒤다.

동해변 어느 길목에서 해물가게를 보고 있다던 체수 조그만 사내가 나귀 한 마리를 몰고 왔을 때, 그 때까지 아직 몸이 완쾌하지 못한 낭이가 퀭한 눈으로 자리에 누워 있었다.

사내는 낭이에게 흰죽을 먹이기 시작했다.

"아버으이."

낭이는 그 아버지를 보자 이렇게 소리를 내어 불렀다. 모화의 마지막 굿이 (떠돌던 예언대로) 영검을 나타냈는지 그녀의 마소리는 전에 없이 알아들을 만도 했다.

다시 열흘이 지났다.

"여기 타라."

사내는 손으로 나귀를 가리켰다.

"……."

낭이는 잠자코 그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나귀 위에 올라앉았다.

그네들이 떠난 뒤엔 아무도 그 집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고, 밤이면 그 무성한 잡풀 속에서 모기들만이 떼를 지어 미쳐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