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소졸(無名小卒)(1989)

-김학철-      

◆ 소설 읽기  

● 줄거리

'나'는 황포 군관 학교(1924년 쑨원이 세운 중국 최초의 현대식 군사 학교. 1925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입학이 허용되었고 졸업생들은 중국 국민 혁명에 참가하거나 항일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음.)에 입학하려고 19살의 나이에 상해에 갔다. 프랑스 조계(19세기 후반에 영국, 미국, 일본 등 8개국이 중국을 침략하는 근거지로 삼았던, 개항 도시의 외국인 거주지)에 있는 조선인 여자가 운영하는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되는데, 알고 보니 그곳은 남경에 본부를 둔 조선 민족 혁명당의 근거지였다. '나'는 처음에 일제 통치를 뒤집어엎고 조선 왕조를 되찾겠다는 생각으로 상해에 왔지만, 차츰 왕조의 복원이 민중을 위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조직 내에서도 조금씩 임무를 맡아 수행하게 된다. 그러다가 남경에 있는 강녕 별장으로 가서 모험 활동에 필요한 초보적인 훈련을 받게 되는데, 훗날 상해에 돌아와서는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2차 상해 생활로 접어들게 된다.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김학철이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하여 상해로 건너 간 초창기 시절을 회고한 자전적 소설이다. 제목인 '무명소졸'은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보잘것없는 사람이란 뜻이다. 제시된 부분은 소설의 앞부분으로, '나'가 처음 상해에 도착해 겪게 되는 사건들을 보여준다.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풋병아리' 김학철이 얼마나 세상 물정을 모르고 미성숙했는지가 작품에 잘 나와 있다. 이후 여러 인물들과 어울리면서 현실에 눈을 뜬 그는 민족의 독립을 위한 투쟁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중국 조선족 문단의 대표 작가인 김학철은 우리 민족의 험난한 근대사의 한 징표라고도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항일 투쟁의 실제적 체험을 담은 이 소설은 한민족 문학으로서의 의의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신경림의 김학철 소설에 대한 평

신경림은 중국 항일 전쟁에서의 경험으로 인하여 김학철에 대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며 긍정적인 평가를 해 왔다. 신경림은 '넉넉하고 포근한 글들'에서

'김학철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새삼스럽게 우리나라에 아직도 무장 독립 투쟁을 그린 소설다운 소설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강점된 것이 통감 통치 시대를 합쳐 거의 50년, 그동안 단 한순간도 항일 무장 투쟁이 그친 날이 없었는데도 이 중요하고도 엄청난 소재를 다룬 소설다운 소설이 없었다는 것은 우리나라 문학이 할 일을 제대로 못했다는 단적인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 50년 동안 우리의 정신을 지탱해 온 것이 무엇인데 그것을 형상화하는 일에 그토록 게으른 채 어찌 제대로 우리가 문학을 해 왔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우리가 전통이란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데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김학철 선생의 무장 독립 투쟁을 내용으로 한 소설은 이런 점에 있어서도 우리 문학에 아주 소중하고 값진 것일 뿐 아니라 우리가 모르고 있는 혹은 정치적 지배층에 의해서 일부러 지워진 역사를 서술해서 채워 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사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투쟁의 이야기는 왜곡된 또는 한 부분이 삭제된 독립운동사만 읽어 온 우리에게는 너무 생소한 것들이다. 우리 역사가 얼마나 잘못 알려져 있는가를 다시금 깨달으면서 김학철 선생의 또 하나의 몫을 알게도 된다.'
라고 김학철 소설의 역사적 가치와 문헌적 가치에 대하여 높이 평가한다.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는 상해에서의 항일 독립 운동 상황

항일 독립운동을 하는 민족 혁명당에서 파견되어 온 지하 공작원의 비밀 활동이 이루어짐. 송혜숙의 집이 비밀 연락 장소로서의 기능을 함.  상해에 거류하는 조선 교포들의 사회에는 영통한 소식줄이 늘여져 있어 남경까지 소식이 금방 전해짐.  남경에 본 거를 둔 반일 정당들이 '나'에게 기관지를 부쳐 주고, 생면부지의 내방객들에게서 내 중정을 떠보려는 인상을 받음. ⇒ 여러 조직이나 단체들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항일 독립운동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새로운 활동가를 포섭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해서 이루어졌음.

중국 문학에서의 김학철 문학과 한인 문학의 위치

중국의 한인 문학은 반세기에 가까운 역사적인 변화 과정을 거쳐 오는 동안 민족의식의 문학적 구현과 국가 사회적 이념에 대한 문학적 실천 사이에서 상당한 갈등을 겪어 왔다. 특히 문화 대혁명의 시기에는 민족 문화의 고유성이나 독자성을 부정하는 혁명적 논리에 의해 적지 않은 정신적인 상처를 입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질곡 속에서도 중국의 한인 문학은 민족 문학으로서의 독자적인 요건을 꾸준히 확보해 오고 있다. 우선 한인 문학은 중국 문학의 테두리와는 아무 관련 없는 한글을 그 표현 매체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인 문학의 독자성을 인정받고 있다. 더구나 한인 문학은 한인들의 민족적 동질성을 역사적으로 규정해 주면서 그 공동체적인 인식이 거듭 요구되는 소재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두고 온 조국에 대한 향수를 노래하는가 하면, 과거 만주 지방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항일 무장 투쟁의 장면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체험은 중국 동북 지역에 민족 구역 자치를 실행하면서 살고 있는 한인들의 공통적인 체험이며 의식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지역 조선족 문학을 '이민 문학'으로 규정한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지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인 문학이 중국 내에서 상대적인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중국 공산당의 사회주의 문예 정책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여기에 중국 내 한인 문학의 위치와 역할이 놓여 있다고 하겠다. 바로 이런 한인 문학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작가가 김학철이다.  <중략>

김학철은 한인 문학의 원로 작가로서 일제 강점과 전후 중국 현실의 모순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조선족 문학뿐만 아니라 중국 내에서 그의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더욱이 한인 문학은 소수 민족 문학 중에서도 가장 민족적인 전통을 간직한 문학을 추구함으로써 참다운 인간을 위한 문학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내의 역할이 주목된다.

-이상갑, '한 민족주의자의 인간주의', "한국학 연구" 제11집, 고려대학교, 1999

◆ 김학철의 생애

19세의 나이에 중국으로 망명해 의열단에 가입하고 반일 지하 테러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조선 의용대에 가입해 적극적인 항일 전쟁을 전개하였다. 조선 의용대 대원으로 일본군과 전투하던 중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이송되어 감옥에서 복역했다. 이때 전투 중 입은 부상으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해방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 항일 투쟁을 모티브로 한 소설을 써서 문단에 등단하였으며, 그 후 월북해 북한에서 창작 활동을 하다가 다시 중국으로 망명하여 연변에 정착하였다. 작품 창작에 전념하던 중 '문화 대혁명' 기간에 반혁명 분자로 몰려 10년 간 옥고를 겪고, 24년 간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1980년에서야 무죄 석방되었다. 그 후 문단에 복귀하여 1986년 대표작인 '격정 시대'를 발표하였다. 가장 오래 살아남은 조선 의용대 분대장으로서 '조선 의용대 마지막 분대장'으로 불렸으며, 2001년 9월 25일에 세상을 떠났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현대소설, 자전적 소설

성격 : 사실주의적, 체험적, 자전적

배경 : 일제강점기, 중국 상해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표현상 특징

* 작가의 자전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함.

* 요약적 제시의 방법을 사용하여 인물을 소개하고 과거의 일을 제시함.

◆ 문학적 의의 : 항일 투쟁을 통해 한민족의 정체성을 그려 내었다는 점에서 한민족 문학으로서의 의의를 가짐.

주제 상해에서의 항일 독립운동 활동

● 교과서 활동 다지기

1. 이 소설에서 송혜숙이 경성 식당에서 '나'를 처음 보고 풋병아리라고 생각한 이유와 최성장이 '나'의 말을 듣고 풋병아리라고 말한 이유를 말해 보자.

→ 송혜숙은 경성 식당에서 '나'를 처음 보고 세상 물정 모르고 순진해 보여 풋병아리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최성장은 당시의 정치 · 사회적 흐름도 모른 채 '나'가 이씨 왕조를 복벽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나'를 보고 풋병아리라고 말한 것이다.

 

2. 이 소설은 일제 강점기 중국 상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을 정리해 보자.

아래층 큰 객실에는 ~ 비밀 연락 장소의 책임자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상해에서 비밀리에 항일독립운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송혜숙은 가끔가끔 ~ 곧잘 만나게 된다는 것이었다.

무작정 조선에서 상해로 오는 청년들이 드물지 않게 있었다.

나는 허위단심 찾아온 임시 정보가 ~ 허우룩하기가 그지없었다.

상해에서도 일제에 의해 조선의 독립 운동에 대한 탄압이 자행되었다.

나는 내 앞으로 우송되어 오는 ~ 으레껏의 일이었다.

남경에 본거를 둔 항일 단체들이 여러 간행물을 발간하여 유망한 청년들에게 보냈다.

송혜숙의 소개로 나는 상해에서 ~ 숭고한 꿈을 안고 상해를 왔던 것이다.

항일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왕정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3. 다음을 참고하여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한국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생각해 보고, 한국 문학의 범위에 대해 의견을 나누어 보자.

'무명소졸'의 작가 김학철은 젊은 시절에 항일 독립 투쟁을 했고, 광복 후에는 중국 연변에서 조선족 소설가로 활동했다. 그의 생애는 파란만장했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의 비참한 민족 현실에 눈뜨고 중국 상해로 건너간 그는 의열단에 가담하여 조선 의용대 창립 회원으로 활동하며 적극적인 항일 투쟁에 앞장섰다. '무명소졸'은 이러한 그의 생애를 담고 있다.

→ 이 소설은 중국 연변 조선족 작가 김학철의 작품으로 일제 강점기의 항일 독립 운동을 중심 제재로 다룸으로써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중국에서의 항일 독립 운동을 다룬 문학 작품들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작품의 가치를 높여 주고 있다. 따라서 한민족 문학을 한국 문학의 범위로 적극 수용하는 것이 한국 문학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일임을 알 수 있다.

● 더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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