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히다'와 '무치다'

⑴.㉠ 철수가 흙을 손에 묻히다.
       ㉡ 영이가 옷에 먼지를 묻히다.
       ㉢ 손에 잉크를 묻히지 말아라.

이런 표현에서 '묻히다'는 '누가 어디에 무엇을 묻게 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일상 언어에서 흔히 사용된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

⑵.㉠ 사람이 양념을 콩나물에 묻히다.
       ㉡ 아주머니가 갖가지 양념을 데친 시금치에 묻히다.

위에서 보듯이, ⑵의 묻히다는 ⑴의 그것과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그러나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는데, 첫째,⑵의 묻히다는 그 목적이 맛을 내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여기서 '양념을 묻게 함'의 의미를 얼른 깨닫지 못한다. 둘째, ⑵는 그 문장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어 다음과 같이 쓰이는 것이 예사라는 것이다.

⑵'. ㉠ 사람이 콩나물을 무치다.
         ㉡ 아주머니가 시금치를 무치다.

"콩나물에 양념을 묻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콩나물을 무치는" 것으로 구조가 바뀐 것이다.

요컨대, "나물을 무치다"라고 말할 때의 [무치다]는, 그 뿌리를 따져 올라가면 결국 묻히다에 닿는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과의 혈연관계가 매우 멀어져 버렸다. 따라서 "나물을 [무치다]"라고 할 때의 [무치다]는 굳이 묻히다로 표기하지 않고 소리나는 대로 무치다로 표기하는 것이다.

                                              *출처: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려면 꼭 알아야 할 것들> -리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