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놈'과 '지놈'의 외래어 표기

'게놈'은 생물이 생활기능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한 한 쌍의 염색체를 말한다. 생물의 유전형질을 나타내는 30억 쌍의 유전 정보가 들어 있어 이 연구가 완성되면 암 · 에이즈 등 각종 질병 치료에 획기적인 변화를 맞게 된다. 1930년 독일에서 처음 등장한 말로, '유전자'의 뜻인 「gene」의 어두와 '염색체'의 뜻인「chromosome」의 어미를 합쳐 만든 「genome」을 독일어의 한글 표기 규정에 따라 적은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지놈」을 써야 옳지 않으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예를 들어 "CNN 등 미국의 방송 등을 들어보면 「지놈」이라 발음하고, 일부 신문도 그렇게 적고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그러나 「지놈」은 「genome」의 영어식 발음에 따라 적은 것이므로, 최초로 이 말을 만든 독일 발음에 따라 「게놈」으로 적는 것이 외래어표기규정과 일치한다.

그동안 「게놈」으로 써오던 관행을 깨고「지놈」으로 고쳐쓰겠다고 최초로 공표한 언론사는 중앙일보였다. 2000년 5월 22일「생명의 신비를 벗긴다」란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국내 언론에선 게놈이란 용어를 사용해 왔으나 이는 일본 및 독일식 발음이며 미국과 대다수 학자들은 지놈으로 발음합니다. 따라서 본지는 현지 발음 원칙에 따라 앞으로 게놈 대신 지놈으로 표기합니다."라는 사고(社告)를 낸 것이다. 매일 경제 신문이 이를 받아 즉시「지놈」으로 바꿔쓰기 시작했으나 다른 언론들은 동조하지 않았다. "모든 외래어는 그 나라 발음에 따라 적는다."는 외래어 표기의 대원칙과 그동안「게놈」으로 써온 관행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발음의 세계적 표준을 따르는 것이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당연한 조치로 주장하며「지놈」으로 쓸 것을 강조했다.

말하자면 '원칙을 따를 것인가, 대세를 따를 것인가'의 문제인 셈이다. 결국 이 문제는 며칠 후 열린 정부와 언론외래어 심의위원회에서 "외래어 표기는 국어생활의 표기와 어형을 고정하기 위한 것이지 외국어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genome」의 우리말 표기는 종전대로「게놈」으로 한다."고 확인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 출처 : <이젠 국어사전을 버려라> -장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