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A(1965)                                                  -박경리-

 

 

대구로 가는 여객 버스가 K면에 닿았을 때 별안간 소나기가 쏟아졌다. 버스에서 내린 영숙은 굵은 빗발 속을 질러서 길켠에 있는 가게 처마 밑으로 급히 뛰어간다. 말뚝을 박아 놓았으나 휘장도 없는 장터의 장꾼들이 흩어진다. 목을 뽑은 얼룩박이 닭이 뛰뚝거리며 싸리나무 울타리 안으로 달아난다.

소나기는 이내 멎고 물방울이 달린 나뭇잎에 햇빛이 뻗친다. 물방울이 반짝인다. 장터에 장꾼들이 다시 모여든다. 간이역같이 자그마한 우편국 창구 앞에 농부가 한 사람, 인조 치마를 걷어올려 양 어깨를 감싼 아낙이 한 사람 서 있다. 은비녀가 비틀어진 쪽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등기로 부칠라카는데요."

창구 안으로 얼굴을 디밀 듯하며 농부는 큰 소리로 말했다.

영숙은 우편국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다. 창구에 앉아 있던 러닝 입은 얼굴이 하얀 청년이 인사한다. 영숙은,

"안녕하셨어요. 서울에 전화 좀 걸려구요. 이젠 통하겠죠?"

"네."

편지를 달아서 우표를 붙이고 농부에게 영수증을 끊어 준 뒤 청년은 수화기를 든다.

"진주! 진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중계를 세 군데나 하니까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앉으십시오."

청년은 수화기를 놓고 말했다. 영숙은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서 거리를 내다본다. 큰 유리창 한 장에 길 거너 가게가 꽉 들어찬다. 아주 큰 기와집이다. 기둥에는 ○○여객, ××여객이라 씌어진 버스 회사의 간판들이 요란스럽게 나붙어 있다. 빛깔이 고운 비단은 진열장 속에, 광목, 포플린 따위는 좌판 위에 쌓여 있고, 화장수, 크림 등 잡화에서 술병과 과자, 학용품, 숯 섬에다 석유까지 없는 게 없는 만물상, 정리가 잘 되어 상자 속에 들앉은 만물상 같다. 갖가지 빛깔과 모양이 크레용으로 이겨 놓은 아이들 그림같이. 가게에는 목이 길다란 사나이가 앉아 있었다.

'이 마을에서 제일 부자일 거야.'

"돈부터 내세요. 돈부터."

창구에 앉은 청년이 짜증을 낸다.

"아, 우표 딱지 먼저 주어야 돈을 내제."

창구 밖에서 아낙이 미욱한(하는 짓이나 됨됨이가 매우 어리석고 미련하다) 목소리로,

"돈을 내세요, 돈 내면 우표를 줍니다."

아낙은 한참 망설이다가 돈을 밀어 낸다. 우표를 받자,

"이것 좀 붙여 주소. 어디 붙이는지 내가 알 수 있어야제. 글을 모르니께."

청년은 혀를 차며 우표를 붙이고 편지를 함 속에 집어던진다.

"편지 꼭 가지요? 가지요?"

아낙이 창구를 들여다보며 다짐한다.

"틀림없어요. 참."

청년의 러닝셔츠는 땀에 흠뿍 젖어 있다.

기름병을 든 아이가 가게로 들어간다. 목이 긴 주인이 느릿느릿 일어서서 기름통을 열고 손잡이가 날씬한 쪽으로 기름을 떠서 병에 붓는다. 덤으로 조금 더 떠 넣어 준다. 아이는 기름병을 눈 위까지 올려 기름이 적은가 많은가 살피고 가게 앞을 떠난다. 주인은 금고 속에 돈을 집어 넣고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본다. 하얀 고무신에 모시 고의바지, 뒷짐을 지고 어슬렁어슬렁 장터로 향해 그는 걸어간다.

가게 안, 살림집에서 노인이 나온다. 이리저리 살피다가 노인의 손이 유리 단지 속으로 들어간다. 사탕을 한 줌 집고 알미늄 뚜껑을 얼른 덮은 뒤 치마를 걷어올리고 속주머니 속에 사탕을 밀어넣는다. 안에서 다시 파마한 여자가 나타난다. 노인은 빗자루를 들고 가게 마루를 쓰는 척하다가 얼굴을 찌푸린 파마한 여자에게 싱긋이 웃어 보인다. 바라보고 있는 영숙도 싱긋이 웃는다. 노인은 안으로 들어가고 파마한 여자는 털개를 들고 물건 위에 앉은 먼지를 떤다.

"오늘도 전화 못 하면 큰일인데 아직 안 통합니까?"

영숙이 청년에게 묻는다.

"곧 될 겁니다. 대구에서 떨어져야 하니까요. 접때도 전화 못 하고 가셨는데 그 땐 워낙 비가 많이 왔거든요."

"신문 보니까 서울에도 비가 많이 왔다더군요. 집의 전화가 고장났을지도 몰라요."

"그럼 전보를 치시죠."

"편지는 했지만……. 참, 여기 송금된 것 없을까요?"

"찾아보죠. 두 개 있었던 것 같은데."

청년은 장부를 뒤진다.

"성함이 누구시죠?"

"김영숙이에요."

"아! 있군요. 현금 등긴데 아까 배달부가 가지고 나갔습니다. 지금쯤 갔을 겁니다."

"그, 그럼 전화는 취소하겠어요."

영숙은 서두르며 일어선다.

"하지만 현금 등기면 본인이 있어야, 도장을 두고 오셨습니까?"

"아뇨, 제가 가지고 왔어요."

"그럼 배달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2시 차로 내려올 겁니다. 하루 걸러서 산에 가니까……. 더군다나 내일은 일요일이고."

"그래야겠군요. 여기서 기다렸다가……."

영숙은 도로 주저앉았다.

"절에 수양 오셨습니까?"

청년이 묻는다.

"네, 너무 심심해서 이제 돌아가야겠어요."

"그렇지요. 산 속에 뭐 볼 게 있어야지요."

말을 끊고 청년은 장부 정리를 한다. 가게의 여러 가지 빛깔이 참 아름답다. 크림통, 머릿기름, 분갑, 머리빗, 칫솔, 치약 온갖 것이 다 있다.

'이 마을에서 제일 부잘 거야.'

키가 땅땅하고 머리가 곱슬한 남자가 창구 앞을 지나 사무실로 쫓아 들어온다.

"성수야!"

"응."

청년이 돌아본다. 곱슬머리의 청년은 먼지가 쌓인 빈 책상 위에 낡은 가방을 던지고 손수건을 꺼내어 목덜미를 우둑우둑 닦는다.

"니 오늘 진주 갈 기제?"

손수건을 집어 넣으며 묻는다.

"나 못 가겠다."

"와?"

"뭐 가나마나지."

"이눔아야, 봉애가 목이 빠지게 기다릴 건데 안 갈라 카믄 어짜노. 같이 가자."

"편지나 좀 전해 주고……. 돈 천 원 넣어 놨다."

"와 안 갈라 카노? 내일 일요일인데 여기서 머할래?"

"갈 때 올 때 차비만 쓰고 뭐 할라고……. 내사 낮잠이나 잘란다."

"돈 애낄라고 그러나? 보고 싶은 사람도 안 보고?"

"만날 해 봐야 시골 구석의 월급쟁이, 애낄 돈이나 있나."

"흥, 다 마찬가지지. 안 그런 사람이 있나?"

우편국의 청년은 가늘고 하얀 팔을 뒤로 올리며 머리를 받친다.

"약값 보탤라고 니가 그러는구나. 하여간 열녀, 아니 열부다."

곱슬머리 청년은 감동한 얼굴이면서 핀잔을 준다.

"싱거운 소리 하지 마라. 언네 내가 장가 들었다고 열부?"

"니도 참 큰일이다. 봉애가 어서 나아야지 혼자 궁상이구나."

"니 걱정이나 해라."

"어서 병이 나아서 가을에는 떡을 먹어야 할 긴데……."

곱슬머리는 책상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며 길켠을 바라본다.

"주사나 맞고 치료하면 괜찮을 거다. 가을까지야 낫겠지."

"글쎄, 요새는 약이 좋으니께."

"약도 약이지만 잘 먹어야 한다는데……."

청년의 얼굴에 초조한 빛이 보인다.

"복도 많다, 복두 많아."

"복이 많기는 무슨 복이 많아. 이런 시골 구석에서 뭘 내가 해 준다고 복이 많아."

"니 마음 하나 중하지. 니 마음 하나 중하다 말이다. 누가 르기 알뜰하게 생각하는 남자가 있나."

청년은 서랍을 열고 봉투를 꺼내어 곱슬머리에게 주며,

"자, 이거 간수해라. 돈하고……."

"음."

곱슬머리는 호주머니 속에 그 봉투를 집어 넣는다.

"2시 차가 곧 올 기다. 그리고 요 다음 일요일에 가겠다고, 편지에도 썼다만, 최 선생님한테 잘 부탁해 놨으니까 미안하게 생각할 것 없이 주사는 꼭꼭 맞으라고 니가 일러라."

2시 차가 내려왔다.

"그라믄 갔다 올게."

곱슬머리는 쫓아 나간다. 버스는 가게 앞을 잠시 가리고 멎어 있다가 떠났다. 청년은 멍하니 창구에서 밖을 내다본다.

"여 딱지 하나 주이소."

아낙이 와서 말했다. 청년은 돈부터 내라는 재촉도 않고 얼른 딱지를 밀어 낸다. 돈이 들어왔다. 아낙은 딱지를 붙이고 편지를 도로 디밀었다. 청년은 그것을 편지통 속에 집어 넣고 창구의 문을 닫아 버린다.

"왜 안 오지요? 우편 배달부 말예요."

영숙이 말을 걸었다.

"아, 참 안 오는군요. 그럼 다음 버스로, 4시 버스로 오겠군요."

청년은 건성으로 대꾸한다.

"그럼 제가 갈 걸 그랬네요."

"기다리신 김에 더 기다려 보십시오. 엇갈리면 모레 돈을 받게 되니까요."

영숙은 다시 창 밖의 가게를 가만히 바라본다. 아낙이 커다란 광주리를 들고 가게 앞으로 간다. 그의 아들인 듯싶은 노타이 셔츠에 감색 작업복 바지를 입은 청년이 그를 따라간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얼굴은 햇볕에 잘 그을려서 꺼멓다. 입을 벌리고 웃는다. 이빨은 하얗게 두드러져 보인다. 가게 마루에 걸터앉은 그들은 뭐라고 가겟집 여자를 보고 이야기한다. 가겟집 여자가 진열장 문을 열고 빨간빛, 남색, 노랑색, 연두색 네 가지 비단을 꺼내어 두르르 편다. 서로 뭐라고 한참 지껄인다. 청년은 포개 놓은 다리 위에 주먹 쥔 두 손을 얹어 놓고 비단을 넌지시 바라보고 아낙은 펼친 천을 만져보고 또 만져본다. 가겟집 여자는 긴 자를 들고 웃으며 또 뭐라고 이야기하는 모양. 청년은 슬그머니 얼굴을 돌리고 외면을 하며 웃는다. 아마 청년을 보고 농을 걸었던 모양이다. 청년은 장가 들 신랑임에 틀림없다. 가겟집 여자는 노랑 비단을 자로 잰다. 아낙이 붙들어 주고 가위는 노랑 비단을 두 동강이로 낸다. 착착 접어 놓고, 다시 다홍빛 비단을 끊는다. 남색과 연두 비단도, 그리고 속치마 안감, 동정까지―가겟집 여자는 아주 기분이 좋다. 아낙도 기분이 좋고 청년도 기분이 좋다. 아낙은 주머니를 끌러서 돈을 꺼내어 침을 묻혀 가며 센다. 센 돈을 또 세고 세 번을 센다. 그리고는 가겟집 여자에게 돈을 준다. 가겟집 여자는 종이에 옷감을 싸고 노란 끈으로 묶어 내놓으며 또 웃는다. 아낙과 청년도 따라 웃는다. 청년은 웃다가 거리를 바라본다. 거리를 바라보면서 또 웃는다. 영숙도 슬그머니 웃는다.

꿈을 깬 듯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린다. 우편국의 청년이 수화기를 든다.

"아 네, 네. 진주라고? 음 상수가, 웬일이고?"

청년의 얼굴이 흐려진다.

"응 그래, 뭐? 오늘 난 못 가. 삼칠이한테 돈하고 편지 부쳤다. 요 다음 토요일에 갈게."

"뭐 봉애가, 뭐?"

사무원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했다.

"죽었다고……."

청년은 수화기를 든 채 영숙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낙과 아들은 혼수감을 들고 나란히 걸어 나왔다. 그리고 하늘을 한번 올려다본다. 유리창에서 그들은 사라지고 울긋불긋 그림같이 가게의 모든 빛깔들이 번져 나는 듯―여자는 털개를 들고 상품 위의 먼지를 떤다.

 

<이해와 감상>

이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시골에 요양 온 '영숙'은 대구 부근 K면 우체국 사무실 안에서 서울로 전화 신청을 해 놓고 기다리다가 현금 등기를 통해 송금된 것을 확인하고는 전화를 취소한다. 그러나 배달부가 이것을 가지고 이미 떠났는데 도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어서 그냥 우체국에서 배달부가 오기를 기다리게 된다. 진주에 가는 한 젊은 남자는 그의 친구인 우체국 창구의 청년 직원에게 함께 가서 중병 치료 중인 애인을 만나고 오자고 하지만 형편상 어쩔 수 없는 청년은 편지와 돈을 전해 달라며 몇 가지를 당부한다. 창 밖 가게에서는 한 아낙과 그녀의 아들로 보이는 청년이 혼수감을 사며 가게 주인과 함께 웃는 모습이 보이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애인인 '봉애'의 죽음을 전해 듣고 청년은 창백해진다.

박경리는 그의 대표작인 <토지>에서 시간적, 공간적으로 광범위하고도 복잡한 사건들을 다루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기량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수록한 작품 <풍경 A>는 박경리의 그 기량에 이르는 길의 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이 소설은 '영숙'이라는 제3자를 통해 시골 우체국의 내부와 주변 풍경이 관찰, 묘사되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의 작품이다. 작품은 눈에 띄는 풍경들이 차례로 묘사되면서도 인생의 기쁨과 슬픔이 대조되어 나타난다. <풍경 A>에서 박경리는 '영숙'이라는 인물을 통해 시골 면 우체국의 내부 풍경과 그 우체국의 유리창을 통해 외부 풍경을 관찰하게 한다. 두 시간 정도에 걸친 '영숙'의 관찰 속에서 인생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양면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이를 테면 우체국 건너의 가게에서 신붓감의 옷감들을 끊는 모자의 모습이 기쁨이라면, 병석의 애인이 죽었다는 전화 연락을 받은 우체국 직원의 모습은 슬픔이다. <풍경 A>에서 볼 수 있듯이 치밀한 관찰과 구성의 힘을 키우면서 아마도 박경리는 그의 대작 <토지>에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