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명의 하늘(1983)                                                  -문순태-

 

 

비록 땅에 떨어져 발에 밟히는 낙엽처럼 시들어 버린 사람일지라도, 누구와 싸울 힘이 남아 있다는 것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갈 용기를 가졌다고 할 수가 있다. 싸울 힘마저 잃어 버렸을 때가 가장 절망적이다. 원망도, 한도, 앙칼스러움도 앙금처럼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아 버린 사람이라면 그나마 생명도 없이 무감각하게 짓밟히는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 체념과 한숨은 죽음과 가깝다. 원망과 한은 생명의 뿌리이며 희망이기도 하다.

김덕주 씨가 점례의 싸우는 광경을 보고 일단은 마음을 놓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김덕주 씨가 31년 만에 양공주 촌에서 오점례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보다 대여섯 살쯤 나이 들어 보이는, 회갑 안팎의 겨릅대(껍질을 벗긴 삼의 줄기)처럼 깡마르고 왜소한 초로 여인과 싸움을 하고 있었다.

덕주는 첫눈에 그녀를 알아보았다. 쌍스러운 욕지거리를 거칠 것 없이 물을 뿜듯 펌프질해 대는 점례의 목소리는 젊었을 때처럼 목이 찢어지는 듯한 때까치(날카로운 부리로 개구리, 곤충 따위를 잡아먹으며, 한국, 일본, 사할린, 중국 등지에 분포하는 때까칫과의 새) 소리를 냈으며, 오른쪽 눈 밑에 먹물을 찍어 놓은 것 같은 까만 점이 쉽게 그녀를 알아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옛날 고향 어른들은 점례의 그 때까치처럼 꺽꺽 울리는 목소리 때문에 팔자가 꺽지(꺽짓과의 민물고기. 모양은 옆으로 납작하며, 입과 주둥이가 크고 아래턱이 위턱보다 약간 김)처럼 뻣세고, 눈물을 받아먹는 검은 사마귀가 있어 늘 외롭고 슬프게 살아갈 것이라고들 했었다. 그들은 점례의 삶을 미리 앞질러 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그런 점례의 얼굴은 늘 슬퍼 보였었다.

점례가 덕주를 싫다 하고 장터 마을의 장돌뱅이 소금 장수한테 시집을 갔을 때, 덕주 어머니도 그런 말을 했었다. 점례는 사내를 수도 없이 잡아먹고 과부가 될 팔자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의 어머니는 점례의 휘움한(조금 휘어져 있는) 안개 눈썹과 입바람을 부는 것 같은 그녀의 뾰족한 취화구(뾰족한 모양의 입)에 대해서도 정이 너무 헤프다거니 인덕이 없다거니 좋지 않게 말을 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점례의 삶은 덕주 어머니의 예언대로 거의 들어맞았다. 그러나 덕주는, 점례가 그렇게 된 것은 그녀의 팔자가 그렇게 정해진 것이 아니라, 순전히 그의 탓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31년 만에 애써 점례를 찾은 것은 불행하게 된 그녀 앞에 그의 죄를 털어놓고 용서를 받고자 함이었다.

점례와 깡마른 노파가 싸움을 하고 있는 하숙옥 앞의 공터에 공주촌 사람들이 예닐곱 몰려들었다.

공주촌은 광주에서 포주읍으로 가자면 읍 조금 못 미처 극락교를 건너기 전, 4차선의 고속화 도로가 흑갈색의 쪽판(널조각)처럼 곧게 뻗은 큰길에서, 비포장 황톳길로 꺾어 들면 아파트촌이 있고, 그 아파트촌에서 밋밋한 산등성이 쪽으로 200미터쯤 되는 거리에 재개발을 기다리는 폐촌처럼 을씨년스럽게 웅크리고 있다.

마을의 들머리에 시골 농협 창고 같은 목욕탕이 있으나, 미군 부대가 떠나고, 부대가 있던 그 자리에 아파트촌이 들어서면서부터 문을 닫았고, 문짝마저 떨어져 나간 목욕탕 건물 옆에는 돼지우리처럼 칸막이 방들이 즐비하게 잇대어 있는 단층 바라크(임시로 지은 허술한 집. 가건물. 막사)의 하숙옥이 여름 한낮의 더운 햇살 속에 길다랗게 뻗대어 있었다. 하숙옥 앞에는 유리가 빨간 페인트칠을 한 술집의 하늘색 포렴(복덕방이나 술집 따위의 문 앞에 늘인 베 조각)이 찢어진 깃발처럼 펄럭였고, 술집 옆에는 담배 간판이 붙은 구멍가게와 세탁소, 이발소, 미장원이 도토리 키재기 하듯 어깨를 바짝 대고 있었다.

공터는 이들 낡은 목욕탕 건물과 하숙옥, 술집, 구멍가게, 세탁소, 이발소, 미장원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미군 부대가 옆에 있었을 때까지만 해도 이 공터엔 미군 지프와 트럭들이 빠져 나갈 틈도 없이 빼곡하게 주차를 했으며, 창고 같은 목욕탕의 굴뚝에서는 젊은 욕망의 뜨거운 입김처럼 검은 연기가 하늘로 줄기차게 솟았고, 하숙옥에서는 군화 발소리와 알아들을 수 없는 지껄임, 배고픈 창자를 빨래처럼 비틀어 쥐어짜는 듯한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공터에까지 낭자하게 흘러나왔다. 술집도 세탁소도 구멍가게도 이발소도 미장원도 온통 벅신거렸었다(사람이나 동물이 넓은 곳에 많이 모여 활발히 우글거리다).

"개만도 못한 녀언! 양갈보질 20년에 누렁이, 깜둥이, 흰둥이 가지각색 골고로 새끼들을 퍼질러 나 놓고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지랄이여 지랄이! 점례 네년은 얼굴에 개가죽을 둘러쓴 거여, 그러니께 늙어 곯아빠져 갖고도 이 마을을 떠나지 않는 게여!"

깡마르고 키가 작은 초로 여인이 탱글탱글 유리 조각이 깨지는 목소리로 욕질을 하였다.

"힝!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라고 자빠졌네! 네년은 영자 춘자 두 딸년 양공주 안 맹글았냐? 서방 가진 년이 뭣이 부족해서 두 딸년을 양갈보로 팔아묵어? 그래 부부간에 코 큰 놈덜 똥 구르마 끌다 봉께 그 놈덜 똥까지도 좋아 뵈더냐? 그랑께 딸을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양갈보질을 시켰구만!"

점례도 지지 않고 장작 패는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퍼부어 대며, 당장 춘자 어머니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동댕이를 칠 듯이 두 손을 휘저었다.

구경을 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 중에서 아무도 싸움을 말리려고 하지 않았다.

두 여자의 싸움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고 오물을 토하는 듯한 더러운 욕설은 팽팽한 햇살과 함께 잘 버무려져 칙칙한 여름의 열기를 더욱 뜨겁게 하였다. 두 여자는 서로의 과거를 난도질했고, 쟁기의 날카로운 보습으로 갈아엎어 놓은 듯한 자신들의 지나온 삶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대신, 힘이 더욱 살아난 듯 오히려 앙칼스러워졌다.

구경하는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욕설이나 서로의 약점을 까발린 내용에 대해서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 두 여자의 과거와 현재를 자신들의 손바닥 들여다보듯 환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차라리 그들 두 여자가 빗물이 질컥하게 괴어 있는 공터의 진흙 바닥에서 한바탕 붙들고 뒹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은 두 여자가 언제나 그랬듯이 똑같은 욕지거리를 푸짐하게 쏟아 놓는 것으로 싸움을 끝내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바탕 엉클어지게 되리라는 것은 기대하지 않은 것인지도 몰랐다.

구경꾼들 중에서 심장이 찐득거리도록 흥미를 느끼는 것은 덕주 혼자뿐인 듯싶었다. 그는 담벽도 대문도 없이 앞이 툭 터진 하숙옥 옆, 목욕탕 건물의 그늘에 무릎이 저리도록 쪼그리고 앉아서 점례와 춘자 어머니라는 여자가 뱉어 내는 욕지거리들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그는 곧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점례가 살아온 과거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양코배기 똥이나 퍼 주고 살었음시롱 뭣이 잘났다고 지랄이여!"

"그래, 양코배기 똥 구르마 끄집어서 우리 식구 안 굶어 죽고 살었다. 으쩔래! 그래도 네년 모양으로 누렁이, 껌둥이, 흰둥이는 낳지 않었다. 으쩔래!"

"나도 그 짓 해서 시부모님 자식 새끼들 멕여 살렸다, 왜?"

"양갈보짓 해서 시부모님 멕여 살렸응께 양갈보 효부 났구만그려!"

"양코배기 똥 퍼 주고 묵고 살었으면 그만이재, 두 딸년은 왜 양갈보를 맹글어!"

"그것들도 묵고 살라고 그랬단다, 으쩔래! 애비 에미 똥 푸는 짓 못 허게 헐라고 말이여!"

"힝, 효녀 심청이가 둘이나 나왔구먼!"

"네년의 껌둥이 흰둥이 새끼덜은 뭣이 잘났다고 자랑이여, 그까짓 것덜도 자식이라고 자랑을 혀? 아이고 오메, 하늘 부끄르와라!"

"왜 자식이 아녀? 이 에미헌티 을매나 잘 허는듸!"

점례는 결코지지 않았다. 갈수록 힘이 더 솟구치는 것처럼 보였다. 점례와 춘자 어머니가 언제나 티격태격 싸움을 하게 된 발단은, 마을 사람들한테 미국에 가 있는 서로의 자식들 자랑을 하다가 시비가 붙곤 한 것이었다. 점례의 검둥이 흰둥이 두 아들이 미국으로 아버지를 찾아간 것처럼, 양공주가 된 영자 춘자도 흑인 병사를 따라 태평양을 건넌 것이다.

덕주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연기를 빨다가 심한 기침을 쏟고 말았다. 기침 소리에 마을의 구경꾼들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쏠려 왔다.

담배를 구두로 문질러 끄고 조심스럽게 숨을 쉬었으나 기침은 멎지 않았다. 기침 소리에 가슴이 컹컹 울리는 것만 같았다.

덕주가 목욕탕 건물의 엷은 그늘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두 어깨를 들먹이며 고개를 세운 무릎 사이로 꿍겨 박고 버르적거리듯(고통스러운 일이나 어려운 고비에서 벗어나려고 팔다리를 내저으며 큰 몸을 자꾸 움직이다) 기침을 토해 내고 있을 때 담배 가게 앞에서 자랑스럽게 햄버거를 먹고 있던 초로 여인의 남편 춘자 아버지가 공터로 천천히 걸어 나와 그의 부인을 끌고 갔다.

춘자 아버지는 오른손에 햄버거를 들고 왼손으로 부인의 손목을 잡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싸움이 끝나자 기침도 멎었다.

 

[중략]

 

다시 기침이 쏟아졌다. 목구멍을 쥐어짜는 것 같기도 하고 쇠갈퀴로 목구멍에서부터 창자까지 피가 나도록 긁어 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기침 소리가 그의 귀에는 마치 깊은 골짜기를 쨍글쨍글 울리는 총 소리처럼 들렸다. 총구에서 불을 뿜듯 계속 기침이 쏟아졌다. 그는 기침 소리가 밖으로 크게 새어 나가지 않게 하려고 배를 방바닥에 깔고 엎디어 두 손으로 어깨를 힘껏 끌어안고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보건소에서 무료로 준 약이 호주머니에 있었으나 먹지 않았다.

얼마 후 기침이 멎자, 방 안은 한바탕 교전이 끝난 골짜기의 고즈넉한 정적처럼 조용했다. 그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서 벽에 걸려 있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한바탕 기침을 토하고 난 뒤라 얼굴이 구절초 꽃잎처럼 노래졌다. 두 눈 속까지도 노랗게 물든 것처럼 보였다. 그의 눈에 이미 핏발은 가셔 버린 지 오래였다. 어쩌면 눈에 핏발이 사라진 뒤부터 그가 낙엽처럼 무기력해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가 점례한테 저질렀던 일을 뼈저리게 후회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두 눈의 핏발이 점차 사라져 갔다.

덕주는 구두를 꿰고 하숙옥 앞 공터로 나갔다. 사흘 밤의 숙박비를 지불했기 때문에 하숙옥의 뚱뚱한 여주인은 그의 외출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목욕탕 건물의 그늘 밑에 조금 전 점례와 싸움을 하던 할망구를 끌고 간 춘자 아버지가 블록 벽에 어슷하게 기대서서 아이들처럼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도 않게, 미국에 있는 딸이 보내주었음 직한, 독특한 해작 바지(청바지)에 색깔이 알록달록한 반팔 셔츠를 받쳐 입었으며, 양말을 신지 않은 맨발에 흰 고무신을 꿰고 있었다.

하숙옥의 뚱보 여주인의 말로는, 춘자 아버지는 아이들처럼 햄버거를 들고 다니며 마을 사람들 보는 앞에서 먹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긴다고 하였다. 그 때문에 옛날 똥장군(똥을 담아 옮길 때 쓰는, 오지 또는 나무로 만든 통)을 끌고 미군들의 똥을 푸고 살 때는 마을 사람들이 그를 조 장군, 조 장군 하며 불렀는데 요즘에는 조 햄벅, 조 햄벅 한다는 것이었다.

덕주는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옷차림을 하고 햄버거를 맛있게 먹고 있는 그가 마치 유랑극단에 나오는 바보 주인공 같은 생각이 들어 마음 속으로 피식피식 웃었다. 어쩌면 그는 일부러 햄버거를 들고 다니며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랑스럽게 먹는 것으로 하여 미군들의 똥을 퍼 주고 살았던 과거의 기억들을 잊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숙옥의 뚱보 여주인 이야기로는 요즈막 그들 부부는 흑인 병사를 따라 미국에 간 두 딸들 덕으로 집도 이층 양옥으로 새로 짓고, 먹는 것 입는 것 걱정 없이, 조 햄벅이라고 부르는 것을 즐거워하며 산다고 하였다.

덕주는 조 햄벅의 앞을 지나, 여름 한낮의 햇살이 빈틈없이 가득 괴어 있는 공터를 가로질러, 때묻은 하늘색 포렴이 펄럭이는 술집으로 향했다. 점심 대신 소주나 한 잔 마시고 싶어서였다.

술집 안은 밖에서 보기와는 너무 딴판이었다. 생각보다 널찍한 홀에는 좌판 대신에 비록 때가 묻고 비닐 커버가 너덜너덜 떨어지긴 했어도 낡은 나무 의자와 빨간 페인트를 칠한 탁자들이 여러 개 적당한 간격으로 있었다.

네 벽마다에는 외국의 여자 배우들 사진과 누드 사진들이 촘촘이 파리똥이 박힌 채 여러 개 붙어 있었고, 반원의 카운터 위에선 낡은 선풍기가 덜컹거리며 돌아갔다. 밖에서 보기엔 시골의 주점같이 생각되었으나 안은 도시의 바처럼 꾸며져 있었다.

출입구의 밑 창문을 열어 놓았는데도 술집 안은 어두컴컴했다. 술을 마시는 손님들은 하나도 없었고, 마을에 사는 초로 여인네들 넷과 옆집 세탁소 남자, 이발소 주인 등 예닐곱 명이 선풍기를 둘러싸고 앉아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술집이라기보다는 복덕방 같은 분위기였다.

덕주는 그들과 떨어진 구석 자리에 앉았다. 주인인 듯싶은 점례 나이 또래의 50대 여자가 다가와 선 채 말없이 덕주를 내려다보았다. 여자에게서 화장 냄새가 역겹도록 풍겼다.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아이섀도를 검게 칠하고 립스틱까지 발랐다. 덕주가 소주 있느냐고 했더니 말없이 돌아섰고 잠시 후에 두 홉들이 소주 한 병과 작은 유리 술잔, 된장에 오이를 썰어 박은 접시를 놓고 갔다.

덕주가 두 잔째 술을 비우고 있을 때, 뜻밖에 점례가 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가 들어서자 선풍기를 둘러싸고 앉아서 큰 소리로 잡담들을 늘어놓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자리를 비워 주며 반갑게 맞았다. 점례는 점심을 막 먹고 오는 것인지 술집에 들어서자 카운터에 놓여 있는 성냥통에서 성냥개비 하나를 집어 허리를 동강내더니 쩝쩝 입맛을 다셔 대며 이빨을 쑤셔 댔다. 덕주는 점례가 그를 알아볼까 두려워 애써 고개를 숙였다.

"아이, 옥자야, 나 쐬주 한 벵 주라!"

점례는 의자를 끌어다 선풍기와 가까운 탁자 옆에 비집고 앉으며, 술집 여주인에게 소리쳤다.

"쪼니 워까 시절이 그리워서 몸쌀이 나겄당께! 우리헌테는 그 때가 황금 시절이었든개벼!"

점례는 그러면서 옆에 앉은 세탁소 남자의 와이셔츠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낚아채듯 하여 뽑아 필터를 잘근거리며 입에 물고 불을 댕기며 큰 소리로 말했다.

"점례 저 잡것, 또 바다 건너간 쌕스폰쟁이 쪼지 생각이 나는 모양이구나."

두 홉들이 소주 한 병과 안주 접시를 들고 나오며, 술집 주인이 비아냥거렸다.

"쪼지 생각도 간절허고, 토미 놈도, 짹도, 무하마뜨도, 로버뜨도, 리짜드도……. 그 엠병헐 놈들이 다 환장허게도 그립당께. 그래도 말이여, 젤루 그리운 건 역시 첫사랑이당께! 내 팔자를 개 창시처럼 횟가닥 뒤집어 놓은 그 남자……."

점례는 타는 담배를 탁자 위에 놓고, 소주를 거푸 두 잔째 숨 돌릴 여유도 없이 목구멍으로 털어넣더니, 술병과 잔을 옆에 앉은 세탁소 남자 앞으로 옮겼다.

"한 잔씩 빨어! 어야, 옥자야, 쐬주 한 벵 더 있어야 쓰겄다. 쪼니 워까는 못 마셔도 쐬주라도 빨자. 이 집도 쪼니 워까 시절이 좋았제……."

"대낮부터 무순 술을……. 아까 춘자 어메흐고 쌈 해서 목구멍에서 불나는 모양이구만!"

좌중의 여자들 가운데서 누구인가 말했다.

"옥자야, 언능 술 더 갖고 와! 이 마을에서는 그래도 이 오점례 신세가 상팔자 아니여? 그까짓 똥장군 조 햄벅이네보담이야 낫제! 미국에 간 깜둥이 흰둥이 두 아들이 출세해 갖고 매달 에미 용돈으로 100딸라씩 보내 주겄다, 본남편한테서 난 큰아들 서울에서 택시 운전수 허겄다, 둘째놈 싸우디 가서 돈 벌겄다, 내가 그냥 복 방석에 자뿌라져 뿌렀당께! 그런듸도 우리 아들덜을 조 햄벅이네 딸헌티 비교해? 택도 없어! 클씨 저번 때는 우리 깜둥이헌테서 편지가 왔는듸, 요븐 가을에 즈그 내외가 한국에 나와서 나를 데리꼬 가겄다고 했당께! 자식 덕분에 비행기 타고 팔자에 없는 미국 귀경허게 생겼어! 또 우리 흰둥이 새끼는 어쩌고……. 그놈은 비까번쩍헌 차가 두 대나 되고 대궐 같은 집에서 산다니께! 우리 네 놈 새끼들만 생각하면 옴찔옴찔 오져(마음이 흡족하다) 죽겄어."

점례는 어깨를 들먹이기까지 하면서 좌중의 마을 친구들에게 술을 따라 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점례의 그 같은 자랑을 텔레비전의 화장품 선전만큼이나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기 때문에 마지못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점례는 좋겠어!"

"점례가 부러워서 죽겄당께!"

"오점례 혼자 우리들 한을 다 풀었어!"

"점례는 우리 마을의 스타랑께!"

좌중의 친구들이 술잔을 비울 때마다 한 마디씩 뱉어 냈고, 그 때마다 점례는 자랑스러운 듯 어깨춤을 추듯 목을 휘저으며 행복하게 웃었다.

"그래도 조 햄벅이 할망구는 내가 양갈보질해서 깜둥이 흰둥이 낳았다고 숭보지 않든가?"

"그럼시롱 두 딸년들은 왜 그 짓을 시켜! 괜히 점례가 샘이 나서 그런 거니께 마음쓰지 말어. 시방 이 마을에서 점례를 숭보고 손가락질헐 사람이 누가 있다고그려? 점례나 조 함바꾸네나 다 안 굶어 죽을라고 헌 짓이었으니께……. 공주촌 사람덜치고 양키들 × 안 빨고시리 춘향이처럼 깨끗하게 살아온 사람이 누가 있간듸? 쪼니 워까며, 양담배며, 깡통 덕에 살아온 우리덜이 아닌감? 조 함바꾸네는 양키들 똥 덕분에 살었고 말여. 점백이는 몸을 팔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양키들헌테 쓸개를 판 거여. 몸을 판 거나 정신을 판 거나 매한가지제 머. 모두 다 쌤쌤이여. 굶어 죽지 않을라고 한짓이었응께……. 공주질해 갖고 떼돈 번 사람 있간듸?"

술집 주인 옥자의 말에, "그 짓 안 했으면 우리 시부모 두 새끼들 굶어 죽었을 것이여." 하고 점례가 갑자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때 조 햄벅이네 부인이 손목을 팔랑개비처럼 돌려 목덜미 안에 손바람을 만들어 넣으며 쪼작 걸음으로 옥자네 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좌중을 한번 두렷두렷 둘러보더니, 의자를 끌어다 점례 옆에 비집고 앉았다.

"옥자네야, 나 션한 맥주 한 병 주소. 한여름에 목 타서 워치께 쐬주를 마신당가 원!"

춘자 어머니는 그렇게 말을 하고 나서 점례의 옆얼굴을 빳빳한 시선으로 쏘아보았다.

"아니구만. 사람이 모두 몇인가, 나까정 야들이구마그려. 쐬주병 치워 뿔고 히야시 된 것으로 야들 병 줘. 우리 영감 함바꾸만 처묵는듸, 나도 기분 좀 내야 쓰겄어.!"

춘자 어머니가 짧은 목을 길게 빼고 손까지 흔들어 대며 소리쳤다. 그러자 점례는 소주병을 쥐어짜듯 하여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도 깡그리 빈 잔에 따라 마시더니 벌떡 일어섰다.

"옥자야, 엠병헐, 여기 쪼니 워까 한 박스 내와라. 이 집구석에 없으면 비행기 타고 미국에라도 가서 가져와!"
하고는 악에 받친 목소리로 울부짖듯 소리쳤다.

덕주가 또 필시 두 여자가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에 술값을 계산하고 슬며시 밖으로 나와 버렸다.

하숙옥의 답답하고 무더운 방으로 돌아온 그는 점례에 비해 너무나 무기력하고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고, 그녀를 만나려고 했던 마음이 희미하게 움츠러들고 말았다. 점례는 참나무처럼 굳세고, 싸움터에서 이기고 돌아온 병사처럼 떳떳하게 살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다는 것이 무의미하게 생각되어졌다. 그녀를 만나면 오히려 그녀 쪽에서 자기를 그렇게 만들어 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고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생각이 들기까지 하여 서둘러 그녀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떠나고 싶었다.

점례한테 용서를 비느니 차라리 서둘러 달밭에 돌아가, 고향 사람들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마음 속에 겹겹이 홀맺힌(풀 수 없도록 단단히 옭아매인) 회한을 푸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점례가 거리낌없이 사는 것을 본 그는, 지난 30여 년 동안 스스로 묶여 있었던 가책의 무서운 쇠사슬로부터 풀려나는 것 같은 마음 후련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제는 30년 전 그의 총부리 앞에서, 비바람에 떨어져 짓밟힌 감꽃처럼 무수히 숨져 간 사람들의 환영들도 뿌리쳐 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덕주는 오래만에 마음이 가벼워져 서둘러 고향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고향에 달려가고 싶은 발싸심(무슨 일을 하고 싶어서 애를 쓰며 들먹거리는 짓) 때문에 그 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꼭두새벽 미명이 되기도 전에 하숙옥에서 나왔다. 새벽 바람을 헤치며 걷는데도 이상하게 단 한 번도 기침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생이(박하)의 잎을 씹은 것처럼 목구멍 속이 개운했다.

덕주는 10리 길이 빠듯한 포주역까지 나가 첫차를 탈 욕심으로 새벽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너무나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때 풀잎 같은 마음으로 점례를 사랑한, 지난 그의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천천히 음미하듯, 기분 좋은 한여름의 새벽 공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이면서, 고향 뒷산의 양지 쪽에 평화롭게 누워 잠이 든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에 부지런히 그려넣었다.

비포장 황톳길을 지나, 발바닥이 쩍쩍 달라붙는 4차선 포장 도로에 이르렀을 때 채소를 가득 싣고 힘겹게 손수레를 끌고 가는 여자와 만났다. 머리에 큰 타월을 쓴 것을 보고 여자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덕주는 손수레 앞을 그냥 지나치려다가 끙끙거리며 너무 힘들어 하며 끌고 가는 것을 보고 가볍게 한 손으로 밀어 주었다. 그러자 여자가 어둠 속으로 뒤를 돌아다보며 숨가쁜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목소리로 보아 젊은 여자 같지가 않았다.

"새벽부터 어디까지 가시우?"

덕주가 손수레를 밀고 있는 한쪽 팔에 힘을 쏟으며 물었다.

"역에 도회지 장사꾼들한테 팔 거라우."

여전히 헐떡거리는 목소리였다.

"이렇게 한 구르마 끌고 가면 얼마나 버시오?"

"넘의 밭에서 새벽마다 한 구르마씩만 떼어나 파니께 게우 내 혼자 목구멍 풀질이나 허지라우."

"혼자라니, 식구는 없소?"

"자식이 넷이나 있었는듸, 에미 몸뚱이가 걸레가 되도록 애써 키워 논께, 제 앞길 가릴 만허자 모두덜 어미 품을 떠나가 쁠덩만. 뒈졌는지 살었는지 기별조차도 없당께요!"

"불효 막심헌 아들덜이군."

"말짱 이 에미 잘못이라우. 내 잘못이니께 그 놈덜 원망 안 허요."

여자는 푸념처럼 숨가쁜 목소리로 말하고 나서 잠시 손수레를 멈추고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깊숙이 머리를 싸맨 타월을 벗겨 얼굴과 목덜미의 땀을 닦았다.

아스팔트 위에 미명의 마지막 두꺼운 어둠이 괴로운 삶의 껍질처럼 천천히 벗겨지기 시작했다. 덕주는 수레를 끌고 있는 불쌍한 여자와, 아들 자랑으로 두 어깨를 춤추듯 들먹이던 점례를 비교하면서 몇 번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순간이었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천천히 갈라니께 먼첨 가시씨요."

여자가 땀을 닦아 낸 타월을 툭툭 털며 덕주를 돌아다보았다. 그 순간 그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동쪽 신작로 끝에서부터 트여 오는 아침의 하늘빛에 희미하게 드러나고 있는 여자의 얼굴은 점례가 분명했다.

"내 걱정 마시고 먼첨 가시라니께요."

그제야 점례의 때까치처럼 꺽꺽 울리는 목소리가 화살처럼 그의 심장에 섬뜩하게 꽂혀 온 것이었다. 갑자기, 점례가 30년 전 어둠 속에서 그가 들이댄 총구를 두려워하며 떨었던 것처럼, 그 자신이 그녀 앞에서 무참하게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덕주는 날이 밝아 오는 곳이 두려웠다. 고향에 돌아가는 일이 천당에 가는 것보다 더 어렵게 생각되어지면서, 다시 기침이 쏟아지려고 하였다.

자동차가 다급하게 클랙슨을 울리며 미명을 가르고 달려오자 그는 헤드라이트를 피해 몸을 돌렸다.

"걱정 마시고 먼첨 가시라니께요."

점례가 담배를 피워 물고 새벽 바람 속에 연기를 내뿜으며 덕주의 옆으로 왔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손수레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곳에서 도망치듯 손수레를 끌었다.

"나 혼자서도 문제없이 끌고 갈 수 있으니께 냅두시라니께요."

덕주는 점례가 한사코 만류하는 것을 못 들은 척하고 더 빠른 속도로 손수레를 끌었다. 채소를 가득 실은 손수레는 점례가 살아온 삶처럼 무거웠다. 아니, 덕주 자신이 지난 30여 년 동안 짓눌려 온 가책의 무게만큼이나 짐스러웠다.

새벽부터 둘이서 무거운 손수레를 끌며 밀며 지나온 아스팔트 길의 등 뒤엔 희번하게 동이 터 오고 있었으나, 수레가 도착해야 할 포주역의 서쪽 하늘은 아직 두꺼운 어둠 속에 덮여 있었다.

"혼자서도 문제 없는듸……."

점례는 잰걸음으로 손수레를 따라오며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였다.

 

<이해와 감상>

문순태의 작품은 주로 농촌 지방의 삶의 실상에 바탕을 둔 현실 세계에서, 삶에 내재해 있는 한의 문제를 집요하게 추구하는 데에 그 특징이 있다. 소설 <미명의 하늘>도 그와 같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덕주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점례라는 한 여인의 삶이 불행해졌다는 것에 심한 죄책감을 지닌 채 30년을 살아온 인물이다. 전쟁이라는 혼란한 시기에 무자비한 폭력까지 정당화할 수 있었던 권력을 이용하여 한 여인의 일생을 망쳐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점례를 찾아 용서를 빌기 위해 스스로 수십 년의 세월을 떠돈다.

덕주가 어렵게 찾아 낸 점례는 비록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 오기는 했어도, 다른 사람 앞에 당당한 모습으로 마주하고 있는 삶을 사고 있었다. 덕주는 자신의 모습이 오히려 부끄러워 말없이 돌아서려 하나, 점례의 실제 삶은 너무도 고달픈 것이었다.

이 작품은 혼란기 우리 민족이 겪어 온 삶의 굴곡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 입히지 않으면 상처 입을 수밖에 없었던 전쟁과 그 이후의 가난한 삶은 결국 덕주와 점례 모두에게 상처를 남겨놓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