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1950)                                                  -김성한-

 

 

며칠 전에 교무 부장으로 신임한 이광래는 흰 테 안경 너머로 실내를 휘둘러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시원한 놈은 하나도 없었다. 낫살 먹었다는 교감은 무골충(뼈가 없는 벌레를 통틀어 이르는 말. 또는 줏대나 기개가 없이 무른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요, 다른 교원은 대개가 삼십 전후의어린애들이었다. 그 중에도 여 교원은 문제도 안 되었다.

이만하면 가히 이 따위들은 쥐고 흔듦직하였다.

"우선……."
하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내려도 오지 않은 머리를 쓰다듬어 올리고는 손목을 기점으로 뿔뿔이 헤어진 다섯 손가락을 상하로 흔들면서 "이 선생" 하고 불렀다.

수학 교사 이세기는 일학년 교과서를 펼쳐 놓고 다음 시간에 배워 줄 연습 문제가 아무래도 풀리지 않아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 볼까 말까 하고 체면과 수치를 저울질하고 있는 길이었다.

허둥지둥 교무 부장 앞에 달려간 이세기, 별칭 꼬마는 두 손을 테이블에 얹으면서 머리를 숙였다.

"네?"

"선생님 반 학생 몇 명이죠?"

"육십일 명입니다."

"아 그런 걸 난 육십 명인가 했군, 틀림없죠?"

"네, 꼭 육십일 명입니다."

이광래는 성냥을 그어 담배를 붙여 물면서 꼬마를 쳐다보았다.

"선생님 무슨 이씨죠?"

"전 전주 이갑니다."

"허, 이거 종씨구먼."

"그러신가요? 이거 참……."

꼬마는 머리에 손이 올라갔다.

"이따 천천히 얘기합시다."

퇴근 시간이 되자 가방을 든 광래는 꼬마에게 눈짓하고 현관을 나섰다.

엉터리라 학생의 지탄이 심한 데다가 얼마 전에는 가짜 이력서까지 발각되어서 목이 떨어질락 말락 간신히 붙어 있는 꼬마는 교무 부장께서 종씨라는 바람에 눈이 번쩍 띄었다. 전 대학 교수요 교장의 간청으로 배를 내밀면서 부임한 박학다식하고 빽이 든든해 보이는 그가 바위같이 믿음직하였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시굴서 어떻게 보내나아 허구 걱정했더니 참 잘 됐습니다."

교문을 나서면서 광래가 먼저 말을 건넸다.

"무엇보담두 제가 의지할 곳이 생겨서 히히…… 동생으루 아시구 히히."

"무슨 말씀이오, 이게 다 인연이거든요."

코밑의 여덟팔자 수염을 약간 옆으로 움직이면서 힐끗 꼬마를 엿보았다.

"선생님 같은 분이야 서울 계셔야 헐 걸 이 시굴서……. 참 모두들 그렇게 생각허구 있습니다."

꼬마는 온 낯이 웃음이 되었다.

"아니 낸들 여기 오구파서 왔겠소? 교장이 어떻게 공작을 했는지 학무 국장이 권하구, 안 들으니 댐엔 문교부 국장들까지 강권허지 않겠소? 그래두 난 안 간다구 뻗댔더니 하루는 국회 의원 조씨까지 내가 가야만 그 학교를 바로잡을 테니 가야 헌다구 떠밀다시피 허기에 아무리 친구지간이라두 이렇게 되구 보니 거절헐 수가 있어야죠."

"조씨까지……! 친허십니까?"

"친허다뿐이겠소?…… 에에 대학두 여기저기서 오라는 걸 귀찮다구 거절허구 집에 들어앉아서 연구에 전심헐랴구 했더니, 참 우린 정에 끌리는 성질인가 봐."

행동거지 모두가 점잖고 근사했다. 가히 상전으로 모실 인물 이광래 선생에게 우선 약주라도 대접해야 되겠다는 갸륵한 심정에서 꼬마는 안 포켓에 몇 겹으로 싸 넣은 돈 이백 원을 만져 보았다. 그러나 선술집에 모실 분은 절대 아니었다. 월급이 나오면 아내에게 사 주기로 약속한 옥색 고무신을 내달로 밀고 외상으로 대접하기로 결심하였다.

"선생님 이거 참, 약주나 한 잔씩 나눕시다."

"아――니, 종씨 난 우리 집엘 가서 서울서 판사 노릇 허는 친구가 보내 온 미국 뿌란딜(브랜디를) 대접헐라구 했는데."

"웬 말씀이십니까, 순서가 있지 않습니까?"

"허어, 그럼 뿌란딘 댐에 헐까아."

광래는 꼬마의 뒤를 따라 세칭 '맹꽁이집'으로 들어가면서 혼자 씩 웃었다.

'앞잡이로는 안성맞춤이로구나!'

구석방에서 술상이 들어오자 꼬마는 앉은 자세로 한번 전후 운동을 하면서 공손히 사과하였다.

"이런 자리에 모셔서 안됐습니다. 그저 성의뿐입니다."

"줄창 뿌란디나 위스키만 허다가 간혹 이렇게 약주를 마시면 별맛이거든요. 비루(맥주) 비슷두 허구."

광래는 한 마디 던지고 유리 컵에 가득가득한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삼가 올리고, 점잖게 받고, 다시 돌리는 사이에 시간도 흘러서 촛불이 들어올 무렵에는 기분도 어지간히 좋았다. 광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난 여기 온 지 얼마 안 돼서 학교 사정이라군 통 모르는데, 저어 어느 때 봐두 말 한 마디 없는 그으 누군가? 아, 선생님 바루 옆에 앉은 사람 말이우……. 아, 그래 유영환 그 사람 어때요?"

"어떨 게 있나요, 샌님이죠, 그래도 뭣이 그리 잘났는지 이태나 같이 있어두 말두 없구, 어떤 애들은 잘헌다구두 허지마는 뭐 누가 아나요? 잘해 봤자 시굴 교원이죠."

이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치고 급사와 소사를 제한 전원이 심판대에 올랐고, 심판자 꼬마의 판결은 백 퍼센트 엄격하여 모두가 못났고 모두가 자기네들만 훨씬 떨어지는 위인이라는 데 귀결되었다. 방청객을 가장한 이광래 선생은 만족하였다. 촛불과 더불어 움직이는 두 그림자는 손바닥에 글자도 썼고, 귀에다 입도 댔고, 손가락으로 각기 자기 입을 두드리기도 하였다.

마침내 큰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지막 잔을 작은 그림자에게 나눠 부으면서 연설조로 천천히 뇌까렸다.

"선생님 얘기는 어저께 교장헌테서 잘 들었습니다. 빨리 선처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모―든 걸 그저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머리에 올라간 손은 수없이 긁는 동작을 하였다.

"생각해 보지요."

"그저…… 선생님만 보증해 주신다면 여부 있겠습니까…… 다섯 식구에……."

손은 또 머리로 올라갔다.

"염려 마슈, 고만 거야. 그리고 만사 잘 삼가시구 당분간 내가 시키는 대루 해야 됩니다."

두 그림자는 일어섰다.

헤어지자, 아내의 꾸지람이 무서워서 시각을 다투어 포르르 달려가는 꼬마는 기뻤다. 돈은 썼어도 쇳소리 나게 썼다. 아내도 양해할 것이었다.

전등 없는 어두운 거리를 가면서 광래도 생각이 없지 않았다.

'내가 본 대로 신통한 놈은 별로 없는 모양이구나. 내 눈이 틀림은 없지. 차라리 서울보다 나을는지 모른다. 닭의 주둥이는 될망정 소꼬리는 되지 말라 했것다. 요새 학교란 것두 깔볼 건 못 돼. 잘만 하면 노다지도 될 수 있고. 못 먹는 놈이 못난 놈이지.'

집――특별 대우로 독차지한 적산집(1945년 8·15 광복 이전까지 한국 내에 있던 일본인 소유의 가옥을 광복 후에 이르는 말)――에 들어서자 그 길로 이층에 올라가 가방을 내던지고 등의자에 철썩 들어앉았다. 학교는 틀림없이 내 학교였다.

'학교란 건 지식을 위주하는 곳이다. 우선 지식으로 압도해 놓을 필요가 있다. 학식…… 내 학식…… 무슨 문화 강좌 같은 것을 해야지. 전교 학생은 물론 학교장 이하 전 교직원을 앞에 놓고……. 그렇지, 시골뜨기들이 단박 입을 짝 벌리게 해야지, 무얼 할까?'

생각은 잘 안 났으나 하여간 자기의 박학다식으로 전교를 진동시키고, 인격으로 청중을 압도할 만한 그 무엇을 해야 할 것이었다.

'학생 때 나는 웅변 부장이었것다. 언제나 현하지변(물이 거침없이 흐르듯 잘 하는 말)으로 청중의 심금을 울렸었다. 공부 안 하고 극장만 돌아다녔어도 성적은 나쁘지 않았어! 만약 내가 남처럼 파고들었다면 최우등은 문제 없었을 거야. 아니 단연 문제 없었다! 안 했으니까 그렇지. 악착스레 책에 달라붙던 놈들은 지금 다아 뭣 하는 거야. 일등 했다는 놈은 죽어 버리고, 이등 한 놈은 쌀 장수? 허, 쌀 장수 하려거든 그저 할 것이지. 그 중 잘 됐다는 녀석이 고작 신문 기자야? 난 그래도 대학하고도 교수를 지냈것다! 그 때도 정말은 내가 꼭 일등이었어. 안 했으니까 그렇지. ……지금도 학교에서는 단연…….'

멀리 달이 비친 서해는 그림 같고, 별들은 그를 찬미하고 있었다. 광래 선생은 일어서 책장을 뒤진 끝에 뽀얀 먼지가 서린 <김유신전>을 골라잡았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문화를 앙양해야지. 오천 년의 긴 역사, 산고수려하고, 위인 걸사도 많았것다. 그 중에 김유신 장군을 제일로 꼽지. 우리는 또 재주도 출중하거든. 인쇄술, 잠수함, 다아 우리가 발명한 거지. 전차, 비행기도 그렇다는 말이 있어. 라디오도 그럴는지 몰라. 아직 연구가 안 됐을 뿐이지 좋은 연구 제목이다! 네가 선 곳을 파라, 샘이 솟으리라. 흥! 외국에서 무엇을 배워? 그건 그렇고 김유신 강의를 할까…….'

열어젖뜨린 문 밖으로 책을 내밀어 먼지를 털어 버리고 뒤적거렸다. 읽기에는 너무 두텁다. 뒤적거리다가 다시 책장을 돌아보았다. 단 하나밖에 없는 소설 부르제(프랑스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의 <제자>가 눈에 들어왔다. 일전에 책방에 들렀다가 우연히 눈에 걸려서 산 것이었다. 교육자는 우선 제자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을 산 숭고한 동기였다.

'이거 불란서 소설이랬지. 응, 역사 선생이 역사 얘길 하는 건 장할(매우 훌륭할) 것도 없다. 좀 두텁기는 하나 고금과 동서를 통한 해박한 지식의 일단을 보일 때다. 문화적으로 철학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해설하면은…….'

짧은 수염을 떠받친 입가에는 미소가 떠돌았다.

그 날 밤부터 시작된 <제자> 연구는 맹렬한 바가 있었다. 집에서 연구함은 물론 가끔 책방에 들어서 다른 책을 참조할뿐더러, 불어 사전을 펴 놓고 종이 조각에 무엇인가 적다가 점원에게 책을 빼앗길 정도로 발문망식(끼니까지도 잊을 정도로 어떤 일에 열중하여 노력하다)하였다.

문화 강좌란 일찍이 생각도 못하던 일이었다. 서울서 온 대학 교수는 과연 달랐다. 교장의 찬성을 얻어 가지고 '문화 강좌'라는 것을 한 번에 그칠 것이 아니라 기회 있을 때마다 하기로 되었다.

이광래 선생의 제1회 문화 강좌의 연제(연설이나 강연 따위의 제목)인 '시끄스뜨적 존재'라고 쓰인 큼직한 흰 종이를 육학년 급장이 연단 바른편에 붙였을 때, 강당에 모인 천여 명 학생은 물론, 삼십 명 교직원도 적지 않이 놀랐다. 전연 모를 말이었다. 교원들 중에는 자신의 무지를 탄하고 광래 선생의 박학에 감탄도 하고 시기하는 이도 있었다.

교장의 찬사에 가득 찬 개회사 겸 훈시에 이어, 광래는 우레 같은 박수를 받으면서 보조(걸음걸이의 속도나 모양 따위의 상태)에 맞춰 턱을 절도 있게 놀리면서 단에 올라 갔다.

"제목부터 먼저 해설해 드려야겠습니다. 시끄스뜨라는 것은 저어 유명한 불란서 작가 뽈 부르제 대표작 <제자>의 주인공의 이름입니다. 여기서어 우선 폴이 아니라 불어로는 뽈이요, 시크스토가 아니라 시끄스뜨입니다. 폴이니 시크스토니 하는 것은 왜식(일본식) 발음입니다."

입을 ㅅ형으로 닫치고 물을 잔에 부어 단숨에 마시고는 좌중을 한 번 휘둘러보았다. 한문을 잘하는 국사 선생이 불어까지 능통한 데 놀란 청중의 감동이 눈에 보이는 듯하였다.

"먼저 경개(전체 내용의 요점만 간단하게 요약한 줄거리)부터 말씀드리고, 다음에 그으 현대적 의의를 논허겠습니다."

조끼 협낭(호주머니)에 각각 세 손가락씩 넣고 단을 왔다 갔다 하면서 열변을 토하다가도, 흥이 일면 주먹으로 책상을 한꺼번에 다섯 대까지도 내리갈기면서 약 50분에 걸친 경개 설명이 있었다.

"주인공 앙드레 시끄스뜨――이것도 안드레가 아니라 불란서 발음은 앙드렙니다――와 그으 영향에 희생된 로벨 그레루의 철학이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에 끼친 해독이 그으 얼마나 컸다는 것을 우리는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십 세기는 개중에도 특히 우리나라는 실로 활동을 가장 열렬히 요구허는 시대입니다!"

책상을 연방 세 대나 내리쳤다.

"여―러분, 오늘날 시끄스뜨적 존재는 한 푼의 가치 없는 사회적 기생충이니 무조건허구 단연 숙청해야 합니다. 이러헌 존재는 문화를 퇴보시키는 역사상의 반도(반란을 꾀하거나 그에 가담한 무리)들입니다. 이를 테면 문화 사상의 죄인들입니다. 여―러분, 지금은 방 안에 틀어백힐 때가 아닙니다. 나서야 합니다. 선두에, 더구나 학도는 그러합니다."

이렇게 결론을 맺고 광래는 단을 내려섰다. 시골뜨기들은 필시 경도했을(몹시 놀라 넘어졌을) 것이요, 그 어리석음에서 눈을 떴을 것이었다. 나이 어린 일학년까지도 저렇게 열렬히 치는 굉장한 박수는 이를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은가?

그는 '나선다'는 말에 항상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마음에 꼭 맞았다. 더구나 그 앞에나 뒤에 '선두에'라는 한 마디를 붙일 때에는 저절로 주먹이 불끈 쥐어지곤 하였다. 광래는 또 이 말이 나오면 언제나 수많은 청중을 앞에 놓고 주먹을 휘두르면서 웅변을 토하는 영웅을 머릿속에 연상하였다.

강연이 끝난 후 '문화 강좌'의 발전을 위해서 열린 연회석상에서 늙은 교장이,

"거 참 시크스또, 아니 시끄스뜬가 유인자제(남의 아들을 그른 길로 꾀어내다)해서 몹쓸 놈이로군."
하자 광래는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걸을 때엔 언제나 책을 옆에 끼고 이십 도 앞으로 숙이던 그의 머리는 이 일이 있은 뒤부터 삼십 도로 변경되고 머리는 훑어 올리는 횟수도 부쩍 늘었다.

 

입학 시험이 왔다.

평소에는 쓰레기통에 팽개친 헌신짝같이 누구 하나 거들떠보는 이도 없는 교원들도 서슬이 푸르러서 일 시(市) 일 도(道)의 스승이 되고, 신문에 이름깨나 나는 사람의 명함도 보게 되었다. 역량 있는 교원이면 쌀가마도 장만하고 술잔쯤 생기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입학 시험에 이광래는 생각이 많았다. 어중이 떠중이 한 달 전부터 부탁 오는 자는 많아도, 보매 그럴듯한 놈은 하나도 없었다. 약주 한 잔짜리 아니면 기껏해야 가을에 김장감 한보따리짜리였다.

서울은 적어도 십만 원 단윈데……. 이 때 서울 있지 못한 신세를 길게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 같으면 지금 등의자 하나, 테이블 하나의 이 초라한 이층 방에 고급 응접 세트를 희한하게 차려놓는 것도 여반장이렷다…….

못난 시골뜨기에 싸여서 수완을 수완답게 부려 보지 못하는 딱한 사정에 한숨을 지으면서 담배만 풀썩풀썩 피웠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등의자가 삐꺽거렸다.

아래층에서 현관문 소리가 났다.

처와 몇 마디 주고받더니 층층대를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사흘이면 한 번은 꼭 찾아오는 꼬마였다.

"하아, 선생님 역시 혼자 묵상이시군. 너무 연구만 허시면 쉬 늙는답니다."

"이 선생이시우, 저녁 잡수셨나요?"

꼬마는 예에 따라 이 시골까지 내려오실 처지 아닌 이광래 선생 내외께서 서울보다 대우건 무엇이건 보잘것없는 여기서 아쉬워서 어떻게 지내느냐고 간곡한 문안을 드리고 나서 턱밑에 다가앉았다.

"선생님, 그런제 말이죠, 저어…… 삼강 무역 공사 아시죠? 여기서 제일 큰…… 그 사장의 딸이 이번에 우리 학교 본답니다. 저와는 전부터 친한 처지라 비서가 날마다 따라다니더니만, 오늘 저녁엔 국일관에 굉장히 차린 모양입니다. 사장두 벌서 와서 기다리는데 꼭 선생님을 모시구 와 달라는 겝니다. 안 된다고 몇 번 거절해 보았지마는 수만 원 들여 가지구 다아 차려 놓은 걸 어떡허느냐, 입학 땜에 그러는 건 절대 아니니 너무 그리 청렴을 떨지 말라구, 글쎄, 이렇지 않겠습니까?"

광래는 태연히 대답하였다.

"허어, 그럼 가 보시구려."

"아―니, 지까짓 것이 간들…… 저쪽에서는 꼭 선생님을 대접허구 싶답니다."

"……."

"선생님 잠깐 가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내가 가서 무슨 소용이란 말이우?"

그러나 가슴 속에서는 가감승제가 오락가락하였다. 가망이 컸다.

꼬마는 턱을 쳐들었다.

"선생님의 고명(남의 이름을 높여 부르는 말. 또는 높이 알려진 이름이나 명예)은 벌써 다아들 알고 있습니다. 교장 · 교감을 젖혀 놓은 것만 해두 알 일이 아닙니까?"

얕잡아 보는 꼬마의 칭찬이라도 칭찬은 언제나 기분 좋은 것이었다. 자기가 잘난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 대답 대신 책 하나 집어 들고 책장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선생님 어떡허시렵니까?"

이광래쯤 문제 없다고 따라 일어서는 비서를 물리치고, 장담하고 나선 꼬마는 초조하였다. 광래는 책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허어……'만 연발하였다.

이따가 보자는 것은 무섭지 않았다. 일야(하룻밤)의 청유(청함)도 나쁘지는 않았으나 그 이상의 명확한 약속이 듣고 싶었다. 꼬마의 언동으로 보건대 막후(배후)에는 반드시 무엇이 있을 것이었다. 굴러 오는 떡도 못 찾아 먹을 이광랜 줄 알았더냐?

꼬마는 광래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

"선생님께 드릴려구 마카오 기지(옷감의 일본어) 제일 좋은 놈으루 한 벌감 장만해 놨다는데……."

광래의 뱃속에서는 '괜찮다!'는 환성이 올랐다. 그러나 이것이 합계인지 한 조목인지 알고 싶었다.

"흥, 어림없죠, 교육잘 뭘루 알구."

꼬마는 진퇴양난이었다. 모자를 들고 일어나 나가려는 기세를 보였다. 대답 대신 곁눈을 한 번 받았다. 앉으려다가 다시 일어서 문을 열었다. 그러나 꼬마는 이광래 선생의 적은 아니었다. 다시 돌아와 광래 앞에 섰다.

"선생님 쌀 두 가마까지……."

애석(슬프고 안타까움)에 넘치는 한 마디를 던졌다. 이로써 계산은 끝났다. 광래는 일어나 모자를 집어 썼다.

"선생님이 그까지 말씀허신다면……. 선생님 체면두 있구 허니 잠깐 가 봅시다."

국일관 간판은 아침 저녁으로 보면서도 안에는 처음으로 들어가는 꼬마의 가슴은 암담하였다. 자기가 누구보다도 애쓴 이 사업이 자기에게는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였던 것이다.

복도까지 나온 사장 조경천은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서로 상대방의 성화(세상에 널리 알려진 명성)를 떠받드는 초면 인사가 끝났다. 드나드는 사람을 후리고(그럴싸한 방법으로 남의 정신을 어지럽게 하여 꾀어 내다) 호령하는 품이 이 집에 대한 그의 세력도 상당한 모양이었다.

주효(술과 안주)가 들어왔다.

"아무 준비도 없이 이렇게 모셔서 미안합니다. 다만 성의의 일단을 알아주시구 널리 양해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이광래는 의외였다. 사장의 시건방짐은 말할 것도 없고, 커다란 상에 불고기 · 잡채 · 굴이 각기 한 접시, 그 외는 김치와 깍두기뿐이었다. 여기 이 한 상은 교사 이광래에 대한 사장 조경천의 평가가 아니냐? 납딱잔으로 꼭 두 잔 마시고 이광래는 일어섰다.

"모처럼 성찬을 베풀어 주셨는데 미안합니다. 내일 준비두 있구 이만 실례허겠습니다."

약간 당황한 사장 이하 세 사람이 극력 만류하는 것도 듣지 않고 기어이 국일관을 나서고야 말았다.

"어디 보자."

어두운 거리를 가면서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얼마 후에 또한 국일관을 나선 사장도 비서에게 속삭였다.

"어디 보자, 누가 이기나."

 

[중략]

 

영환은 출판사에서 교과서를 사고 남은 돈 일만오천 원을 가지고 화학 실험상을 사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으나 사지 못하고 다른 도구라도 있으면 하고 찾았으나 역시 신통한 것은 없었다.

나중에는 좋은 책이나 살 양으로 충무로 헌책사를 돌아다닌 끝에 <이론 화학>을 찾아 내었다. 전부터 한 번 보려고 별러 오던 책이었다. 자기 돈 천 원까지 넣어서 일만육천 원으로 전집 다섯 권을 샀다. 그는 몹시도 기뻤다. 낮에는 과학실에서 보고 밤이면 집에 가지고 가서 보았다.

며칠 후 직원회 석상에서 교무 부장이 일어서더니 엄숙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학생들 교과서 구입에 있어서 그 잔액을 처분허는 문제인데 이것은 자칫하면 오해를 사기 쉽습니다. 아니 일부에서는 이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례를 들면 오학년 학생 대표가 화학 교과서 문제로 오늘 아침 나헌테 항의하여 왔습니다. 이러헌 일은 각 담당 선생께서 적절히 처리하여 주시지 않으면 교무로서는 입장이 여간 딱허지 않습니다."

교장은 놀란 빛을 보이면서 사유를 물었다.

"그것은 유 선생께서 설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광래를 시치미를 떼었다.

영환은 금시초문이었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쓰면서 일어나 그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고, 학우회 도서로 구입한 것이지 결코 개인 소유물로 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떠듬떠듬하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광래는 한 대 쏘았다.

"선생님의 말씀이 다아 옳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어째서 독서 대장에도 올리지 않고 현물은 댁에 가져다 두십니까?"

"등록치 못한 것은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의 실수입니다. 그러나 어떤 불미한 의도에서 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사무적으로 충실치 못한 탓이었습니다. 그리구 집에 가져다 두었다는 것은 오해십니다. 밤에 가지고 가는 일은 있어도 낮에는 꼭 도루 가지고 왔습니다."

"허, 며칠 전 댁에 놀러 갔던 학생두 보았다고 야단법석할뿐더러, 오늘 댁에 심부름 갔던 소사도 보았다는데."

전후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그는 과학실에 달려갔다. 다섯 권 중 세 권밖에 없었다. 오늘 아침 따라 늦다고 그냥 달려나온 생각이 그제야 났다.

돌아와 사실대로 보고하였으나 조소를 섞은 광래의 추궁은 더욱 맹렬하였다.

"선생님 자신은 그렇게 말씀하셔도 객관적으로 보아 수긍하기 어려운 걸요. 과전에 불납리(오이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말라는 뜻으로, 의심받기 쉬운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함을 이르는 말)라 하지 않습니까? 하여튼 무엇보다두 학생들이 듣지 않으니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저두 책임상 할 수 없이 이런 말두 드리는 겝니다."

구석지에 앉은 꼬마는 낮은 소리로 "그렇지요" 하고 머리를 끄덕끄덕하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영환을 지지하는 축도 있었다.

"그게 무슨 그리 큰일이라구.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구."

이 말이 떨어지자 광래의 공격은 절정에 달하였다.

"이것이 보통 사회라면 용혹무괴(혹시 그런 일이 있더라도 괴이할 것이 없음)라 합시다. 여기는 신성한 학원이요 우리는 교육자입니다. 이러한 마당에서 금전 문제로 시비가 났다는 것은 더구나 우리끼리면 또 모르겠소, 사제지간에 이런 문제가 났다는 것은 실로 유감천만입니다. 가장 불미한, 추호도 용인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가 책상을 지고 철썩 들어앉자 묵묵히 앉았던 영환은 천천히 일어섰다.

"저의 본의 여하를 막론하고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은 참으로 미안합니다. 어떤 처분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종시 말이 없던 교장이 중간에 나섰다.

"이 일은 내게 맡기시우. 적당히 처리하면 별일 없을 게 아니우?"

결말을 보지 못한 채 헤어졌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교장 앞에 선 학생 대표라는 운동 선수 세 명과 웅변부원 두 명의 항의는 처절한 바 있었다. 교장이 여러 가지로 타이르는 말도 전적으로 거부하고 마지막에는,

"학원은 학문의 도장이 아닙니까? 만약 무리(사리에 맞지 않음)의 도장으로 화하려는 자가 있다면 수수방관해야 옳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위인을 스승으로 모실 수 없습니다."

학생으로서는 보기 드문 명문구를 줄줄 퍼부었다.

이 문제로 전교는 양분되었다. 배척·지지, 양파 학생 대표가 번갈아 교장실에 드나들고, 교원도 제각기 뭉쳐서 수군거렸다.

분란은 며칠 계속되었다. 낮에는 학교에서, 밤에는 교장 댁에서 서로 정의를 위해서 호소하고 일보도 양보하지 않았다. 이광래 선생 역시 학원의 신성을 위해서 밤이면 반드시 교장 댁을 찾았다.

마침내 유영환은 시비를 가릴 것 없이 분란의 책임을 지라는 교장의 결정에 따라 사직하게 되었다.

떠나가는 영환을 정거장까지 배웅 나간 광래는 그의 어깨를 치면서,

"선생님의 결백은 잘 압니다마는, 학원의 신성을 위해서 읍참마속(규율을 세우기 위해서는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도 버림을 이르는 말)――울면서 마속을 베었습니다. 언제나 선생님에 대한 옛정이야 다를 리 있겠습니까? 저의 고충을 알아주시고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광래는 기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지극한 정을 표시하였다.

영환을 보내고 나서 그 길로 학교에 돌아오자 교감 앞에 선 그는 담배를 뻑뻑 빨았다.

"허, 참 겉으루 얌전을 떠는 게 뒤루는 호박씰 깐다더니 이걸 두고 이르는 게로군. 교감 선생, 전 유 선생 말을 듣구 한때 선생님까지 오해했더랬습니다."

꼬마가 웃으면서 장단을 맞췄다.

"앓던 혹을 뗀 격인가요?"

 

일요일이었다.

낮잠에서 깬 광래는 자리에 누운 채 생각하였다.

"출세……."

어느 모로 보나 자기는 이 시골서 여학교 교원으로 썩을 인물은 절대 아니었다. 입빠른 친구들은 혼란기에 엄벙뗑하고(얼렁뚱땅하다) 된 것이라 중상(터무니없는 말로 남을 헐뜯어 명예를 손상시킴)하지마는 대학 교수도 지냈다. 안 하니까 그렇지 지금도 하기만 하면 학계에서 제일인자 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또 수완으로 보더라도 내가 꾸며서 일찍이 안 된 일이 있단 말이냐? 그러면 인물은?

거울을 앞에 놓고 들여다보았다.

여덟팔자 수염부터가 의젓했다. 눈이 좀 작은 듯도 하지마는 그러나 이건 괜찮았다. 오뚝한 코, 위엄 있는 입술――이만하면 어느 회전 의자에 갖다 앉혀도 그럴 듯한 것이었다.

나쁘지도 않은 눈에 걸어 놓은 흰 테 안경은 전체의 조화를 알맞게 하고 일종 위풍을 주고 있었다.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못난 데라곤 하나도 없었다.

"출세……."

'사람치고는 정치인이 제일이지.'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부스러기 교감이나 유영환 따위를 내쫓자고 한 것이 도리어 부끄러웠다.

영웅의 한때 장난이지……. 그건 그렇구, 중앙 정치 무대에서 눈부신 활약을 한번……. 마땅히 사나이의 할 일이지.

그는,

"돈……."
하고 손을 불끈 쥐었다.

'돈이 장수지, 돈이 못 하는 일이 있단 말이냐? 우선 돈을 벌어야지.'

돈만 있으면 출세는 문제 없고, 출세하면 돈이 또한 문제 없을 것이었다. 돈 따위는 누워서도 굴러들어올 것만 같았다.

저녁밥을 총총히 끝내고 세관에 다니는 중학 동창을 찾았다. 뜬소문에는 돈냥 톡톡히 잡았다고 하였다.

 

양주에다 눈부신 요리가 들어왔다.

"이 사람, 자네 혼자 재밀 보지 말구 같이 보세나."

말은 농담 비슷하게 걸었으나 희망은 열렬하였다.

"우리 겉은 헌 놈이 될라구? 허허……."

"헌 놈도 좋구, 새 놈두 좋아. 하여튼 한 자리 없겠나?"

"요새는 전겉이 신통치 않아, 허긴 우리 과장이 요새 그만둔다는 소문이 있어. 자네 겉은 사람이야 적어도 과장 이상이라야지."

"정말인가?"

"글쎄, 소문이 그렇다뿐이지 누가 아나?"

"그래두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라구?"

그의 가슴에는 희망의 봉화가 불붙었다. 자리만 있으면 될 것 같고, 되기만 하면 그 이상의 출세는 탄탄대로일 것이었다. 운동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친구더러 세관 내의 동정을 살펴주고 그쪽으로도 운동을 해 달라고 신신부탁하고 나섰다. 술에 얼근한 그는 걸으면서 생각하였다.

'우선 세관 과장, 보통 과장과는 틀려! 세관 과장이야. 흥! 되고 안 되는 거야 내 수완이지, 여기 드나드는 무역선은 모조리 쥐고 흔든다, 몇 억 원, 아―니 몇 백 원이랬지? 서해의 무역은 내 손바닥에 달려 있다! 밀선이건 인가 맡은 배건 내가 안 된다면 그만이지. 될 것도 안 된다고 호통 지르면 그 날 밤엔 당장 일류 요정에 초청이랍시고…… 허허……. 이튿날 아침 하이어(전세 승용차)로 집에 돌아와 보면 돈 보따리가 막 굴것다. ……그리고 일 년쯤 지나면…… 흥 내가 과장에 만족할 사람이야? 사직하고 국회 의원에 당당 출마하지, 당연하지! 내 인격과 학식, 또 돈냥 있것다. 이 시내에선 압도적으로 이길 건 명약관화거든. 선거 사무장은 누굴 시킬까? 꼬마? 내게 충실은 했으나 인품이 틀렸어. 누구 체면을 망칠라고? 어림도 없지.

새하얀 광목에 네모 번 듯하게 이광래라고 쓴 것이 거리거리에 나붙게 되면 교장 이하 전교생은 감개무량할 게다. 이렇게까지 훌륭한 분인 줄 몰랐다고. 더구나 멍텅구리 교감은 입을 짝 벌릴 거고. 학교의 영광이거든.

그건 그렇고 국회에서는 단연 두각을 나타내야지. 학생 때부터 길러 온 이 웅변으로 현하지변을…… 제일 발언도 많이 하지. 그 때쯤은 안경도 물론 금테로 바꾸고. 담엔 장관으로 누진했다가(지위, 등급 따위가 차차 올라가다)……. 노후엔 중망(여러 사람에게서 받는 신망)으로 대통령에 선출되어서, 이름은 청사에 빛날 것이다!'

생각은 무궁무진하였다. 들어옴 직한 것은 이미 들어온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족보에 특기할 이 경사의 전야를 그냥 보낸다는 것은 안 될 말이었다. 자칭, 남편칭, 나라여고사를 나왔다는 처를 시켜서 약주를 받아 왔다. 약주는 별맛이었다. 처에게도 한 잔 권하였다.

"세관서 그여쿠 과장으루 와 달라는데 어떡할까?"

돈과 세관은 인연이 깊었다. 돈꿈에 펄쩍 뛰는 처를 앞에 놓고 한 잔 두 잔 마시면서 얘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게다가 세관은 자기가 안 들어가면 도저히 해 나갈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나 남자란 가벼이 움직일 것이 아니니 서서히 기회를 보아서 적절히 처리하겠노라 하였다.

광래는 광래대로, 처는 처대로 찬란한 꿈을 안고 잠들었다.

 

고향 수원에 나타난 이광래 씨는 형과 마주 앉아서 친절 정녕(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함)을 다하여 설명하였다.

"…… 이렇게 큰일입니다. 과장으루 다아 내정된 게니까 염려 마시구 저 황소를 저에게 주시우."

그러나 땅에서 나서 땅밖에 모르는 형은 돌같이 굳었다.

"그 소가 어떤 소라구. 아버님께서 나무와 배추루 푼푼이 모은 돈을 가지구 재작년 가을 돌아가시기 전에 사 논 건데."

"아니, 그러게 누가 그저 쓰나요? 과장으루 들어가면 고만 건 문제두 안 돼요. 세 마리 사 드리리다."

"그럼 그런 돈 쓸 거지 해필 소는 왜?"

그는 안타까웠다.

"글쎄 형님, 들어가기 전에 마련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동네 구장처럼 그리 간단히 들락날락하나요? 모모한 인사덜두 찾아봐야 할 게구, 또 이 꼴루 어떻게 높은 의자에 앉습니까? 사람에게 돈이란 건 기계에 기름과 마찬가집니다. 단 형제밖에 없는 우리가 서루 도와 주지 않으면 누가 도와 줍니까? 오는 여름엔 서울에 큼직한 집을 사 놓구 형님을 모실 계획까지 다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님은 까딱없었다.

"내 손을 봐, 이 몽둥손을. 이게 내 팔자야. 서울 가 호강하잔 말두 안 해. 별일 있어두 소는 못 내놓을 테니 더 생각두 마라."

자리를 차고 일어서 나가 버렸다.

과장이 되면 하룻밤 사이에 들어올 돈어치밖에 안 되는 소 새끼 한 마리 가지고 무서운 깍쟁이를 부리는 시골 농사꾼의 인색 각박이 기막히게 밉살스러웠다. 그렇다고 뿌리치고 나가 버리게도 안 되었다. 하룻밤을 자면서 순박한 형수를 설득하고 형수를 통하여 형을 설득하기로 하였다.

이튿날 오후에야 형의 마지못해하는 승낙이 내렸다. 소는 팔기로 되었다.

그는 차마 소를 이끌고 나갈 수는 없었다. 소라는 것은 역시 헌 옷을 입고 손발이 닳은 부류가 몰고 다닐 것이었다. 형이 소를 팔아가지고 돌아올 때까지 목침을 베고 방 안에 누워 기다리기로 하였다.

소를 이끌고 사잇길을 따라가는 형의 웃저고리는 군데군데 찢어져 바람에 나부끼고 흰 머리칼 섞인 뒷모습에는 고난에 찬 농부의 생애가 그려져 있었다.

몇 번이나 두 손으로 소 잔등을 쓰다듬던 형수는 집 모퉁이에 서서 멀리 가는 소가 산비탈을 돌자 치맛자락을 눈에 가져갔다.

십오만 원을 받은 이광래 씨는 약속과 장담을 수 없이 남기고 밤차로 떠났다.

집에 돌아온 그는 우선 칠만 원으로 양복 한 벌 지었다. 새 양복을 입은 뒤부터 그는 서울 출입이 잦았다.

하교 같은 것은 문제될 것도 없었다. 마음 속으로는 이미 과장이 되었고, 거만(만의 곱절이라는 뜻으로, 많은 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의 재산도 쌓아 놓았다. 결근한다고 잔소리하는 교장에게는 그럴듯한 핑계로 사과하면서도 뱃속에서는 빙그레 웃었다.

'너도 이 잔소리를 후회할 날이 멀지 않았으리라.'

교장 따위는 불쌍한 버러지였다.

서울에 갔다 올 때마다 술에 취해서 한다는 소리가 모두가 큼직했다.

"오늘은 무슨 장관을 만났어."

또는,

"오늘은 무슨 국장의 초대를 받았어."

만났다는 사람은 모두가 드르르한 인물이요, 했다는 이야기는 엄청나고 무시무시할 지경이었다. 벼슬하고 돈자리에 올라앉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것도 먼 장래 일이 아니라 당장 내일이 아니면 모레 일이었다.

내일이요 모레가 한 달이 되어도 나간다던 과장은 나가기는커녕 신흥동 높은 곳에 새로 집을 짓기 시작하고 운동비 팔만 원도 바닥이 났다. 나중에는 이 할 이자까지 내어 이만 원을 더 쓴 광래는 초조하였다.

무슨 국장을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현직에 있는 자리도 내쫓고 감투를 빼앗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장담하는 옛날 뒷집에 살던 사나이에게 처음부터 이 감투 운동을 일임하고 그 뒤를 따라다니던 그는 가끔 따지기 시작하였다.

"어찌 된 셈이야?"

"되기는 꼭 됩니다. 여부 있나요? 국장두 이 일엔 그야말루 발벗구 나섰으니까."

만날 따져야 만날 같은 대답이었다.

하루는 굳게 결심한 바 있어 그는 단독으로 직접 국장을 찾아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뉘시든가요?"

한 번 점심을 같이 한 일도 있고, 자기 일에는 그야말로 발벗고 나섰다는 이 국장은 이름을 아뢰어도 고개를 기웃거리면서 "네?" 하고는 다시 문서를 뒤적거렸다.

하는 수 없이 중간에 나선 자의 이름을 대고 여기 오면 만나리라 해서 왔노라 하였다.

"글쎄올시다. 동향이라뿐이지 별루 가까이 지낸 일두 없구. 그 언젠가 선생과 한 좌석에서 헤어진 후로는 다시 보지 못했는데요."

'이광래'라고 한 마디만 하면 전기같이 반응이 있을 줄 알았던 것이 이 지경이었다. 무안하기 그지없었다.

현관에 나섰다.

'이놈 서울서 앞뒷집에 살면서 형님 동생 하던 그 정의는 어디다 팽개치고 누굴 잡아먹는 거야.'

당장 가서 멱살을 붙잡고 실컷 뚜들겨라도 주어야만 할 것 같았다.

곧 하이어를 몰아 돈암동서 내려 골목길을 들어서자 부리나케 대문을 두드렸다. 목소리는 떨리고 눈에는 피가 돌았다.

간신히 문을 연 파마한 부인의 대답은 실로 아니꼽기 이를 데 없었다.

"사흘 전에 나가셨는데요오……. 글쎄 알 수 없습니다만, 언제 돌아오실지이."

최대 한도의 힘으로 들이켜고, 최대 한도의 힘으로 내뱉은 가래침에 이어 벼락이 터졌다.

"아무리 도의가 땅에 떨어져 망한 놈의 세상일지라두 사람의 새끼가 어디 그럴 법이 있단 말이우? 의리와 도덕을 모르는 것두 사람이오? 원 참, 들어오걸랑 곧 우리 집엘 보내시우."

"무슨 일인데 이렇게 길바닥에서?"

"무슨 일이건 당장 내려오라구 하시우. 내니 그렇지, 남과 그 따위 수작을 했다가는 모가지 스무 개 있어두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사람의 새끼가."

돌아오던 길에 대포 한 잔 마시고 막차를 탔다. 어둠 속을 내다보면서 비분강개를 마지못하였다.

'이런 놈들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거야.'

 

그 후에도 그가 서울 출입하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한번은 서울서 큰 상처를 이마에 붙여 가지고 왔었다. 그러나 떠도는 소문과는 달리 학교를 떠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일설에는 그 상처는 중간에 나섰던 자와 최후 담판을 하다가 대폿잔으로 격투한 끝에 얻은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 자신의 설에 의할진대, 이것은 서울 무슨 고명한 교수와 술을 나누고 돌아오던 길에 돌에 걸려 넘어진 탓이라 하였다. 하여튼 상처는 한 달도 더 갔다.

하루는 애린회 발기 취지서라는 제목하에, 우리 전재(전쟁으로 인한 재난) 동포를 구함과 아울러 최근 이 곳에 물밀 듯이 밀려드는 중국 재민을 양국이 협심육력(여럿이 힘과 마음을 하나로 모으다)하여 구제하자는 취지가 신문 삼단 전 페이지에 게재되었다. 특히 국경을 초월한 사해동포의 거룩한 정신에 입각하여 금액의 다과를 막론하고 한 술의 밥, 한 치의 천일망정 성심성의 구원의 손을 펴자는 감동적 결론은 읽는 사람의 동정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과반수를 중국인이 차지한 십여 명 발기인 중에는 이광래 선생의 이름이 셋째번에 들어 있었다.

이 때부터 광래는 시내 이곳 저곳 다니면서 기부를 받았고, 학교에 와서도 교직원과 학생에게 이 숭고한 취지를 설명하고 원조를 청하였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그 참상은 실로 '목불인견'이었다.

동정은 사방에서 일어났다. 각 학교에서도 응분의 거금을 하였고, 일반 사회에서도 상당한 반향이 있었다. 광래는 매우 분주한 모양으로 가끔 택시를 타고 돌아다녔고 학교도 결근하기가 일쑤였다.

이십 일쯤 지난 어느 날, 새 양복, 새 구두, 새 모자를 말쑥하게 차리고 출근한 그는 선망과 시기를 섞은 동료의 축사에 대답하였다.

"역시 큰일하는 덴 이것이 필요하거든."

점잖게 자기 옷을 어루만졌다.

한 달이 지난 후에 그가 서울에 집을 샀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러나 "이 거룩한 사업을 위해서 먹을 것을 못 먹고 입을 것을 입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발분망식하고 다닌다."는 그의 소감의 일단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 따위 중상을 일삼는 무리들의 허무한 낭설일 염려도 있었다.

 

이광래 선생이 말도 없이 결근한 지 사흘째였다. 자진해서 댁에 찾아갔던 꼬마의 보고에 의하면 어찌 된 판국인지 집은 자물쇠를 잠가 놓고 아무 기척도 없기에 손가락에 침을 발라 창호지에 구멍을 뚫고 들여다보았더니, 집 안은 텅 비어서 접시 조각 하나 없고 종이 나부랭이가 이리저리 굴러다닐 뿐이라는 것이었다.

교무실은 온통 떠들썩하였다.

떠들썩하다가 잠잠해질 무렵에 중국 사람 6, 7명이 몽둥이 하나씩 들고 마구 몰려들었다.

"리쾅라이쌍나―ㄹ취(이광래 어디 갔소)?"

"둔러첸왕날취라(돈 먹고 어딜 뺀 거야)?"

"훈단(개자식)."

"나추라이(내놔)!"

저희말로 떠들썩하다가 우리말에 능한 사람이 나서서 사유를 설명하였다.

이광래는 애린회 간사로 있으면서 전부터 돈을 물 쓰듯 하더니, 며칠 전에는 이재민에게 먹일 쌀을 산다고 있는 돈을 죄다 갖고 나간 채 감쪽같이 사라져서 굶어 죽게 되었으니 학교에서라도 이 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배짱 있는 체조 선생이 나서서 응대하였다.

"못난 소리 마라, 학교가 무슨 상관이야?"

"사람 살린다 해 가지구 사람 잡아먹기야? 더―럽다, 더―러워."

옥신각신한 끝에 교장까지 나서서 사리를 따진 결과 그들도 하는 수 없이 돌아섰다.

나가던 길에 그 중 한 자가 몽둥이로 이광래 선생의 테이블을 힘껏 내리갈기고 침을 퉤퉤 뱉었다.

 

그 후 일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광래 선생의 행방은 묘연하고 테이블의 몽둥이 자리만은 지금도 남아 있다.

 

<이해와 감상>

소설 <자유인>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다가 결국은 좌절하고 마는 이광래의 모습을 통해, 현실에서의 인간의 부정적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자만에 빠져 있는 이광래는 자신의 지적인 허영을 위해 문화 강연을 준비하고, 그런 그의 허영심은 다른 선생들의 무지로 인해 더욱 과장되어 나타난다.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부정직한 삶의 모습들을 통해 교단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과 부정을 보여주기도 하고, 지나친 자만이 가져오는 실패를 통해 이광래 개인만이 아닌 허영에 가득한 현실의 문제를 비판하기도 한다. 이광래는 결국 공금 횡령 후에 도망하게 되는데, 이러한 모습은 그의 과도한 욕심과 자만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