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 가(1937)                                                  -최정희-

 

 

――그 집은 '흉가'라고 했다.

그것을 전연 모르고 나는 아침 일찍이 비가 몹시 오는데 우산을 받고 동저고릿바람으로, 앞을 서서 휘적휘적 잘 걷는 늙은 집주름(주름은 '주릅'의 잘못된 말, 따라사 집주릅은 집을 사고 팔 때 흥정을 붙여 주고 그에 대한 보수를 받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말함.)의 손을 잡고 가가스로, 밤 사이에 불은 개천을 건너가서 그 집을 둘러보았다.

집은 대문에 쇠가 잠겨 있었다. 빈 집이라 계약만 잘 되면 곧 옮길 수 있을 것이 기뻐서 나는 집주름이 집주인을 데리러 비 오는 산모퉁이를 돌아간 뒤에 대문밖에 우산을 받은 채 우두커니 섰다가 집 울타리 밖을 몇 번 휘이 둘러보았다. 앵두나무, 살구나무, 감나무가 집을 뺑 둘러싸고, 바로 집 뒤 가까이 산이 있고 좋은 바위도 군데군데 엎드러져 있었다.

앵두는 봉오리가 졌고, 살구나무, 능금나무엔 물이 다 오르고, 감나무만이 아직 거먼 대로 출출해 보였으나 오래지 않아서 잎이 무성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그 집이 더 바짝 마음에 들어서 산모퉁이를 돌아간 집주름이 주인을 어서 데려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하기야 한시가 급한 형편이었으니 집주인과의 타협만 잘 된다면야 능금나무도 있고 하니, 어머니가 시골서 올라오신 뒤 삼 년째 두고 원하시는 부엌이 없다 하더라도 나는 그 집을 꼭 얻을 작정이었지만…….

일이 어찌 되느라고 그랬는지 어쨌든 한 삼십 분 만에 집주름이 데리고 온 집주인이란 사람은 집세를 한 달에 십 원씩 석 달치 삼십 원만 내어주면 당장에 이사를 해도 상관 없다고 허락할 뿐만 아니라 벌서 육칠 년을 두고 지내 본 일이지만, 삼사 원짜리 방 한 칸을 얻자 해도 보증금이니 선세니 해 가지고 사오십 원나마의 돈이 있어야만 하다는 건데 그 집은 방 셋에 부엌 있고 마루 있고 뜰이 넓고 그 위에 경치가 좋고 한데, 보증금도 없고 선세 여러 달치 내라는 말도 없이 직업도 식구도 묻지 않고 그저 수월히 내어주는 데는 무슨 까닭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나는 그보다 집주인 입에서 내게 불리한 다른 말이 떨어질까 하는 초조한 마음에서 저녁 여섯 시에 돈 삼십 원을 갖다 준다는 약속을 굳게 굳게 하고 돌아왔다.

그러지 않자니 정동 집에서 우리 집 식구가 끝끝내 집달리(법원에 딸려, 재판 결과의 집행과 서류의 송달 및 기타 법령에 따른 사무 등을 맡아 보는 공무원)와 변호사와 순사에게 그 집에 살던 백여 명 식구와 함께 쫓기던 날, 비대발괄(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면서 간절히 청하여 빎) 없이 마당에 동댕이쳐 내던지운 세간 등속을 걷어 싣고 자하문(창의문) 밖 아는 이의 친구 집 건넌방을 빌려 임시로 옮기게 된 지도 한 달이 훨씬 넘는 때였으니까.

아무리 아는 이의 살뜰한 친구라고는 하지만 안면조차 없던 터이요, 또 그 위에 그 부인 되는 이가 내 여학교 시대의 동창생이었다. 나는 그것을 전연 모르고 저녁 늦게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우리 집 세간을 걷어 싣고 어머니와 아이와 동생들을 데리고 자하문턱 마루를 고생스레 넘어 그리로 갔을 때 너무 부끄러워서 울고 싶었다.

그 이튿날부터 더 민망한 것은 그 집에 심부름하는 석이가 우리 집 식구에게 제 방을 빼앗기고 십 리나 되는 문안 친척 집에 가서 자고는 아침 일찍이 눈을 비비며 넘어오는 것이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이 훨씬 넘자니까 석이도 어지간히 고생스러웠던지 우리 아이가 밖에 나가는 때마다 너희가 언제 이사가느냐고 물어 본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도 아이가 안팎을 드나들며 잠시도 문을 견디게 못 하고 어질러 놓고 떠들고 잘 바른 문과 벽에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채소밭에 들어가고 꽃나무 실과나무를 꺾고 그러지 말라면 큰 소리로 떠들고…….

내가 신문사에 안 나가던 어느 일요일에도 아이가 어떻게 말썽을 부리던지 나는 참다못해서 아이 입에 손을 틀어막고 볼따구니를 힘 자라는 대로 꼬집어 흔들었다. 그랬더니 아이는 죽는다고 악을 바락바락 쓰다가 그만 나중에는 못 견디겠던지 소리도 못 내고 바르르 떨기만 할 때에 한쪽 구석에 경황없이 팔짱을 끼고 앉으셨던 어머니는 그 꼬락서니를 보시고 그만 아이를 끌어다가 안으시며 같이 우시는 것이었다.

"그게 무스거 알겠니 죄가 말기 깼다."

나를 나무람하시는 어머니의 음성은 떨리었다.나도 웬만하면 거기서 소리쳐 울고 싶었지만 어머니와 아이 앞에서 눈물짓는 것이 더구나 비참한 것 같고 또 안방 주인네들이 부끄러웠던 탓으로 앞산 마루턱을 넘어 커다란 소나무 밑에를 찾아갔었다. 나는 실컷 울려고 했으나 울지도 못하고 허물어진 성터와 그 위에 뭉게뭉게 떠도는 하얀 구름만 바라보며 어머니와 아이를 생각했다.

사월의 햇빛이 따스했다. 그 햇발과 같이 따스한 정이 그립기도 했다.

 

우리는 집세 삼십 원을 갖다 주던 이튿날 아침으로 곧 이사를 했다. 본래 있던 아는 이의 친구 집과 그 집 사이가 아주 가까운 거리요, 그 날이 바로 일요일이라 동생도 학교에 안 가고 또 석이도 제 방이 나는 것이 좋아서 거들어 주고 했으나 세간을 다 옮기기까지 한나절이 훨씬 걸렸다. 일 년에도 몇 번씩 하는 이사질이라 하는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없어도 괜찮을 성싶은 물건들은 없애 버리자고 늘 벼르면서도 정작 버리자면 아깝고 혹 씀 직한 데도 있을 것 같아서 모아 두고두고 한 것이 구지레하게 많은 데다가 새로 드는 집이 오래 비었던 탓으로 마당의 잡초와 곳곳에 거미줄과 곰팡이가 끔찍이 많아서 그것들을 대강 치우고 솔을 붙이고 마루와 방바닥의 곰팡이와 때를 벗기고 어느 방이나 도벽은 하나도 못 한 채 나는 건넌방 하나를 내 방으로 정하고 테이블과 의자와 책과 남양에서 친구가 갖다 준 탈바가지[假面]――우선 이런 것들만 정돈해 놓고 또 어머니와 동생들도 다 각각 자기가 거처할 방에 자기들의 중요한 물건을 대강 정리했는데도 밤 아홉 시가 훨씬 넘었다. 우리는 그 때야 안방 밑창 틀 위에 촛불을 켜 놓고 한데 모여서 저녁밥을 허기져서 먹을 수 있었다.

"집은 좋다마는 한 달에 십 원씩 어디메서 생기겠니."

어머니는 저녁밥을 잡수시고 나더니 한숨 돌리셨던지 이렇게 걱정을 하셨다. 나는 나중에야 어찌 되든 간에 우선 마음을 펼 수 있고 또 조용한 내 방이 육칠 년 만에 처음 생긴 것이 무척 좋아서 그저 즐거울 뿐이었다.

"이 달에는 삼시버이나(삼십 원이나) 훌쩍 집에다가 밀어 였으니 월급 탈 것두 얼매 없구 무스거 먹구 살겠는지."

"글쎄 걱정 마세요, 내가 다 할 테니……. 문간방에다 학생 둘만 두면 밥값으루 쌀 사구 나무 사구 내 월급은 집세 주구 용돈 쓰구 할 텐데 뭘 그러세요."

그제야 어머니도 적이 안심되는 기색으로 걱정은 되지만 온채(한 집의 전체)라 먹든지 굶든지 남부끄럽잖고 아이가 떠들어도 민망찮고 마루가 넓어서 다듬이도 잘 하고 다리미질도 잘 하고 고향 손님이 와도 그다지 옹졸하지는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봄은 날마다 잘 익어 갔다. 텃밭에 푸성귀가 푸르고 마을 아이들이 버들피리 불고 우리 집 앞뒤꼍 능금나무 살구나무에 흰 꽃이 피고 앵두밭 그늘이 짙어지고 뒷산에 뻐꾹새가 성히 울고 그리고 우리 집 식구들이 똑같이 그 집이 좋아서 비 한 번 드는 일 없던 남동생이 아침마다 마당을 쓸고 어머니는 집이 점점 더 마음에 든다 하시고 아이는 누가 올 적마다 부엌이 있고 방이 셋이라고 자랑하고 학교 다니는 누이동생은 삼 년 만에 처음으로 동무들을 데리고 와 놀고 또 나도 틈만 있으면 능금밭 사이를 걸으며 오래지 않아 필 하얀 능금꽃 냄새를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모두 우리 집 식구가 봄과 함께 그 집을 즐거워하고 신통해하였다. 그랬는데 그 집에 들어서 스무 날이 넘던 어느 날――내가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단을 받고 엑스 광선으로 된 얼룩진 내 폐를 보고 돌아오던 날――날마다 즐겁게 넘던 자하문 어귀 '굿당' 앞에서 나는 집을 들던 날 솥 붙인 늙은이가 한 이야기를 생각해 내었고, 또 그 밤에 그 미친 안주인이라고 생각되는 여자에게 내 머리채를 쥐이고 맞아 대는 꿈을 꾸고 나서부터는 나도 그 집을 '흉가'라고 단정해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늙은이는 아주 좋지 못한 얼굴을 지으며 솥은 얼른 안 붙이고 오래 이야기만 하는 것이었다.

"벌써 제가 이 부엌에서 솥붙이기가 두 번째입니다. 처음 이 집쥔이 혼인하고 이 집에 들 적에도 제가 솥을 붙였습죠. 솥을 잘 붙이고 못 붙이는 데두 집안에 재수가 달린 겁니다. 이 집 쥔도 많이 안 벌었나요. ㅡㄴ 부자 소리를 듣다가 그리 되었습죠."

"그리 되다니요?"

나는 영감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통 모르시고 집을 얻으셨습니까. 하긴 집터가 세더래두 집 다스리기루 간다군 합니다만……. 이 집 바깥쥔은 사십 미만에 그만 죽었습죠. 또 그 안쥔은 미쳤습죠. 그러다가 나니 이 집을 동네서 죄다 흉가라 이르고 누가 드는 사람 하나 없이 이태 동안이나 비워 두지 않았습니까…… 마는……."

"그럼 그 안쥔이란 이는 어디 있어요?"

나는 영감의 말을 끊으며 이렇게 물었다.

"안쥔 말씀입죠? 지금 그 시형(시아주버니) 집에서 비지발 없이 얻어먹다시피 하는 것입죠. 다섯 살내기 딸년이 하나 있기는 합죠만 그게 뭘 알겠습니까. 그 많던 세간과 재산은 시형이 다 차지해 가지고 배통을 두들기죠. 망할 놈 같으니, 동생간에 그것이 할 짓이람. 금방 아우가 숨이 지자 아니 글쎄 재산을 다투어 가지고 네가 먹느니 내가 먹느니 했다니 참 기맥히는 세상입죠. 그러니 그 꼬락서니를 보고서야 그 안에서 안 미칠 수가 있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참 서방님이 발을 뻗친 방에서 너털웃음을 '허허' 몇 번간 웃더니만 그만 미쳐 버렸다는군요. 가긍한(불쌍하고 가엾다) 일입지요. 그래두 시형네가 그 제수와 조카딸년을 그저 어쩌면 면할까 하고 이맛살을 찌푸리는걸요. 남의 눈들이 아니면 벌써 어디다 처치했을 걸입죠. 봄이면 앵두 살구, 여름이면 능금, 가을이면 감을 따서 철철이 돈을 흥청망청 잘두 쓰지만 동네 늙은이 한번 그 흔한 능금 한 알 이렇단 말이나 있겠습니까. 저희 배짱 불리기에 눈알이 뻘겋지요. 그러면서두 구절부레한 세간 등물과 장 간장은 하나도 다치지 않구…… 값나가는 알맹이 세간들만 쏙 빼다가 팔아먹구 저희가 썸 직한 놈은 죄다 쓰면서두……."

"그러니깐 저 헛간엔 뭐가 모두 들어 있겠군요?"

"암요, 구절부레한 거나 장 간장은 께름칙하니까 못 가져가고 저 헛간 속에다 쓸어 넣고 쇠를 잠가 버렸답니다. 장 간장에선 여름이면 구더기가 우글우글 바라나고(바글대다) 냄새가 물컥물컥 난다더니만."

"그래서…… 어쩐지 좀 이상한 냄새가 난다구 했더니. 참, 그런데 헛간은 안 내준다구 그러더구먼."

"그런 걸입죠. 그 헛간은 내주지 않을 겁니다. 그 안에 쓸어 넣었던 건 다 어쩌게요. 그래두 헛간을 그으연(기어이) 우겨서 내달라구 그러지 왜 그냥 두셨습니까."

"남들은 이 집 쥔이 어째서 죽었느니 하고 수군거리지만 실상은 이 집 쥔의 병이야 너무 뇌동한(몹시 흔들려 움직이다) 데서 생긴 거죠. 그 넓은 과실밭에 과실나무를 심구 그놈을 가꾸느라고 밤낮 침식을 잊어버렷으니까요. 이 집에 들어서 칠 년 만에 죽었는가요. 그 동안 밤낮으로 밭에만 나서 있었지요. 그러다가 겨우 과실에서 돈을 벌게 되자니까 병이 들어 그만 죽어 버리더군요. 원통한 일입죠."

"그러기에 그 안쥔이 늘 하는 말인즉 사람을 보면 붙잡고 능금 칠천 석을 어쨌느냐, 돈 오천 냥을 어디다 썼느냐, 왜 내 이불보를 뜯어서 옷을 해 입느냐고 하면서 너털웃음을 웃는답니다. 그저께도 글쎄 누가 보랴니까 이 집 대문 밖에서 잠긴 문을 흔들며 내 집에 누가 산단 말이냐 하고 소리소리 지르더라나요. 날세('날씨'의 사투리)가 좋지 못한 날 어슬적이면(어둑어둑해지면) 꼭 한 번씩 그 시형 집을 뛰쳐나와 늘 그렇게 대문을 흔들기도 하고 또 이 집 울타리 밖을 휘이 돌기도 하면서 무어라고 중얼거린다는군요. 그러니 동네에서 좋다고 할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댁 같은 이들이야 신식 어른들이라 그런 걸 다 헤지 않으실 테니까 제가 이얘기하는 겁니다. 뭐니뭐니해도 솥이나 잘 걸어서 댁에서두 부자 되신다면야 그런 다행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내가 무어라 묻지도 않는데 늙은이는 혼자 이렇게 긴 이야기를 계속하다가 궁둥이를 하늘로 높이 추켜들고 아궁이를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나도 처음엔 늙은이의 하는 이야기가 어쩐지 꺼림칙하기도 해서 어머니와 동생들이 듣지 않게 늙은이에게 음성을 낮춰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으나 늙은이가 솥 붙이는 데 집안의 재수가 달렸다는 말을 두세 번씩이나 하는 데는 그 늙은이의 배짱도 어지간히 들여다보면서 이야기를 딱 막어 버리고 솥이나 얼른 붙여 달라고 했다. 늙은이가 이야기한 대로 그렇다고 하면 그 안주인이란 여자가 얼마나 가엾은가. 남편을 젊어서 잃고 그 아까운 세간과 재산을 모두 남 좋은 일 하고 살고 싶은 집에서 못 살고 그리고 그 시형 집에서나 동네 사람에게 지천데기(더할 나위 없이 천한 사람)처럼 굴리우는 그 여자의 운명에 나는 도리어 동정이 갈뿐더러 또 설사 늙은이가 말한 대로 그 집이 틀림없는 '흉가'라고 치더라도 나로서는 어떻다고 집을 나무람할 수 없는 형편이 아닌가. 나는 오히려 그 집이 그런 흉을 가졌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반갑게도 생각되었다. 그 까닭은 '흉가'라면 셋돈이 웬만큼 밀린다고 하더라도 심하게 굴거나 쫓아 내거나 하는 일이 없으리라고 믿는 점에서였다.

그래서 그랬던지 나는 그 집에 들어서 그 날 밤 당장 괴상한 꿈을 꾸었는데 그것을 염두에 둔 일이 없었고 또 늙은이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본 일도 없었다.

하긴 그 집에 들어서 사흘째 되는 날부터 늘 몸에 열이 있고 오한이 아슬아슬 나기 시작한 것이 스무날이 되도록 줄곧 불편해 오기는 했지만 어머니도 몸살이 안 날 것이냐고 하시고 또 나도 그 동안 집 까닭에 너무 몸과 마음을 지탱한 끝인가 보다고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폐병이란 진단을 받고 그것이 겁나서 집을 들던 날 늙은이가 한 이야기를 생각해 낸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도 없지는 않으나 실상은 내가 폐병이란 의사의 진단을 받던 그 즉시로는 도무지 나는 내 병을 염려한 일이 없고 도리어 우리 집 식구들의 생활만이 걱정되었었는데 정말 그 날 밤 내가 긴 머리채를 감아쥐고 미친 안주인이란 그 여자에게 실컷 얻어맞던 꿈을 꾼 것을 생각하니 완전히 힘을 탁 잃고 말아 버렸다.

꿈에 내 머리채를 휘어잡고 때리던 여자는 확실히 그 안주인이란 여자였을 것이다.

날 보고 왜 내 이불보를 갖다가 치마를 해 입었느냐고, 왜 내 집에 들어 있느냐고 한 것이 솥 붙인 늙은이가 한 이야기와 똑같지 않고 뭐냐.

나는 그 집 안주인이란 여자를 본 적도 없었지만 아마 그 여자는 꿈에 본 여자처럼 눈이 넷이고 머리가 크고 다리가 짤막하리라.

그 네 눈 알맹이를 무섭게 데굴데굴 굴리며 내 긴 머리채를 몇 번 왼손으로 감아쥐고 바른손으로 죽으라고 나를 마구 때리던 것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친다.

내가 소리소리 치다가 겨우 깨었을 때엔 머리맡에 켰던 촛불도 꺼져 버렸었다. 그리고 방 안은 무척 조용한데 서쪽 창에 달빛만 가득 차고 그 달빛 속에 감나무 그림자가 꺼멓게 서리어 있었다. 나는 높이 뛰노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방 안을 휘이 둘러보았으나 거기는 무서움을 덜게 해 줄 아무것도 없었다. 테이블과 의자와 책과 '탈바가지'만이 서쪽 창에 비친 달빛으로 해서 어슴푸레하게 보여질 뿐이었다. 내 눈은 점점 화등잔(놀라거나 앓아서 퀭해진 눈을 비유한 말)같이 동그래서 서쪽 창에 서린 감나무 그림자만 바라보았다. 그것이 바람이 불 적마다 설렁설렁 흔들거리는 것이 몸에서 진땀이 빠짝 돋도록 무서웠다. 똑 나를 때리던 꿈에 본 여자가 그 문 밖에서 조화를 부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달빛이 원망스러웠다. 머리맡에 초 끄트러기라도 있었으면 하고 손으로 어스벙어스벙 만져 보기도 했으나 그것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내 눈은 서쪽 창을 떠나지 못했다. 거기서 시선을 뗀다면 그 밖에 서 있을 성싶은 꿈에 본 여자가 문을 번쩍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나는 감나무 그림자만이라도 없었으면 하고 바랐다. 내가 집을 돌아보던 날 그 감나무가 서쪽 창 가까이 바싹 들어서 있는 것이 운치 있다고 얼마나 좋아했던고.

 

땀이 물 퍼붓듯 하고 머리가 불덩이 같았다. 나는 꼼짝도 못 하고 그저 죽을 것만 같았다.

어머니를 불러 보고 싶은 마음도 났지마는 어머니를 깨우기 싫다는 것보다 너무 무서워서 부를 수가 없었다. 전등을 달아 달라고 집을 들어서부터 스무 날째 전화질을 해 왔으나 문안서 떨어진 데라 몇 집 더 생겨야 달아 준다는 전기 회사가 그에서 어찌 더 미우랴.

몇 시나 되었을까? 어머니를 불러 볼까?

어머니를 불러 볼려도 안방 건넌방 사이의 문이 모두 두꺼운 분합문(대청 외부에 맞닿은 문)이라 잘 들리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좋을까 하고 아직도 서쪽 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떨며 땀만 흘리고 있는데 앞마을 닭이 '꼬옥꼬옥' 울었다. 나는 귀에 신경을 집중시켜서 닭의 소리를 다시 한 번 들으려고 애를 썼다. 닭이 우는 것은 새날이 가까웠다는 것이니까. 닭이 울면 귀신도 간다고 하지 않는가. 서쪽 창밖에 서 있을 성싶은 그 여인도 인제는 가 버리라고 기뻐하고 나는 어머니를 불렀다.

하나 어머니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또 한 번 더 크게 불러 보았다. 또 대답이 없고 내가 '어머니!' 하고 부른 내 소리의 떨리는 여음만이 조용한 밤 속에 흩어질 뿐이었다.

'아직 새벽이 안 됐단 말인가. 닭이 확실히 울었는데. 어머니는 새벽이면 꼭 깨시는 습관이신데. 그러면 닭이 초저녁에 울었을까. 초저녁 닭이 울면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하지 않는가.'

전에 우리가 시골서 어머니가 젊고 할머니가 계실 때 초저녁에 수탉이 '꼬옥꾜오' 하고 활개를 치며 울면 무슨 큰 변이 생긴다고 할머니가 당장 그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 죽여서 (새나 잡은 짐승을 물에 잠깐 넣었다가 꺼내어 털을 뽑는 일)를 해 고아서 먹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 놓으니까 닭은 주둥아리를 길쭉이 빼내 물고 빨간 피를 철철 흘리며 두 눈통을 쑥 내밀고 버둥거리다가 한 발이나 길쭉이 늘어진 놈을 할머니가 끓는 물에 넣어 털을 뽑으니까 우죽우죽 소리가 났다.

이튿날 아침 밥 먹을 때 닭곰탕에 밥을 말아 먹으면서도 할머니 어머니는 닭이 불쌍타는 말 한 마디도 없으시기에 나도 그냥 맛있게 잘 먹지 않았는가…….

앞마을 닭이 또 한 번 '꼬옥꾜오' 울었다.

나는 소름이 쪽 끼쳐서 그만 이불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그것도 확실히 초저녁 닭의 울음소리로 들렸던 까닭이었다. 나는 이불을 쓰고도 서쪽 창에 어린 달빛 속의 감나무 그림자가 보이고 앞마을 닭의 소리가 들려서 못 견디었다.

아아 무섭다. 어머니를 부를 힘도 없었다.

'이만하면 고향 손님이 와도 부끄럽잖다.'고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 '엄마, 왜 우리는 밤낮 이사만 해……. 우리 지금 가는 집은 하늘 끝에 있어?' 하고 정동 집에서 떠나던 날 자하문턱을 해가 저물어서 넘을 때 자하문으로 보이는 하늘을 넘어다보며 울 듯 겁나는 듯한 얼굴로 아이가 내게 묻던 말도 기억에 있기는 하나 그래도 나는 날이 밝으면 안주인에게 돈을 찾아 가지고 이사를 하리라는 마음을 먹었다.

 

나는 이불 밑에서 얼마를 신고하다가 조금 잠이 들었던가 보았다. 이불을 벗고 눈을 떴을 때는 서쪽 창에 달빛도 감나무 그림자도 다 어디 가고 창은 벌써 달빛 아닌 빛에 환해져 있었다. 닭의 소리도 안 들렸다. 나는 일어나자 머리를 풀어헤친 채 옷을 가다듬지 않고 늘 하던 대로 창을 열지도 못하고 안방과 사이를 둔 어간(시간이나 공간의 사이) 분합문부터 먼저 열었다. 벌써 어머니와 아이와 동생들도 일어나고 그렇게 성문같이 두껍게 단단히 닫히었으리라고 생각되던 안방 분합문도 환히 열려 있었다. 나는 또 앞 미닫이도 열었다. 다음으로 서쪽 창을 힘을 들여 콱 냅다 밀었다. 달빛도 감나무 그림자도 이제 다 없는 그 문이었으나 그래도 나는 꿈 일을 생각하고 문이 굉장한 소리를 내며 벽에 나가 탕 하고 자빠지자 밖을 이리저리 휘이 둘러보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무서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나를 늘 즐겁게 하는 산과 능금나무, 살구꽃과 감나무, 앵두밭과 바위가 있을 뿐이었다.

나는 문턱에 턱을 괴고 앉아서 오래 그 산과 나무와 꽃과 바위를 보며 산허리를 싸고 돌던 아지랑이가 산봉우리를 넘어갈 때까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나는 다시 누웠다. 앞문으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 하늘이 너무 무섭게 파란 것이 싫어서 나는 앞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누웠더니 이번엔 또 서쪽 창과 안방과 사이를 둔 어간 분합문 열린 것이 쓸데없는 구멍이 퀭하니 뚫린 듯싶어서 다시 일어나 그 양쪽 문도 마저 닫아 버리고 말았다. 그랬더니 방이 몹시 우중충해지며 또 무서워졌다. 꿈과 솥 붙인 늙은이가 하던 말들이 마구 나를 휩싸 돌아들었다.

"집터가 세드래두 집 다스리기루 갑니다."

정말 집터가 세어서 내가 병들고 또 그 무서운 꿈까지 꾸었는가. 저녁쯤은 그 미친 안주인이란 여자가 꼭 그 시형 집을 뛰쳐나오지 않을까.

어쩌면 좋은가…… 집을 옮겨야 할 텐데…… 집을 옮기자면 집주인에게서 돈을 찾는다 해도 이십 원 남짓하겠으니 단칸방두 얻으나마나 하겠구……. 그러니 아프고 무섭고 하다가 여기서 죽고 말아야 하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맞은편 벽의 탈바가지가 눈을 부릅뜨고 입을 씰룩거리며 가까워져 왔다. 마치 움직이는 물체와도 같이…….

'저게 또 웬일일까?'

나는 눈을 똑바로 뜨고 그 탈바가지를 바라보았다. 하나(그러하나) 보면 볼수록 더 무서운 표정을 짓는 데는 어쩌는 수가 없어서 나는 벌떡 일어나 그것을 떼어 테이블 밑에 집어 넣고 그러고도 무서워서 내 방에 못 있고 안방으로 건너갔다. 집을 들던 날 내 방을 정하고 테이블과 의자와 책을 정돈한 후 벽에 그 탈바가지를 걸어 놓고 좋아하던 일을 생각하면서 나는 안방 아랫목에 가서 누웠다.

아침밥이 지난 후 누이동생은 학교에 가고 남동생도 나가고 아이는 동무를 따라 나가고 어머니는 내가 정말 몸살인 줄 아시고 약을 지어다가 달이시기까지 나는 조용한 그 아랫목에서 병과 약과 꿈과 집과 돈과 우리 집 생활을 생각하고 또 그리고 주름살 잡힌 어머니의 얼굴도 바라보았다.

약이 어느 새 끓어서 약탕관에 덮은 종이가 누렇게 부풀어올랐다. 김이 천장에 잘 오르고 구수한 냄새가 제법 괜찮을 듯싶기도 했으나 그 약은 내 병을 모르시는 어머니가 몸살약으로 지어 온 것이니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래도 나는 어머니에게 내 병명을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낙망이 너무 크실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웬일인지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안 보시게 얼른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뒷산에서 뻐꾹새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뻐구국…… 뻐구국…….●

 

<이해와 감상>

한 여성의 고민하는 모습이 섬세하게 포착된 작품이다. '나'는 지식인 여성으로 신문사 기자이다. 가족의 생활을 혼자 도맡아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늘 피곤하다. 넉넉지 못한 경제력이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그러다가 가족들이 살 집을 확보할 생각으로 새로 얻어 든 집이 흉가라는 말을 듣고도 그 때문에 오히려 쫓겨 날 염려가 없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사 온 첫날의 꿈을 떠올리고 공포에 휩싸인다. 어떤 미친 여자에게 머리채를 휘어 잡히는 꿈을 꾼 것이다. 그리고 솔 붙이는 늙은이에게 흉가에 얽힌 내력, 특히 그 집 안주인이 미쳐 버리게 된 이야기의 전말을 듣게 된다. 두려움이 깊어진 나는 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모처럼 집을 갖게 된 기쁨에 들뜬 어머니에게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폐병 진단을 받은 '나'에게 어머니는 그저 몸살이냐고 물을 뿐이다.

집을 얻어 좋아하는 가족들의 모습, 폐병 진단을 받고도 홀로 앓고 있는 '나'의 심정, 괴기스러운 꿈, 어머니의 감정을 손상시키지 않으려는 안쓰러움 등에서, 특히 폐병과 악몽에 시달리는 순간에는 탈바가지와 달빛과 닭의 울음소리가 뒤엉켜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개인적인 한계 사이에서 고민하는 나의 감정은 절정에 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