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댁이(1952)                                                  -오영수-

삼월 초순 어느 날 해 질 무렵 ― 꽃이 피기에 알맞은 보슬비도 화산댁이게게는 사뭇 쌀쌀하고도 차기만 했다.

복술이는 이제 마악 바로 이 집이라고 분명 가르쳐 줬다. 그런데도 화산댁이는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쭈볏쭈볏 기웃거리고 망설이기만 했다.

아니었다. 아무리 따지고 생각해 봐도 자기 아들이 살고 있을 여염 살림집은 아니었다.

사실 봄이면 산나물이나 뜯고 가을이면 곡식 되나 마련해서 두메서 십 리 밖, 경주가도 S장 ― (장이레야 뜨내기 보따리 장사가 몇몇 모여드는)에 갖다 대는 것이 고작인 화산댁이로서는 높직히 쌓아 올린 블록 담이라든지, 페인트 칠한 판자문이라든지 또 그 안에 번쩍거리는 유리창문들―이 모두가 무슨 관청―일테면 촌에서 보는 면사무소나, 지서 같기만 했다.

― 앙이지거리, 앙이고 말고 택도 없다 ― 화산댁이는 이렇게 중얼대면서 골목 밖을 내다 보고 눈으로 복술이를 찾는 것이었으나, 그렇지 않아도 바쁘다고 서둘던 복술이가 여태껏 거기 있을 리가 없었다.

화산댁이는 그만 가슴이 덜컥하고 불안했다. 골목 밖으로 쫓아 나왔다. 숱한 사람들이 오고 가긴 했으나 복술이는 없었다. ― 어째 하꼬 지(복술이)꺼정 없으면 이 일을 어째 하꼬 ― 화산댁이는 발비둥질을 치고 또 되돌아 들어왔다. 쭈볏쭈볏 문틈에 눈을 대고 집안을 또 한 번 골고루 살펴보았으나 역시 아니었다. 비오는 날이라 빨래는 그만 두고라도 장독간이 보이거나, 하다못해 거름 무더기라도 있거나 ― 화산댁이는 돌아섰다. ― 내사 고만에 진찬은 짓도 했지거리 어찌하꼬 ― 눈앞이 흐릿해졌다. 울고 싶었다.

반나마 흰 머리에 보슬비가 거미알처럼 얹혀 흰머리가 더욱 많아 보이고 대추씨 같은 눈꼬리에는 째엘 눈물이 고였다. 가로퍼진 짚세기가 축축히 젖어들어 아슬아슬 춥기도 했다. 낡은 삼베 보퉁이를 갓난이처럼 가슴파기에 추켜 올리고 후줄그레한 베치마를 처네모양으로 꼭두머리에 뒤집어 쓰고는 한 손으로 턱 밑에 꼭 잡았다. 초라한 행색이 나위 없는 얻어먹이다.

빗방울이 제법 굵어졌다. 화산댁이는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판 자문 추녀 밑으로 옮아 섰다. 이때 갑자기 뜨르르하고 안으로부터 문이 열렸다. 그와 함께 젊은 여자가 박쥐 우산에 저자 바구니를 들고 나왔다. 화산댁이는 주춤하고 옆으로 비켰다. 여자는 화산댁이를 보자 무슨 말을 할 듯 하다 말고 돌아서서 문단속을 하기 시작했다. ― 얄구저라 역시 여염집이던가 베 ― 하니 화산댁이는 그만 가슴이 설레였다.

― 아들네 집이 맞았던가? 그러면 이 새댁이가 혹시 메누리가 아닐까? ― 그러나 화산댁이는 이내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그럴리가 없었다. 화산댁이가 믿고 있는 한 막내며느리는 첫째 머리부터가 아니었다. 불에 그을린 삽사리 같이 저런 흉칙스런 머리가 아니었다. 옷만 하더라도 남정네들이나 입는 셔어츠에다 폭도 말도 없는 몽당치마를 두르고 함부로 문 밖을 나다닌 그린 본 데 없는 며느리가 아니었다. 더구나 될 말이 아닌 것은 연지볼이 붉은 것이었다. 여자가 연지볼이 붉고 보면 팔자가 사납다는 것을 화산댁이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언제 한 번이라도 막내며느리를 본 적이 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화산댁이는 사 년 동안을 보지 못한 막내며느리의 모습을 그렸다. 이러려니, 저렇게 생겼거니 하는 동안, 화산댁이의 망막 속에는 움직일 수 없는, 한 영상이 뿌리 깊이 박혔다. 그것은 언젠가 산소를 다녀간 김 의관네 맏며느리 바로 그대로였다. 일테면 곱다랗게 낭자를 하고, 쑥색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었다. 옥양목 버선을 옥색 고무신에 송편처럼 달아 신고…… 그리고 한 됫베기(핸드백)를 사포시 꼈다 ……. (두메 사람들이 핸드백을 안 것은 김 의관네 며느리를 위시해서였다.) 그러나 그럴수록 또 마음 한구석에는 행여나 하는 불안이 없지도 않았다.

"보이소 새댁이요, 혹시 돌이(石)라는 사람 모르겠능교?"

돌이란 막내아들의 애명이었다. 문패에는 박석근(朴石根)이라고 씌였다.

"모르겠소, 그런 사람!"

유독 '겠소'에 힘을 넣은 앙칼진 소리다. 화산댁이는 비로소 맘이 탁 놓였다. ― 그러면 그렇지 ― 아들 이름을 모르는 바에야 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밖에서는 잠겨지지 않는 문을 새댁이가 연신 덜커덕거리고 있는 것은 분명 화산댁이를 경계하는 것쯤 눈치 못 차릴 화산댁이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델 어떻게 간달 수도 없다.

"돌이고 쇠고 이 동네는 그런 사람 없소!"

그리고는 연신 힐끗힐끗 화산댁이를 쏘아보면서 새댁이는 골목 밖으로 걸어 나갔다. 하기야 요즘 부쩍 는 무슨 방물장사니, 동냥 바치니, 얻어 먹이니 하는 손버릇 사나운 늙은이들이 없지도 않기는 했다. 새댁이는 골목 밖에서 큰길로 꺾이면서 또 한 번 힐끗 돌아보았다. 화산댁이는 그 자리에 더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꼬라지갑세 누굴 도둑으로 아는가베 아니꼬운 것……."

참말이지 두메서는 들일이 한창인 무렵이면 개나 닭들만이 남고 방문조차 열린 채 마을은 껍질처럼 빈다. 그래도 도둑이라고는 모르고 살아온 화산댁이는 귀떼기 새파란 젊은것의 하는 짓이 정말 아니꼽고 괘씸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욱 괘씸한 것은 복술이엇다. 채 알지도 못하고 엉뚱한 남의 집을 대 주고 가 버렸으니 화산댁이는 그야말로 저문 날 길 덧든 나그네였다.

화산댁이는 큰길에 나가 보기로 했다. 도둑 혐의도 아니꼬왔지만 행여 아들을 만날 까도 싶었다. 그새 아들이 지나가지나 않았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자 화산댁이는 또 가슴이 덜컥했다. 주척주척 걸어나갔다. 그러나 채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그만 길 복판에 발이 붙어 버렸다. 아들이 오고 있기 때문이엇다. 대추씨 눈을 수 없이 깜박거리면서 보고 보았으나 분명 아들이었다. 화산댁이는 그만 목이 꽉 메었다. 말보담 눈물이 앞섰다. 그새 아들은 화산댁이를 비켜 서너 걸음이나 지났다. 화산댁이는 그제서야

"야야!"

아들은 힐끗이 돌아만 보고는 또 걸었다. 모르는 모양이었다.

"내다, 야야!"

화산댁이는 비로소 뒤집어 쓴 치마를 훌쩍 걷어 내렸다. 아들은 눈부터 뚱그래졌다. 화산댁이는 아들 앞으로 다가갔다. 아들은 완연히 당황해 했다. 길 아래위를 살피면서

"어짠 일인기요?"

화산댁이는 애원이나 하듯 목멘 소리로

"보고 싶어 왔다!"

아들은 잠깐 동안 뭣을 망설이고 나서

"들어갑시더!"

그리고는 앞을 서서 바로 아깟번 그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무슨 관청 같은 집도 화산댁이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아들을 만난 반가움보다도 수세미처럼 엉클리는 심사를 주체할 수 없었다.

빨간 스웨터를 입고 너덧 살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말끄러미 화산댁이를 바라보고

"아부지 이거 누고 응?"

화산댁이가 그렇게도 보고 싶어 하던 손자 딸이다.

"할메다!"

"우리 할메?"

"음!"

아들은 맥 없는 대답을 하면서 헌 고무신 한 켤레를 내왔다. 화산댁이는 걸레로 터실 터실 불은 발뒷굼치 더머기를 훔치면서

"그렇기, 나고는 첨보니……."

하는데 아들은 손끝에 짚세기를 걸고 나가 쓰레기통에다 던져 버렸다. 고무신이 대견찮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길 걷는 데는 짚세기가 화산댁이는 못내 아까웠다.

[중략]

후끈후끈한 방에서 곤하면 입은 채 굴러 자던 습관은, 휘높은 판자 천장이며, 유리 바른 문이며, 싸늘해 보이는 횟가루 벽이며, 다다미방이 잠을 설레었다. 화산댁이는 자꾸만 쓸쓸했다. 뭣을 쥐었다가 놓친 것처럼 마음이 허전했다. ― 자식도 강보에 자식이지 쯧쯧 ― 돌아눕는다. 건넌방에서는 소군 소군 이야기 소리가 들려 왔다.

― 지기 조면 그만이지 ― 또 고쳐 누웠다. 애써 잠을 청해 본다. 그러나 잠 대신 화산댁이는 어느 새 오리나무 숲 사이로 황토 고갯길을 넘고 있다.

보리밭이 곧 마당인 낡은 초가 갓이다.

빈대 피가 댓잎처럼 긁힌 토벽, 메주 뜨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간 사리 방에 아랫도리 벗은 손자들이 제 멋대로 굴러 자고, 쑥불 사발을 옆에 놓고 신을 삼고 있는 맏아들, 갈퀴 손으로 누더기를 깁고 있는 맏며느리, 화산댁이는 그만 당장이라도 뛰어가고 싶다. 아들의 등을 쓰담아 기침을 내려 주고 며느리와 무르팍을 맞대고 실컷 울고 나면 가슴이 후련해질 것만 같다. 또 뒤쳐 눕는다.

― 아무리 지에미가 지에미 같지 안기로니 첨 보는 시에미에게 인삿절도 없이 본 바 없는 것 같으니, 그래도 마실 사람들은 작은아들 돈 잘 벌고 하리까레(하이칼라) 메누리 봤다고 부러하더라만, 사장시럽고 가시롭다. 지가 탈기 없는 것도, 신양끼가 있는 것도 다 지집 탓이지 머고, 이내껏 땅 한 떼기 못사는 것도 안살림 잘못 사는 탓이지 머고 ― 화산댁이는 눈꼬리만 따갑고 잠은 점점 멀어만 갔다.

― 지만 하더라도 일본서 근 십년만에 나왔으면 그만 지 형 말대로 농사나 짓고 수덥한 색씨나 골라 장가들었으면 등따시고 배부릴꺼로 머 공장을 하느니 하고 날뛰 댕기더니 ―

화산댁이는 어서 날이 새면 싶었다. 잠도 안 오거니와 아까부터 뒤가 마려운 것을 참아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날은 언제 샐지 모르겠고 뒤는 자꾸 급해 왔다. 화산댁이는 참다못해 조심조심 더듬어 부엌으로 내려갔다. 부엌에서 다시 더듬어 밖으로 나갔다. 비는 그쳤고 갈라진 구름 사이로 별이 보였다. 뒷간이 있음직한 곳을 이리저리 찾았으나 없었다. 집을 두 바퀴나 돌았으나 뒷간은 역시 없었다. 대체 적산집 뒷간이 밖에 있을 리가 없다. 화산댁이는 뒷간이 없는 집이란 상상도 할 수 없었으나, 일이 급해서 그만 어수룩한 담 밑에다 대고 뒤를 보았다. 한결 개분했다. 문살만 휘언하면 나와서 뒤 본 자리를 챙기리라 맘먹고 다시 들어왔다.

화산댁이는 소스라쳐 일어났다. 날이 활짝 샜다. 아들 내외가 깰까 싶어 조심조심 밖으로 나왔다. 뒤 본 자리는 공교롭게도 돌가루로 마련된 수채였다. 수채는 앞집으로 통했다. 아침에 봐도 역시 뒷간은 없었다. 삽을 찾아보았으나 삽도 없었다. 화산댁이는 결국 부엌에서 물통과 비를 가져다 물을 붓고 비로 쓸어 내렸다. 말끔히 쓸어 내렸다. 그러자 담 넘에서 수군수군 말소리가 들리는가 하자 어느 새 담 위에 손을 걸고 열 대여섯 되어 보이는 집아이가 눈을 새쭉거리면서

"보소, 운 늙은이가 너무 집으로 똥을 내루는교 얏?"

"……."

"얄구리자 벨 꼬라지 다 볼세!"

그러자 또 다른 아낙네 소리가 째엣 울리듯이 넘어왔다.

"운 늙은이고 응, 야마리가 빠졌지거러 당장 와서 치라케라!"

"똥치소 얏!"

"이거 무신 똥이 시꺼먼노, 사람 똥가 소 똥가?"

이건 또 굵직한 남정네 소리였다.

화산댁이는 어떤 욕이고 창피던 괜찮았다. 다만 아들 내외가 알까 싶어 그것만이 조바심이었다.

"처니야 대강 해라, 내 곧 가서 치마!"

화산댁이는 물통과 비를 들고 앞집으로 갔다. 꼭 같은 수채였고, 수채 옆에는 우물이 있었다. 위선 부삽을 빌려서 똥을 쓸어다 공동으로 쓰는 쓰레기통에 갖다 버렸다. 똥을 끔찍히 알고 똥을 주무리다시피 하고 살아온 화산댁이는 똥을 치면서도--똥이 그렇게 야단일 바야 어째 뱃속에 넣고 견디는고? 똥으로 키운 푸성귀는 어찌 묵는고?--이런 생각을 하면서 몇 번이고 물을 붓고 쓸었다. 그러자 칫솔로 이를 닦고 있던 목이 굵직한 남정네가

"늙은이 어딧소?"

"예…… 두메 사는 촌 늙은임더!"

"이 집하고 어째 되어?"

화산댁이는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되삼켰다.

"아들이요 딸이요?"

"아무 것도 앙임더, 그저 아는 사람인데 볼일이 있어 왔다가……."

남정네는 갑자기 말이 거칠어졌다.

"그래, 촌늙은이는 똥이 더러운 줄도 몰라?"

"예, 어찌겠능교, 늙은 것이 망녕이 들어서……."

"좋소 가소!" .

화산댁이는 돌아 나왔다. 그 새 행여 아들 내외가 깼을까 싶어 조마조마 문간을 들어오면서 무심코 들여다 본 쓰레기통에 도토리 떡이 보자기째 내 버러져 있었다.

"아이구짜고, 시사에 죄받을 짓도 했다!"

화산댁이는 얼핀 들어내 치마 밑에다 감췄다. 쓰레기통에는 짚세기도 그대로 엎어져 있었다. 어느 새 화산댁이 눈 앞에는 두메 손자들의 얼굴이 자꾸만 얼찐거렸다. 도토리 떡을 흥흥거리고 엉겨들다 줴박히고 떠밀려 찌그러지고 우는 얼굴들이었다.

"꼴난 것 무슨 차반이 나처럼……."

화산댁이 눈시울에는 어느 새 눈물이 핑 돌았다.

해가 한발쯤 돋았을 무렵 어제와 꼭같은 보퉁이를 들고 어제와 꼭같은 짚세기를 신은 화산댁이는 경주 가도를 향해 걸음을 빨리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