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花史)                                        -임제-

 

 

당나라 명왕(明王)의 성은 백(白)이고, 이름은 연(蓮)이며, 자는 부용(芙蓉)이라고 했다.(둘 다 연꽃을 뜻함)

그의 선조에 장십장(長十丈)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화산(華山)에서 숨어 살고 있었다(은일지사). 그의 부친 이름은 함담이라 했고, 애초에는 야야계(若耶溪)에서 살았다.

모친 하씨(何氏)는 빛이 아름다운 꽃을 가진 창포를 보고, 그 꽃에 혹하여 그것을 입에 넣어 삼켰는데, 이때 임신해서 왕을 낳은 것이었다.(명왕의 신이한 출생담으로 신화나 영웅 소설에 나타나는 주인공의 신이한 출생담과 유사한 모티프를 드러내고 있음.) 왕의 얼굴은 잘생기고 아름다워서 마치 천신(天神)과도 같았고, 어딘가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고상하고 거룩한 점이 있었다. 고결 청백하고 한없이 깨끗하면서도, 그러나 한쪽으로는 더럽고 추잡한 것을 버리지 않고 그것을 너른 아량으로 용납하는 관후(寬厚)한 덕도 있었다.(연꽃은 깨끗하지 않은 물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움.) 그는 온갖 미덕의 표본 같았다. 그러기에 그를 수중 군자(水中君子) 또는 수진인(水眞人)이라고 불렀다.(군자란 학식과 덕행이 높은 사람, 진인은 참된 도를 깨달은 사람을 의미함. 명왕의 성품과 인격을 나타낸 말임.)(인물의 성격을 직접적으로 제시함.)

* 당나라 명왕의 가계와 출생 내력, 명왕의 성품

하(夏)나라(모란의 나라)가 망한 처음에, 나라에 왕이 없어서 상주(湘州) 사람인 두약(杜若)과 백지(白芷)(약용으로 쓰이는 식물을 의인화함.) 등이 그를 추대하여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말하자면 수덕(水德, 물의 덕)으로 왕이 된 셈이어서 흰색을 좋아하고, 7월을 세수(歲首, 한 해의 첫머리, 설날)로 삼고, 전당(錢塘, 연못)을 도읍으로 정하여 나라 이름을 남당(南唐)이라 불렀다.

사신(史臣)은 이렇게 말했다.(이 작품은 일반적인 소설적 구성과는 달리 역사 서술의 방식, 즉 본기체(제왕의 사적을 기록한 역사 서술 방식에 의한 연대기적 방식을 취하고 있다. 중요한 대목마다 '사신 왈'이라고 하여 작가 자신의 감회와 논평을 제시하고 있다. 즉, 역대 왕정의 잘못과 신하들의 불충 등이 미치는 응보 관계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당대 사회의 부정부패를 비판하고 이상 사회를 이루려는 작가 의식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도(陶)나라는 목덕(木德, 나무의 덕)으로 왕이 되어 흰색을 숭상했고, 하나라는 토덕(土德, 흙의 덕)으로 왕이 되어 붉은색을 숭상했으며, 당나라는 수덕(水德)으로 왕이 되어 흰색을 숭상했던 것이니, 이런 일의 연유는 감감하니(어떤 사실을 전혀 모르거나 잊은 상태이니) 알 수가 없다.

* 도·하·당나라의 왕이 된 연유와 남당을 개국한 명왕

덕수 원년에 정전(井田, 토지제도의 하나)의 법을 만들고, 전폐(錢幣, 돈과 비단)를 쓰기 시작했다. 이 해에, 예의 포학(暴虐)한 풍백(風伯)(몹시 잔인하고 포악한 바람을 의인화함.)은 그의 왕인 계주백(桂州伯)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어 나라 이름을 금이라 하고, 서북 땅을 합쳐 차지했다. 이 때문에 녹림적(綠林賊, 나뭇잎을 도적에 빗대어 의인화함)들도 그에게 복종하는 것이었다. 왕은 두약(杜若)을 승상으로 삼았다. 그 조서(詔書, 임금의 뜻을 널리 알리고자 적은 문서)에서 왕은 이렇게 써 놓고 있었다.

"그대는 맡은 바를 잘 보살펴서 그대 선조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 것이며, 동시에 이 당나라 이름을 떨치게 하라."

두약은 옛날 당나라의 어진 재상이었던 두여회의 후손이었다. 그래서 더욱 그 어진 피를 받아 훌륭했고, 왕의 신임이 두터웠다. 7월에 왕은 수정궁으로부터 나와서 추향전에 행차했다. 여기서 여러 신하들의 조회를 받았다. <중략>

이때 불행하게도 천하는 모두가 녹림적의 소굴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다만 당나라만은 깊은 개울에다 높은 성을 쌓아 올렸으므로(천혜의 지리적 조건과 유비무환의 자세) 그들의 해를 면할 수 있었다.

백성들은 모두가 다 격양가(擊壤歌)를 부르고 태평했으며, 나라는 점점 살찌고 부자가 되었다. 이리하여 <이때 수형(水衡, 하천을 관장하던 관직)의 돈이 많아 거만(巨萬, 만의 곱절이라는 뜻으로, 많은 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에 달하고, 강과 연목의 물고기가 얼마든지 있어서 다 먹으려야 먹을 수 없을 정도였고, 상하의 백성들이 저마다 길쌈을 하기에 힘쓰고 조석으로 주옥(珠玉)을 헤아리는 데 여념이 없을 뿐이었다.>(나라가 번성하고 태평성대를 이루었음을 구체적으로 드러냄.) <중략>

* 선정을 펼쳐 번성하고 태평성대를 구가함.

사신(史臣)은 이러한 역대의 변천과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이렇게 기록해 두었다.

'3대(도, 하, 당)의 흥망이 눈 깜박이는 사이었고, 네 임금의 존망(存亡)이 또한 눈 깜박이는 사이었다. 동원(東園)에 잠깐 놓인 것 같고 어찌 보면 남가일몽이 아닐 수 없다. 아침에 동산에서 지저귀는 새 소리를 들었는가 하면, 저녁에 서산에서 집을 찾아 늦게 돌아가는 산새를 보는 것 같고, 아쉽고 슬프기 한이 없구나.(3대 흥망의 역사를 하루에 비유하여 작가가 느끼는 덧없음과 슬픔을 드러내고 있음.) 그 옛날 은허를 노래 부른 '맥수가(麥愁歌)'도 주나라의 서리도 이만큼 슬플 수는 없으리라. 3대 4군의 남가일몽 같은 흥망 성쇠를 생각하면 이 붓끝이 공연스레 떨리는 것 같고, 정말 슬프고도 또 슬플 뿐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