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2004) -박민규-
나의 산수.(나의 경제 관념. 돈이나 물질 등에 대한 나의 인식을 의미함.)
화성인들은 좋겠다.(자신이 있는 지구가 너무 더우니 지구보다 태양에서 멀리 위치하고 있는 화성인들을 부러워하는 표현이다. 현실과는 무관한 막연한 공상으로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드러냄.) 그해 여름은 너무 무더워, 나는 늘 그런 상념에 젖고는 했다. 상고(商高)의 여름 방학(서술자의 신분을 알게 해 줌.)은 생각보다 길어서, 그런 상념에라도 빠지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긴긴 여름, 게다가 나는 여러 일터를 전전했다.(고등학생이지만 돈을 벌어야만 하는 상황. '나의 산수'를 가질 수밖에 없는 처지가 형성됨.) 오후엔 주유소에서, 또 밤에는 편의점에서. 있으나마나 한 여자애들이 일터마다 있긴 했지만, 있으나마나 했으므로 지루하긴 마찬가지였다. 비하자면 수성과 금성과, 있으나마나인 별들을 지나, 지구까지 오던 태양 광선이 나 같은 기분이었을까? 덥지도 않고, 멀고 먼, 화성.(지루하고 답답한 기분임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함.)
* 그해 여름 아르바이트로 바빴던 '나'
일터를 돌다 보면 별의별 일들을 겪게 마련인데, 모쪼록 그해의 여름이 그러했단 생각이다. 주유소에선 시간 당 천오백 원을, 편의점에선 천 원을 받았으므로 나는 늘 불만이 가득했다. 그게 그러니까, 시작 때완 달리 불만이 생기는 것이다.(일을 구할 때는 아쉬운 마음에 시작했지만, 막상 일을 해 보니 '나'가 하는 일이 이천 원 정도의 가치는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즉, '나'가 하는 일에 비해 급여 조건이 너무 열악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불만이 생기는 것이다.) 편의점의 사장은 이러면서 세상을 배운다 ―― 라고 말했지만, 이천 원씩 받고 배우면 어디가 덧나나? 뭐야, 그럼 당신 자식에겐 왜 팍팍 주는데?를 떠나서 ―― 못해도 이천 원 정도의 일은 하고 있다고 나는 늘 생각했다.(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함.) 글쎄 천 원이라니. 덥기만 덥고, 짜디 짠, 지구.(자신이 처한 답답한 환경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함.)
* 열악한 아르바이트 보수에 대해 불만이 있는 '나'
코치 형이 가게를 찾아온 것은 그 무렵의 새벽이었다. 어떠냐? 좋아요.(따옴표를 사용하지 않고 대화와 진술 간의 구분 없이 제시함.) 편의점의 알바 역시 코치 형의 소개로 얻은 것이므로, 좋다고밖에는 말할 도리가 없었다. 지역의 알바 정보를 한 손에 쥐었다고 할까, 아무튼 그래서 후배들에게 일자릴 소개하고 요모조모 코치하길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이 얼마나 요긴한가, 나는 카프리썬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제 돈으로 사는 거예요. 웃으며 말은 했지만 알고나 드세요, 제 인생의 이십오 분이랍니다.(사소한 씀씀이에도 늘 계산을 해야만 할 만큼 경제적으로 아쉬운 상황임.) 시계를 쳐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지금 일하는 덴 사장이 꼴통이라서 말야…… 오늘도 여자애 허벅질 만졌지 뭐냐…… 나 참…… 그래도 되는 거냐? 되고 말고를 떠나,(도덕적인 것은 '나의 산수'가 아니고 관심도 없음.) 허벅질 만진다면 시간 당 만 원은 줘야 되는 게 아닌가, 나는 생각했다.(현재 '나'는 돈의 가치를 가장 우선시하고 있다. 여자의 허벅지를 만졌다는 사실에도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것보다는 돈을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식의 인식 수준을 보임.) 만지는 게 나쁜 게 아니다. 그러고 고작, 천 원을 주는 게 나쁜 짓이다.(나에게는 도덕적인 것보다 경제적인 것이 더 큰 기준임.)
*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하게 되는 '나의 산수'
그건 그렇고, 너 푸시업 잘하냐? 푸시업이라뇨? 팔 굽혀 펴기 말이다. 무조건 잘 한다고 나는 대답했다 그래야 일자리가 생긴다는 건,(제시하는 조건을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것) 그때도 이미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페이가 세. 시간당 삼천 원인데…… 대신 몸이 좀 힘들어. 삼천 원이요? 앞뒤 잴 것도 없이, 시간 당 삼천 원이란 말에 귀가 확 뚫리는 기분이었다.('나의 산수'로 볼 때 돈만 많이 벌면 되기 때문에 매우 구미가 당기는 일임.) 내 주변에 그런 고부가 가치 산업(일한 것에 비해 높은 급여를 받는 아르바이트)이 존재하고 있었다니. 제의를 받은 사실만으로도, 갑자기 확, 고도 산업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한 느낌이었다. 좋구 말구요. 비하자면 수성과 금성과 지구를 지나, 비로소 화성에 다다른 태양 광선이 바로 나 같은 기분일까?(서술자의 좋은 기분을 환상적으로 유머러스하게 표현함.) 있으나마나에 받으나마나, 지구여 안녕.
* 푸시맨 아르바이트를 제안 받은 '나'
그런 이유로, 나는 푸시맨이 되었다. 좋은 점은 전철을 공짜로 탄다는 것, 팔 힘이 세진다는 것, 게다가 다른 알바에 전혀 지장을 안 준다는 거야. 이를 테면 여기 일을 마친 다음 슬슬 역에 나가 '한 딱가리' 하면 그만이란 거지. 깔끔해. 공사 소속이니 지불 확실하지, 운동이 되니 밥맛도 좋아, 그러니 잠 잘 자고 주유소 일도 계속 하고…… 코치 형의 코치가 쉬지 않고 이어진 것도 까닭은 까닭이었지만 ―― 다른 무엇보다 이유는 삼천 원이었다. 요는 짧고 굵게 번다, 이거군요. 그런가? 뭐……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까 모르겠군. 코치 형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확실히 그런 식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산수(算數)다.(몸이 힘들어도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좋다.) 웃건 말건, 세상엔 그런 산수를 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 있게 마련이다.(이 사회를 살아가는 '나'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돈을 더 주는 일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는 말로,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만 유지되는 '나'의 삶을 드러냄.)
*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해야 한다는 '나의 산수'
미안하구나.(경제적인 부담을 감당할 수 없는 부모로서 자식에 대해 느끼는 미안함을 표현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학생인 자식에게까지 경제적인 책임을 지워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음.)
아버진 그렇게 얘기했다. 또 그 소리. 내가 일만 한다 하면 늘 같은 소리였다. 처음엔 들을 만했는데, 결국 들으나마나가 돼 버린 지 오래다. 나이 마흔다섯에 시간 당 삼천오백 원(아버지가 사회적으로 지니고 있는 경제적 계급을 드러냄), 즉 그것이 아버지의 산수였다. 여하튼 무슨 상사(商社)에 다녔는데, 여하튼 '무슨 상사'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직장이었다. 딱 한 번 나는 그곳을 찾아간 적이 있다. 중학생 때의 일인데 도시락을 갖다 주는 심부름이었다. 약도가 틀렸나? 엄마가 그려 준 약도를 몇 번이고 확인하며, 근처의 골목을 서성이고 서성였다. 간신히 찾아낸 아버지의 사무실은 ―― 여하튼 그곳에 있기는 한, 그런 사무실이었다. 쥐들이 다닐 것 같은 어둑한 복도와, 형광등과, 칠이 벗겨진 목조의 문. 혹시 외국인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이나 '을씨년'스러운 곳이었다. 깜짝이야, 그런 단어가 머릿속에 있었다니. 넉넉한 환경은 아니어도, 제법 메탈리카 같은 걸 듣던 시절이었다.(나는 마음 편하게 즐길 건 즐기며 지내고 있었음.) 그래도 세상은 뭔가 이에스피 플라잉 브이(메탈리카가 사용한 기타의 모델명)와 같은 게 아닐까, 막연한 생각을 나는 했었다. 했는데, 해서 문을 열고 들어서자 꼬박꼬박 도시락만 먹어 온 얼굴의 아버지가 가냘픈 표정으로 사무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 저 왔어요.
* 아버지 사무실을 찾아갔던 기억을 떠올리는 '나'
원래 좀 노는 편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날 이후 나는 조용한 소년이 되어 버렸다. 뭐랄까, 그때는 몰랐지만 그 순간 마음속에 '나의 산수'와 같은 게 생겨났기 때문이었다.(아버지의 회사를 찾아갔던 일로 인해 나는 경제적으로 열악한 아버지의 처지를 깨닫고는 자신이 직접 경제 활동에 뛰어들어야 할 것임을 깨닫는다. 가난이 준 충격으로 명랑함을 잃어 버리고 그 어떤 방법으로든 돈을 벌어야만 이 세상을 견뎌낼 수 있다는 나의 산수를 정립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아마도 그랬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슬픈 일도 기쁜 일도 아니었으며, 누구를 원망할 성질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말 그대로 수(數)였던 것이다. 말수가 줄어든 대신, 나는 열심히 알바를 하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야, 세상은 한 방이야. 어울리던 친구들이 안쓰럽단 투로 말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결국 이들도, 같은 산수를 할 수밖에 없단 사실을. 넌 뭘 할 건데? 나? 글쎄 요샌 연예계가 어떨가 싶어.(친구들은 한탕주의에 젖어 있다. 한번의 행운, 화려한 한 방을 노리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산수'로는 작은 것에라도 힘을 쏟아 모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판단을 한다.)
* 아버지를 만나고 난 후 생겨난 '나의 산수'
인간에겐 누구나 자신만의 산수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을 발견하게 마련이다. 물론 세상엔 수학(數學) 정도가 필요한 인생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삶은 산수에서 끝장이다.('수학'으로 자신들의 수입을 계산해야 하는 잘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금액과 관련될 일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산수'로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즉 높은 가지의 잎을 따 먹듯 ―― 균등하고 소소한 돈을 가가스로 더하고 빼다 보면, 어느새 삶은 저물기 마련이다, 디 엔드다. 어쩌면 그날 나는 '아버지의 산수'를 목격했거나, 그 연산(演算)의 답을 보았거나,(아버지의 경제적 능력을 정확히 인식하게 됨.) 혹 그것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는지도 모를 일이다.(자신도 아버지처럼 살 수밖에 없음을 깨달음) 즉 그런 셈이었다. 도시락을 건네주고, 산수(경제적 계급)를 받는다. 도시락을 건네주고, 산수를 받았다. 그리고 느낌만으로 '아버지 돈 좀 줘.'와 같은 말을 두 번 다시 하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일종의 성장임.)
참으로, 나의 산수란.
* 아버지와 '나의 산수'와의 관련성
미안하구나. 아버지는 그렇게 얘기했지만, 아버지, 이건 나의 산수예요 라고 나는 생각했다. 정기 적금, 정기 적금, 또 한 통의 자유 적금. 시급 천오백 원과 천 원이 따로따로 쌓여 가는 통장들을 생각하면, 세상에 힘든 일은 없었다.(착실하게 돈을 버는 것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믿는 것이 나의 산수의 내용이다. 나는 그런 산수에 의해 자신의 삶을 아르바이트에 몰아 넣고 그렇게 번 돈을 착실히 모으고 있는 것이다.) 말할 것 같으면, 내 주변은 주로 그랬다. 코치 형만 해도 통장이 다섯 개다. 코치 형네엔 아버지가 없지만, 우리 집처럼 병든 할머니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쌤쌤이다.(같다는 의미) 어머닌 식당 일을, 그 외엔 말을 안 해 더 이상은 모르겠다. 들은 바, 중학생 때의 코치 형은 본드로 유명한 소년이었다,(코치 형도 나와 유사한 변화를 겪어 왔음을 의미함.) 한다. 무렵엔 그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래, 누구나 자신의 산수를 가지고 살아가는 거겠지. 그러니까.
나의, 산수.
* 누구나 자신만의 산수를 지니고 산다고 믿는 '나'
<뒷부분 줄거리> '나'는 계속해서 힘든 푸시맨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의 여러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던 중 '나'의 엄마가 과로로 쓰러지고,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마저 어려워진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라지고, 그 대신 어머니가 기적적으로 퇴원한다. '나'는 힘들지만 그럭저럭 살아가다가 지하철 플랫폼에서 문득 아버지라고 생각되는 기린에게 집안의 근황을 들려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