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신문팔이(1974)                               -이청준-

 

 

우리는 누구나 녀석을 알고 있었다.

녀석은 정말 이상한 신문팔이었다.(신문을 파는 것보다 대사를 외치는 것에 더욱 신경을 쓰는 주인공)

―― 동아일보요, 서울신문이요, 중앙일보요, 민국일보요, 내일 아침 한국이요, 내일 아침 조선이요, 경향신문 있습니다. 신아일보 있습니다…….

저녁 아홉 시가 지나서 좌석버스로 서대문을 지나는 사람들은 누구나 녀석을 만날 수 있었다. 버스가 정류소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출입구를 비집고 올라서는 친구가 그 잠바 소년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일반 버스를 올라오면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옆구리가 휘일 만큼 커다란 신문 뭉치를 소중하게 앞으로 돌려 안고는 손님들을 천천히 한 차례 둘러본다.(신문팔이가 처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며, 손님을 둘러볼 정도로 관록과 여유가 있어 보임.) 신문팔이로 잔뼈가 굵은 듯한 인상이면서도, 이제는 버스 안에서 신문 따위를 팔고 다니기엔 다소 몰골이 어색할 만큼 나이가 먹어 버린 녀석은, 그러나 그 때마다 얼굴에 웃음기를 가득 담고 있었다.(소년의 모습에 대한 서술자의 묘사가 핵심적으로 제시된 부분으로, '웃음' 이후 서술자가 소년의 행동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계기가 된다.) 이제 막 여드름이 돋기 시작한 녀석의 가분수형 면상(面像, 얼굴의 생김새)〔그래서 딱 바라진 상체와 함께 조금은 난쟁이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가운데서도 터무니없이 좁아진 그의 실눈가를 맴돌고 있는 웃음기는 녀석으로서도 거의 속수무책인 듯한 것이었다.

어쨌거나 녀석은 그렇게 웃음을 띤 얼굴로 점검하듯 천천히 차 속을 한 차례 훑어보고는 비로소 그 독특한 목소리로 자기의 상품 목록을 외워 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 동아일보요, 서울신문이요, 중앙일보요, 민국일보요…….

억양이나 단속(斷續, 끊어졌다 이어졌다 함)이 똑같이 유별났다.

억양은 ―― 그건 사실 억양이나 말의 단속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마치 나어린 변론반(웅변반) 학생이 긴장 때문에 잘못 시작한 웅변 원고의 서두처럼, 동아일보요, 서울신문이요를 높낮이가 거의 없이 느릿느릿 그리고 일정하게 발성해 나가곤 했다. 억눌린 가성기가 섞인 그의 목소리는 자세히 들어보면 강약 약강약의 순서로 여덟 가지 신문 이름이 차례로 조음되어 나가고 있었지만 그건 거의 있으나마나한 변화였다. 일테면 그는 자신의 목소리에서 억양의 변화나 발음의 장단 따위를 적당히 조화시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것을 최대한으로 아끼고 억제해 버리고 있는 식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극단의 억제 속에서 오히려 어떤 기묘한 억양의 변화나 단속을 예감하곤 했다. 신문 하나 하나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목소리를 끊어 내는 그의 단호한 스타카토(악보에서 한 음 한 음씩 또렷하게 끊는 듯이 연주하라는 말)가 듣는 사람에게 은밀한 가락을 암시적으로 자생시켜 주고 있었다. 일정하게 끊어지고 일정하게 이어져 나가는 그 느릿느릿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의 단속 가운데에 보이지 않는 녀석의 가락이 간직되어 있었다. 그것은 그런 식으로 빈틈없이 완성되어지고 한 호흡 안에 굳게 묶인 길고 정연한(짜임새와 조리가 있는) 녀석의 대사였다.

동아 · 중앙 · 서울 · 경향이요, 하는 식으로 여느 아이들처럼 약칭(정식 명칭의 일부를 줄여서 간략하게 일컬음. 또는 그 명칭)을 쓰지 않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신문의 순서가 바뀌거나 생략되는 일도 절대 없었다.(신문팔이 소년은 자동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신문 이름을 판에 박힌 대사처럼 외우고 있다.) 녀석은 여덟 가지 신문을 빠짐없이 마련해 가지고 와선 토씨나 어미 하나 뒤바뀌는 일이 없이, 그의 속수무책인 듯한 눈웃음을 던지면서, 느릿느릿 판에 박힌 대사를 외어 나가곤 하는 것이었다.

―― 동아 일보요, 서울 신문이요, 중앙 일보요, 민국 일보요 …….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맘속으로 은근히 녀석을 아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좀 건방진 신문팔이 녀석이었다.(소년의 모습에 애정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로 어느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태도에서 건방진 느낌을 갖기도 함.)

밤 버스가 서대문 정류소만 들어서면 신문 뭉치를 옆구리에 낀 그 잠바 소년의 가분수형 머리통이 제일 먼저 출입구를 비집고 올라왔다. 시간이 바쁠 때는 가끔 그를 못 보고 서대문을 지날 적도 있었지만, 우리는 이제 서대문을 지날 때는 자기도 모르게 녀석의 모습을 찾게 되곤 했다. 녀석을 못 보고 서대문을 지나게 되는 날은 제물(저 혼자 스스로의 바람에)에 괜히 마음들이 서운해지곤 했다.

녀석은 우리들에게 가로등 같은 소년이었다.(사람들이 신문을 통해 밝은 희망을 찾듯이, 신문팔이 소년은 이 도심의 생활에 지친 우리들에게 활력을 주고, 무언가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존재이다.  이 소설에서 서술자는 '우리들'로 제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작가가 '나'를 대신한 복수의 관찰자적 시점을 통해 서술자와 관찰 대상 간의 거리감을 줄이고 정서적 동화의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녀석은 우리들에게 서대문의 가로등이었다. 녀석이 보이지 않는 날은 그의 등불이 꺼져 있는 날이었다. 녀석을 보지 못하는 날은 불이 오지 않은 가로등 사이를 건너갈 때처럼 마음의 균형이 어긋나 있곤 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좀처럼 드물었다.(거의 매일 신문팔이 녀석은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서대문 그 자리에서 신문들의 이름을 외치고 있음을 암시한다.) 녀석은 언제나 서대문에서 우리를 기다렸고, 우리는 그 소년의 가로등을 지나갔다.

하지만 녀석에겐 그보다 아직 더 인상 깊은 일이 있었다.

* 발단 → 신문팔이 소년은 저녁 아홉 시가 되면 버스에 올라 독특한 억양으로 여러 신문의 이름을 외우기 시작한다.

 

녀석은 늘 신문을 팔기 위해 차를 비집고 올라와서도 신문을 파는 데는 정작 마음을 쓰지 않았다. 녀석은 언제나 느릿느릿 여유가 만만했고, 은밀스런 비밀을 숨기고 있는 소년처럼 그 가는 실눈 속에 괴상한 웃음기를 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의 목소리를 즐기고 있는 듯한 가성기(일부러 꾸며 내는 목소리)의 목소리로 예의(이미 잘 알고 있는 바) 대사를 외워 나갔다.

하지만 딱 한 번이었다. 언제나 그 한 번뿐이었다. 느릿느릿 여덟 개의 신문 이름을 외고 나면, 차가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번 되풀이할 시간이 없었다. 신문을 팔 시간도 없었다. 대사만 외고 나서 번번이 차를 쫓겨 내려가야 했다. 하지만 그는 목소리를 서두르거나 중간에서 대사를 중단한 일이 없었다. 대사를 외우면서 신문을 파는 일도 없었다. 대사를 외워 주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었던 듯이, 그것만 끝내고 나면 미련 없이 차를 내려가 버릴 때가 많았다. 손님 중에서 신문을 사주고자 해도 미처 기회를 못 잡고 마는 수가 많았다. 신문을 사지도 못하고 차를 내린 소년이 정류소로 들어서는 뒷차를 향해 가는 모습을 내다보고 눈길이 멍해질 때가 많았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소설의 전개 과정에서 시공간의 전환과 새로운 사건의 제시가 필요할 때 그것을 알려 주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문장 표현이다.)

여차장은 이제 녀석의 승차를 방해하지 않았다. 차가 멎기도 전에 기를 쓰고 뛰어 올라오는 소년에겐 차장도 이제 습관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차장은 언제나 손님이 다 오르내리고 나면 그때부터 녀석을 참을 수가 없어졌다. 차가 떠날 때는 함부로 소년을 밀어냈다. 대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때라도 팔을 당기고 등을 밀쳐 대면서 녀석을 마구 차에서 몰아냈다.

그러던 어느 날 ―― 이날 밤도 녀석은 미처 대사가 다 끝나지 않은 참이었는데, 차가 불쑥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차장이 녀석을 마구 밀어제쳤다. 녀석은 차장에게 등을 밀리면서 대사를 계속했다. 마지막엔 승강구까지 밀린 소년이 차장의 발길에 채이듯 하면서도 기를 쓰고 매달리며 마지막 대사를 외어대고 있었다.

―― 내일 아침 조선이요, 경향신문 있습니다. 신아일보 있습니다!

닫히다 만 출입문 사이로 간신히 얼굴만 디밀어 놓은 채였다. 마지막 대사를 찻속으로 외어 들여보내고 나서야 소년은 매달려 가던 차를 훌쩍 뛰어내려갔는데, 그때도 물론 녀석의 얼굴에서 언제나와 같이 그 속수무책인 듯한 웃음이 유난스레 짙게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차를 뛰어내리고 나서도 어둠 속에서 잠깐 멀어져 가는 버스를 향해 멍청스런 웃음을 흘리고 서 있다가는 터벅터벅 그 서대문 정류소 쪽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필경(끝장에 가서는) 신문팔이보다도 그 자신의 대사를 즐기면서 그것 때문에 늘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는 건방진 신문팔이 녀석이었다.(신문팔이가 항상 웃음을 머금었던 이유를 '즐긴다'는 말로 요약 제시하면서, '건방지다'는 판단을 통해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졌음을 역설적으로 밝히는 표현)

하지만 우리는 어쨌거나 녀석을 아끼고 그를 사랑했다. 이상하고 건방져도 그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녀석이었다. 밤차로 서대문을 지날 때마다 우리는 적어도 차가 섰다 떠나가는 시간만큼은 녀석을 사랑했다. 낯선 거리에서도 우리들이 불켜진 가로등을 사랑하듯 우리는 녀석을 잠깐씩 사랑했다. 그것은 녀석이 늘 불가사의한 웃음기를 눈가에서 잃지 않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녀석의 웃음은 차라리 우리들을 까닭없이 부끄럽고 당황하게 할 때가 많았다. 녀석이 신문을 사달라고 귀찮은 애원을 해오지 않은 때문만도 아니었다. 우리는 대개 누구나 녀석의 신문을 사주고 싶었지만, 오히려 기회를 놓칠 때가 많은 형편이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인가.

무엇 때문에 우리가 그 가분수형 머리통의 잠바 녀석을 사랑하게 되고 말았는가. 초조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는 그의 여유만만한 대사 때문이었는가. 그 대사의 이상스럽고 억제되고 일정해진 억양과 단속 때문이었는가.

녀석의 대사라면 그건 오히려 우리하곤 더욱더 인연이 안 닿는 소리일 것이다.

 

소년은 정말로 자신의 대사를 자기 혼자 즐기고 있는 게 틀림이 없는 녀석이었다. 그걸 우연히 본 사람( )이 있었다. 지난 가을 추석날 저녁이었다.

날마다 밤 버스로 서대문을 지나다니던 사내 하나가〔이 이야기 중에서 그 사내가 굳이 나, 누구라는 특정 인물로 한정지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사내'는 특정한 실제적 인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 일 수 있음을 작자의 말로 밝힌 부분. 이러한 서술을 통해 이 소설의 이야기를 읽는 독자는 작가가 이 이야기를 통해 특정 인물의 삶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적 문제 혹은 그 의미에 대해 말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인물을 익명으로 처리함으로써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발시키기도 함. ) 그날 저녁은 무슨 일로 광화문에서부터 서대문을 도보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그 서대문 정류소를 지나면서 무슨 일로 자기가 지금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그곳을 지나가고 있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그 소년이 문득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그때는 마침 앞차들이 떠나가고 뒷차들은 아직 정류소를 들어서지 않고 있어서 거리가 잠깐 비어 있는 참이었는데, 그래서 사내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용케도 그 소년의 괴상한 비밀(혼자 대사를 중얼거리는 것)을 훔쳐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소년은 사람들이 몰려 서 있는 정류소에서 광화문 쪽으로 조금 비켜 나와서 녀석 혼자 다음 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언제나와 같이 회갈색 잠바의 옆구리에는 신문 뭉치가 휘일 듯이 무겁게 들려 있었고, 그 헐렁한 잠바와 신문 뭉치 때문에 커다랗게 부풀어 보인 녀석의 상체는 어딘지 좀 난쟁이처럼 보이는 평소의 느낌을 더 역력하게 해 주고 있었다. 잠바 깃에 묻혀 버린 짧은 목덜미 위로는 녀석의 그 커다란 가분수형 머리통이 단단하게 얹혀 있었는데, 이상스럽게도 그 큰 머리통은 녀석을 온통 처량해 보이게 하고 있었다.>(소년의 처량한 모습에 대한 묘사)

아닌게 아니라 녀석은 그런 모양을 하고 서서 전에 없이 청승맞게 밝은 추석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녀석의 볼 위에서 눈물이라도 보고 싶은 것처럼 사내는 조심조심 녀석에게로 다가갔다.

한데 뜻밖이었다. 가까이 다가서 보니 녀석에게선 중얼중얼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들어 보니 예의 그 대사였다.

―― 동아 일보요, 서울 신문이요, 중앙 일보요 …….

추석달을 쳐다보고 서서, 차를 기다리면서, 녀석은 주문처럼 그의 대사를 외어 대고 있었다. 나지막하기는 했지만 차에 올라왔을 때와 똑같이 단호하고 억양을 극도로 아끼고 있는 녀석의 목소리 그대로였다. 게다가 눈물이라도 흘리고 있을 줄 알았던 녀석의 얼굴에는 언젠가 그가 여차장에게 떠밀려 내리면서도 기를 쓰고 찻속을 향해 웃어 보이던 그런 필사적인 웃음기가 달빛 아래 가득 떠올라 있었다.

사내는 좀 어이가 없어지고 말았다.

소년은 분명 자신의 대사를 혼자 은밀히 즐기고 있는 녀석이었다. 그렇다고 오로지 녀석의 그런 대사 때문에 우리(1인칭 복수 관찰자 시점 - 소년에 대한 정서적 공감과 도시 군중들의 유대감을 표현함.)가 그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이유 같은 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상관이 없는 일이리라. 어느 것도 이유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어느 것도 또 가장 합당한 이유는 못 되었다. 분명한 이유를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이미 녀석을 사랑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가 거기 그렇게 가로등(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는 존재, 삶의 위안을 주는 존재라는 점에서 소년을 가로등에 비유한 것임.)처럼 있었기 때문에 가로등을 사랑하듯 그를 사랑하고 있었으며, 비록 그가 추석날 밤 대사를 외면서 달을 보고 웃고 서 있는 모습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그를 비슷하게 느끼면서 서대문을 지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녀석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사실인즉 때가 너무 늦은 다음이었는지도 모른다.(신문팔이 소년이 이미 신문팔이를 그만 둔 시점이었기에)

* 전개 → 신문팔이 소년은 버스 차장에게 쫓겨나면서도 끝까지 대사를 외고서야 버스에서 내리고, 길에서도 혼자 대사를 연습하는 등 자신의 일을 즐기는 모습을 보인다.

 

그 가을 추석달을 바라보고 웃고 서 있던 며칠 뒤부터 웬일인지 서대문을 지나는 밤차에는 소년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독자의 궁금증을 유발시킴.)

처음에는 녀석이 그저 차를 놓친 것이거니 짐작했고, 하루 이틀 같은 일이 계속되면서는 감기라도 앓고 있나 편한 상상들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닷새가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새삼스럽게 소년의 소식을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자신도 모르게 문득 녀석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었다.

보름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그 독특한 목소리의 잠바 소년은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소리도 들을 수 없었고, 녀석의 그 속수무책인 듯하면서도 때로는 필사적인 느낌을 주어 오던 눈웃음도 다시는 만날 수가 없었다. 서대문엔 어디에도 녀석이 없었다.

소년의 가로등엔 불이 켜지지 않았다.(신문 이름을 외치는 소년의 독특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의미임.) 그리고 우리는 그 불이 켜지지 않은 가로등 사이를 건너가듯 어딘지 아쉬움이 남는 기분으로 서대문을 건너 다녔다.

무심한 사람들도 이따금은 녀석을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늦가을 저녁이었다. 잊혀져 가던 잠바 소년이 문득 다시 서대문 정류소에 나타났다.

―― 저 녀석 저기 있군.

누군가가 유리창을 내다보며 혼잣말처럼 낮게 중얼거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 소리에 오른쪽 창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무심결에 일제히들 창문 밖을 내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 녀석이 다시 나타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녀석은 잠바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채 누군가를 기다리듯 한가하게 이쪽 창문을 올려다보고 서 있었다. 눈가엔 그 웃음기를 잃지 않고 있었지만, 그러나 어디엔가 아쉬움이 깃든 눈초리였다.

녀석의 옆구리엔 신문 뭉치가 들려 있지 않았다.(한동안 그들 앞에 보이지 않았던 소년은 이제 자신의 본업인 신문팔이를 하지 않고 있음.) 신문이 없으니까 녀석은 차를 비집고 올라올 일도 없었다. 억양을 한껏 아껴가면서 그것을 즐기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대사를 외어 대던 옛날의 녀석은 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얼마간 시들해지기 시작한 궁금증이 다시 살아났다.

―― 녀석에게 이젠 다른 밥벌이가 생긴 건가.

―― 신문도 팔지 않으면서 웬일로 여긴 다시 서성거리고 있는 건가.( '우리'의 새로운 궁금증의 내용 )

하지만 녀석에게선 물론 아무것도 사정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이후로도 녀석은 가끔 서대문에 나타나서 두 손을 잠바 주머니에 찔러 넣고 서서 우두커니 지나가는 버스들을 쳐다보고 있는 적이 있었고, 때로는 담벼락 밑 군밤장수의 연탄불 곁에 쭈그리고 앉아서 잠바깃을 세운 채 언 손을 싹싹 비벼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한 번도 신문 뭉치를 지닌 일이 없었고, 따라서 차에 올라오는 일도 없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서 있거나, 군밤 장수의 연탄불에 손을 녹이며 쭈그리고 앉아 있거나, 지나가는 차창에서 항상 그 아쉬운 듯한 눈길이 떠나지 않고 있는 녀석을 볼 수 있을 뿐,(소년은 예전에 자신이 차에 올라 신문 뭉치를 들고 신문 이름을 외쳤던 과거의 일을 생각하며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 서운한 생각을 갖고 있음.무엇 때문에 그가 가끔 신문도 팔지 않는 그 서대문 근처를 할 일 없이 서성거리고 있는지('우리'의 궁금증)는 아무도 이유를 들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갈수록 궁금증만 더해 갔다.

* 위기 → 언제부턴가 신문팔이 소년이 보이지 않자, 우리는 소년에 대해 궁금해 하며 어느덧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 날 저녁 마침내 다시 한 사내가〔다시 말하지만 그 사내가 굳이 나, 누구였다고 말하기 싫은 것은 이 이야기 중의 모든 경험을 나 혼자의 것으로 말하지 않고 '우리'라고 말하고 싶은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것으로 무슨 특별한 뜻을 담으려는 것이 아니라, 나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소년을 알고 있을, 틀림없이 알고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서술자를 익명화시킨 이유-우리 모두가 정서적으로 공감함을 나타냄.) 광화문에서부터 서대문까지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갔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한번 소년을 만났다. 이번에는 사내 혼자 소년을 몰래 만난 것이 아니라 녀석과 사내가 함께 만난 것이다.(이제까지 사내(많은 사람들)는 신문을 팔고 있는 소년을 일방적으로 쳐다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내와 소년이 일대일로 직접 마주보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음을 알려 줌.) 소년은 물론 사내가 좀 이상스러운 눈치였다. 별걸 다 묻는다는 식이었다.

―― 그런 건 왜 물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여전히 그 눈가의 웃음기만은 잃지 않고 있었다.

―― 다시 신문 팔아야지요. 하지만 …….(신문팔이에 대한 소년의 생각이 들어 있음, 신문팔이를 하고 싶으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있음을 암시함.)

조금은 어른스런 말투가 찻속에서 신문 이름을 외어 댈 때하곤 판이하게(비교 대상과는 아주 다르게) 풀이 죽어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뜻밖인 것은 예기치 않은 녀석의 불평이었다.

―― 민국 일보가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에요. 민국일보가 빠지니까 소리가 맞지 않아요. 동아 일보요, 서울신문이요, 중앙 일보요 ……. 민국 일보가 없으니까 자꾸만 짝이 어긋나 버리거든요.(소년이 신문팔이를 그만 둔 이유가 밝혀지고 있는 부분임.  신문 폐간이라는 언론 탄압에 대한 비판과 고발이라는 주제 의식이 드러나는 부분)

하고 보니 녀석이 보이지 않기 시작한 것은 몇 십 년간 실적을 가진 그 민국 일보가 뚜렷한 명분도 없이 어물어물 자진 폐간 형식으로 신문 발간을 중단해 버린(정부가 강제 폐간함 - 시대 상황을 암시적으로 나타냄.) 다음부터였던 것 같았다. 이상스런 얘기지만, 녀석은 그 민국일보가 나오지 않으니까 신문을 팔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일테면 녀석에겐 민국 일보가 빠져 버렸기 때문에 그의 대사 전체 질서의 골격이 무너져 나가 버린 셈이 된 것이다.(언론의 자유와 공평함의 중요성을 암시하는 부분) 그리고 녀석은 그 때문에 신문을 팔 수가 없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는 다시 연습을 시작하고 있노라 했다. 남은 신문들의 순서를 꿰맞춰서 대사의 억양과 호흡을 다시 연습하고 있는 중이랬다. 소리가 좀처럼 짝이 맞질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연습이 끝나면 반드시 다시 신문을 팔겠노라고 했다.

―― 말하나 마나지요. 신문을 팔아야지요. 한데도 아직 소리가 그전처럼 신이 나질 않아요. 민국 일보가 다시 나와 준다면 좋겠지만 …….

* 절정 → 어느 날 한 사내가 길에서 신문팔이 소년을 만나, <민국 일보>가 폐간이 되어 소리의 짝이 맞지 않아 더 이상 신문을 팔지 않는다는 이유를 듣게 된다.

 

녀석은 정말로 알 수 없는 신문팔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누구나 녀석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신문을 팔러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소리 연습이 여태도 다 끝나질 않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아주 연습을 포기하고 만 것이었을까.(소년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심정이 나타남.)

가을이 다 지나가도록 그는 여전히 신문을 팔지 않았다. 녀석의 희망처럼 민국 일보가 다시 복간(復刊, 간행을 중지하였거나 폐지하였다가 다시 간행한 출판물)호를 내주지도 않았다. 자진해서 폐간호를 내고 사라진 신문이 다시 살아나 줄 희망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기다리고 있었다. 언젠가는 녀석이 다시 새로운 대사를 익혀 가지고 나타나리라, 그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언젠가는 민국 일보가 복간되어 팔릴 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대목에 이르면 '녀석'과 '우리'는 단순한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어떤 상징성을 가진 말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소년이 제짝에 맞추어 신문 이름을 외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상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언론 사회가 오기를 희망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녀석의 그 서두르지 않는 유유한(침착하고 여유가 있는) 태도와 새로 익힌 대사와 독특한 눈웃음을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첫눈이 내린 다음에도 여전히 신문을 팔러 나오지 않았다.(언론 탄압이 계속됨을 상징함.) 어쩌다가 그 서대문 길가에서 두 손을 찔러 넣고 서서 아쉬운 듯 우두커니 지나가는 버스들만 바라보고 있는 녀석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뿐, 그나마도 나중에는 녀석의 그런 모습조차도 찾아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이 그의 연습을 끝내고 나서 새로 완성된 대사를 외며 나타나기를 참을성 좋게 기다리고 있었다. 불이 켜지지 않는 가로등 사이를 건너가듯, 녀석이 보이지 않는 서대문을 지나다니면서 끈질기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낯익은 거릴수록 우리가 우리의 가로등을 사랑하듯, 소년의 등불이 어느 날 그의 자리에서 다시 살아나서 빛나지는 않으나마 우리들의 조그만 사랑을 그에게 전할 수 있기를 오래오래 기다리고 있었다.>( 신문팔이 소년을 항상 보아왔듯이, 그가 사라졌더라도 그를 사랑한 우리의 마음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소년'이 곧 '등불'이라는 은유적 표현을 사용한 부분에서 작자의 주제의식이 분명하게 압축된다. 신문팔이 소년을 기다림 - 언론 자유화에 대한 갈망 )

하지만 한번 죽어 버린 민국 일보가 다시 살아나지 않는 것처럼, 녀석은 끝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들에겐 녀석이 없는 서대문이 그런 대로 조금씩은 익숙해진 날이 생기기 시작했다. 언제까지나 불이 켜지지 않는 가로등의 존재가 마침내는 우리들에게서 스스로 사라져 가듯이, 또는 이 빠진 자리가 언젠가는 저절로 그 간격이 흐지부지 골라져 버리듯이(울퉁불퉁하던 것이 평평하거나 가지런하게 됨.), 녀석이 없는 서대문 거리 역시 우리들에게선 어느덧 그 허전하던 의식의 간격이 조금씩 조금씩 골라져 가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만이 아직도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이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고, 이따금이나마 녀석의 그 속수무책인 듯하면서도 때로는 필사적인 느낌마저 들곤 하던 눈웃음을 생각하면서, 한껏 억양을 아낌으로써 오히려 유유하게 자신의 대사를 즐기고 있는 듯한 녀석의 목소리를 생각하면서, 어렴풋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사람들마저도 녀석이 다시 옆구리가 휘이도록 신문을 끼고 나타나서 자기의 목적은 오직 그 상품 목록을 외어주는 것뿐이라는 듯 신문 한 장 팔지도 않고도 미련 없이 다시 차를 내려가 버리곤 하던 녀석의 모습은 거의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녀석이 다시 나타날 것인지 어떨지는 누구에게도 그처럼 확실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다만 하나, 녀석이 다시 나타나든 안 나타나든 그의 기억을 지닌 밤버스로 서대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마지막 녀석의 기억이 사라질 때까지도 아직 머리를 깊이 갸웃거리라는 점이었다.

…… 녀석 참 이상하게 건방진 신문팔이었어.(반어적 표현 - 자신의 일에 대해 건방질 정도로 자부심이 있음. 언론의 자유를 당당하게 외침.) 그 뭔가 아무래도 알 수가 없는 녀석이었단 말야.

그리고 아마도 그 때문에 녀석은 더욱더 우리들에게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고 우리의 기억 속에 깊이 남아 있게 될 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소년이 잊히지 않는 이유 - '우리'에게 위안을 주었음, 언론 탄압의 현실을 고발함. )

녀석은 정말 이상스럽게 건방진 신문팔이었다.

* 결말 → 시간이 흐를수록  신문팔이 소년이 없는 일에 익숙해진 우리는 소년이 이상스럽게 건방진 신문팔이였다고 기억하며, 우리들은 소년이 다시 새로운 대사를 익혀 신문 이름을 외치는 소리를 듣기를 기대함.

<한국문학>(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