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눈(1978)                                                  -전상국-

 

 

언덕 아래의 시끌한 소음이 겨울의 냉기 속에 얼어붙으면서 안개처럼 우우 짙게 내리깔리는 집 안의 정적을 이따금 흔들어 주는 것은 눈발을 세울 듯 우중충 흐린 하늘을 스쳐 오는 교회 종 소리였다. 낡은 테이프로 음악을 흉내내면서 울려 오는 그 종 소리는 심장을 치는 성스럽고도 경건한 의미를 담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집회를 유도하는 그런 세속의 호객하는 소리처럼 음험할 뿐이었다.

저녁 종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가까워진 천재지변을 예각(예감)하는 하찮은 동물들의 그 본능처럼 분명 뭔가 냄새 맡고 있었다.

겨울, 1970년대 초 굉장한 충격으로 상륙한 오일 파동에다 어떤 피치 못한 사연까지 덤으로 붙어 느닷없이 앞당겨진 장장 두 달여의 이 양양하고(뜻한 바를 이룬 만족한 빛을 얼굴과 행동에 나타내는 면이 있다) 칠칠한(주접이 들지 아니하고 깨끗하고 단정하다) 겨울방학――그리고 형의 칩거였다.

형은 꼬리를 사타구니로 말아 넣은 미친개의 음험한 눈을 하고 밖의 겨울을 외면한 채 집 안 깊숙이 들엎드렸다. 이것은 분명 예삿일은 아니었다.

형은 가을부터 날뛰었다. 고질적인 그의 광기가 바깥 세계의 함성과 살기등등한 열기에 힘입어 마음껏 발산되었을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밤늦어 돌아오곤 하는 그의 얼굴에는 야릇한 살기와 흉계의 찌꺼기가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물 본 기러기처럼 그 열기 속을 헤엄치며 즐겼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형은 겨울방학이 선고되기 며칠 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형이 돌아오지 않은 사흘 간을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긴장 속에 텅 빈 집을 혼자 지켰다. 이 사실을 고향 아버지에게 알리지 않고 버틴 것은 역시 잘한 일이었다. 느덜은 별일 없재? 아버지가 그렇게 시외 전화를 걸어 왔을 때도 나는 시치미를 뗐다. 별일 없어요.

형은 돌아왔다. 고개를 꺾고 어깨를 움츠린 채 비실비실 걸어 들어와 두문불출 자기 방에 죽치고 들앉은 것이었다. 그의 초췌한 얼굴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나는 잽싸게 철대문에 빗장을 질러 버렸다. 형이 뭔가 끝내 주려 하고 있다 생각한 때문이다.

잠 못 자 죽은 귀신이라도 옮은 듯 형은 일 주일을 내리 잠만 잤다. 배를 채우기 위해 가끔 얼굴을 내밀 때의 그의 얼굴은 부황(오래 굶주려서 살가죽이 들떠서 붓고 누렇게 되는 병) 앓은 사람처럼 부석부석 떠 있었으며 이빨에는 누렇게 똥이 끼어 있었다.

물론 형의 이 칩거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았다. 이것은 그 꾸미고 있는 음모의 깊이를 생각하게 해 주는 좋은 조짐이었다. 형은 철저하게 조처했던 것이다. 바깥 함성에 휩쓸리면서부터 곧장 가정부 아줌마를 그녀의 고향으로 내려 보낸 것을 비롯해서 자기 이름이 적힌 문패를 떼어 쓰레기통에 집어 넣는 등. 방에 들엎드리기 전에 아버지에게 시외 전화를 거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먼저 말하고 있다――내 곧 상경하겠다만, 느이들 별일 없재?

아버지가 두려워하는 것은 항상 '별일'이었다. 아버지는 평화주의자다. 형은 얼굴을 찌푸린 채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다가 기회를 잡아 용건을 잘라 말했던 것이다.

――우리 공부 좀 하게 아무도 올라오지 말아요.

백 번 장담해도 좋을 것이, 고향에서는 이제 아무도 상경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와 계모――그들은 형을 겁내고 있었다. 형의 광기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은 계속 잠만 잤다.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잤다. 이갈기는 형의 광기의 한 증세이기도 했다. 나는 형의 이 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뒤꿈치를 들고 야금야금 걸으며 이 칠칠한 겨울을 즐겼다. 가끔 소리 죽여 ㅎㅎ 웃기도 했다. 이 즐거움의 근원은 기다림이었다. 기다림은 어떤 사실과의 만남을 전제로 한다. 나는 줄기차게 시치미를 떼면서 무엇인가 일어나 주기를 기다렸다. 형은 항상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우리들이 좀더 어렸을 시절, 함께 싸다니며 저지른 그 무수한 기행(기이한 행동)――그것은 온통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집에서 기르던 산비둘기 한 쌍을 펄펄 끓는 물에 슬쩍 데쳐 털을 모조리 뽑아 낸 다음 방 안에 던졌다. 비둘기들은 김이 오르는 그 발간 몸뚱이를 강동거리며 방 안을 뱅뱅 돌았다. 우리는 눈앞이 아찔한 즐거움으로 해서 기성을 질러 댔던 것이다.

 

형이 그 긴 잠에서 깨어난 것은 내가 대문 밖 쓰레기통에서 백치(뇌에 장애나 질환이 있어 지능이 아주 낮고 정신이 박약한 것, 또는 그런 사람)를 발견한 시간과 거의 때를 같이 했다. 우습게도 형은 그 백치놈을 맞아들이기 위해서 잠을 깬 것처럼 거동했는데 나는 그것을 믿어주고 싶었다. 그의 그 예사롭지 않은 잠 속에 어찌 그 정도의 현몽이 없었겠느냐 싶었던 것이다.

밖에는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고 집 안에 모인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대문 빗장을 뽑았을 땐 아랫동네로부터 교회 종 소리가 음악을 흉내내면서 기어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한 예감에 사로잡혀 쓰레기통을 열었다. 나는 혹―― 숨을 들이마시며 뚜껑을 다시 닫아 버렸다. 뭔가 희끗하게 쓰레기통 속에 꽉 차 있다는 느낌이었다. 허겁지겁 안으로 뛰어들었다. 형이 마당에 서 있었다.

"밖에 누가 날 찾아왔지?"

형은 누렇게 때 낀 이를 드러내며 천연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겁에 잔뜩 질려 있었다.

"응, 쓰레기통 속에 있어!"

나는 대답해 주었다.

쓰레기통 속에 든 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그리고 그 괴물을 밖으로 끄집어 내는 데는 상당한 용기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다.

한눈에 그것은 우리들의 적수가 아니었다. 입을 헤 벌려 침을 게게 흘리는 백치였던 것이다. 놈은 오그라 붙듯 왜소한 체구를 하고 있었지만 나이는 꽤 들어 보였다. 얼굴은 화상에 의한 것인 듯 찌그러져 번들거렸다.

"바로 그 새끼야!"

내 맥빠진 기분과는 달리 형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 새끼의 출현이었던 것이다. 형의 그 새끼는 이처럼 느닷없이 쓰레기통에서도 나왔다. 호중아, 불이야 불. 형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엄마가 살고 있던 바깥채가 불붙어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무서워서 울었다. 그 때 형이 미친 듯 울고 있는 내 귀에다 속삭였다. 저 불, 그 새끼가 싸지른 거야! 그 새끼를 형이 처음 입에 올린 것이 그 때였다. 내가 대여섯 살, 형이 예닐곱 살쯤 돼서였을 것이다. 그 새끼가 죽인 거야. 재 속에서 끄집어 낸 엄마의 시체가 철사에 꽁꽁 묶인 채 새카맣게 불타 오그라졌더라며 형은 엄마가 땅에 묻히는 날도 내 귓속에다 속삭였다.

형의 이러한 발작을 눈치채면서부터 아버지의 얼굴에는 난색이 짙었다. 아버지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은 오직 형의 광기 앞에서뿐이었다. 매사 적당주의인 아버지라도 형의 광기가 한번 나타나면 속수무책으로 절절 맸다.

형에게 덮씌워진 '그 새끼'의 귀신은 어디에서도 예고없이 그 꼬락서닐 달리해 나타났다. 학교 길 건널목 빨간 불 대기에서 옆에 서 있는 중년 여인까지도 그 새끼로 보였던 것이다. 두툼한 입술과 툭 불거진 광대뼈가 온통 탐욕스럽게 생겨 먹었더란 것이다. 나중에 제정신이 들었을 때 형은 꼭 이런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달곤했다. 이처럼 형의 광기는 다혈질적인 체질에서 오는 과민성과도 통하는 바가 있었다. 하찮은 일에도 곧잘 입술을 파르르 떨며 동공을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는 등, 그는 항상 불안하고 혐오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새끼의 모습은 러시 아워의 초만원 버스 속에서 가장 많이 나타났다. 학생이 든 책가방이 다리를 좀 스쳐도 목덜미를 벌겋게 달구며 눈에 살기를 띠는 선병질적인(신경질적인) 사내의 옆얼굴, 뒷머리를 지나치게 쳐 올려 속살이 허옇게 드러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내의 뒷모습,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출구에 엉겨붙은 승객들을 안쪽으로 집어넣기 위해 차체를 급회전시키는 버스 운전사의 선글라스 낀 유들유들한 얼굴, 아낙네의 둔부에 사타구니를 밀착시키고 서서 옆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치한――대개 이런 사람들이 형의 주먹을 먹었다. 느닷없이 그 새끼의 면상을 때리고 형은 그 자리에 쓰러져 간질병자처럼 사지를 뒤틀었다. 그래서 형은 항상 용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버스 속에서의 그런 얼굴은 그런대로 눈에 거슬려 증오심이나 적개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상이었기 때문에 그런대로 수긍이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형은 아주 점잖게 차려입은 중년 신사 뒤를 미행해 가다가 그 목덜미를 잡아챈 다음 놀란 그 신사의 얼굴에다 침을 뱉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형은 아버지에 의해서 정신과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두 달 여의 입원 끝에 형은 '이상 없음'의 결과를 가지고 히히 웃으며 천연스런 얼굴로 돌아왔다. 그 날 저녁 형은 음흉스럽게 웃으며 내 귀에다 대고 말했던 것이다. 의사, 그게 바로 그 새끼였단 말이야.

"이 새낄 안으로 끌어들여!"

형은 백치가 가슴에 안고 있는 형 이름이 적힌 문패를 빼앗아 다시 쓰레기통 속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나는 망설일 필요 없이 백치의 몸을 대문 안으로 밀어넣었다. 너, 이거 꼭 붙들고 있어. 형이 건네 준 비둘기의 가슴이 내 손아귀에서 파득파득 뛰고 있었다.

마루에 선 채 두리번거리는 백치한테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입을 헤 벌린 꼴이 녀석의 화상으로 찌그러져 번들거리는 흉한 낯짝의 인상을 조금은 부드럽게 하고 있었다.

 

[중략]

 

형은 ㅎㅎ 웃으면서 말했다. 유다의 오뇌와 같은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는 이상하게 허둥거렸다. 잠을 깬 백치가 밥상에 다가앉아 걸신나게 마지막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이 허수아비 어디서 태울 거야?"

나는 몹시 조급해져 있었다. 부지런히 알아 내야 했기 때문이다.

"너 정말 몰라서 묻냐?"

형은 숟가락을 들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나는 형의 눈을 피했다.

"여기 이 마루에서 태울 거다. 왜?"

형은 지금 웃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속셈을 알아 낼 때까지 섣부르게 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 무섭냐?"

"천만에! 다만 이 집까지 타 버릴까 봐 그게 걱정이라구!"

"집을 태우는 거야!"

"이건 우리 집이야!"

"그래, 맞아. 우리 집을 태우는 거야!"

"형, 내 몫도 있다는 걸 잊지 말라구!"

"이 병신아, 네 몫은 안 태워! 넌 지주거든. 난 건물주구……."

그렇게 말하고 형은 짧게 ㅎㅎ 웃었다. 그리고 곧장 정색을 하며 내 멱살을 잡았다.

"저 새낄 죽일 거니까, 너 참견하지 마!"

형이 턱으로 가리키는 백치는 다시 식곤증으로 해서 난로 옆에 쓰러져 있었다. 놈은 정말 하등 동물이었다.

"형두 저 새끼하구 함께 죽는 거야?"

나는 절벽 끝에 서 보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형이 내 멱살을 풀면서 말했다.

"말해 주지. 난 안 죽어. 저 새끼가 나 대신 죽는 거야!"

절벽 끝에서 나는 드디어 형이 파 놓은 그 깊은 흉계의 늪을 보았다. 그 늪에 나까지 밀어넣는다면 형의 흉계는 더욱 완전하게 성공할 것이 틀림없다. 나는 얼른 밥상을 들고 일어섰다. 토끼처럼 슬기롭게 늪에서 도망쳐야 했기 때문이다.

"거기 그냥 놔 둬!"

형이 내 앞을 막어섰다.

"내가 왜 형 대신 죽어야 해? 난 죽고 싶지 않아."

나는 부르짖었다. 내가 몸을 떨며 기다린 것은 즐거움이지 파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죽는 것은 더욱 싫었다.

"겁내지 마. 안 죽일 거니까. 넌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단 한 사람으로 남아 있음 돼."

"난 참을 수 없어! 말해 버리고 말 거야. 난 그런 무서운 비밀을 지니고 살 수 없단 말이야!"

"넌 절대 말하지 않을 거다. 넌 사실을 얘기할 만큼 어리석지가 않아."

"난 형이 살아 있다는 그 사실 때문에 미치고 말 거야."

"거짓말하지 마. 넌 절대 미치지 않아. 넌 모든 걸 곧 잊겠지. 너 자신을 위해서 말이야.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런 것처럼 어쩌면 너는 더 무서운 놈일 거야."

"난 잊을 수가 없어!"

"그래, 잊지 않는다고 해도 넌 그 기억을 되살려 내진 않을 거야. 그 때 그 새낄 기억해 내지 않듯 말이지."

나는 후닥닥 형으로부터 물러섰다. 그가 지금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형, 난 정말 아무것도 기억에 없어."

"저 새끼처럼 말이지?"

그러면서 형은 현관 신발장 옆에 놓인 석유통을 들어올렸다. 그는 서서히 마개를 뺀 다음 마루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허수아비의 몸뚱이에 석유를 붓기 시작했다. 헌 옷가지가 감긴 허수아비의 몸뚱이는 갯솜(해면. 목욕해면을 볕에 쬐어 섬유상의 골격만 남긴 것. 미세한 구멍이 많이 뚫려 있고, 부드러우며 탄력이 좋아서 수분을 잘 빨아들임)처럼 흠뻑 적셔졌다. 그리고 석유는 마룻바닥으로 흘러내려 새우처럼 웅크린 채 잠든 백치의 몸까지 번져 들었다. 형은 발로 백치의 이마를 찼다. 이 때 나는 형이 구두를 신고 있음을 발견했다. 구두에 차인 백치는 전기 충격을 당했을 때처럼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간 다시 쓰러졌다. 그러나 몸에 배어드는 물기를 느꼈는지 다시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앉았다.

"형, 정말 왜 이러는 거야?"

나는 석유통을 집어던진 형이 점퍼 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 들자 재빨리 몸을 피해 현관 쪽으로 다가갔다.

"보기 싫으면 어서 꺼져. 어차피 넌 잊을 거니까."

"난 잊지 않아! 아무나 붙들고 혀이 한 일을 말해 줄 거야."

"그래 말해 봐. 그 때 그 새끼 얘기두 함께 말이야."

형은 비웃고 있었다. 나는 이상한 충동에 의해 형에게 끌려들고 있었다.

"형, 나는 정말 그 새낄 못 봤어!"

나는 형이 다시 그 새끼에 대해서 말해 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넌 봤어. 나처럼 똑똑히 봤단 말이야. 다만 사실을 말하길 두려워할 뿐이야. 두렵기 때문에 잊어 버린 건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난 그 때 겨우 다섯 살이었단 말이야. 본 게 사실이라구 해두 잊어 버릴  수도 있어."

"그래, 다섯 살이었을 거다. 너 그 때 나하고 함께 엄마가 있는 텐트 속에 들어갔었지. 그리고 그 새낄 본 거야."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형은 이제 스스로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날 우리는 수리대 호수로 낚시를 갔던 거야. 여보, 기분 어때? 아버지가 엄마를 돌아다보며 말했어. 너무너무 좋아요. 엄마가 대답했어. 우린 밤 고길 잡기 위해 산기슭에다 텐트를 쳤어. 엄마는 텐트 옆에서 저녁을 짓고 있었지. 그 때 우리들은 아버지와 함께 텐트에서 산모퉁이를 하나 더 돌아선 곳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던 거야. 바람 없이 잔잔한 수면에 뒷산 그림자가 저녁 노을에 어울려 일렁거렸지. 물 위로는 저녁밥을 찾는 물고기들이 흰 배를 드러내며 펄쩍펄쩍 뛰어오르고, 물새들이 수면을 스치듯 날던 기억도 난 지금 생생하단 말이야. 나는 아버지 옆에서 아버지가 괴어 놓은 낚싯대 하나를 지켜 앉았었는데 넌 아버지 옆에 붙어 앉아 자꾸 칭얼거렸던 거야. 이제 그만 엄마 있는 데로 돌아가자는 거였다. 데려다 주고 올까? 내가 아버지한테 물었더니 낚시에 정신이 팔려 있던 아버지는 고개만 끄덕였어. 나는 네 손을 붙잡고 산모퉁이를 돌아 엄마가 있는 텐트 쪽으로 가면서 너하고 달리기 시합도 했어. 텐트가 가까워 오자 우리는 몸을 조그맣게 웅크려 살금살금 다가갔지. 엄마를 놀라게 하려고 그랬던 거야. 그러나 엄마는 없었지.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킥킥 웃었지. 그리고 동시에 텐트 속으로 기어 들어간 거야. 그 때 우린 보았어!"

나는 형이 성냥개비를 뽑아 드는 걸 보았다. 백치는 얼굴에 묻은 석유를 역시 석유 밴 팔소매로 열심히 닦아 내고 있었다.

"우린 그 때 봤단 말이야. 난 그것을 본 순간 벌벌 떨리기 시작했어. 그래서 네 손목을 끌고 마구 울면서 아버지한테로 달려갔던 거야. 네가 울면서 아버지한테 말했거든. 엄마가 죽어! 그리고 내가 숨을 헐떡이며 설명했지. 텐트 속에서 우리가 본 그 새끼에 대해서 말이야. 엄마 위에 있던 그 새끼는 동화책에 나오는 곰처럼 크고 무서웠어. 그러나 나는 엄마 입에 물려져 있던 그 수건과 우리를 쳐다보던 엄마의 눈을 설명할 수가 없었어. 너두 기억할 거야. 엄마의 그 눈 말이야. 그런데 아버지는 이미 우리들 곁에 없었어. 우리는 울면서 아버지가 괴어 놓은 낚싯대 옆에 쭈그려 앉아 있었던 거야. 주위가 어둑어둑해지면서 우린 무서웠어."

형은 말을 끊고 마치 그 때처럼 겁먹은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의 발밑에 불 당겨지지 않은 성냥개비가 두어 개 분질러져 있었다. 그는 또다른 성냥개비를 꺼내 들며 말했다.

"누군가 뒤에서 우리를 물 속으로 밀었던 거야. 나는 물 속에서 아버지의 무서운 얼굴을 보았어. 아버지, 아버지――나는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아버지를 불렀던 거야. 내가 정신이 들었을 땐 텐트 있는 데였어. 네가 옆에서 울고 있었지. 엄마아! 나는 소리치며 텐트 속으로 기어들어갔어. 그러나 거기는 텅 비어 있었단 말이야. 네가 더욱 소리내어 울었지. 호중아 울지 마, 형이 거짓말을 한 거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물귀신이 잡아가는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아버지가 내 얼굴을 힐끗 돌아봤어. 아버지는 웃고 있었지. 뱀처럼 그렇게 웃었어. 아버지는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거였다. 엄마는 몸이 아파 벌써 오래 전에 집에 갔다면서 우리들이 텐트 속에서 보았다는 게 전부 거짓말이라는 거였어. 호중아, 너는 아무것도 못 봤지? 아버지가 울고 있는 너한테 물었어. 너는 내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던 거야. 아무것도 못 봤다는 거였어. 현중아, 너도 못 봤지? 아버지가 내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그러나 나는 소리질렀던 거야. 난 봤어. 그 새끼가 엄마 위에 있었단 말이야! 아버지가 웃었어. 뱀처럼 웃으면서 일어나 내 목덜미를 쥐고 다시 물가로 끌고 갔던 거야. 네가 울면서 따라왔지. 호중아, 형이 미쳤다. 물귀신이 붙은 거야. 물귀신은 물 속에서 떼어야 하는 거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물속에 던져졌던 거야. 하늘이 새까맣게 보였어. 나는 기를 써서 기어 올랐어.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나를 다시 물 속에 던져 넣었어. 두 번 세 번……. 울컥울컥 물을 먹으면서 나는 이것이 죽는 것이구나――생각했어. 내가 정신이 다시 들었을 때 아버지가 물었어. 너 또 다시 거짓말 할래? 아버지의 얼굴은 뱀이었어. 아버지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나는 울면서 말했던 거야. 집에 돌아온 다음 날부터 나는 앓기 시작했어. 대단한 고열이었을 거야. 문득문득 까마득히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헛소릴 했어. 아버지, 잘못했어요. 다시는 거짓말 안 할게요――."

성냥개비를 든 형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벌겋게 이글거렸다. 나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거짓말이야. 형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이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왔던 그 생각이 사실처럼 보여진 거야. 착각이라는 거야. 일곱 살 때의 기억을 그처럼 생생히 되살릴 수 있다는 자체가 이미 정상이 아니란 말이야."

"이 새끼야, 난 미치지 않았어!"

씹어뱉듯 말하면서 형은 성냥개비에 득―― 불을 당겼다. 백치가 그 성냥개비에 붙은 불을 쳐다보며 화상으로 번들거리는 얼굴을 잠깐 찡그려 보였다.

형은 손끝까지 타들어 온 불을 마룻바닥에 던져 밟아 버렸다.

"모든 걸 쉽게 잊어 버린 채 뻔뻔스런 낯짝을 한 새끼들이 드러워서도 난 죽을 수가 없단 말이야. 난 살아 있어야 해. 그래서 언제고 사실을 말해 줄 거다!"

"형, 사실을 말해 줄 거라구? 사실이 그렇게 중요한 거야?"

형은 성냥을 그으려다 말고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난 알고 있었어. 아버지가 왜 우리들을 엄마가 있는 바깥채에 못 나가게 했었는지 말이야!"

"그게 어쨌단 말이야? 아버진 엄마가 나쁜 병에 걸려서 우리하고 격리시켰댔잖아. 그리고 엄마는 죽었을 뿐이야――."

"그래 엄마는 죽었어. 불타 죽었단 말이다. 그 새끼가 불 싸질러 죽인 거야."

"그게 누군데?"

"너지?"

나는 갑자기 맥살(맥. 기운이나 힘 또는 의욕)이 풀렸다. 성냥 불빛에 어른거리는 형의 얼굴은 광기로 이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형은 아니야. 그는 너무 어렸어. 형은 다시 성냥개비를 꺼내 들고 허수아비 앞으로 다가갔다.

백치가 밍깃밍깃 형을 피해 앉았다.

"난 아니야. 난 엄마를 안 죽였단 말이야……."

나는 형 있는 데로 다가가서 외쳤다. 꿈에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새까맣게 불탄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호중아, 네가 날 죽였지?"

형이 내 목을 죄며 그 물가의 기억을 추궁하던 밤이었다.

형이 허수아비 머리에 불을 당겼다. 불은 금세 투항하는 병사가 엉거주춤 쳐든 손처럼 위로 뻗은 두 팔을 타고 옮겨 붙었다.

"형!"

나는 현관 쪽으로 쫓기듯 물러서며 소리쳤다. 나는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브레이크 고장난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가속으로 내리닫는 그런 데 던져진 심정이랄까――. 그러나 정신은 맑았다. 호중아, 형아가 미쳤다. 귀신이 붙은 거야. 그리고 아버지는 또 속삭이고 있었다. 나를 봐라, 끄떡없지 않느냐? 아버지처럼 살아야지.

허수아비의 머리와 팔에 당겨진 불은 타오르면서 아래쪽으로 맹렬히 번져 내렸다. 이제 허수아비는 온통 불길 속에 휩싸이고 있었다. 타오르면서 번져 내린 불길은 마룻바닥을 핥으며 엉거주춤 일어나 앉은 백치의 몸뚱이까지 옮겨 붙었다.

순간 백치는 짐승처럼 부르짖었다. 쫘악 소름끼치는 소리였다. 또한 그의 화상으로 찌그러져 번들거리는 얼굴에서 팍팍 튀어나오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분노였다. 격노한 자의 살기 띤 얼굴이 형을 향했다. 그러한 백치의 가슴팍을 향해 형의 발길이 날았다. 걷어찼다고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백치의 몸이 불쑥 위로 솟았다.

그 순간 형의 몸뚱이가 백치 위에 나무 등걸처럼 무너졌다. 백치의 두 팔이 형의 하체를 끌어안고 있었다. 형은 버둥거렸다.

그러나 그들의 몸뚱이는 결코 풀리지 않은 채 불길이 되어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불길이 천장에 치닫기까지 현관 입구에 붙어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보고 싶었던 것이다. 수리내 호수의 그 물가 풍경을. 엄마 입에 재갈을 물리고 엄마 위에 엎드려 있었다는 그 새끼가 있는 물가 풍경을. 그리고 우리를 쳐다보던 엄마의 그 눈을 기억해 내기 위하여 나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지켜보았다. 불길 속에서 형이 말하고 있었다. 네가 그 새낄 겁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다란 아버지의 손이 내 눈을 가리며 말했다. 호중아, 넌 아무것도 못 본 거야. 넌 아무것도 기억할 필요가 없어. 불길은 뱀의 혀처럼 마룻바닥을 핥으며 맹렬히 번져 올랐다. 호중아, 나를 보아라. 철사에 묶인 채 새카맣게 불타 오그라진 엄마가 불길 속에 서 있었다.

 

밤의 언덕은 지하실 가득 비축되었던 10여 개 석유 드럼이 폭발하는 굉음과 함께 하늘 높이 치솟는 불길로 해서 대낮처럼 휘황했다. 그러나 현장으로부터 적당히 비켜 선 위치에는 팔짱 낀 불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나는 그들 방조범 중에서 한 사내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그는 몹시 당혹스런 얼굴로 돌아다보았다.

"너지?"

나는 그 사내의 귀에다 나직이 속삭인 다음 그 뾰족한 턱에다가 냅다 주먹을 날렸다. 그 새끼였던 것이다.

 

<이해와 감상>

1978년 <한국문학> 2월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등장 인물의 이름이 '민중'이라는 이유로 당국으로부터 경고를 받는 등 수난을 겪기도 했던 소설이다. 그래서 1979년 창작집 <하늘 아래 그 자리>에 수록될 때에는 작품 제목을 '뾰족한 턱'으로, 등장 인물 '민중'은 '호중'으로 바꾸어 수록하기도 했다.

6 · 25 전쟁으로 인한 실향민 의식과 삶의 뿌리 찾기 등 체험을 토대로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엄숙주의 경향을 띤 작가로 평가받는 전상국의 경향은 이 작품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즉, 정신적 상처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형을 보고도 상처를 상처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상처를 외면하거나, 그 상처가 다른 사람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이는 것이라 하겠다.

1970년대 말에 이 작품이 겪었던 수난과 함께, 등장 인물들의 상처와 그것을 이겨 내는 방법 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