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덕방(1937)                                         -이태준-

 

 

철썩, 앞집 판장(널빤지 또는 널빤지로 만든 울타리) 밑에서 물 내 버리는 소리가 났다. 주먹구구에 골독했던('골똘하다'의 원말) 안초시('초시'는 예전에, 한문을 좀 아는 유식한 양반을 높여 이르던 말)에게는 놀랄 만한 폭음이었던지, 다리 부러진 돋보기 너머로, 똑 모이를 쪼으려는 닭의 눈을 해 가지고 수챗구멍을 내다본다. 뿌연 뜨물을 휩쓸려 나오는 것이 여러 가지다. 호박꼭지, 계란 껍데기, 거피해 버린 녹두 껍질.

"녹두 빈자쩍(빈대떡)을 부치는 게로군, 흥……."

한 오륙 년째 안 초시는 말끝마다 "젠장……."이 아니면 "흥!"하는 코웃음을 잘 붙이었다.

"추석이 벌써 낼 모레지! 젠장 ……."

안 초시는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었다. 기름내가 코에 풍기는 듯 대뜸 입 안에 침이 흥건해지고 전에 괜찮게 지낼 때, 충치니 풍치니 하던 것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아래윗니가 송곳 끌같이 날카로워짐을 느끼었다.

안 초시는 그 날카로워진 이를 빈 입인 채 빠드득 소리가 나게 한번 물어 보고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천 리같이 트였는데 조각구름들이 여기저기 널리었다. 어떤 구름은 깨끗이 바래 말린 옥양목처럼 흰빛이 눈이 부시다. 안초시는 이내 자기의 때묻은 적삼 생각이 났다. 소매를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은 날래(빨리) 들리지 않는다. 거기는 한 조박의 녹두 빈자나 한 잔의 약주로써 어쩌지 못할, 더 슬픔과 더 고적함이 품겨(풍겨) 있는 것 같았다.

혹혹 소매 끝을 불어 보고 손끝으로 튀겨 보기도 하다가 목침(나무 베개)을 세우고 눕고 말았다.

"이사는 팔하고 사오는 이십이라 천이 되지 ……. 가만 …… 천이라? 사루 했으니 사천이라 사천 평 ……. 매 평에 아주 줄여 잡아 오환씩만 하게 돼두 사 환 칠십 오 전씩이 남으니, 그럼…… 사사는 십륙 일만 육천 환하구 ……."

안 초시가 다시 주먹구구를 거듭해서 얻어 낸 총액이 일만 구천 원, 단 천 원만 들여도 일만 구천 원이 되리라는 셈속이니, 만 원만 들이면 그게 얼만가? 그는 벌떡 일어났다. 이마가 화끈했다. 도사렸던 무릎을 얼른 곧추세우고 뒤나 보려는 사람처럼 쪼크렸다(쪼그렸다). 마코(일제 강점기 당시의 담배 이름) 갑이 번연히 빈 것인 줄 알면서도 다시 집어다 눌러 보았다. 주머니에는 단돈 십 전, 그도 안경다리를 고친다고 벌써 세 번짼가 네 번째 딸에게서 사오십 전씩 얻어 가지고는 번번이 담뱃값으로 다 내어보내고 말던 최후의 십 전, 안 초시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것을 집어 내었다. 백동화(동전의 한 가지) 한 푼을 얹은 야윈 손 바닥, 가만히 떨리었다. 서 참위(대한제국 때 무관의 맨 아래 계급)의 투박한 손을 생각하면 너무나 얇고 잔망스러운(보기에 몹시 약하고 가냘픈 데가 있는) 손이거니 하였다. 그러나, 이따금 술잔은 얻어먹고, 이렇게 내 방처럼 그의 복덕방에서 잠까지 빌려 자건만 한 번도, 집 거간(거간꾼. 사고 파는 사람 사이에 들어 흥정을 붙이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나 해먹는 서 참의의 생활이 부럽지는 않았다. 그래도 언제든지 한 번쯤은 무슨 수가 생기어 다시 한 번 내 집을 쓰게 되고, 내 밥을 먹게 되고, 내 힘과 내 낯(얼굴 또는 체면)으로 다시 한 번 세상에 부딪쳐 보려니 믿어졌다.

초시는 전에 어떤 관상장이의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넣고 주먹을 쥐어야 재물이 나가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늘 그렇게 쥐노라고는 했지만 문득 생각이 나 내려다볼 때는, 으레 엄지손가락이 얄밉도록 밖으로만 쥐어져 있었다. 그래 드팀전(온갖 피륙을 팔던 가게)을 하다가도 실패를 하였고, 그래 집까지 잡혀서 장전(옳지 못한 짓을 해서 얻은 돈)을 내었다가도 그만 화재를 보았거니 하는 것이다.

"이놈의 엄지손가락아, 안으로 좀 들어가아, 젠장."
하고 연습삼아 엄지손가락을 먼저 안으로 넣고 아프도록 두 주먹을 꽉 쥐어 보았다. 그리고 당장 내어보낼 돈이면서도 그 십 전짜리를 그렇게 쥔 주먹에 단단히 넣고 담배 가게로 나갔다.

 

이 복덕방에는 흔히 세 늙은이가 모이었다.

언제 누가 와, 집 보러 가잘지 몰라, 늘 갓을 쓰고 앉아서 행길을 잘 내다보는, 얼굴 붉고 눈방울 큰 노인은 주인 서 참의다. 참의로 다니다가 합병 후에는 다섯 해를 놀면서 시기를 엿보았으나 별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이럭저럭 심심파적으로 갖게 된 것이 이 가옥 중개업이었다. 처음에는 겨우 굶지 않을 만한 수입이었으나 대정('다이쇼'를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이름, 즉, 일본 다이쇼 천황의 연호) 팔구 년 이후로는 시골 부자들이 세금에 몰려, 혹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서울로만 몰려들고, 그런데다 돈은 흔해져서 관철동, 다옥정 같은 중앙 지대에는 그리 고옥(지은 지 오래 되어 낡은 집)만 아니면 만 원대를 예사로 훌훌 넘었다. 그 판에 봄가을로 어떤 달에는 삼사백 원 수입이 있어, 그러기를 몇 해를 지나 가회동에 수십 칸 집을 세웠고 또 몇 해 지나지 않아서는 창동 근처에 땅을 장만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중개업자도 많이 늘었고 건양사 같은 큰 건축회사가 생기어서 당자끼리 직접 팔고 사는 것이 원칙처럼 되어 가기 때문에 중개료의 수입은 전보다 훨씬 준 셈이다. 그러나 이십여 칸 집에 학생을 치고 싶은 대로 치기 때문에 서 참의의 수입이 없는 달이라고 쌀값이 밀리거나 나뭇값에 졸릴 형편은 아니다.

"세상은 먹구 살게는 마련야…."

서 참의가 흔히 하는 말이다. 칼을 차고 훈련원에 나서 병법을 익힐 때는, 한 번 호령만 하고 보면 산천이라도 물러설 것 같던, 그 기개와, 오늘의 자기, 한낱 가쾌(집주름, 현재의 공인중개사)로 복덕방 영감으로 기생, 갈보 따위가 사글셋방 한 칸을 얻어 달래도 녜녜 하고 따라나서야 하는, 만인의 심부름꾼인 것을 생각하면 서글픈 눈물이 아니 날 수도 없는 것이다. 워낙 술을 즐기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남몰래 이런 감회를 이기지 못해서 술집에 들어선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러나 호반(武人)들의 기개란 흔히 혈기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인지 몸에서 혈기가 줆을 따라 그런 감회를 일으킴조차 요즘은 적어지고 말았다. 하루는 집에서 점심을 먹다 듣노라니 무슨 장사치의 외는 소리인데 아무래도 귀에 익은 목청이다. 자세히 귀를 기울이니 점점 가까이 오는 소리인데 제법 귀에 익은 목청이다. 자세히 귀를 기울이니 점점 가까이 오는 소리인데 제법 무엇을 사라는 소리가 아니라 "유리병이나 간장통 팔거쏘!" (고물 장수의 외침)하는 소리이다. 그런데 그 목청이 보면 꼭 알 사람 같아, 일어서 마루 들창으로 내어다보니 이번에는 "가마니나 신문 잡지나 팔거쏘!" 하면서 가마니 두어 개를 지고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중노인이나 된 사나이가 지나가는데 아는 사람은 확실히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를 어디서 알았으며 성명이 무엇이며 애초에는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가 감감해지고 말았다.

"오오라! 그렇군…… 분명 ……"
하고 그는 한참만에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 유리병과 간장통을 외는 소리가 골목 안으로 사라져 갈 즈음에야 서 참위는 그가 누구인 것을 깨달아낸 것이다.

"동관(同官) 김 참의…… 허!"

나이는 자기보다 훨씬 연소하였으나 학식과 재기가 있는 데다 호령 소리가 좋아 상관에게 늘 칭찬을 받던 청년 무관이었다. 이십여 년 뒤에 들어도 갈 데 없이 그 목청이요 그 모습이었다. 전날의 그를 생각하고 오늘의 그를 보니 저으기 감개에 사무치어 밥숟가락을 멈추고 냉수만 거듭 마시었다. 그러나 전에 혈기 있을 때와 달리 그런 기분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중학교 졸업반인 둘째 아들이 학교에 갔다 들어서는 것을 보고, 또 싸전에서 쌀값 받으러 와 마누라가 선선히 시퍼런 지전을 내어 세는 것을 볼 때, 서 참의는 속으로,

'거저 살아야지 별 수 있나. 저렇게 개가죽을 쓰고 돌아다니는 친구도 있는데…… 에헴.'
하였을 뿐 아니라 그런 절박한 친구에다 대면 자기는 얼마나 훌륭한 지체냐 하는 자존심도 없지 않았다.

'지난 일 그까짓 생각할 건 뭐 있나. 사는 날까지 …… 허허.'

여생을 웃으며 살 작정이었다. 그래 그런지 워낙 좀 실없는 티가 있은 데다 요즘 와서는 누구에게나 농지거리가 늘어갔다. 그래 늘 눈이 달리고 뽀로통한 입으로는 말끝마다 '젠장' 소리만 나오는 안 초시와는 성미가 맞지 않았다.

"쫌보(몹시 좀스럽고 못난 짓을 하는 사람)야, 술 한잔 사주랴?"

 쫌보라는 말이 자기를 업수여기는 것 같아서 안 초시는 이내 발끈해가지고,

"네깟놈 술 더러워 안 먹는다."한다.

"화투패나 밤낮 떼면 너의 어멈이 살아온다덴?"
하고 서 참의가 발끝으로 화투장을 밀어 던지면 그만 얼굴이 새빨개져서 쌔근쌔근하다가 부채면 부채, 담뱃갑이면 담뱃갑, 자기의 것을 냉큼 집어 들고 안 올 듯이 새침해 나가 버리는 것이다.

"조게 계집이문 천생 남의 첩 감이야."
하고 서 참의는 껄껄 웃어 버리나 안 초시는 이렇게 돼서 올라가면 한 이틀씩 보이지 않았다. 한 번은 안 초시의 딸의 무용회 날 밤이었다. 안경화라고, 한동안 토월회에도 다니다가 대판에 가 있느니 동경에 가 있느니 하더니 오륙 년 뒤에 무용가노라 이름을 날리며 서울에 나타났다.

바로 제1회 공연날 밤이었다. 서 참의가 조르기도 했지만, 안 초시도 딸의 사진과 이야기가 신문마다 나는 바람에 어깨가 으쓱해서 공표(값을 치르지 않고 거저 얻은 입장권)를 얻을 수 있는 대로 얻어 가지고 서 참의뿐 아니라 여러 친구에게 돌라줬던 것이다.

"허! 저기 한가운데서 지금 한창 다릿짓하는 게 자네 딸인가?"

남은 다 멍멍히 앉았는데 서 참의가 해괴한 것을 보는 듯, 마땅치 않은 어조로 물었다.

"무용이란 건 문명국일수록 벗구 한다네그려."

약기는 한 안 초시는 미리 이런 대답으로 막았다.

"모르겠네 원 ……. 지금 총각 놈들은 모두 등신인가 봐 ……."

"왜?"
하고 이번에는 다른 친구가 탄하였다.

"우린 총각 시절에 저런 걸 보면 그냥 못 배기네."

"빌어먹을 녀석……. 나잇값을 못하구 개야 저건 개 ……."

벌써 안 초시는 분통이 발끈거려서 나오는 소리였다. 한 가지나 끝나고 불이 환하게 켜졌을 때다.

"도루 차라리 여배우 노릇을 댕기라구 그래라. 여배운 그래두 저렇게 넓적다린 내놓구 덤비지 않더라."(현대 무용에 대한 서 참의의 인식 수준을 짐작케 하는 말임)

"그 자식 오지랖 경치게 넓네. 네가 안방 건넌방이 몇 칸이요나 알았지 뭘 쥐뿔이나 안다구 그래? 보기 싫건 나가렴."
하고 안 초시는 화를 발근 내었다. 그러니까 서 참의도 안방 건넌방 말에 화가 나서 꽤 높은 소리로,

"넌 또 뭘 아니? 요 쫌보야."
하고 일어서 버리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안 초시는 거의 달포나 서 참의의 복덕방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 걸 박희완 영감이 가서 데리고 왔었다.

 

[중략]

 

일 년이 지났다.

모두 꿈이었다. 꿈이라도 아주 악한 꿈이었다. 삼천 원어치 땅을 사 놓고 날마다 신문을 들여다보며 수소문을 하여도 거기는 축항(항구를 구축함.)이 된단 말이 신문에도, 소문에도 나지 않았다. 용당포와 다사도에는 땅 값이 삼십 배가 올랐느니 오십 배가 올랐느니 하고 졸부들이 생겼다는 소문이 있어도 여기는 감감소식일 뿐 아니라 나중에, 역시, 이것도 박희완 영감을 통해서 알고 보니 그 관변 모씨에게 박희완 영감부터 속아 떨어진 것이었다. 축항 후보지로 측량까지 하기는 하엿으나 무슨 결점으로인지 중지되고 마는 바람에 너무 기민하게(눈치가 빠르고 동작이 날쌔게) 거기다 땅을 샀던, 그 모씨가 그 땅 처치에 곤란하여 꾸민 연극이었다.

돈을 쓸 때는 일 원짜리 한 장 만져도 못 봤지만 벼락은 초시에게 떨어졌다. 서너 끼씩 굶어도 밥 먹을 정신이 나지도 않았거니와 밥을 먹으러 들어갈 수도 없었다.

"재물이란 친자간의 의리도 배추밑 도리듯 하는 건가."(재물에 관련해서는 부녀지간이라도 소용없다는 이야기를 배추꼬랑이를 잘라 내는 것에 비유한 말이다.)

탄식할 뿐이었다. 밥보다는 술과 담배가 그리웠다. 물론 안경다리는 그저 못 고쳤다. 그러나 이제는 오십 전짜리는커녕 단 십 전짜리도 얻어 볼 길이 없었다.

추석 가까운 날씨는 해마다의 그때와 같이 맑았다. 하늘은 천리같이 트였는데, 조각구름들이 여기저기 널리었다. 어떤 구름은 깨끗이 바래 말린 옥양목처럼 흰빛이 눈이 부시다. 안 초시는 이번에도 자기의 때묻은 적삼 생각이 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매 끝을 불거나 떨지는 않았다.(이제는 자신에게 달라붙는 먼지나 때를 더 이상 털어내지 않는다는 뜻. 자신의 처지를 바꾸어 보려는 의지를 포기하는 심정이 나타나 있다.) 고요히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 더러운 소매로 닦았을 뿐이다.

 

여름이 극성스럽게 더웁더니 추위도 그럴 징조인지 예년보다 무서리(가을 들어 처음 내리는 묽은 서리)가 일찍 내렸다. 서 참의가 늘 지나다니는 식은관사(殖銀官舍, 식산은행(지금의 한국은행)의 사택)에들 울타리가 넘게 피었던 코스모스들이 끓는 물에 데쳐 낸 것처럼 시커멓게 무르녹고(흐무러지고, 죽고) 말았다.(활짝 피었던 코스모스들이 시드어서 시커멓게 되고 흐물거리듯이 짓물러진 상태를 보여 준 것이다. 안 초시의 죽음을 예견하는 불길한 분위기를 암시하기 위해 등장시킨 것이다.)

참의는 머리가 띵― 하였다. 요즘 와서 울기 잘하는 안 초시를 한번 위로해 주려, 엊저녁에는 데리고 나와 청요리집으로 추탕집(추어탕집)으로 새로 두 점을 치도록 돌아다닌 때문 같았다. 조반이라고 몇 술 뜨기는 했으나 해도 그냥 빽빽하다. 안 초시도 그럴 것이니까 해는 벌써 오정 때지만 끌고 나와 해장술이나 먹으려고 부지런히 내려와 보니, 웬일인지 복덕방이라고 쓴 베발이 아직 내 걸리지 않았다.

"이 사람 봐아…… 어느 땐 줄 알구 코만 고누……."

그러나 코고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미닫이를 밀어 젖힌 서 참의는 정신이 번쩍 났다. 안 초시의 입에는 피, 얼굴은 잿빛이다. 방 안은 움속(땅을 파고 위를 거적 따위로 덮어서 추위나 비바람을 막게 한 곳) 처럼 음습한 바람이 휭 ― 끼친다.

"아니……?"

참의는 우선 미닫이를 닫고 눈을 부비고 초시를 들여다보았다. 안 초시는 벌써 아니요, 안 초시의 시체일 뿐이었다. 방안을 둘러보니 무슨 약병 하나가 굴러져 있었다. 참의는 한참 만에야 눈물이 나왔다.

 "어쩌누 이걸……."

파출소로 갈까 하다 그래도 자식한테 먼저 알려야겠다 하고 말만 듣던 그 안경화 무용 연구소를 찾아가서 안경화를 데리고 왔다. 딸이 한참 울고 난 뒤이다.

"관청에 어서 알려야지?"

"아스세요."

하고 그 딸은 펄쩍 뛰었다.

"아스라니?"

"제 명예도 좀……."

하고 그는 애원하였다.

"안 될 말이지. 명옐 생각하는 사람이 애빌 저 모양으루 세상 떠나게 해?"

"……."

안경화는 엎디어 다시 울었다. 그러다가 나가려는 서 참의의 다리를 끌어안고 놓지 않았다. 그리고,

"절 살려 주세요."

소리를 몇 번이나 거듭하였다.

"그럼, 비밀은 내가 지킬 테니 나 하자는 대루 할까?"

"네."

서 참의는 다시 앉았다.

"부친 위해 보험 든 거 있지?"

"네, 간이 보험이야요."

"무슨 보험이든……, 얼마나 타누?"

"사백팔십 원요."

"부친 위해 들었으니 부친 위해 다 써야지?"

"그럼요."

"에헴, 그럼 …… 돌아간 이가 늘 속샤쓸(속셔츠를) 입구퍼 했어. 상등(높은 등급) 털샤쓰를 사다 입히구 그 위에 진견(누에고치에서 얻은 질 좋은 섬유)으로 수의(壽衣) 일습(옷, 그릇, 가구 따위의 한 벌) 구색 맞춰 짓게 허구 …… 선산이 있나, 묻힐 데가?"

"웬걸요, 없어요."

"그럼 공동묘지라도 특징지루 널찍하게 사구 …… 장례식을 장 ― 하게 해야 말이지 초라하게 해 버리면 내가 그저 안 있을 게야 알아들어?"

"네에."

하고 안경화는 그제야 핸드백을 열고 눈물 젖은 얼굴을 닦았다.

 

안 초시의 소위 영결식(永訣式)이 그 딸의 연구소 마당에서 열렸다.

서 참의와 박희완 영감은 술이 거나하게(술에 취한 정도가 기분이 좋을 만큼) 취해 갔다. 박희완 영감이 무얼 잡혀서 가져왔다는 부의(賻儀) 이 원을 서 참의가,

"장례비가 넉넉하니 자네 돈 그 계집애 줄 거 없네."

하고 우선 술집에 들러 거나하게 곱빼기들을 한 것이다. 영결식장에는 제법 반반한 조객들이 모여들었다. 예복을 차리고 온 사람도 두엇 있었다. 모두 고인을 알아 온 것이 아니요, 무용가 안경화를 보아 온 사람들 같았다. 그 중에는, 고인의 슬픔을 알아 우는 사람인지, 덩달아 기분으로 우는 사람인지 울음을 삼키노라고 끅끅하는 사람도 있었다. 안경화도 제법 눈이 젖어 가지고 신식 상복이라나 공단 같은 새까만 양복으로 관 앞에 나와 향불을 놓고 절하였다. 그 뒤를 따라 한 이십 명 관 앞에 와 꿉벅거렸다. 그리고 무어라고 지껄이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분향이 거의 끝난 듯하였을 때,

"에헴."

하고 얼굴이 시뻘건 서 참의도 나섰다. 향을 한 움큼이나 집어 놓아 연기가 시커멓게 올려 솟더니 불이 일어났다. 후― 후― 불어 불을 끄고, 수염을 한번 쓰다듬고 절을 했다. 그리고 다시,

"헴……."

하더니 조사(弔辭, 남의 상사에 조의를 표하는 말)를 하였다.

"나 서 참의일세. 알겠나? 흥…… 자네 참 호사(豪奢)야…… 호살세. 잘 죽었느니 자네 살았으문 이런 호살 해보겠나? 인전 안경다리 고칠 걱정두 없구 …… 아무턴지 ……."

하는데 박희완 영감이 들어서더니,

"이 사람 취했네그려."

하며 서 참의를 밀어냈다. 박희완 영감도 가슴이 답답하였다. 분향을 하고 무슨 소리를 한 마디 했으면 속이 후련히 트일 것 같아서 잠깐 멈칫하고 서 있어 보았으나,

"으흐윽……."

하고 울음이 먼저 터져 그만 나오고 말았다. 서 참의와 박희완 영감도 묘지까지 나갈 작정이었으나 거기 모인 사람들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아 도로 술집으로 내려오고 말았다.(신식으로 차려입고 문상을 오는 사람들과 이질감을 느끼고, 한편으로 자신들의 초라하고 무기력한 삶에 대해 서글픈 생각이 들어서 나온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