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소(1970)                                                  -이문구-

 

 

<중략>

황 씨로서 정말 뜻하지 않은 팔매가 또 한번 날아와 그의 뒤통수를 갈겨 버린 것이다. 결정타였다. 그건 자기네가 앉아서 손으로 일하고 있던 사이 세상은 기계로 기계를 만들며 일하고 있는 걸 모른 체한 결과였다.

캐시밀론의 물결이 쥐구멍 같은 벽촌에도 회오리쳐 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무엇이든 새로운 물건이 나왔을 때 그 물자의 효용에 현혹되는 촌사람들의 안목은 무서운 것이었다. 캐시밀론의 위력도 날로 그랬다. 어느덧 황 씨네 기계들도 거미줄을 쓰는 날이 잦아졌다. 젖먹이 어린애의 기저귓감으로밖엔 쓰임새가 없는 백소창(흰 소창, 소창은 이불 따위의 안감을 일컫는 말)이나 한 장도막(한 장날로부터 다음 장날까지의 동안)에 두서너 필 내는 정도의 어처구니없는 사태로 급전된 것이었다. 황 씨는 문을 닫지 않으려고 발버둥쳐 보기도 했지만 도리 없었다.

"쬐끔 늦었던 겨. 다 시절 돌아가는 걸 보아 가메 눈치로 허야는 것을."

황 씨는 비로소 유행이란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크게 밑진 것도 없고 번 것도 없이. 그러나 들인 시설비는 한 푼 못 건진 채 세상 물정에 어두웠음이나 한탄하며 조용히 문을 닫게 되었다.

정부 시책이라면서 고리채(비싼 이자로 얻은 빚)를 신고해야 하느니 못 하느니 하고 산동네 벌집 흔들리듯 할 때에도 황 씨는 모른 체하려 했었다. 심사숙고한 결론은 못 갚는 수가 있기도 하겠고 또 논 마지기나 올려 세워 가면서라도 갚을 땐 갚더라도, 인정으로나 선출이 얼굴을 보아서나 그럴 용기가 나지 않던 것이다. 그러다가 얼핏 쳐들린 생각은,

'세상 돌아가는 대로 시절에 맞춰 눈치껏 살아가야 한다.'
는 것과 선출이 당장 군복 벗고 나와 손을 내밀면 변명하기가 난처할 것 같아진 것이었다. 우선 신고라도 해 놓으면 숨 돌려가며 천천히 갚아 나갈 핑계는 될 성한 일이었다. 선출은 '교활하고' '꾀로 살려고' '약게 놀려한다'고 분개했지만 그건 아니었다는 배짱으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시대가 가르치는 대로, 좀 뒤처진 채 앙감질(한 발은 들고 한 발로만 뛰는 짓)로나마 뒤따라온 셈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어서, 자기의 삶을 의지와 노력으로 밀고 나가더라도 결국 우연에 말려들어 보람 없이 버리곤 해 온 경험에서 막판엔 그 어떤 일이라도 그 우연의 울을 뛰어넘어 설 수 없고, 있다더라도 어떤 일에건 장래의 결과를 미리 예측하지 않으리란 결심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체념, 각오, 고집 따위로 남들은 몇 갈래의 해석을 하고 있겠지만 몇 차례의 대거리(상대편에게 맞서서 대듦. 또는 그런 말이나 행동)를 벌인 끝에 선출이가 해결책이란 것을 제시했을 때 그가 별 트집 없이 받아들인 것도 타산에 대한 집착을 버린 때문이었다. 그 해결책이란 건 계약서로 이미 문서화됐고 또 각기 한 통씩 나누어 보관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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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인 정말 당장 장으로 몰아가기라도 할 듯이 코뚜레로 손을 가져갔다.

"왜 이려? 새끼 밴 소럴……."

황 씨가 막아서자 선출은 부앗김에 오금을 박아 주마고,

"아니 그러먼 새끼를 낳면 송아지가 아저씨 껏이라두 된단 말유?"

"?"

황 씨는 듣던 중 느닷없는 소리였지만 솔깃했다. 따라서 낳게 될 송아지의 소유권에 대해선 전혀 무심했음을 깨달았고 처음으로 관심을 사게 된 동기가 되어 준 말이기도 했다. 이어 송아지를 놓고 왈가왈부하다 보면 어미소를 잡아 두는 데에 혹 도움도 되지 않을까 하는 데까지 순간적인 발전을 보았다.

"허다 못 허는께 그것두 말이라구 허나?"

황 씨는 갑자기 배짱과 뚝심이 솟아 자신이 서는 것 같았다. 아무리 선의로 대하려도 안 먹혀들면 도리 없는 것이었다. 선출이도 단박 삿대질을 해댔다.

"그게 워째 그류? 에미 있구 새끼 있지. 더군다나 뱃속에 들어 한 몸인디 워째 이 집 물건이냔 말유?"

"계약서에두 아직 잉끼(잉크)가 시퍼렇게 살어 있지만 나넌 이 암소, 응 암소만 질러서 팔어 갚기루 되어 있어. 말을 허야 알아듣겠다먼, 거기에 새끼까장 자네 게라구 써 있지 않구, 또 이 소헌티 사고가 나먼 내가 책임지기루 되어 있단 말여, 그런 연고여, 왜?"

황 씨는 언성을 높여 떠들었다.

"허지만 소헌티 사구가 난 건 아니잖유?"

"소가 암창내(발정기 때 수컷을 유혹하기 위해 암컷의 몸에서 나는 냄새) 난 게 사고가 아니면 무에라나?"

"그럼 그건 그렇다구 허구, 그래서 책임을 졌단 말인감유?"

"암만, 암내난 짐승헌티 해웃값(기생이나 창녀와 관계를 가지고 난 후에 그 대가로 지불하는 돈) 들여 가며 접붙인 게 책음진 것이지."

"그러니께……."

이 정도나 자기 소견과 주장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이날까지 밥 먹은 걸 속편해했고 손바닥만 한 하늘을 믿고 삼대 묵은 초가를 지키며 살아왔더냐고 선출은 묻고 싶었다. 그리고 하루바삐 고향을 등지고 타관에, 가급적이면 서울 바닥으로 전출을 해야 성공하게 되며 그러자면 이 금전 관계가 얼른 해결돼야 한다는 사정도 덧붙이고 싶었다. 황 씨는 염치 불고하고 계속 지껄였다.

"그러니께 말여 일테면 자네는 감자를 쪄 먹다 감자 속에 벌러지가 들었으면 그 벌러지두 감자 파먹구 굵어졌으니께 감자나 매한가지라구 먹을 텐가, 먹겠어?"(암소를 감자에, 송아지를 벌레에 빗대어 표현하여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하나, 아전인수식 비유로 인해 해학성만 불러일으킴.)

선출이 늙어 가는 사람 말하는 것이 저렇게 흉물스러울 수가 없다고 여겨 비위 상해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고, 또 성질 같게 주먹으로 한 번 갈겼으면 시원할 속인데도,

"그 새끼는 그럼 말젖이래두 먹구 큰다담유? 다 내 소 골 빨어 먹구 크는 중이지, 보슈 가령 저 감나무는 내 집 것인디 열리는 족족 감은 남의 것이 된다구 해보슈. 울 안에 감나무 심을 필요가 있겄나, 그 쇠용웂는 소리 우연만침 했거들랑 고삐나 풀어 봅시다."(암소를 감나무에, 송아지를 감에 빗대어 표현하여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하는데, 아전인수식 비유로 인해 장면의 해학성을 발생시킴.)

황 씨는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하고,

"이 사람이 해장까라버텀 웨 이 야단이냔 말여 증 다퉈 볼려?"
했지만 최소한 송아지 한 마리는 차지할 수 있겠단 희망더러 언성을 높여 가도 안 되겠는데다 일단 져 주는 게 상책이겠어서,

"들어가 아침이나 먹세. 그러구 피차 조용히 생각해 보세."

이 말엔 선출이도 날뛰진 않았다. 그는 조반 후에 차주백이네 마을방으로 내려가 성모 같은 친구들의 조언도 듣고 말밑천도 보충해 둘 심산이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