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실린 우리말(4)

◆ 안 본 지

의존명사 '-지'는 어떤 일이 있었던 때로부터 지금까지의 동안을 나타낸다. 여기서 '어떤 일이 있었던 때'는 마지막으로 있었던 때이다. "서울에 가본 지 오래되었다."고 하면 서울에 마지막으로 가본 때로부터 오래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표현에 긍정형과 부정형이 혼동되어 쓰이고 있다. "서울에 안 가본 지 오래되었다."도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신문 안 본 지 오래됐습니다."라는 문장을 보자. '그런 신문 본 지'라고 해야 할 것을 '그런 신문 안 본 지'라고 하고 있다. 긍정형과 부정형이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그런 신문'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200일 전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런 신문 본 지 200일 됐습니다.'하면 정확한 표현이다. 이 말을 부정형으로 하여 '그런 신문 안 본 지 200일 됐습니다.'하면 왜 잘못된 표현일까? '안 본 지'라고 했기 때문에 안 본 마지막 날로부터 셈해야 하는데, 안 본 마지막 날은 어제다. 따라서 '안 본 지' 하루밖에 안 된다. '본 지' 오래된 것이지 '안 본 지' 오래된 것이 아니다.

*출처 : 한겨레신문(2009/09/25), 우재욱/시인

◆ 북녘말의 발음상 특징

탈북하여 새 삶을 꾸리고 있는 이른바 새터민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사선을 넘어 어렵게 자유를 찾은 사람들이므로 그들이 남한 사회에 빨리 적응하도록 우리가 도와주어야 한다. 탈북 새터민들의 언어에서 우리는 아래와 같은 발음상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첫째, 'ㅓ'가 'ㅗ'로 발음되는 경우가 많다.  걱정(→곡종), 건설(→곤솔), 떠나지(→또나지), 선생님(→손생님), 어떻게(→오또케), 어머니(→오모니), 정신(→종신)

둘째, 'ㅡ' 또는 'ㅗ'가 'ㅜ'로 발음되는 경향이 있다.  그게(→구게), 그러니(→구러니), 으로(→으루), 은혜(→운혜), 음식(→움식), 크면(→쿠면)

셋째, 발음이 약화되는 현상이 있다.  가공하고(→가공아고), 갔어요(→가서요), 개척할(→개처갈), 돌아왔을(→돌아와슬), 됐어(→돼서), 모질지(→모지지), 있어서(→이서서)

넷째, 'ㄴ' 첨가 현상이 있다.  강요(→강뇨), 경영(→경녕), 모양(→모냥), 운영(→운녕), 중요한(→중뇨한)

"선생님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머니의 걱정이 떠나지 않았습니다."는 (손생님한테 오또케 말해야 할지 오모니의 곡종이 또나지 않았습네다.)가 될 것이고, "일이 그렇게 됐어. 자식으로서 부모의 은혜를 망각하고 말았어."는 (일이 구러케 돼서. 자식으루서 부모의 운혜를 망각하고 말아서.)가 된다.

*출처 : 한겨레신문(2009/09/29), 전수태/고려대 전문교수

◆ 노털

늙은 남자가 속된 말로 '노털'이다. '노'는 '늙다(老)'는 뜻의 '노'이지마 '털'은 피부에 나는 '털'이 아니다. 국어 사전에는 '노털' 대신에 '노틀'이 올라 있다. '노틀'은 중국어 '頭(노인) 兒(접미사)'에서 왔다. 한글로 옮기면 '라오터우얼'이다. '터우얼'은 '틀'보다 '털'에 가깝다. 원음도 이러하지만 '노털'이라고 해야 통한다. 왜 '노틀'이 표준어가 됐는지 알 수 없다.

* 출처 : 서울신문

◆ 늑장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듯이 말도 변화를 거듭한다. <용비어천가>나 <두시언해> 등의 고전을 읽어 보면 몇 백 년 전의 우리말을 알아들을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단어의 기원과 유래를 연구하는 언어학 분야를 어원론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말 '기와(瓦)'는 15세기에는 '디새'였다. '디새'가 '기와'로까지 변화해 온 과정을 추적해 보면 복잡하기 짝이 없다.

"MB 정부 '정규직 전화' 늑장 …… 법 개정 눈치보다 해고 칼날",  신문기사 제목이다.

여기서 '늑장'은 일견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쉽게 연상되는 단어는 '늦다'인데, '늑'이라는 형태가 어떻게 생겨났을까. 아마도 쉽게 연상되는 '늦다'에서 답을 구하려니 자꾸 미로로 빠져드는 듯하다. 대부분의 사전은 '늦장'과 '늑장'을 동의어 또는 유의어로 설명하고 있지만, 어떤 사전은 '늑장'은 '늦장'이 변한 말이라고 했다가 개정판에서는 지웠고, 또 다른 사전은 '늑장'만 인정하고 '늦장'은 틀린 말 또는 방언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늑장'의 어원을 '느긋하다'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표준국어대사전은 '늑하다'를 '느긋하다'의 준말로 올려놓았다. '늑하다'와 연결해 보면 일단 '늑'의 정체는 잡힌다. 당장 할 일이 있는데, 시간도 그리 넉넉지 않은데 짐짓 여유를 부리면서 느긋한 척하는 데서 온 말이 아닐까.

* 출처 : 한겨레신문(2010/04/02), 우재욱/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