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실린 우리말(3)

◆ '가시버시'

가시버시는 요즘 널리 쓰지 않는 낱말인데, 누리집에는 이것을 두고 말들이 없지 않다. 우리 토박이말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토박이말 뜻을 몰라 일어나는 이야기들이 종종 있다. 그런데 누리집에서 오가는 말들이 국어사전 때문에 잘못으로 빠지는 듯하다. 국어사전이 낱말 뜻풀이를 잘못하면 그것은 대법원이 법률을 잘못 풀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로잡을 길이 없다. 그런데 국어사전은 가시버시를 부부라고도 하고, 부부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니 부부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니 해놓았다. 가시버시는 '부부도 아니고, 부부를 속되게' 이르거나 낮잡아 이르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가시버시는 보다시피 '가시 + 버시'다. '가시'는 각시니 요즘 말로 아내다. 그리고 '버시'는 벗에 임자 토씨 '-이'가 붙은 것이 아니고, 풀이 토씨 '-이다'에서 '-이'만 붙여 어찌꼴로 썼다. 뜻은 '-벗하여' 또는 '-벗으로' 도는 '-벗삼아'와 비슷하다. 그래서 가시버시는 '각시를 벗하여, 각시를 벗삼아, 각시를 벗으로' 이런 뜻의 낱말이다. '남편이 아내와 둘이서 정답게 부부끼리 오순도순' 이런 뜻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며 쓰는 말이다.

"아따, 오늘 무슨 바람이 불어서 가시버시 그렇게 차려 입고 나섰는가?" "장에 가면서도 꼭 그렇게 가시버시 해야 직성이 풀리는가?" 이처럼, 평소에 사이좋게 살아가는 부부가 함께 나타나면 추어 주느라고 부러움을 담아서 자주 쓰던 낱말이다.

* 출처 : 한겨레 신문(2006/09/05),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 '돕다'와 '거들다'

'돕다'와 '거들다' 같은 낱말도 요즘은 거의 뜻 가림을 하지 않고 뒤죽박죽으로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들여다보면 뒤죽박죽 쓰는 까닭을 알 만하다. '돕다'를 찾으면 '남이 하는 일이 잘 되도록 거들거나 힘을 보태다'고 했으니 '돕다'는 '거들다'와 같다는 소리다. '거드다'를 찾으면 '남이 하는 일을 함께 하면서 돕다'고 했으니 '거들다'는 '돕다'와 같다는 소리다. 이러니 사람들이 '돕다'와 '거들다'를 뒤죽박죽 헷갈려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들 두 낱말은 서로 비슷한 뜻을 지녀서 얼마쯤 겹쳐지는 구석이 있게 마련이지만 여러 가지 잣대에서 쓰임새와 뜻이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도 '돕다'는 사람에게 쓰는 말이고, '거들다'는 일에다 쓰는 낱말이다. 배고픔과 헐벗음에 허덕이는 사람을 돕고, 힘겨운 일에 짓눌려 괴로워하는 사람을 돕는다. 한편, 힘이 부쳐서 이겨내지 못하는 일, 너무 많고 벅차서 감당하지 못하는 일, 정한 시간에 마무리를 못해서 허덕이는 일을 거든다. 그러니까 사람을 돕고 일을 거든다고 하면 쓰임새가 옳은 것이지만, 일을 돕고 사람을 거든다고 하면 쓰임새가 틀리는 것이다.

'돕다'는 몸과 마음으로 주는 것이지만, '거들다'는 몸으로만 주는 것이다. 돕는 것은 지니고 가진 것을 모두 다해서 주는 것이고, 거드는 것은 몸에서 나오는 힘으로만 주는 것이다. 따라서 거들 수 있는 일은 무엇이나 도울 수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도울 수는 있어도 거들 수는 없는 일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어버이를 여의거나 사랑이 깨어져 슬픔에 빠진 사람을 도울 수는 있지만 거들 수는 없다. 몸에서 나오는 힘으로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으나 마음에서 나오는 위로의 말로써 어루만져 줄 수는 있기 때문이다.

'돕다'는 주고받는 것이지만, '거들다'는 주기만 하는 것이다. 돕는 것은 마음을 쓰든지 쓰지 않든지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서로에게 도움이 되게 마련이다. 도움을 받으면 받은 쪽에서 저절로 되돌려 갚으려는 마음이 생겨나 언젠가는 되돌려 갚아 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되돌려 갚을 적이면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속담의 가르침처럼 되돌아오는 갚음이 도와준 바를 뛰어넘어 세상을 아름답고 살기 좋도록 만든다. 하지만 거드는 만큼의 고마움을 값으로 치르는 수가 있으나 그것은 되돌려 갚아 주는 도움과는 속살이 다르다.

'돕다'는 주는 쪽에서 임자 노릇을 하지만, '거들다'는 받는 쪽에서 임자 노릇을 한다. 돕는 것은 받는 쪽에서 달라니까 주는 것이 아니라 주는 쪽에서 주려고 해서 주는 것이고, 거드는 것은 주는 쪽에서 주려고 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쪽에서 달라니까 주는 것이다. 길거리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에게 도움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지만 그럴 때의 도움도 주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주는 쪽에서 결정할 뿐, 받는 쪽에서는 어쩌지 못한다. 그래서 '돕다'는 언제나 어디서나 주고받을 수 있도록 열려 있는 것이지만, '거들다'는 지금 벌어진 일에만 갇혀서 주고 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 출처 : 작은책(1008년 4월호),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 '굼때다'

'말로만 굼때는 것보다는 실질적으로 도와 주는 것이 훨씬 낫다는 뜻'을 가진 북녘 속담이 있다. 그 속담은 '빈말이 랭수 한 그릇만 못하다'이다. 실속 없이 말로만 위로하는 것보다는 냉수 한 그릇 주는 것이 훨씬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겠다. 여기서 '말로만 굼때는 것'은 어떤 뜻일까? 다른 보기를 보자.

"그는 대체로 말이 적고 삥싯삥싯 웃음으로 굼때는 일이 많아서 그의 깊은 속을 헤아리기가 어렵다."(조선말대사전)

"우선 당장 급한 것을 막기 위하여 근본적으로 개선할 대책은 없이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어가면서 일을 굼때는 식으로  되는 대로 처리하는 것."(조선말대사전)

'굼때다'는 '불충분한 대로 이럭저럭 메우거나 치러 넘기다.', '(어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슬쩍 둘러맞추거나 대강치르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굼때다'와 함께 '굼때우다'도 쓰이는데, 그 뜻을 보면 '때우다'와 비슷하다. '말로만 굼때는 것'은 '말로만 때우는 것'이고, '웃음으로 굼때는 일'은 '웃음으로 때우는 일'이다.

그렇다면 '때다', '때우다' 앞에 결합된 '굼'은 무엇일까? 정확하지 않지만 '굼뜨다'의 '굼'이나 '굼벵이'의 '굼', '구물거리다'의 '구물', '구무럭거리다'의 '구무럭'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이들 말은 모두 '느린 것'과 관련이 있다. '굼때다'는 '대강대강 때우는 것'인데, 약간 비약이 있지만, '느릿느릿 때우는 것'과 관련을 지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한겨레신문(2008/03/24),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 외래어는 외국어가 아니다

지지직거리는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부연 흑백텔레비전에 눈길이 모이던 그때, 야구 중계를 도맡아 하던 아나운서가 있었다. '빳따(배트)', '스라이딩~(슬라이딩)', '스뚜~라익(스트라이크)'이라 우렁차게 외치던 목소리가 지금도 귓전에 맴도는 듯하다. '볼'을 '보울'이라 했던 그 아나운서의 발음이 고화질텔레비전(HDTV) 시대에 떠오른 건 미국 프로풋볼리그(NFL) 기사를 접해서이다.

'이번 수퍼볼에는 30개가 넘는 기업들이……'(ㅈ일보), '슈퍼보울이 오는 7일 오전……'(ㅅ일보), '결승전인 수퍼보울은 단일 경기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ㅈ일보),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전인 슈퍼볼(Super Bowl)과 관련된 숫자다'(한겨레). 지난 화요일에 펼쳐진 결승전 관련 기사에 나오는 경기 이름이 네 가지로 표기되었다. '슈퍼'와 '수퍼', '볼'과 '보울'을 제 나름대로 조합해서 쓴 결과이다. 외래어 표기 규정에 맞춰 적으면 '슈퍼'와 '볼'이 맞다. '볼(bowl)'은 서양 요리 따위에서 사용하는, 안이 깊은 식기를 가리키지만 '식기 안면처럼 우묵하게 생긴 경기장'(표준국어대사전)을 뜻하기도 한다. '큰 사발처럼 생긴 미식축구 경기장(또는 우승 트로피)'에서 유래한 경기 명칭은 '슈퍼볼'이다.

슈퍼는 'super-'의 발음 [suː-] 또는 [sjuː-] 가운데 널리 쓰인다고 판단되는 [sjuː-] 발음을 기준으로 하여 '슈-'로 적도록 한 것이고, 볼은 '중모음은 각 단모음의 음가를 살려서 적되, [ou]는 '오'로 적는다'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것이다.(영어 표기, 제8항) 이처럼 외래어 표기는 관련 규범을 바탕으로 현지 발음과 관용 등을 따져 정한다. 정해진 표기는 약속처럼 함께 지켜나가는 게 중요하다. '미국에 가보니 이렇게 발음하더라'며 제 주장을 내세우는 건 옳지 않다. 외래어는 외국인을 위한 게 아니라 한국어를 쓰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 한겨레신문(2012/02/10),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