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의 「재미나는 인생」을 읽고

                                   : '당황-웃음-황당-생각-피식-여운-고민'

1. 서론

제목이 당혹스러운가? 앞에 제시된 이 제목은 성석제의 <재미나는 인생>을 읽고 나서의 내 마음들의 변화 단계이다. 어떻게 보면 이 제목을 보고 당혹스러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이 작품을 추천하는 나는, 지금 쓰는 글조차 이렇게 당혹스럽게, 그러면서도 내면 가운데 있는 많은 뜻을 깊이 담아 써내고 싶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내 심장이 얼마나 요동했으랴. 출렁 출렁 이 짧은 소설 하나에 많은 감정들이 요동을 쳤으리. 안 봐도 뻔하다.

<재미나는 인생> 책 제목에 이끌려, 어떤 인생을 그리 재미있게 살고 있을까? 얼마나 재미 있는 인생을 보여주려나 하는 호기심에, 또 재밌는 것을 원체 좋아하는 나인지라 한동안 레포트에 많이 눌려 있었는데 "이 책아! 나를 웃게 만들어 주라!"하는 마음도 함께 작용하여 선택하고, 읽게 되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인 지금, 아직도 난 뭔가가 씁쓸하면서도 피식 웃음이 난다. 지금부터 나의 가슴을 철렁이게 한 이 소설, 많은 요동을 준 이 소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추천을 하는지 제시하고자 한다.

 

2-1. 작품 세계 속에 빠져든 이유

처음에 이 책의 시작에 당황했었다. '1-거짓말에 관하여'라는 제목 하에 이 책을 읽는 내가 거짓말쟁이 협회의 신입 회원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시작하는 부분도 당황스러웠지만, 여느 소설과는 달리 일방적 제시가 아니라 나와 대화하듯이 그렇게 연설을 시작하는데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치 내가 이 소설 속에 동화된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당황스럽지 않게 그저 흥미롭게만 여길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이 부분에 당황스러웠다는 것은 그동안 내가 본 소설들과는 차원이 달랐고 너무 비슷한 종류의 소설들, 그저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들이 담긴 내용들만 전달받는 소설들에 익숙해졌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하였따. 그런 면에서 조금 머쓱해지기도 했다. 좀 더 많은 소설들을 접하지 않았었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동안 소설의 종류를 너무 단정지어 한쪽으로만 파고든 내 자신을 발견하여서였는지 그래서 머쓱한 것 같았다. 하지만 당황스러움도 잠시, 이내 곧 흥미가 생기며 갑자기 이 소설에 기대가 되기 시작했고, 그래서였는지 읽는 내내 재밌었다. 거짓말에 대한 지나친 예찬, 거짓말을 다룰 때의 방법에 대해서도 너무도 자세히 알려주었다. 마치 무슨 비법을 전수받는 듯했다. 왠지 정말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은 마음 상태를 가지게 만들기도 했다. 정말 참여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이 거짓말 잘하는 비법에, 그리고 있지도 않은 거짓의 선인들의 거짓 철학에 푹 빠져 든 것이다. 말이 안 되는 말들로 꾸며가는 이 소설. 이 소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뇌물에 관하여' 말을 시작한다. 부패 경찰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부정 부패 현장의 모습들을 나타내며 그에 대한 조롱과 비판들을 나타내는데, 이 부분에서는 웃음보다 무거운 마음들을 많이 심겨주었다. 한동안 우리들의 TV라는 정보의 홍수 매체 속에서 이러한 일들을 많이 다루어서 그런 것인가. 무언가 숨이 막혀 오는 듯했다. 뇌물에 익숙해져 버린 민중의 지팡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들의 타락함들, 이것이 당연한 것 같은 사실들로 받아들여지는 현실, 뇌물이 뇌물을 낳는 사회, 그로 인해 뇌물이라는 함몰 구덩이 속에서 이루어져 가는 모습들이 현실과 다르지 않음에 한숨뿐이어싿. 이 소설에서 직접적으로 제시한 것이 아닌 풍자한 것인데도 그 실상이 너무도 잘 드러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다룬 '폭력에 관하여'를 다룬 이 부분에서는 황당했다. 계속 '황당'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그와 동시에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폭발했다. 정말 재미있었다. 과장의 극치, 허풍의 대왕. 이 세상 가운데에서 단 한번밖에 맞지 않은 행운아임을 밝히며 그 비법을 전수하며 일대기를 소개하는데, 아마 다른 어떤 이가 읽어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황당하면서도 피식 웃음이 나는 이러한 감정, 어느 누가 느끼지 않을까. 폭력을 한번 당하게 된 이후. 그 다음부터는 폭력에 맞지 않기 위해 토끼기 수법을 썼다고 했고 계속 토끼다 보니까 육상 선수가 되고 나아가 국가 대표 선수까지 된 것이다. 이것을 뭐라 설명할까. 어떻게 보면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웃자고 하는 소리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속에는 그만큼 폭력이 난무하다는 것을 숨겨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컷 웃고 나니 무언가 더욱 고민하게 만드는,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부분이면서도 가장 도전을 주는 부분이었다.

마지막 끝 단락을 읽고, 책 뒷장을 넘기면서 정말 황당했다. 너무도 빨리 끝나 버린 이 소설, 난 내가 몇 장을 연거푸 넘겼나 싶어 다시 확인해 보기도 했었다. 무언가 아쉬움을 남기는 듯하면서도 당황스러운, 그와 동시에 웃음과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조롱을 감춘 비밀들. 내가 여태 읽어온 소설 중 가장 당황스러우면서도 많은 생각을 안겨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 비밀들을 파헤쳐 가며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든 신기한 소설이었다. 무언가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면서도 아쉽고 허탈한, 이와 동시에 무언가 심오한 비밀을 남몰래 발견한 것 같은 상태라고 해야 할까나.

 

2-2.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이 소설을 ~

앞에서 내가 소개한 바와 같이 성석제 소설은, 이 짧은 분량에서 엄청난 사회의 일들을 담아내었다. 자칫하면 우스갯소리로 전락할 수 있는, 하지만 날카롭게 비판할 수 있는 여건들을 많이 남겨놓았다. 우리 조선 여인들의 아름다운 기품 속에 아무도 몰래 숨겨둔 그러면서도 예리한 많은 은장도들이 이곳 가운데 숨겨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의 부정과 비리 폭력 등의 모습들은 이 소설이 담은 모습과 동일하다. 아니 더 하면 더했지. 절로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모습들이 이곳에선 숨겨진 은장도처럼 하지만 예리하게 찔러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른바 잘 팔리는 대중소설과 흡사하다. 그래서 어찌 보면 상업용 소설로 초점이 맞추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대중 소설과는 달리 성석제의 <재미나는 인생>은 독자의 소외된 글 읽기에서 벗어나 몸을 움직이며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청자로 만든다.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며 마치 이 곳 가운데 함께 참여하고 이야기를 듣는 듯한, 친밀감 속에 있는 것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참여한 것이다. 그렇다. 나는 참여하였다.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 속에, 능청스러운 농담이면서도 진실한 거짓말인 까닭에 당황해 하면서도 배를 잡고 웃지 않을 수 없는 상황 가운데 나는 참여하였다. 순간순간 당황해 하기도 하면서도 말이다.

내가 이 소설을 가장 특별하게 본 것은 짧은 삽화가 불연속적인 연쇄를 이루고 있는 새로운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줄거리가 특별히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이 작품에 실린 이야기들에는 일관된 줄거리가 없다. 약간 길어진 농담이라고도 볼 수 있는, 분량이 짧은 소설들을 모은 이 소설은 이 세상을 들여다보면서 알게 되는 사회의 온갖 헛소리들을 냉소와 야유 가득한 풍자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작가 특유의 세상 읽기가 녹아들어 있다. 작가 특유의 방식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잡담처럼 쏟아내고 있다. 전통적인 소설의 형태인지도 의심스러운 이 작품을 작가는 소설이라고 주장한다. 아마 그가 소설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소설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저 재미나는 이야기로 읽고 넘겼을 수도. 하지만 이 작품은 소설이다. 그런 점에서 성석제의 작품은 기존의 소설이라는 관념에 도전하는, 새로운 형태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이것이다. 아마 내가 가장 끌리게 된 것이 이것이다. 이전 소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경향이다. 나에게 있어 소설은 단순히 이야기를 읽는 수단이었다. 물론 재밌기도 하고 많이 빠져들기도 했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하나의 허구의 이야기들을 알려주는, 일방적인 통로로 전해 받고 그 나머지는 우리가 그 받은 통로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다.'는 생각들이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나를 참여시켜 주었다. 또 마치 말로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서술하며, 말이 이어지는 과정을 매우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표현하였다. 인물의 대사나 서술자의 표현 방식에서의 차이를 거의 없앴다. 속담과 경구 등을 차용하면서 서술해 나가기도 하고, 약간의 과장된 말투로 상황을 기술하기도 하였다. 이 책은 거창하지 않다. 매우 쉽게 읽히며 이해하기도 쉽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아니 읽고 난 지금도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다. 소설을 묻는, 나와 만나는 이들에게 말했다. 신기한 소설을 접했다고, 이런 소설은 처음이라고.

 

3. 결론

위에 언급한 내용을 통해, 성석제의 <재미나는 인생>은 이전의 소설과는 다른 형태로 서술자가 직접 말하는 듯한 표현 방식을 가지면서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과 조롱을 숨겨둔 채 더욱 과장된 표현으로, 재미있게 웃음을 자아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많고 많은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다루며 비판과 조롱의 성격을 가지는 다른 소설과는 달리 쉽게 읽히며 우리에게 생각케 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도 해봤다. 현대는 '빨리 빨리'의 시대이다. 무엇이든 빨리되는 것을 추구하고 여유 있게 무엇을 하는 것조차 묵시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성석제 소설은 아주 짧은 분량이며 아주 좋지 않은 사회 현상의 문제인데도 아주 짧게, 어떻게 보면 가벼워 보일 수 있을 정도로 다루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현대의 시대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현대의 문제를 현대의 방식대로, 좀 더 짧은 분량 그 속에 많은 것들을 담아내며 잠시 앉아 단 10분의 책 읽을 여유도 없이 아니 그것조차 아까워하며 다른 것에 헤매이고 분주히 생활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 아닐까 한다.

현대 사회의 비판, 이와 동시에 이 비판거리를 담은 책조차 읽지 못할 많은 이들을 생각하며, 이들 현대인의 방식에 맞게 '빨리 빨리' 그 방식에 맞추어 이 책을  쓴 것은 아닐까 하는 개인적 생각을 조심스레 감히 해 본다. 그와 함께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