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일본어 추방과 우리 고유어 살리기

지난 주 최선생의「인간 교실」에서는 광복절 특집으로, 우리의 청소년들이 일제 강점 36년의 실상을 바로 알고, 오늘의 일본에 대한 가치관을 바르게 확립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필자는 일제 강점 36년 동안 일본이 저지른 한국 민족 말살 정책의 구체적 실상과 요즘 우리 청소년들에 대한 일본의 문화 침투 실태를 밝힘으로써, 오늘의 청소년들이 일본 문화를 비판적이고,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갖자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광복절이 며칠 지났습니다만, 우리의 생활 속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일본어를 일반 시민들도 널리 알고, 이러한 일본어를 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우리의 아름다운 고유어를 널리 사용하였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에서 ‘일본 바로 알기’에 대한 두 번째 글을 시작하려 합니다.

 

◆ 우리말에 대한 일본어의 깊숙한 간섭

일본어의 국어에 대한 간섭을 먼저 시대별로 살펴보면, 조선 시대에는 담배, 고구마, 다다미, 소철, 비파(과일), 밀감, 만두, 양갱, 선인장 등이 있고, 개화기 시대에는 특히 한자어에 많은데, 기차, 신문지, 박물관, 회사, 사범 학교, 철도, 의사당, 지구, 외교, 경찰관, 개화, 일요일, 대통령, 도서관, 증권, 수학, 화학, 국회, 전보, 경제, 병원, 은행, 정당, 사상 등이 있으며, 식민지 시대로 오면서 구루마, 히야까시, 덴뿌라 소바, 요비링, 조오리 등 일본어가 직접 차용되고 있습니다.

광복 이후에는 한일 국교 정상화(1965년)를 계기로 민주화, 과잉보호, 일조권, 집중호우, 잔업, 안내양, 준준결승, 방어율, 정보 사회화, 냉전, 압력단체, 성화 등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나 번역어들이 그대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쓰였으며, 특히 아프터 써비스, CM, 프리 섹스, 아베크, 가라오께 등은 영어를 일본에서 잘못 번역하여 사용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쓰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유형별 일본어 차용 실태를 살펴보면, 우선 고유 일본어가 있는데, 오뎅, 오봉, 가마니, 구두, 구루마, 고데, 노가대, 노깡, 사시미, 시다, 자부동, 다다미, 다라(이), 하꼬(방/짝), 마호(병), 무뎁뽀, 와리바시 등이 있고, 일본을 거쳐 온 중국어나 서양의 여러 나라 말에는 우동, 가방, 잉꼬, 장껜뽀, 단스, 라면(중국어), 카스테라, 담배, 빵(포르투갈어), 메리야스(스페인어), 고무, 뼁끼(네덜란드어), 샤쓰, 스빠나, 작끼, 타올, 도나스, 빠꾸, 빵꾸, 바께쓰, 빠클, 혹꾸, 남포, 와이샤쓰(영어), 쎄무, 쓰봉, 부라자, 낭만(불어), 코펠(독일어) 등이 있습니다.

이 밖에도 일본어를 거치는 동안 어형이 단축된 것들도 있는데, 아파트, 테레비, 테러, 도란스, 데모, 파마, 바리콘, 마이크, 미싱, 메모, 포르노(영어) 등이 있고, 여러 나라 언어가 혼합되어 들어온 말에는, 깡기리, 쎄라블, 식빵, 도꾸리 샤쓰, 돈까스, 야끼 만두, 전기 다마 등이 있습니다. 또 한자를 통한 간접 차용에는(괄호 속은 우리의 전통적 한자어임), 美人(一色), 約束(言約), 日曜日(空日) 등이 있으며, 얼핏 보면 한자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거의 대부분이 고유 일본어에 의한 복합어들인, 가출, 입구, 유모차, 매상, 매출, 초월, 낙엽, 익사, 모직, 소형, 동사, 선불, 품절, 인상, 수용, 견적, 견본, 행방, 호출, 호명, 조립, 인계 등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어의 차용에 있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의식에 대한 간섭입니다. 언제부턴가 한국인들은 4(四)라는 숫자를 ‘죽을 사(死)’라고 생각하여 매우 기피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데, 조선 시대에는 그러한 의식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세염의『해양록』(1636년)에 당시의 사정을 알려주는 삽화가 하나 나타나는데, 김세염이 대마도에서 왜인과 문서를 교환하다가 일본인이 4자를 불길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4자에 대한 기피 의식은 조선 시대에는 없었던 것인데, 개화기 이후의 어느 시기에 일본인들로부터 전해 받았으리라 생각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의 장기나 자랑할 만한 노래를 18번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일본어의 뜻이 옮겨진 것입니다. 18번이란 원래 ‘일본 가부끼(歌舞技)의 대본 18종’을 지칭하던 말로서, 처음에는 뛰어난 교오겐(狂言)을 뜻하다가 후에는 일반 장기(특기)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는데, 국어의 18번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따라서 18이란 숫자는 한국인의 전통과는 무관한 일본적 언어 의식의 간섭입니다.

이처럼 간단히 살펴보더라도 일본어는 우리의 생활 곳곳에 광범위하고 깊게 퍼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하루를 지내면서 일본어 한두 마디쯤 쓰지 않고 살아가는 날이 있을까 하는 정도에까지 와 있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의 의식 깊숙한 곳까지 일본어의 잔재가 남아 있다는 것이고, 이 지경에까지 가면 과연 우리들 속에 우리 것은 얼마나 있는가 하는 의문마저 듭니다.

물론 요즘은 세계화 시대이고, 이 세계화 시대의 경쟁을 이겨나가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에 필수적인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를 습득해야 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영어와 일본어에 대한 관심은 물론 직접 배우려는 사람들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언어학적으로도 “두 가지 언어가 문화적으로 대등한 관계에 놓여 있지 않아서, 한 언어가 다른 언어로부터 여러 가지 어휘를 차용하는 일은 반드시 나쁜 일만을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국어만으로 충족될 수 없는 여러 가지 표현을 외래어를 활용하여 이루어 낼 수 있고, 외래어의 유입으로 국어의 어휘가 더욱 풍부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어계 외래어는 일제 시대 당시 한국어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모어(母語)인 국어를 쓰지 못하게 한 상황에서 외국어인 일본어만을 쓰도록 강요당한 결과로 배우게 된 어휘들입니다. 우리가 같은 외래어라고 하더라도 하루바삐 일어계 외래어를 될 수 있는 대로 쓰지 않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일어계 어휘는 외래어로서가 아니라 외국어로서 너무나도 강하게 우리의 언어 생활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몇 일전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가와카미 선생님으로부터 일본내 외래어 사용 실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외래어나 외국어를 생활 속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선생님은 나의 질문에 대해서 약간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까지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하루 빨리 외국어로서의 일본어를 몰아내고, 우리의 언어를 순화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우리의 아름다운 고유어를 살리자.

그렇지만 우리의 실정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작가 김유정과 시인 김소월의 작품에 들어 있는 수백 개의 고유어가 국어사전에 많이 빠져있다고 합니다. 그들 시대인의 사고와 정감을 생생하게 표현해 주던 수백 개의 토속어가 사전에조차 남아 있지 않고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언어란 시대에 따라 생성, 소멸되는 것이므로 당연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고작 반세기 남짓한 사이에 우리의 아름다운 고유어가 사전에서조차 누락되었다면 다채롭던 우리 문화가 그만치 소멸되어 버렸고 단순화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이 좁은 나라에서 사투리의 차이로 의사소통이 불편하다면 상호 이해에 문제가 되겠지만, 호남 사람에게 호남 사투리로 말하면 정겹고 상호 이해가 깊어질 수 있고, 그 지방의 토착어나 고유어 속에는 그 지방 사람들이 살아 온 독특한 삶의 희로애락과 그 지방의 역사가 묻어 있으며, 그것이 어쩌면 우리의 삶을 지탱시켜 주는 디딤돌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의 사라져 가는 고유어, 어린 시절 그 정다운 곳에서 뛰어 놀면서 이름 불렀던 들꽃과 물고기의 이름, 산 속의 온갖 나무며 산짐승들, 그 얼마나 아름다운 향수와 추억 속으로 젖어 들게 하는 말들입니까. 그런데 그러한 고유어들이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져 가고, 사전에서조차 사라져 간다니 우리의 정신과 뿌리를 잃어가는 게 아닌가 싶어 슬퍼지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현대의 각박한 사회 속에서 이기화되어 가는 인간들의 모습이 옛날의 고향을 상실한 데에 기인한다는 뜻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우리를 그 순박한 아이들로 자라게 했던 그 고향과 거기서 마냥 쓰고 놀았던 정겨운 고유어들이 어쩌면 우리의 각박한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열쇠가 아닌가 생각해 보면서, 어린 시절 우리가 이야기했던 아름다운 고유어로 쓰인 아름다운 시를 한 편 읽어 보시면서, 그 때를 회상하신다면 잠시나마 여유로워지고, 편안해지리라 확신합니다.

아래의 시를 읽으시면서 좋은 시간 되십시오.

 

들쑥 향내는 바람에 일고

정 윤 천

누야는 막내를 업고 나는 새참 보퉁이 마을은 벌써 등 너

머서 끝이나 山入드는 탱자나무 길 고적한 울타리가엔 누군

가 흘려놓고 간 상여꽃…… 하얀…… 상여꽃……

어디선가 들쑥 향내는 바람에 일고

미영꽃 하얀 미영밭 속에 할매는 영락없는 한 송이 미영

꽃 엄니는 흙묻은 젖무덤 열어 엉거주춤 뒷태 돌아앉으면

우리 식구 그 산밭머리

어디선가 들쑥 향내는 바람에 일고

한 삼 년 미영 농사 벌어 이불 세 벌 짓고 나면 누야는 三

十里길 시집가는 길 꽃처럼 그 길 위에 흘려놓고 간 손수건

…… 하얀…… 손수건……

어디선가 들쑥 향내는 바람에 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