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출간된‘옥루몽’을 읽고서

*출처 : 한겨레신문(2006/06/02), 안대회/명지대 국문과 교수

여성에게 금지된 욕망 다 누리리라.

새로 출간된 <옥루몽>을 단숨에 읽었다. 19세기 전반기를 산 남영로가 쓴 소설을 김풍기 교수가 다섯 권으로 번역해 펴낸 덕분이다. 시인 김구용 선생이 1950년대 번역 출간한 것이 품절된 이후 이 책은 서점가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얼마 전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김구용 선생 번역본이 나와 사려고 덤볐다가 놓쳐 버려 아쉬움이 남았던 터다.

책을 구해 보기 어려운 것만 봐도 <옥루몽>은 비슷한 성격의 고전소설 <구운몽>과는 처지가 사뭇 다르다. <구운몽>은 지금껏 많은 종류의 책이 거듭 출간돼 널리 읽히는 반면, <옥루몽>은 독자의 관심밖에 놓여 있었다. 그 이름조차도 생소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흥미롭게 읽을 만한 소설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읽을 만한 고전을 새로 찾은 느낌이다.

<옥루몽>은 주인공 양창곡이 다섯 명이나 되는 처첩과 누리는 환상적이고 화려한 인생을 묘사한 장편소설이다. 천부의 재능을 타고난 양창곡은 과거에 장원급제해 조정의 고관이 되고, 남방과 북방의 전쟁에 대원수로 참여해 혁혁한 공훈을 세운다. 그 과정에서 다섯 명의 여성과 인연을 맺는다. 이렇게 양창곡이 중심이 되어 여성들이 인연을 맺는 구도를 놓고 볼 때, <구운몽>의 남성중심적 세계를 확장시킨 작품으로, 가부장제 사회의 한 집안에서 일어날 법한 일을 과장해 묘사했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다섯이나 되는 처첩을 당당하게 데리고 으스대며 살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그러므로 어디까지나 허구다. 그렇더라도 남성 위주의 세계를 묘사한 것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소설의 전개를 보면, 이 작품이야말로 여성의 사랑과 활약상을 그린 여성소설이라고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될 듯하다. 겉으로는 일부다처제를 옹호하는 소설이지만 실제로는 봉건적 사회의 약자인 여성이 어떻게 자신의 욕구와 존재를 당당하게 드러내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강남홍 · 벽성선 · 일지련 이 세 여성 주인공은 양창곡과의 사랑에서도, 남방과 북방의 전투에서도 주도적이고 적극적이다. 그 가운데 강남홍은 역동적으로 자기 운명을 개척해 사랑도 쟁취하고 부원수의 지위도 쟁취한다. 여성이라는, 기생이라는 겹겹의 장애와 박해를 넘어서 가정에서도 국가에서도 그녀는 난관을 극복하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지위를 획득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의 실제 주인공은 양창곡이 아니라 강남홍이다. 미모의 어린 여성이 장군복을 입고 전쟁을 주도하고 복잡한 가정의 문제를 해결한다. 지금 읽어도 아슬아슬한 느낌이 전해오는데, 백여 년 전의 독자가 느꼈을 통쾌함과 스릴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런 흥미를 주는 데는 세 여성이 모두 기생 신분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양반 출신으로 정실부인이 된 윤소저 · 황소저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강남홍은 자유연애를 성사키기고, 봉건사회의 완강한 틀을 헤집고 남성에게만 주어지는 장수와 고관의 지위를 차지하는 등 온갖 장면에서 활약한다. 남자가 아니라 여성이, 귀족 부인이 아니라 기생이, 장년의 어른이 아니라 10대 소년이 거대한 위험과 음모에 맞서서 싸우는 많은 장면은 긴장과 흥분을 느끼며  소설을 읽게 만든다. 현실과는 반대로 설정된 인물의 활약, 그것이 독자의 시선을 붙들고 흥미를 돋운다.

예전에 읽은 경험을 솔직하게 말하자면, 남녀의 만남이나 사건의 전개, 전투장면 등에서 수시로 만나게 되는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것이 읽는 흥미를 떨어뜨렸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런 요소가 이 소설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다시 읽으면서 그런 것들이 오히려 흥미를 더하고, 그것이 풍부한 상상의 세계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었다. 독서 태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들이 천상에서 내려와 비와 바람을 부르며, 분신을 보내 전투를 하는 등 갖은 도술을 펼치는 장면이 적지 않게 나온다. 여기에 사건을 암시하는 꿈과 여러 비상한 인물들, 도사와 정령들이 흔하게 등장하는 것도 흥미를 더하였다. 현실적인 사실, 합리적 사고와는 다르게 전개된다는 것이 오히려 이 소설의 장점일 것이다.

<옥루몽>이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시기에 이 소설은 빠른 속도감의 문체, 스펙터클한 장면 묘사, 환상적인 사건 전개로 독자의 흥미를 충분히 자아냈었다. 20세기 들어서서 서구 소설의 도래로 그러한 작품은 빛을 잃고 설 자리를 잃었었다. 소설을 창작하고 읽는 관점이 다양해진 현재에는 사정이 어떨까? <옥루몽>의 고유한 소설적 특징을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감상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판타지 소설이 성행하는 현재의 상황도 이 소설을 새롭게 평가하는 적기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을 <서유기>나 최근 소설이 <반지의 제왕> · <해리 포터>와 더불어 읽어본다면 그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판타지 소설로서 <옥루몽>이 지닌 특징은 등장 인물의 성격과 활동을 보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주인공인 양창곡이 장원급제한 나이가 16세요, 전장에 나가서는 대원수요 조정에 들어와서는 재상이 되었다가 연왕에 봉해져 은퇴한 나이가 26세다. 도전해야 할 난관과 시련을 10대에 거의 겪었고, 20대에는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욕망을 완벽하게 획득했다. 그 꿈에 동참한 다섯의 여성 또한 양창곡과 비슷한 나이다. 강남홍이 나탁과의 전쟁에서 부원수로 활약한 나이 역시 17세다. 주요한 등장인물이 10대와 20대로서 혈기 왕성한 청소년이 활약하는 문학이다. 나이가 젊은 주인공들은 감정의 분출이 폭발적이고 행동의 선이 굵으며 열혈 협객의 풍모를 드러낸다. 자기를 만나면 적도 바로 친구가 된다. 더구나 능력은 있으나 신분이 천한 여성들은 거침없이 행동한다. 소설 전체가 매우 역동적이다.

주인공들이 엮어가는 사랑도 그렇고 그들이 얻는 성공도 신화적이고 비현실적이다. 소설의 배경인 중국이나 조선 어디에서도 불가능한 현실로서 인간의 꿈속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소설의 첫 회에서 인간의 세계를 '망망한 괴로움의 바다에 욕망의 물결이 하늘에 닿도록 넘실거리고, 쓸쓸한 먼지 가득한 세상이 취한 듯 꿈꾸는 듯 몽롱하다.'라고 묘사했다. 인간의 세계는 그렇게 욕망의 세계다. 그런 세계에서 마음껏 활개치며 영웅이 되어 지상에서 허용된 최상의 욕망을 성취하고픈 것이 인간의 소망이다. <옥루몽>은 그런 소망을 주인공들에게 투사하고 있다.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았기에 소설이 아니고는 소망을 한번 펼쳐 보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기에 불가능한 꿈을 성취하는 소설의 전개는 현실적 의미를 지닌다. 일반 민중들에게 나가서는 장군이 되고 들어와서는 재상이 되는 꿈은 아예 꾸어서도 안 되는 금지된 것이다. 더구나 여자는 말할 나위 없다. 그런 금지된 꿈을 천한 기생 출신의 세 여성이 하나하나 성취하면서 현실로 만들어간다. 기생들은 걸핏하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진주가 진흙 속에 묻혀 있고 이름난 꽃이 측간 속으로 떨어져 있는 것은 옛사람들이 애석하여 탄식한 바입니다. 제가 일지련을 잠깐 보니 진주요, 이름난 꽃입니다.'(4권) 이렇게 신분 때문에, 기회를 얻지 못해 출세의 기회가 막힌 사람들에게 <옥루몽>은 그들의 꿈을 통쾌하게 꾸어준 소설로 받아들여졌을 법하다.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조설근이 쓴 청대의 중국 소설 <홍루몽>이 떠오른다. 대학을 다니던 20대에 그 소설에 빠져서 네 시간만 자면서 나흘 낮밤을 읽은 일이 있다. 읽고 나서는 임대옥의 잔영이 눈앞에 어른거려 오랫동안 그 분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했었다. <옥루몽>을 읽고 난 지금에는 임대옥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강남홍의 잔영이 깊게 남는다. 둘 다 매혹적인 여성이다. 두 소설은 백여 년의 차이가 나는 한중의 소설이고, 내용도 상당히 다르지만 함께 읽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