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염부주지'에 대해

◆ 줄거리

경주에 사는 박생은 유학으로 대성하겠다는 포부를 지니고 열심히 공부하였으나 과거에 실패하여 불쾌함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러나 뜻이 높 고 강직하고 인품이 훌륭하여 주위의 칭찬을 받았다. 그는 귀신 · 무당 · 불교 등의 이단에 빠지지 않으려고 유교 경전을 읽고, 세상의 이치는 하나뿐이라는 내용의 철학 논문인 <일리론(一理論)>을 쓰면서 자신의 뜻을 더욱 확고하게 다졌다. 어느 날 꿈에 박생은 저승사자에게 인도되어 염부주라는 별세계에 이르러 염왕(閻王)과 사상적인 담론을 벌였다. 유교 · 불교 · 미신 · 우주 · 정치 등 다방면에 걸친 문답을 통하여 염왕과 의견 일치에 이름으로써, 자신의 지식이 타당한 것임을 재확인하였다. 염왕은 박생의 참된 지식을 칭찬하고 그 능력을 인정하여 왕위를 물려주겠다며 선위문을 내려주고는 세상에 잠시 다녀오라고 하였다. 꿈을 깬 박생은 가사를 정리하고 지내다가 얼마 뒤 병이 들었다. 그는 의원과 무당을 불러 병을 고치지 않고 조용히 죽었다.

 

◆ 등장 인물

1. 박생 → 유학에만 뜻을 둔 낙방거사로, 순박하고 온후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의 박생은 당대의 지배적인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지켜나가는 인물이다. 몽중의 박생은 세계와 화해하고 염라왕의 후계자가 된다. 세속적인 종교인 불교와 무속에 부정적이며, 주역에 입각한 일리론을 지어 이단의 유혹을 뿌리치기도 한다.

2. 염라대왕 → 인간을 심판하는 염라국을 부정하고, 백성을 그릇 인도하는 왕의 횡포를 비판하는 인물이다. 박생의 지론에 동조하고 염라국의 국왕 자리를 박생에게 물려주는 점에서 우리의 통념과 거리가 멀다.

◆ 사상적 배경

1. 작자는 염라왕의 입을 통하여 유교를 정도로 보고 불교를 사도로 보고 있으면서도 '공자는 문물이 밝은 중화에서 낳아 군자가 따르기 쉽고, 석가는 간흉한 서역에서 낳아 그 법이 사하고 그 말이 황탄하다. 서역의 간흉한 소인을 다스리는 데는 없어서는 안될 도'라고 하여 불교의 필요성을 말하고, 유교나 불교가 모두 최종의 목적은 정도에 나아가는 데에 있다고 유불조화론을 펴고 있다.

2. 많은 비용을 들여 공불하고 설재하여 사자의 명복을 빌거나 속죄하는 세속적인 불교에 대하여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3. 염라왕의 말을 통해 유교적인 음양의 이론으로써 불교의 천당과 지옥을 부인하고 있다.

4. 귀신을 음양 이기의 조화로 정의하고 제사의 귀신과 조화의 귀신으로 구분하여 그 성격을 말하면서 귀신이 어떤 형체가 있어 함부로 인간의 화복을 가름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부질없이 귀신이 있다고 생각하여 미신을 믿고 행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5. 왕도와 패도의 다름을 말하면서 왕도를 고취하고 패도를 배격하고 있다. 이를 고금 제왕의 치란의 자취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 이해와 감상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통분하여 경주 금오산에 은거할 때 만든 작품으로, 조선전기에 김시습이 지은 한문소설로 목판본이 있고, 작자의 단편소설집 <금오신화>에 실려 있다. 주인공이 꿈속에서 겪은 일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되는 몽유구조의 소설로서, 작자의 철학 사상이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작품이다.

작품에 나타난 염부주(염라국)와 염왕은 작자가 자신의 사상이 타당한 것임을 입증해 보이기 위하여 설정한 가상적인 존재이다. 이것을 매개로 하여 그 타당성이 입증된 사상은 크게 나누어 세 가지이다.

첫째는 유교가 불교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유교 사상은 주인공의 기본 사상이자 작자의 기본 입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장과 함께 불교의 미신적 타락상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둘째는 세계에는 현실 세계만 존재할 뿐 천당 · 지옥 · 저승 같은 별세계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세상의 이치도 하나일 뿐이라는 세계관을 주장하고 있다. 즉, 미신적 · 신비주의적 세계관을 부정하고 현실적 · 합리주의적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는 폭력과 억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자에 대하여, 백성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경고하는 정치적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남염부주지>는 이 같은 사상의 타당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사상에 투철하고 유능한 인물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릇된 세상을 은연중 비판하고 있다. 작자의 깊은 사상을 집약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나 사상을 밀도 짙게 다룬 최초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작자는 이 작품에서 박생과 염라왕의 문답을 통해 자신이 지니고 있는 사상을 표출하였다. 첫째, 작자는 염라왕의 입을 통해 유교를 정도로 보고, 불교를 사도로 보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교의 필요성을 말하면서 유불조화론을 내세웠다. 그러나 세속적인 기복 불교에 대해서는 통렬하게 공박하고 있다. 두 번째는, 불교의 내세설에 대해서 염라왕은 유교적인 음양 이론에 의하여 불교의 천당과 지옥을 부인하고 있다.  세 번째로, 염라왕은 귀신을 음양이기의 조화로 보고 부질없이 귀신을 두려워하는 것을 미신이라 하여 경계하였다. 네 번째로 정치관에 대해서는 왕도와 패도의 다름을 말하며 왕도를 고취하고 패도를 배격하고는, 고금의 여러 왕들의 치란의 자취를 들어 말하고 있다.

작품에 나타난 이상의 유교관, 불교관, 정치관 등으로 작자는 전등신화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남염부주지>가 현존하는 금오신화 다섯 작품 중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품이 되는데, '생육신문집'에서는 이 작품을 '소설지제일야'라고 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