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시인의 작품들

나희덕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

17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현재 '시힘' 동인

시집으로 <뿌리에게>(1991),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1994),

<그곳이 멀지 않다>(1997), <어두워진다는 것>(2001)

 

<뿌리에게>를 사서 겉표지를 들추어 보았을 때 시인치고는(?) 예쁜, 당시 26세였을 나희덕 시인이,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까맣게 활짝 웃고 있었다. 왜 까맣게 웃고 있다고 느꼈을까? 나희덕 시인에 대해 전혀 몰랐던 나는 나희덕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몰랐었다. 이름이 남자 이름 같기도 하고 여자 이름 같기도 했다. 시집을 읽고 난 뒤 나는 꼭 겉표지의 사진이 아니더라도 나희덕 시인은 여자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그의 성별을 말해준 것 같다. 나희덕 시인은 26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처녀시집을 내었다. 첫 시집 <뿌리에게>를 읽고 이 시집이 그가 26세때 내놓은 것이라는 점에 대해 나는 적잖이 놀랐다. <뿌리에게>를 읽어보고 두 개의 시집을 건너 뛴 채 4시집 <어두워진다는 것>을 읽었다. 이후에 나는 중간의 두 시집을 보게 되겠지만 아직 읽지 못했기에 첫 시집 <뿌리에게>와 네 번째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물로 나는 '어떤 비유는 초를 치눈 부분이더라'거나 '썩 좋은 시는 드물다'라는 어떤 전문가의 입장에서 시의 장 · 단점을 파악하며 시를 들추지는 못하겠다. 얼토당토 않을지 모르는 지극히 주관적인 너무나 부족한 시선인 것은 당연하다.

<뿌리에게>를 읽어보면 그가 80년대 고등학교 교사생활을 하면서 직접 체험한 교육 현장에 대한 시들과 가족사에 대한 시들이 많다. 거의 모든 시인이 그렇듯이 자신의 일과 삶을 시로 끌어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길 아닌 곳에 이르러 그대는 몸을 눕혀 나의 길이 된

다 한 발 디뎌 서면 이미 길이 아니기도 한 신기루,

나는 멀리 달아나 박쥐들이 사는 광야로 바위 밑으로

그대가 날 시험하려는가 보리떡 한 덩이로 저 거친

광야를 푸른 보리밭으로 만들 수 있노라고, 그저 믿고

기다린다면 그 위로 풍성한 새떼를 놓으리라고

 

희망의  그물 던지며 기다리는데, 땀 흘려도 길은 자

꾸 희미해지고 수많은 햇살이 들어박힌 과녁처럼 그을

리고 상처난 사람들이 돌아온다, 그들의 고단한 눈썹

위로 어디 길이 보이나

 

길 없는 곳에 이르러 마침내 그대는 가시밭에 몸을

눕혀 그들의 길이 된다 보리떡 깨물며 부르는 노래 있

어 엎드려 길이 되는 사람들 속에 보리밭 푸르러 가고,

이제는 내가 길이 된다 광야에서 마을까지 닿아 있는

멀고도 가까운 길이

 

위 시는 연을 놓아두는 구성 자체가 재미있다. 된다, 자꾸, 그을리고, 있어 등의 시구를 놓아둔 자리가 내가 시를 읽으면서 한 번 더 읽게 된 요인이다. 나희덕 시인의 아버지, 어머니는 기독교인이라고 알고 있다. 이 시는 성경에서 예수의 여러 행적을 비유하여 종교적 영향을 받은 시인 것 같다. 수고하여 땀 흘리며 길을 가는데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이제는 내가 길이 되려 한다. 어떤 고행의 길을 의미하는 것인지, 교사로서의 갈등과 고뇌를 의미하는 것인지 잘 알 수는 없으나 성경을 이용한 재치와 독특한 연 배열에 자꾸 눈이 가 닿는 시였다.

 

그리운 잭슨

거리여, 우리에게 음악을 틀어줘요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애써 해석하고 암기할 필요도 없이

빠른 박자에 몸을 맡겨 그저 흔들고, 흔들

알 수 없는 외국어로 흥얼거려줘요

우리는 음악시간에 그리운 금강산을 배우지만

그리고 그 노래로 실기시험도 보지만

금강산이 어디에 붙은 산인지 알 게 뭐예요

라스베가스, 텍사스, 헐리우드, 샌프란시스코,

디스코장에 빛나는 이 도시들이 바로 우리 곁에 있

는데

우리는 그리운 잭슨을 부를 뿐이예요, 꿈에도

우리의 소원은 바다 저 너머에,

춤추면서 건너오는 마돈나의 물결을 보아요

꿈에도 소원은 토옹일,

코흘리개 시절 뜻도 없이 따라 부드런 노래 희미해져요

더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줘요

우리의 귀청이 땅에 떨어지고 두 눈 점점 희미해지면

우리의 춤은 더 빨라지고 더 견딜 수 없어지고

마침내 터지고 말 거예요,

그리운 잭슨의 심장 위에서.

 

그리운 잭슨이라는 시는 재미있게도 읽었고 슬프게도 읽은 시였다. 현대사회가 서양의 문물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려 하고 그것에 미친 듯이 열광하는 세태를 비웃는 것 같다. 위 시에서는 어떤 옛것을 잊어가고 새것을 수용하려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분단 현실을 슬퍼하며 그것을 잊어가는 사회를 슬퍼하는 것 같다. 알 수 없는 외국어로 무조건 흥얼거리며 북에 있는 그리운 금강산을 알 게 뭐냐는 듯 멋진 외국어로 장식된 외제들에 미쳐 버리는 현대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우리는 자극을 원한다. 더 큰 자극을 조금더, 조금더 / 더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줘요 우리의 귀청이 땅에 떨어지고 두 눈 점점 희미해지면 우리의 춤은 더 빨라지고 더 견딜 수 없어지고 마침내 터지고 말 거예요 / 의 부분에서는 내용은 다르지만 베르베르의 <뇌>에서 자극을 원하는, 자꾸 더 큰 자극을 원하는 핀처가 생각이 났다. 핀처는 끝내 그가 원하던 그 자극 때문에 죽고 마는데(물론 그 죽음은 그에게는 황홀한 경지의 죽음이었다.) 위 시에서도 잭슨의 심장 위에서 마침내 터지고 말 거라고 말한다. 과제를 주고 있는 것은 통일이라는 것인데 시에서는 금강산이나 통일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것도 그리운 금강산이라거나 토옹일이라고 해서 어떤 강조의 느낌을 받았다. 서양 혹은 외제의 상징성인 잭슨에 미쳐 있을 때 통일은 그만큼 멀어져가고 금강산도 잊혀져 간다. 그리운 금강산은 그리운 잭슨으로 변했다. 어릴 때 불렀던 금강산 노래, 통일에 대한 노래들이 저만치 멀어져 가고 있다. 이제 우리의 소원은,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그리운 잭슨인가?

 

공책 검사

그때는 물자 절약이 한창이었지

앞표지의 거무죽죽한 꼭두부터 뒷표지의 끝에 이르

기까지

위아래 공백에 금을 긋고 세로로도 반을 나누어

빽빽하게 우리는 70년대를 메꾸어나갔다.

 

무엇을 썼느냐 하는 것보다는

한치의 여백도 없이 얼마나 아껴 썼느냐 하는 것이

우리가 받았던 공책 검사였다.

 

잘 부러지는 연필에 몇 번씩 침을 발라 쓰면서도

우리의 땅이 연필심처럼 부러져 가는 것은 몰랐었다.

자꾸만 찢어지는 공책을 달래어 숙제하면서도

그 순간 누군가 찢겨지고 있는 현실은 몰랐었다.

그저 빽빽하게 성실하게 메꾸어가는 것뿐이었다.

이제 80년대를 다 보내고 난 어느날 오후

아이들의 공책 검사를 한다.

혹시 다른 소리가 적혀 있지나 않나 검열당하는 시

대에

무언가 또렷한 목소리를 지낸 공책 하나 찾으려고

뒤적거린다.

 

희고 매끄러운 여백 위로는

설명을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베껴놓은 우등생의

공책과

틀린 것조차 그대로 베껴쓴 들러리 공책들.

 

그 위에 빨간 별표 파란 별표 수없이 따 내리고

새까맣게 줄을 긋고 외워야만 대학을 가는 이 시대에

퐁요에 길들여진 90년대의 첫장을 넘기면서

가장 곤궁한 시절, 내 손이 자꾸만 떨려온다.

 

공책 검사는 시인이 학생 시절에 받기도 했고, 당시 선생일 때 학생들의 공책 검사를 하기도 했던 일이다. 물자절약이 한창이었던 70년대 공책의 앞표지부터 뒷표지까지 빽빽하게 써내리던 공책. 그리고 선생님께 받았던 공책 검사. 앞뒤로 빽빽하게 메꾸어가면서도 찢어지는 공책 위에 그대로 글씨를 쓰면서도 당시 사회적 모순은 알지 못했다는 화자. 누군가 찢겨져 나가고 우리의 땅이 부러져 가는 것을 몰랐다는 것에 대한 반성이 녹아 있는 듯하다. 이제 시인이 선생이 되어 아이들의  공책검사를 한다. 70년대와는 달리 거무죽죽한 공책이 아닌, 희고 매끄러운 공책이 되어 시인 앞에 얼굴을 들이댄 공책. 우등생의 공책도 있고 그렇지 않은 학생의 공책도 있다. 그 공책들을 들여다보며 이 시대의 교육 현실에 대한 분노를 내비치며 곤궁했던 70년대를 떠올린다. 2000년을 맞은 지금은 어떠한지, 90년대의 교육현실과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서약서 1

예, 예, 쓰겠습니다

도장도 찍어 드리지요

강요라니요, 처처언만에요

본인은 학교 당국이 행하는 인사 규정을

…… 저언적으로 따르겠습니다

예, 예, 받아쓰겠습니다요

나의 무릎은 접힌 지 이미 오래,

닳고 닳은 이 미소를 받아주십시오

붉은 인주 자국 가슴에 누르며

서약하고 또 서약하니다

아, 아, 그러나 이것이 법이 될까 두렵습니다

 

<뿌리에게>에서는 이런 시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시인이 선생이었던 만큼 당시의 교육 현실에 대한 모순이나 분노 같은 감정이 담긴 시들이 많다. 위 시는 학교 당국이 행하는 인사 규정을 전적으로 따르겠다며 도장을 찍고 서약을 한다는 내용인데 어떤 부당한 규정을 따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 '무릎은 접힌 지 이미 오래', 당시 젊은 선생은 권력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낮은 존재였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조금 빌리자면 첫 시집 <뿌리에게>에서는 전교조 탈퇴 서약서를 둘러싸고 벌이던 갈등과 고뇌를 시로 육화시키는 데 주력했다 한다. 다음 시 서약서 2에서는 '그러나, 그건 서약이 아니었어요. 굴복이었어요'라며 시인의 죄의식이 더욱 드러난다. 그밖의 구절에서도 서약서에 도장을 찍은 자신의 죄의식과 분노가 많이 드러난다. 종결부에서는 '내 안에 자라는 이 푸른 것들이 우거지는 그날까지 기둥만은 뽑히지 않겠노라'며 내 마음만은 변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고 있다.

 

학교로 돌아오려는 제자에게

오랜만에 네 편지를 뜯는다, 한번도

너의 얼굴을 잊은 일은 없었지만은,

 

교실문을 여닫을 때마다

바람이 닫고 가는 문 뒤에 네가 서 있었다.

선생님, 저예요, 제가 왔어요.

저도 학교에 다시 다니고 싶어요.

또렷한 네 음성에 놀라

떨리는 손으로 수업을 시작하곤 했지.

 

한 달 간의 가출로

자퇴서를 쓰고 돌아섰던 너,

노동자들과 함께 보내던 날들이 그립다던

너에게 이제 편지를 쓴다.

 

너는 그릇에 넘치는 물,

화분 위로 끓어오르는 뿌리 굵은 나무,

 

그리하여 팍팍한 땅에 심겨지고자 하는 나무,

그러나 네가 돌아오려는 이곳은

넓지도 기름지지도 않은 땅이란다.

 

단 한 번도 너의 등을 떠나보낸 적은 없었지만

저 넓은 들판과 거친 물결 속으로

어느새 너의 떠가는 모습이 보인다.

바람 한 점 없는 이 교실에서는.

 

이 시 역시 고등학교 선생으로서 시인이 한 달 동안 노동자와 함께 보내고 온 제자에게 쓴 글이다. 이 시에서는 역시 학교로 돌아오려는 제자에게 보내는 따뜻한 마음과 마음 한 켠의 걱정스러움이 여교사로서의 감정으로 나타난다. 여교사는 학생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너는 그릇에 넘치는 물, / 화분 위로 끓어오르는 뿌리 굵은 나무'라고 말하고 있다. '이 팍팍한 세상에 심겨지고자 하는 나무, 그러나 네가 돌아오려는 이곳은 넓지도 기름지지도 않은 땅'이라 걱정스레 건네는 교사의 마음. 한 달 동안 가출했다는 제자가 노동자들과 함께 보냈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이문열의 단편 「달아난 악령」이 생각났다. 어떤 지하의 집단에 빠져 돌아오지 않는 딸을 걱정하며 딸을 꾀어내 딸아이의 사상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혼을 빼놓은 담임교사를 증오하며 미친 듯이 그의 뒤를 쫓는 아버지가 떠올랐다. 제자는 노동자들과 함께 보냈던 날들이 그립다고 했다. 한 달 동안 노동자들에게서 무엇을 배웠고 어떤 사상을 가지게 되었을까? 제자의 뒤에서 '넓은 들판과 거친 물결 속으로 떠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교사의 모성적인 아름다움을 느꼈다.

 

햄 한 덩어리

햄 한 덩어리 집어들었다.

단지 국산보다 싸다는 이유로

나도 모르게,

Made in U.S.A

장바구니 속에 넣고

몇 걸음 걷다가는 뒤돌아본다.

내 손에 들려진 이 햄 한 덩어리가

누군가의 어깨를 내리치는 돌멩이는 아닐까

잠시 망설이게 된다.

나 역시 무엇이 다른가.

정부의 수입 개방 기사를 보며 열을 올리던

내가, 물가가 오르고

장바구니를 졸라매야 하는 까닭에

이 돌멩이를 집어들게 되다니,

슈퍼마켓 한복판에 쌓여 있는

미국산 햄과 소시지,

육이오 때는 무상 원조로 굴러다녔고

이제는 국산품보다 싼 가격에

날개돋친 듯 팔려나가는 저 돌멩이,

영원히 부패하지도 않을 것처럼

깡통 속에 완전 포장된

저 고깃덩이가 과연 우리를 살찌웠는가

생각하면서 발길을 돌린다.

 

미국산 햄은 우리를 살찌웠다. 화자가 말하는 의미의 살을 찌운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해석인 살을 찌우게 했다. 피둥피둥 살이 찐 우리가 다시 국산품보다 싼 가격에 팔리고 있는 고깃덩이를 집어들고 있다. 그것이 누군가의 어깨를 내리치는 돌멩이가 아닐까 생각할 수 있는 화자를 보며 감탄했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는 미국산 쌀을 사지 말라고 부모님에게 보내는 협조문을 받은 적이 있다.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미국산 쌀을 사면 우리 농민들이 살 수가 없대. 비싸더라도 우리 쌀을 사야 한 대."하고 말하며 엄마의 다짐을 받던 나는 지금 아무 생각없이 국산보다 싼 것이라면 무턱대고 집어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았다. 시인은 햄을 돌멩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씹히지도 않고 소화되지도 않을 돌멩이, 먹지 못할 돌멩이가 되어 그것들이 우리를 언젠가는 (지금도) 위협하고 있다.

 

위 시들 이외에도 학교에서 일어난 갈등과 가족사의 이야기가 시로 형상화되고 있는데, 「소원」이라는 시에서는 딸이 법대에 들어가서 출세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와 그것을 지키지 못하고 글을 쓰고 있는 딸의 이야기가, 「우리 어머니」에서는 보육원에서 아이들 모두의 어머니가 되어 사신 삶을 보여준다. 그 뒤의 시들을 보아도 부모가 없는 아이들 틈에서 자라난 시인의 유년의 삶이 드러난다. <뿌리에게>는 전체적으로 여교사로서의, 딸로서의, 어머니로서의 감정이 드러난다. 막 갈구어진 연한 흙인 시인은 이후에도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어두워진다는 것

 

5시 44분의 방이

5시 45분의 방에게

누워 있는 나를 넘겨주는 것

슬픈 집 한 채를 들여다보듯

몸을 비추던 햇살이

불현듯 그 온기를 거두어가는 것

멀리서 수원은사시나무 한 그루가 쓰러지고

나무 껍질이 시들기 시작하는 것

시든 손등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

5시 45분에서 기억은 멈추어 있고

어둠은 더 깊어지지 않고

아무도 쓰러진 나무를 거두어가지 않는 것

 

그토록 오래 서 있었던 뼈와 살

비로소 아프기 시작하고

가만, 가만, 가만히

금이 간 갈비뼈를 혼자 쓰다듬는 저녁

 

시의 제목부터 밝지는 않다. 누워 있는, 슬픈 집, 시들다, 쓰러진 나무 등의 단어에서도 정말 어두워진다는 것 다운 시임을 알 수 있다.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고 가만 가만히 금이 간 갈비뼈를 혼자 쓰다듬는 저녁. 어두워진다는 것이 무엇일까? 화자가 말하는 것처럼 5시 44분의 방이 45분의 방에게 나를 넘겨주는 것인가? 이 표현을 보고 시계를 보았다. 몇 시 몇 분의 방이 몇 시 몇 분의 방에게 나를 넘겨준다. 그런 생각을 해보았고 독특한 표현이 즐거웠다. 화자는 많은 시간대를 두고도 굳이 5시 44분에서 5시 45분의 방으로 넘겨준다고 했다. 이것이 나이 들어감을 의미하는 것 같다. 시인은 현재 38세로 알고 있는데 당시 시를 지었을 때가 36세이다. 그 중반의 나이, 이제 어둠으로 흘러가는 나이를 시간대로 표현한 것 같다. 그리고 어두워져 가는 시간, 그 시간대를 말하는 것 같다. 전문가들은 이 시를 화자가 청각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마 시간대를 짚었기 때문인 것 같다. 시를 읽고 나에게 질문을 해 보았다. 나는 지금 몇 시를 향해 가고 있는가?

 

이따금 봄이 찾아와

 

내 말이 네게로 흐르지 못한 지 오래 되었다.

 

말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공중에서 얼어붙는다.

허공에 닿자 굳어 버리는 거미줄처럼

 

침묵의 소문만이 무성할 뿐

말의 얼음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따금 봄이 찾아와

새로 햇빛을 받은 말들이

따뜻한 물 속에 녹기 시작한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아지랑이처럼

물 오른 말이 다른 말을 부르고 있다.

 

부디,

이 소란스러움을 용서하시라.

 

이 시에서는 봄의 생기가 느껴진다. 다만 '이따금'이라고 표현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처음에 언어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데, '내 말이 네게로 흐르지 못한' 다는 것은 의사소통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 같다. '말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공중에서 얼어붙'어 네게로 전달되지 못한다. 그러나 '봄이 찾아와 햇빛을 받은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하고, 물 오른 말이 다른 말을 부르고 있다.' 얼음 조각에서 따뜻한 물이 된 것을 보면 봄이 찾아 온 것이다. 소란스럽게. 그 소란스러움을 누구든 용서 못할까.

 

허공 한 줌

이런 얘기를 들었어. 엄마가 깜박 잠이 든 사이 아기는 어떻게 올라갔는지 난간 위에서 놀고 있었대. 난간 밖은 허공이었지. 잠에서 깨어난 엄마는 난간의 아기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름을 부르려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 아가,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엄마는 숨을 죽이며 아기에게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어. 그러고는 온몸의 힘을 보아 아기를  끌어안았어. 그런데 아기를 향해 내뻗은 두 손에 잡힌 것은 허공 한줌뿐이었지. 순간 엄마는 숨이 그만 멎어 버렸어. 다행히도 아기는 난간 이쪽으로 굴러 떨어졌지. 아기가 울자 죽은 엄마는 꿈에서 깬 듯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어.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어.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아랫목에 뉘었어. 아기를 토닥거리면서 곁에 누운 엄마는 그 후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지. 죽은 엄마는 그제서야 마음놓고 죽을 수 있었던 거야.

이건 그냥 만들어낸 얘기가 아닐지 몰라.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나는 비어 있는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어. 텅 비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꽉 차 있곤 했지. 수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그날 밤 참으로 많은 걸 놓아주었어. 허공 한 줌까지도 허공에 돌려주려는 듯 말야.

 

위 시는 산문시다. 시라기보다는 일기처럼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산문시는 막연히 어렵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이 시를 보면 그냥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산문시가 아닌가 한다. 물론 그 풀어나가는 방식이 시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확연히 달라서 시같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시 속의 화자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아닐까 한다. 화자가 들은 이야기 속에서도 엄마이고 그 이야기를 들은 화자도 엄마인 것 같다. 이 시는 시인이 자녀를 가진 엄마이기 때문에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라고 생각된다. 나도 이 시를 읽으면서 안타까운 감정을 느꼈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보는 것과는 틀릴 것이다. '죽은 엄마는 아기를 살리고 마음놓고 죽을 수 있었'다. 모든 엄마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화자는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비어 있는 손바닥을 내려다 보았는데 비어 있을 때에도 꽉 차 있는 그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축음기의 역사

 

저 낡은 소리는

어떤 상처를 읽은 것이다.

 

바늘은

소리가 남긴 기억을

그 만져지지 않는 길을

천천히 되밟으며 지나간다.

 

아무리 여러 번 읽어도

상처의 길은

더 깊게 패이거나 덧나지 않는다

닳아가는 것은

그것을 읽는 바늘끝일 뿐

 

저 소리로는

저 소리만으로는

스스로 暗電될 수 없어

 

소리를 기록할 수 있다고 믿게 된 때부터

상처를 반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 때부터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소리가 태어난 침묵 속으로

 

축음기는 소리를 녹음하고 바늘을 사용하여 소리를 재생시켜 주는 장치이다. 오래된 축음기에서 나오는 낡은 소리를 화자는 삶의 상처라고 말하고 있다. 소리가 남긴 기억 또한 상처의 길이다. 소리가 태어난 곳이 침묵이라고 말하고 있다. 소리가 침묵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모순이다. 유치환의 '깃발'에서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대목이 생각났다. 화자는 '소리가 태어난 침묵 속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그 침묵 속으로, 상처받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고 그곳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빗방울, 빗방울

 

버스가 달리는 동안 비는

사선이다

세상에 대한 어긋남을

이토록 경쾌하는 보여주는 유리창

 

어긋남이 멈추는 순간부터 비는

수직으로 흘러내린다

사선을 삼키면서

굵어지고 무거워지는 빗물

흘러내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더 이상 흘러갈 곳이 없으면

빗물은 창틀에 고여 출렁거린다

출렁거리는 수평선

가끔은 엎질러지기도 하면서

 

빗물, 다시 사선이다

어둠이 그걸 받아 삼킨다

순간 사선 위에 깃드는

그 바람, 그 빛, 그 가벼움, 그 망설임

 

뛰어내리는 것들의 비애가 사선을 만든다.

 

'버스가 달리는 동안 비는 / 사선이다', '굵어지고 무거워지는 빗물은 흐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화자의 사물에 대한 관찰력과 재치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렇다. 버스가 달리는 동안 비는 정말 사선인 것이다. '세상에 대한 어긋남' 세상의 부조리를 비판하면서 세상은 직선이 아니라 사선이라고 말하고 있다. 출렁거리는 수평선은 이내 엎질러지고 빗물, 다시 사선이다. 그리고 그것을 어둠이 받아 심킨다. '뛰어내리는 것들'이 단지 빗방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한탄을 말하고 다시 한번 빗방울은 수직이 아니라 사선임을 말하고 있다.

 

<어두워진다는 것>은 <뿌리에게>보다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뿌리에게>가 쉽다는 것은 전연 아니다.) 이번 시집에서도 역시 모성의 본능과  섬세함을 느낄 수 있었고 사물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도 볼 수 있었다. 시인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읽고 싶었다.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거나 어려운 시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 걸리더라도 시인의 여러 겹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