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성 시인의 작품들

아버님 말씀

학생들은 돌을 던지고

무장경찰은 최루탄을 쏘아댜고

옥신각신 밀리다가 관악에서도

안암동에서도 신촌에서도 광주에서도

수백 학생들이 연행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피 묻은 작업복으로 밤늦게

술취해 돌아온 너를 보고 애비는

말 못하고 문간에 서서 눈시울만 뜨겁구나

반갑고 서럽구나

평생을 발붙이고 살아온 터전에서

아들이 너를 보고 편하게 살라 하면

도둑놈이 되라는 말이 되고

너더러 정직하게 살라 하면

애비같이 구차하게 살라는 말이 되는

이 땅의 논리가 무서워서

애비는 입을 다물었다마는

이렇다 하게 사는 애비 친구들도

평생을 살 붙이고 살아온 늙은 네 에미까지도

이젠 이 애비의 무능한 경제를

대 놓고 비웃을 줄 알고 더 이상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구나

그렇다 아들아, 실패한 애비로서

다 륵어 여기저기 공사판을 기웃대며

이 땅의 가난한 백성으로서

그래도 나는 할 말은 해야겠다

아들아, 행여 가난에 주눅들지 말고

미운 놈 미워할 줄 알고

부디 네 불행을 운명으로 알지 마라

가난하고 떳떳하게 사는 이웃과

네가 언제나 한몸임을 잊지 말고

그들이 네 힘임을 잊지 말고

그들이 네 나라임을 잊지 말아라

아직도 돌을 들고

피 흘리는 내 아들아

 

시라기보다는 일기장 속의 한 페이지와 같은 느낌이어서 그만큼 더욱 진솔하고 가슴 깊이 느껴졌다.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가슴이 저리는 깊이 있는 사랑임이 마음에 와 닿았다. '너를 보고 편하게 살라 하면 / 도둑놈이 되라는 말이 되고 / 너더러 정직하게 살라 하면 / 애비같이 구차하게 살라는 말이 되는 / 이 땅의 논리가 무서워서'라는 시구에서처럼 아버지는 세상이 각박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런 세상의 비위에 맞추어 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직하게 살라고도 말하지 못한다. 여기서 이 시가 그리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근본을 일러주시는 아버지 …….

'가난하고 떳떳하게 사는 이웃과 / 네가 언제나 한 몸임을 잊지 말고 / 그들이 네 힘임을 잊지 말고 / 그들이 네 나라임을 잊지 말아라'는 것이야말로 진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아버님의 말씀을 절실히 이해하고 느낄 때,  사회의 불합리성은 바로 잡혀질 수 있을 것이다.

겨울꽃

엉겅퀴여, 겨울이 겨울인 동안

네가 벌판에 서 있어야 한다.

바람 속에서 바람을 맞아야 한다.

머지 않아 천지에 봄이 오려니

엉겅퀴여, 네가 엉겅퀴로 서 있지 않을 때

이 땅에 내가 무엇으로 서 있겠느냐

엉겅퀴여, 나의 목마른 넋이여

겨울이 겨울인 동안

네가 엉겅퀴로 서 있어야 한다.

 

이 작품에서 '엉겅퀴'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일반적인 엉겅퀴의 의미를 살펴보면 '가시나물'이라고도 불리며 결각진 잎의 톱니가 모두 가시로 되어 있는 식물이다. 그렇다면 시 속에 사용된 의미를 얼핏 생각하기에도 강인한 인상이 느껴질 것이다.

여기서 전해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옛날  스코틀랜드에 침입한 바이킹의 척후병이 있었다. 그는 성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성 밑에 자라 있는 엉겅퀴가시에 찔려 비명을 질렀고, 그 소리를 들은 성내의 병사들은 바이킹의 침입을 눈치채고 화를 면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엉겅퀴는 구국의 공로로  스코틀랜드의 국화가 되었다 한다.

시 속의 엉겅퀴는 바로 이 전설 속 엉겅퀴의 의미가 아닐까? 엉겅퀴가 전설 속의 힘을 다시금 발휘하여 봄즉, 시인이 그토록 바라는 평화의 날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지……. 그리고 이 엉겅퀴를 자신의 '목마른 넋'이라고 칭한 데는 자신과 같은 신념을 갖고 앞장서 투쟁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투쟁을 하다 죽어간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라 생각된다. 때때로  그들을 보면서 현실에 대항하는 자신의 약해진 의지를 다잡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 곳에 살기 위하여

 

한밤에 일어나

얼음을 끈다.

누구든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보라, 얼음 밑에서 어떻게

물고기가 숨쉬고 있는가.

나는 물고기가 눈을 감을 줄 모르는 것이 무섭다.

증오에 대해서

나도 알 만큼은 안다.

이곳에 살기 위해

온갖 굴욕과 어둠과 압재 속에서

싸우다 죽은 나의 친구는 왜 눈을 감지 못하는가.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봄이 오기 전에 나는

얼음을 꺼야 한다.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나는 자유를 위해

증오할 것을 증오한다.

 

이 시는 자신의 의지를 더욱더 용감하고 씩씩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 얼음이란 곧 '온갖 굴욕과 어둠과 압제'를 의미한다. 이러한 어둠을 물 속에 드리운 상황에서도 물고기는 숨을 쉰다. 사슴이 죽어 가는 동안에 울분과 고통의 눈빛을 토로한 것처럼, 물고기도 증오가 담긴 눈빛을 하고 있다. 그러다 끝내 죽더라도 눈을 감지 못한다. 시인은 그 증오의 마음이 얼마나 참담하고 가슴 아픈지 알기에 모두가 소용없는 일이라고 하는 얼음 끄는 일을 한밤에 일어나서까지 하고자 한다. 이것은 시대의 불합리성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의연한 의지로서 당대의 핍박받는 사람들에게는 적극적인 마음의 동요를 일으킬 수 있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들에게는 이마에 핏발이 서게끔 할 수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정희성 시인의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읽으면서 너무나 틀에 박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의 내용이 민중과 자연과 4 · 19를 노래하고 있는데, 한 편 한 편 다른 시를 읽어 나갈 때마다 새롭다는 느낌보다는 별다를 바 없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같은 이유에서 그럴 수도 있지만 시에 사용된 언어들의 중복이 많고 시의 구성이 비슷비슷하다.

또한 시인은 무언가를 끝까지 의식하면서 시를 쓰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당시를 살아가던 민중들일 것이다. 민중들의 고통을 알리고 개혁을 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에 그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오히려 거부감이 생겨날 수도 있다. 더욱이 사회 개혁에 있어서 장애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시로서 민중들의 입이 되어 주되 막무가내로 그 쪽 편에 서 주어선 안 될 것이다. 힘 없는 자들의 정당한 대항과 싸움에 격려와 힘을 불어 넣어주는 데서 그쳤을 때 가장 시인다울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