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반대 상소문

 

* 세종실록 권 103  

* 세종 26년(1444) 2월 20일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신들이 엎드려 살피건대, 언문(諺文)의 제작은 지극히 신묘(神妙)하여 새로운 것을 만드는 지혜의 운용이 천고의 역사에서 월등히 뛰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신들의 좁은 소견으로는 오히려 의심스러운 바가 있어, 감히 위험을 무릅쓰고 간청을 베풀어 다음과 같이 조목조목 적어 아뢰니, 엎드려 생각건대 전하의 재가를 바랍니다.

 

1. 우리 나라는 선대의 임금 이래로 지성으로 큰 나라를 섬기고 한결같이 중국의 제도를 준수하여 이제 같을 글을 쓰고 제도 · 법률이 같아진 때에, 언문을 창제하신 것은 사람들이 보고 듣는 것을 놀라게 함이 있습니다. 혹 언문은 모두 옛글자를 바탕으로 삼았기에 새 글자가 안라고 말씀하신다면, 글자의 모양은 비록 옛날의 전서(篆書)를 본떴다 하더라도 소리를 글자에 결합하는 것은 완전히 옛것에 어긋나니 실로 근거한 바가 없습니다. 만약 중국에 흘러 들어가 혹 (이를) 비난하여 논의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찌 큰 나라를 섬기고 중국을 사모함에 부끄러움이 있지 않겠습니까.

2. 예로부터 중국 구주 안은 풍토가 비록 다르나, 방언으로 말미암아 따로 문자를 만든 일은 없습니다. 오직 몽골 · 서하 · 여진 · 일본 · 서번의 무리들이 각각 문자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모두 오랑캐들의 일일 따름으로 말할 갗가 없습니다. 전해 오는 책에 '중국의 문화로써 오랑캐를 변하게 했다고는 하여도, 중국이 오랑캐로부터 변화를 당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역대로 중국에서는 우리 나라를 기자가 끼친 풍습이 있고, 예악과 문물이 중국에 견줄 만하다고 여겨 왔는데, 이제 따로 언문을 만들어 중국을 버리고 스스로 오랑캐와 같아지려고 하니, 이는 이른 바 소합향(蘇合香)을 버리고 당랑(螳螂)의 환약을 취하는 일[가치 있는 것을 버리고 쓸모없는 것을 취하는 일]이라, 어찌 문명[학술과 교화가 진보하고 풍속이 아름다워진 상태]에 큰 누를 끼칠 일이 아니겠습니까.

3. 신라 설총의 이두는 비록 촌스럽고 속되다고 하여도, 모두 중국에서 통용하는 글자를 빌려서 어조사로 쓰는 까닭에 문자(漢文)와 원래 서로 어긋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까닭에 서리나 노비의 무리들이라 할지라도 꼭 이를 익히고자 한다면, 먼저 두어 권의 책을 읽고서 대강 문자를 안 연후에야 이두를 쓰니, 이두를 쓰는 자는 모름지기 문자에 의지해야만 그 뜻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두로 말미암아 문자를 아는 일이 자못 많아서 또한 학문을 일으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만약 우리 나라에서 원래 문자를 알지 못하고 결승[매듭 글자]을 쓰는 세상과 같다면, 잠시 언문을 빌려 일시적으로 쓰는 것은 그래도 괜찮겠으나, '일시적으로 언문을 쓰는 것은, 더디고 느리더라도 중국에서 통용되는 문자를 익혀서 장구한 계책을 삼는 것보다 못하다'고 식견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말할 것입니다. 하물며 이두가 사용된 지 수천 년에 관청의 장부나 모임의 일을 적는 데 막히는 것이 없었는데, 무엇 때문에 예로부터 써 온 폐단이 없는 글자를 고쳐서 따로 촌스럽고 저속하고 이익이 없는 글자를 창제하고자 하십니까? 만약 언문을 통용한다면 서리된 자가 오로지 언문만 익히고 학문을 돌아보지 않을 것이니, 문자와 서리가 갈라져 둘이 될 것입니다. 만약 서리된 자들이 언문만으로 벼슬길에서 출세하게 된다면 후진들이 모두 그렇게 할 것입니다. 스물 일곱 자의 언문으로 족히 세상에 입신할 수 있거늘 무엇 때문에 모름지기 마음을 괴롭게 하고, 생각을 수고로이 하여 성리(性理)의 학문을 궁구하려고 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한다면 수십 년이 지난 뒤에는 문자를 아는 사람이 반드시 적을 것입니다. 비록 능히 언문을 가지고서도 서리의 일에 능하다고 해도 성현의 문자를 모른다면 배우지 않음이 담장을 면대한 것 같아 사리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데 어두워지니, 한갓 언문에 힘쓴들 장차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 나라에서 누대로 쌓아온, 글을 숭상해 온 교화는 점차 (빗자루로) 땅을 쓸어 버린 듯이 없어질 것입니다. 이전부터 써 오던 이두는 비록 문자에서 벗어남이 없는데도 식견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촌스럽게 여겨 이두를 이문(吏文)으로 바꾸고자 생각하거늘, 하물며 언문은 문자와는 조금도 상관이 없이 오로지 시골 구석의 상말만을 쓰는 것임에 있어서랴! 가령 언문이 전조(前朝) 때부터 있어 온 것이라 하더라도, 오늘날의 문명한 정치를 하는 세상에 변로지도[變魯至道, 더 좋은 세상으로 이끄는 일] 하려는 뜻을 가지는 때인데, 그래도 언문을 따라 쓰시겠습니까? 반드시 고쳐 새롭게 하자고 의논하는 자가 있을 것임은 환하게 알 수 있는 이치입니다. 옛 것을 싫어하고 새 것을 좋아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큰 병통인데, 이번의 언문도 새롭고 기이한 한 가지 재주일 뿐이지 학문에 손해만 있고 정치에 유익함이 없으므로, 되풀이하여 헤아려 보아도 옳음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4. '형벌을 가하고 죽이는 등의 옥사[법률]를 이두 문자로 쓴다면, 글의 뜻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이 한 글자의 착오로 혹 원통함을 당할 수도 있겠으나, 이제 언문으로 그 말을 직접 써서 읽어 듣게 하면, 비록 지극히 어리석은 백성이라도 모두 다 쉽게 알아들어서 억울함을 품을 자가 없을 것이다.' 하실 테지만, 예로부터 중국은 말과 글이 같았지만 죄를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나 소송하는 일 가운데 억울하게 잘못되는 일이 대단히 많았습니다. 우리 나라로 말한다면, 옥에 갇혀 있는 죄수로서 이두를 해독하는 사람이 직접 초사[진술한 내용]을 읽고서 허위인 줄 알지만, 매를 이기지 못하여 굽혀 자복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는 초사의 글 뜻을 알지 못하여 원통하게 당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합니다. 만일 그러하다면 비록 언문을 쓴다 할지라도 이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것은 형벌을 가하고 감옥에 보내는 일의 공평하고 공평하지 못함은 옥리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지, 말과 글의 같고 같지 않음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언문으로써 옥사를 공평하게 하고자 한다는 것을 신들은 그 옳은 점을 알 수 없습니다.

5. 무릇 일의 공을 세우는 데는 손쉽고 빠른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는데, 나라에서 근래 조치하는 것이 모두 빨리 이루는 것에 힘쓰니, 아마도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 아닌 듯합니다. 혹시 언문을 부득이해서 만들었다고 하신다면, 이는 풍속을 바꾸는 큰 일이므로 마땅히 재상과 논의하고 아래로 백관들과 논의하여 나라 사람들이 모두 옳다 하더라도, 오히려 선갑후갑[백성들을 은근히 타이른 뒤에 실시함]으로 다시 세 번을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고, 옛날의 제왕들에게 맞추어 보아도 어그러지지 않고 중국에 상고하여 부끄러움이 없으며, 후세의 성인을 기다려 의심이 없어진 연후에야 시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널리 여러 사람의 의논을 들으시지도 않고, 갑자기 아전 무리 십여 인에게 가르쳐 익히게 하고, 또 경솔하게 옛사람이 이미 이룩해 놓은 운서를 고쳐 근거 없는 언문을 억지로 끌어다 붙이며, 공장[기능공] 수십 인을 모아 판각을 하여 급히 천하에 널리 펴려 하시니 후세의 공론이 어떠하겠습니까. 또 이번에 청주 초수리에 행차하시는 일은 흉년이 든 것을 특히 염려하시어 호종(호從)하는 모든 일을 간략하게 하였으므로 전날에 비하여 10에 8, 9는 줄어 들었고 전하께 아뢰는 공무 또한 의정부에 맡기셨습니다. (그런데도) 대저 언문은 나라의 긴급하며 부득이하게 기한에 마쳐야 하는 일이 아닌데도 어찌 이것만은 행재소에서 급급하게 하시어 임금님의 옥체를 조섭(調攝)하시는 때에 번거롭게 하십니까. 신들은 더욱 그 옳음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6. 이전의 유학자들이 이르기를, '무릇 온갖 노리개는 사람의 뜻을 빼앗고, 서예하는 일은 선비가 하는 일에 가장 가까운 것이나, 줄곧 그것만 좋아하게 되면 그것 역시 사람의 뜻을 잃어 버리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동궁이 비록 덕성이 함양되었다 하나 아직은 성인들의 학문에 몰입하여 더욱 그 이르지 못한 것을 궁구해야 마땅할 것이옵니다. 언문이 비록 유익하다 이르실지라도, 단지 글하는 선비의 여섯 가지 기예의 하나일 뿐입니다. 하물며 전혀 나라 다스리는 도리에 유익함이 없는데, 정신을 쏟고 생각을 허비하심에 날을 마치고 시간을 보낸다면, 실로 때를 맞추어 민첩히 해야 할 학문을 닦는데 손실이 있을 것입니다. 신들은 모두 글하는 일에 보잘것없는 재주뿐이어서 임금님을 가까이 모시고 있기에, 마음에 생각한 바를 감히 말하지 않고 있을 수가 없어 삼가 가슴에 있는 말을 다하여 우러러 임금님의 총명하심을 더럽힙니다.

 

 

< 반대 상소문에 대한 대응 >

 

상감께서 상소문을 보시고 최만리 등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소리를 글자에 결합하는 것이 모두 옛 것에 어긋난다고 하였는데, 설총의 이두도 음을 달리하지 않았느냐. 또 이두를 만든 본뜻이 백성을 편하게 하고자 함이 아니더냐. 만약 그것이 백성을 편하게 한 것이라면 지금의 언문도 백성을 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냐. 너희들은 설총은 옳다 하면서 너희 임금이 하는 일은 그르다 하는 것은 어찌된 일이냐. 또 너희들은 운서를 아느냐. 사성(四聲)과 칠음(七音)과 자모(字母)가 몇이나 있느냐. 만약 내가 운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그 누가 바로 잡겠느냐. 또 상소문에 이르기를, '새롭고 기이한 하나의 재주라' 하였는데, 내 늘그막에 소일하기가 어려워서 서적으로 벗을 삶을 따름이거늘, 어찌 옛 것을 싫어하고 새 것을 좋아하여 이것을 만들었겠느냐. 또 사냥을 하거나 매를 놓아 보내는 사례와는 다른 일인데도 너희들의 말이 너무 지나치게 분수에 넘치는구나. 또 내가 늙어서 나라의 서무를 오로지 세자가 맡아서 보지만, 비록 작은 일일지라도 참여하여 결정함이 마땅하거늘 하물며 언문이겠느냐. 만약 세자로 하여금 동궁에만 있게 한다면 환관에게 일을 맡길 것이냐. 너희들이 시종하는 신하로서 내 뜻을 밝게 알면서도 이러한 말을 해서 되겠느냐."

만리 등이 대답하기를,

"설총의 이두는 비록 음을 달리하였다고 하나, 음에 의지하고 해석ㅇ 의지한 어조사[이두]와 문자가 원래 서로 떨어지지 않는데, 이제 언문은 여러 글자를 합하고 나란히 써서 그 음과 새김이 변하여 글자의 형상이라 할 수 없습니다. 또 새롭고 기이한 한 가지 재주라고 한 것은 특히 글의 흐름으로 인하여 이와 같은 말을 한 것일 뿐,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동궁은 공적인 일이라면 비록 적은 일일지라도 참여하여 결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나, 급하지 않은 일에 무엇 때문에 종일토록 심려할 것입니까."하였다.

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앞서 김문이 아뢰기를 언문을 제작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은 아니라고 하더니, 지금은 도리어 옳지 않은 일이라고 하는구나. 또 정창손이 아뢰기를, '『삼강행실도』를 반포한 후에 충신 · 효자 · 열녀가 많이 나옴을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자질이 어떠한가에 있을 분이지, 어찌 꼭 언문으로써 번역한 후에라야 사람들이 모두 본받겠습니까' 하니, 이들의 말이 어찌 이치를 아는 선비들의 말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속된 선비로다." 하셨다. 앞서 상감께서 정창손에게 하교하시기를, "내가 만약 언문으로써 『삼강행실도』를 번역하여, 민간에 반포한다면, 어리석은 백성이라도 다 쉽게 깨우쳐 충신 · 효자 · 열녀가 많이 나올 것이다." 하였는데, 정창손이 이에 이 같은 말로써 아뢰었으므로, 지금 이러한 하교가 있은 것이다.

상감께서 또 하교하시기를,

"내가 너희들을 부른 것은 애초부터 벌주려 한 것이 아니고, 다만 상소문 안에 있는 한두 가지 말을 물으려 한 것이었다. 너희들이 사리를 돌아보지 않고 말을 바꾸어서 대답하니 너희들의 죄는 벗어나기 어렵도다. " 하셨다. 드디어 부제학 죄만리, 직제학 신석조, 직전 김문, 응교 정창손, 부교리 하위지, 부수찬 송처검, 저작랑 조근을 의금부에 하옥시켰다가 이튿날 석방하라 명하셨다. 다만 정창손만은 파직시키고, 인하여 의금부에 뜻을 전하시기를, "김문이 전후로 말을 바꾸어 아뢴 사유를 심문하여 올리라."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