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의 힘

* 이익섭(전 국립국어연구원장)

1.

여기서 나는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의 이상을 분명히 인식하는 일이 매우 중요함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말과 글은 인간의 표현 욕구를 채우는 그릇이다. 예사로운 대화는 말할 것도 없고, 극도로 섬세한 예술적 표현과 극도로 정밀한 과학적 표현까지 능히 할 수 있어야 제 구실을 다하는 것이 된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까다로운 표현도 척척해 낼 수 있는 능력, 어떤 새로운 필요가 생겨도 당황하지 않고 감당해 낼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어야 한다. 나는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이 이런 힘을 갖추게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이기문, 「국어의 현실과 이상」의 머리말, 1997)

국어를 힘이 있는 언어로 키우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먼저 우리말 및 우리글이 현재 갖추고 있는 힘, 그 저력, 그 장점을 올바로 알 필요가 있다.

 

1.1. 크기

세계의 언어의 수는 대체로 4,000개에서 5,000개 정도이다. 적게 잡으면 3,000개, 많이 잡을 때는 10,000개까지도 잡는다. 적어도 3,000개의 언어는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용자가 100만명 이상 되는 언어는 138개어에 불과하며, 사용자가 10만 이상인 언어로 따져도 396개어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어는 1994년 말 기준 남한 인구 4,400만명, 북한 인구 2,300만명, 도합 6,700만명으로 보았을 때 사용 인구가 많기로 이탈리아어와 비슷한 수준으로 세계에서 13위에서 15위쯤에 해당한다.

이 점에서 한국은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며, 한국어는 충분히 힘을 갖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국어는 이제 한반도 안에 갇히어 있는 언어가 아니고, 해외 동포들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말을 익혀 아는 외국인의 수가 날로 늘어가고 있다.

 

1.2. 한국어의 풍부성

흔히 한국어는 어휘가 빈약한 언어로 인식한다. 특히 외국어를 우리말로 번역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이 점을 자주 지적한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말을 외국어로 번역해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blue와 green을 다 ‘푸르다’고 한다고 우리를 비웃지만, ‘푸르다’ 외에 ‘파랗다’, ‘퍼렇다’, ‘새파랗다’, ‘시퍼렇다’, ‘파르스름하다’, ‘푸르스름하다’, ‘파릇파릇하다’, ‘푸릇푸릇하다’ 등에 해당하는 영어는 있다는 말인가. 어느 언어나 다른 언어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있는가 하면 다른 언어에는 없는 장점과 풍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말의 풍부함을 보여 주는 예는 잠깐만 들쳐보아도 참으로 많다.

 

(가) 단어가 세분되어 있는 예

a. 벼/쌀/밥 (rice)

b. 오빠/형 (brother), 누나/언니 (sister)

c. 큰아버지/작은아버지/삼촌/당숙/재당숙/아저씨/외삼촌/고모부/이모부 (uncle)

d. (옷을) 입다/(신을) 신다/(모자를) 쓰다/(장갑을) 끼다/(넥타이를) 매다 (wear)

e. (문을) 열다/(눈을) 뜨다 (open)

f. 맵다/뜨겁다/덥다 (hot)

 

(나) 조사가 세분되어 있는 예

a. 창호가 1반 반장이다. / 창호는 1반 반장이다.

b. 머리가 아파서 정신이 하나 없다. / 머리가 아프니까 정신이 하나 없다.

             (*어제는 머리가 아프니까 결석했습니다.)

c. 선풍기나 하나 있었으면. / 선풍기나마 하나 있었으면.

             (*벤츠나마 하나 있었으면.)

 

(다) 어미가 세분되어 있는 예

a. 그 사람이 아직도 바쁘-니?

b. 그 사람이 아직도 바쁘-냐?

c. 그 사람이 아직도 바쁘-지?

d. 그 사람이 아직도 바쁘-ㄹ까?

e. 그 사람이 아직도 바쁘-ㄴ가?

 

(라) 음성상징에 의해 단어가 세분된 예

a. 졸졸/줄줄/질질

b. 똥똥/뚱뚱/땡땡/띵띵: 통통/퉁퉁/탱탱/팅팅

c. 말짱하다/멀쩡하다, 빨갛다/뻘겋다, 파랗다/퍼렇다, 간들간들/건들건들, 방글방글/벙글벙글, 산들산들/선들선들, 찰찰/철철, 까칠까칠/꺼칠꺼칠

d. 따갑다/뜨겁다, 한들거리다/흔들거리다, 날씬하다/늘씬하다, 살금살금/슬금슬금, 하늘하늘/흐늘흐늘

e. 새카맣다/시커멓다, 매끄럽다/미끄럽다, 뱅글뱅글/빙글빙글, 생글생글/싱글싱글

f. 도톰하다/두툼하다, 노랗다/누렇다, 동그랗다/둥그렇다, 고소하다/구수하다, 소복하다/수북하다, 볼록하다/불룩하다, 통통하다/퉁퉁하다, 촉촉하다/축축하다, 꼬불꼬불/꾸불꾸불, 쪼글쪼글/쭈글쭈글, 소근소근/수근수근, 모락모락/무럭무럭, 보슬보슬/부슬부슬, 폭신폭신/푹신푹신, 퐁당/풍덩

 

2.

국어의 풍부성은 경어법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너를 만나러 왔다”의 ‘너’ 자리에 영어라면 you 하나면 되는 것을 우리는 ‘자네’, ‘당신’, ‘자기’, ‘아저씨’, ‘아주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사장님’, ‘선생님’, ‘손님’ 등 열 가지도 넘게 여러가지로 달리 말해야 한다. 거기에 따라 ‘왔다’도 ‘왔네’, ‘왔소’, ‘왔어요’, ‘왔습니다’로 달라져야 한다. 어둑어둑한 곳에 누군가 나타나서 누구냐고 물을 때도 그 사람을 어떤 신분의 사람으로 짐작하느냐에 따라 다음과 같이 여러가지로 달리 말하게 된다.

 

(가)

a. 거 누구니? 0

b. 거 누구야?

c. 거 누군가?

d. 거 누구요?

e. 거 누구예요(누구세요)?

f. 거 누구십니까?

‘김민호’라는 사람이 주위에서 들을 수 있는 호칭도 친척으로부터의 호칭을 빼고도 다음처럼 많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그 사람을 대하는 정도가, 즉 그 경어법의 등급이 다르다는 점이다.     

 

(나) ① 과장님  ② 김 과장님 ③ 김민호 씨  ④ 민호 씨 ⑤ 민호 형 ⑥ 김 과장 ⑦ 김 씨  ⑧ 김 형 ⑨ 김 군 ⑩ 김민호 군 ⑪ 민호 군 ⑫ 김민호 ⑬ 민호 ⑭ 민호야

국어경어법은 적어도 세 가지 대상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문장의 주체가 누구인가, 그 주체의 행동이 미친는 대상, 즉 객체가 누구인가, 그리고 말을 듣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하나하나 염두에 두고 그들에게 모두 적절한 경어법을 택해야 한다. 다음 예문에서 국어 경어법의 이러한 특성을 엿볼 수 있다. 국어 경어법이 매우 체계적임을 깨닫게 되며, 또 국어가 매우 섬세한, 그만큼 풍부하기 이를 데 없는 언어임도 확인할 수 있다.

 

(다)

a. 민호가 동생에게 밥을 주었다. (주체-, 객체-, 청자 -)

b. 민호가 동생에게 밥을 주었습니다. (주체-, 객체-, 청자 +)

c. 어머니께서 민호에게 밥을 주셨다. (주체+, 객체-, 청자-)

d. 어머니께서 민호에게 밥을 주셨습니다. (주체+, 객체-, 청자+)

e. 민호가 어머니께 진지를 드렸다. (주체-, 객체+, 청자-)

f. 민호가 어머니께 진지를 드렸습니다. (주체-, 객체+, 청자+)

g. 어머니께서 할머니께 진지를 드리셨다. (주체+, 객체+, 청자-)

h. 어머니께서 할머니께 진지를 드리셨습니다. (주체+, 객체+, 청자+)

 

3.

국어가 힘이 있는 언어이기 위해서는 그것을 담는 표기 체계가 좋아야 하는데 우리는 천만다행하게도 ‘한글’이라고 하는 훌륭한 문자를 가지고 있으며, 또 그것을 아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체계를 맞춤법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한글에 대해서는 의외로 깊이 모르고 있고 학자들조차도 편협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수가 많다. 한글의 특징을 간추려 보면서 한글의 진정한 장점이 무엇인지 찾아보기로 하자.

 

(가) 한글은 그 탄생 기록을 가지고 있는 문자다.

거의 모든 문자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누가 만든지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졌다. 그러나 한글은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렁렁렁 是謂訓民正音”(『세종실록』 권 102 세종 25년 12월)이라는 탄생 기록을 가지고 있다. 세종이 손수 세종 25년에 만들었고, 그것이 28자며, 그 문자체계의 이름이 ?훈민정음?이라는 내용이다.

세종이 손수 창제하였다는 이 기록에 대해 별 근거로 없이 다른 해석을 해 온 일이 많으나 근래 세종 친제설(親制說)이 비로소 잘 증명되었다.

세종 25년은 1443년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달’이라는 12월은 음력 12월이므로 1444년까지 걸친다. 한글의 창제 연대를 남한에서는 대개 1443년이라 하는데 북한이나 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1444년으로 기술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그 해 음력 12월은 10일까지는 1443년이었고 11일부터는 1444년이었으므로 어느 쪽으로 잡아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한편 1446년 음력 9월 상순에 『訓民正音』이라는 책이 간행되었다. 『훈민정음』은 집현전 학자들이 세종의 명령을 받고 한글에 대해 한문으로 자세히 해설을 붙인 책이다. 글자 이름도 ?훈민정음?이었는데 책의 이름도 그와 같아 이를 구별하기 위해서 이 책을 흔히 『훈민정음 해례본』이라 부른다. 한글이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또 그 전모를 드러낸 것은 이 『훈민정음』에 의해서였다. 그리하여 흔히 한글이 창제된 것은 1443(또는 1444)년이나 그것이 세상에 공포된 것은 이 책이 간행된 1446년일 것이라고 해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글날?이라는 특이한 기념일을 만들어 지키고 있는데 그것도 이 책이 간행된 1446년 음력 9월 상순의 마지막 날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로 정하여 쓰고 있는 것이다.

창제일이든 반포일이든 문자가 만들어진 날을 기념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 한글이 그 탄생 기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나) 한글의 제자 원리는 매우 과학적이고 조직적이다.

한글 자모 28자는 각각 뿔뿔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몇 개의 기본자를 먼저 만든 다음, 나머지는 이것들로부터 파생시켜 나가는 식의 이원적(二元的)인 체계로 만들어졌다. 자음(당시 용어로는 初聲) 글자 17자는 먼저 기본자(基本字) 다섯 자를 만들었는데 그것들은 모두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훈민정음』 제자해(制字解)에서의 설명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牙音ㄱ 象舌根閉喉之形 (아음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떴다.)

舌音ㄴ 象舌附上?之形 (설음 ㄴ은 혀가 윗잇몸에 닿는 모양을 본떴다.)

脣音ㅁ 象口形 (순음 ㅁ은 입 모양을 본떴다.)

齒音ㅅ 象齒形 (치음 ㅅ은 이의 모양을 본떴다.)

喉音ㅇ 象喉形 (후음 ㅇ은 목구멍 모양을 본떴다.)

자음 17자 중 나머지 글자는 이 기본자에다 획을 하나씩 더해서 만들었다. 그 과정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ㄱ → ㅋ

ㄴ → ㄷ → ㅌ ( ㄷ → ㄹ )

ㅁ → ㅂ → ㅍ

ㅅ → ㅈ → ㅊ

ㅇ → 咬 → ㅎ ( ㅇ → ? )

모음 (당시의 용어로는 중성(中聲)) 글자 11자는 역시 먼저 기본자 세 자를 만들고 나머지는 이것들을 조합하여 만드는 방식을 취하였다. 기본자는 ‘?, ㅡ, ㅣ’인데 이들의 제자 원리는 “촵는 하늘의 둥근 모습, ㅡ는 땅의 평평한 모습, ㅣ는 사람의 선 모습을 본떴다”고 되어 있다. 모음자의 나머지 여덟 글자는 ‘?’를 ‘ㅡ’와 ‘ㅣ’에 결합하여 만들었다. 즉 ‘쾁(ㅓ)’를 예로 들면 ‘? + ㅣ’로 만들었는데, 이처럼 ‘촵’를 ‘ㅣ’의 왼쪽이나 오른쪽, 또는 ‘ㅡ’의 위쪽이나 아래쪽에 결합시켜 만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를 하나씩 더 결합하여 ‘ㅑ, ㅕ, ㅛ, ㅠ’를 만들었다.

여기서 ‘?’의 위치는 중요한 뜻을 담고 있다. ‘?’가 욋쪽과 오른쪽에 찍힌 것은 그 모음이 양모음(陽母音)임을 나타내 주고, 아래쪽과 왼쪽에 찍힌 것은 음모음(陰母音)임을 나타내 주는 것이 그것이다. 당시에는 지금보다도 더 엄격한 모음조화 규칙이 있었으며, 더욱이 훈민정음 제작의 철학적 배경이 되었던 성리학(性理學)에서 음양(陽陰)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으므로 양모음, 음모음의 구분이 이처럼 제자의 원리에까지 적용되었던 것이다. 또 ‘?’가 하나냐 둘이냐는 그 모음이 단모음이냐 이중모음임을 구별하기 위함이었다. (당시는 이것은 ‘초출(初出)’과 ‘재출(再出)’이라는 용어로 구별하였다.) 글자 하나하나가 오묘한 질서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다) 한글은 모아쓰기라는 특이한 방식의 운영 체계를 가진다.

한글은 음절 단위로 묶어 다시 한 자로 만들어 쓰는, 즉 ‘ㅂㅗㅁ’이라 쓰는 것이 정상적인데 그러지 않고 ‘봄’처럼 이른바 모아쓰기라는 특이한 운영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세종실록』 권 102의 기록을 비롯하여 『훈민정음』의 예의(例義)와 합자해(合字解) 등 최초기 문헌에 규정되어 있어 훈민정음이 출발할 때부터의 엄격한 규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글을 이처럼 모아쓰기로 운영하려 한 데는 한자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당시 문헌은 으레 한자와 한글이 섞여 쓰였고 또 한자에는 한글로 한자음을 다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 때 한자 하나에 한글도 한 글자의 꼴로 나타내는 것이 한글을 풀어 썼을 때보다 어울렸을 것이다. 또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도 ‘訓民’을 ‘ㅎㅜㄴㅁㅣㄴ’으로 표기하는 것보다 ‘훈민’으로 표기하는 것이 서로의 관계를 쉽게 연결시킬 수 있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아쓰기에 대해 한때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주시경, 최현배 선생 등은 풀어쓰기 운동을 전개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모아쓰기는 한글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흙이 많으면’처럼 이른바 어법에 맞는 맞춤법을 채택해 씀으로써 큰 혜택을 입고 있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모아쓰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모아쓰기의 장점에 대해서는 최근에 와서 점차 바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어법에 맞는 표기법, 즉 표의주의(表意主義) 표기법의 장점에 대해서도 이제 겨우 바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진작부터 이 좋은 방식을 채택해 온 행운을 누려 왔다. 말하자면 국어의 힘을 키워 갈 여건은 이것저것 잘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4.

국어를 힘 있는 언어로 키워 가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먼저 오염을 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병을 들게 해서는 힘을 쓸 수 없다. 최근에 개봉된 영화 제목 하나는 ‘모스트 원티드’였다. ‘모닝 와이드’라는 텔레비젼 프로그램도 있다. ‘타이거스’니 ‘유니콘스’니 야구팀 이름도 있다. 그리고 우리 문장을 그야말도 말도 안되는 비문(非文)으로 만들어 놓는 사람도 너무 많다. 국어를 사랑한다면 할 수 없는 짓들이 아니가. 사랑하지 않으면서 힘을 키워 주려 하겠는가.

사랑한다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하는 것도 주의해야 할 일이다. 국어를 단순하고 무미(無味)한 언어로 만들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어떤 국어사전은 ‘도로’를 찾으면 ‘도로=길’이라고만 해 놓았다. ‘도로’와 ‘길’은 똑같은 말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을 같은 것으로 만들면 국어의 힘은 그만큼 약해질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이름’ 하나면 되지 ‘성함’은 왜 필요하냐고 한다. ‘사망’ 하나면 되니 ‘별세, 서거, 타계, 운명(殞命), 작고, 영면(永眠)’ 같은 것은 다 없애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 쓸 자리가 따로 있다. 좋은 기계란 섬세한 소리까지 구별해 잡아 주는 기계를 뜻한다.

단어 하나라도 바로 골라 쓰고, 문장 하나라도 정성들여 바로 쓰는 일이 국어에 힘을 붙여 주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국어를 힘 있는 언어로 키우는 첫걸음은 무엇보다 국어를 사랑하는 일일 것이다. 다함께 외칩시다. 국어 사랑 나라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