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작품들

       

                                      고    방

       

      낡은 질동이에는 갈 줄 모르는 늙은 집난이같이 송구떡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오지항아리에는 삼촌이 밥보다 좋아하는 찹쌀탁주가 있어서 삼촌의 임내를 내어가며 나와 사춘은 시큼털털한 술을 잘도 채어 먹었다

      제삿날이면 귀머거리 할아버지 가에서 왕밤을 밝고 싸리꼬치에 두부산적을 께었다

      손자 아이들이 파리떼같이 모이면 곰의 발 같은 손을 언제나 내어 둘렀다

      구석의 나무말쿠지에 할아버지가 삼는 소신 같은 짚신이 둑둑이 걸리어도 있었다

      옛말이 사는 컴컴한 고방의 쌀독 뒤에서 나는 저녁 끼때에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척하였다.

       


     

      질동이 : 질그릇 만드는 흙을 구워 만든 동이.

      집난이 : 출가한 딸을 친정에서 부르는 말.

      송구떡 : 송기(松肌)떡. 소나무 속껍질을 삶아 우려내여 멥쌀가루와 섞어 절구에 찧은 다음 반죽하여 솥에 쪄내어 떡메로 쳐서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든 엷은 분홍색의 떡으로 봄철 단오가 되면 많이 먹음.

      오지항아리 : 흙으로 초벌 구운 위에 오짓물을 입혀 구운 항아리.

      임내 : 흉내. 그대로 본뜨는 것.

      밝고 : 까고.

      께었다 : 꿰었다. 끼웠다.

      나무말쿠지 : 나무로 만든 옷걸이로 벽에 박아서 사용.

      둑둑이 ; 한둑이는 10개를 의미함. 둑둑이는 많이 있다는 뜻.

       

 

                                        모닥불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헝겊 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갓신창 : 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질긴 끈의 한 종류.
      개니빠디 : 개의 이빨.
      재당 : 서당의 주인. 또는 향촌의 최고 어른.
      초시 : 초시에 합격한 사람으로 늙은 양반을 이르는 말.
      갓사둔 : 새사돈.
      붓장사 : 붓을 파는 직업의 장사꾼.
      몽둥발이 : 손발이 불에 타버려 몸뚱아리만 남은 상태의 물건.

       

 

                  고 야 ( 古 夜 )

     

    아배는 타관 가서 오지 않고 산비탈 외따른 집에 엄매와 나와 단둘이서 누가 죽이는 듯이 무서운 밤 집 뒤로는 어느 산골짜기에서 소를 잡어먹는 노나리꾼들이도적놈들같이 쿵쿵거리며 다닌다

    날기멍석을 져간다는 닭보는 할미를 차 굴린다는 땅아래 고래 같은 기와 집에는 언제나 니차떡에 청밀에 은금보화가 그득하다는 외발 가진 조마구 뒷산 어느메도 조마구네 나라가 있어서 오줌 누러 깨는 재밤 머리맡의 문살에 대인 유리창으로 조마구 군병의 새까만 대가리 새까만 눈알이 들여다보는 때 나는 이불 속에 자즐어붙
    어 숨도 쉬지 못한다

    또 이러한 밤 같은 때 시집갈 처녀 막내 고무가 고개 너머 큰집으로 치장감을 가지고 와서 엄매와 둘이 소기름에 쌍심지의 불을 밝히고 밤이 들도록 바느질을 하는 밤 같은 때 나는 아릇목의 샅귀를 들고 쇠든밤을 내여 다람쥐처럼 발거먹고 은행여름을 인두불에 구어도 먹고 그러다는 이불 위에서 광대넘이를 뒤이고 또 누어 굴면서 엄매에게 웃목에 두른 평풍의 새빨간 천두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고무더러는 밝는 날 멀리는 못 난다는 뫼추라기를 잡어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내일같이 명절날인 밤은 부엌에 쩨듯하니 불이 밝고 솥뚜껑이 놀으며 구수한 내음새 곰국이 무르끓고 방안에서는 일가집 할머니가 와서 마을의 소문을 펴며 조개 송편에 달송편에 죈두기송편에 떡을 빚는 곁에서 나는 밤소 팥소 설탕 든 콩가루소를 먹으며 설탕 든 콩가루소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반죽을 주무르며 흰가루손이 되여 떡을 빚고 싶은지 모른다

    섣달에 내빌날이 들어서 내빌날 밤에 눈이 오면 이 밤엔 쌔하얀 할미귀신의 눈귀신도 내빌눈을 받노라 못난다는 말을 든든히 여기며 엄매와 나는 앙궁 위에 떡돌 위에 곱새담 위에 함지에 버치며 대냥푼을 놓고 치성이나 드리듯이 정한 마음으로 내빌눈 약눈을 받는다 이 눈세기물을 내빌물이라고 제주병에 진상항아리에 채워두고는 해를 묵여가며 고뿔이 와도 배앓이를 해도 갑피기를 앓어도 먹을 물이다  


     

    노나리꾼 : 농한기나 그밖에 한가할 때 소나 돼지를 잡아 내장은 즉석에서 술안주로 하는 밀도살꾼.

    날기멍석을 져간다는 : 멍석에 널어말리는 곡식을 멍석 채 훔쳐간다는.

    니차떡 : 이차떡. 인절미를 말함.

    청밀 : 꿀.

    조마구 : 옛 설화 속에 나오는 키가 매우 작다는 난장이.
     재밤 : 깊은 밤.

    자즈러붙어 : 자지러붙어. 몹시 놀라 몸을 움츠리며 어떤 물체에 몸을 숨기는 것.

    치장감 : 혼삿날 쓰이는 옷감.

    삿귀 :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의 가장자리.

    쇠든 밤 : 말라서 새들새들해진 밤.

    여름 : 열매.

    인두불 : 인두를 달구려고 피워 놓은 화롯불.

    광대넘이 : 앞으로 온몸을 굴리며 노는 유희.

    천두 : 천도 복숭아.

    쩨듯하니 : 환하게.

    놀으며 : 높은 압력에 솥뚜껑이 들썩들썩하는.

    무르끓고 : 끓을 대로 푹 끓고.

    죈두기송편 : 진드기 모양처럼 작고 동그랗게 빚은 송편.

     

 

 

                            오리 망아지 토끼

       

      오리치를 놓으려 아배는 논으로 나려간 지 오래다

      오리는 동비탈에 그림자를 떨어트리며 날어가고 나는 동말랭이에서 강아지처럼 아배를 부르며 울다가 시악이 나서는 등뒤 개울물에 아배의 신짝과 버선목과 대님오리를 모다 던져 버린다

     

      장날 아츰에 앞 행길로 엄지 따러 지나가는 망아지를 내라고 나는 조르면

      아배는 행길을 향해서 크다란 소리로

      - 매지야 오나라

      - 매지야 오나라

     

      새하려 가는 아배의 지게에 지워 나는 산(山)으로 가며 토끼를 잡으리라고 생각한다

     

      맞구멍난 토끼굴을 내가 막어서면 언제나 토끼새끼는 내 다리 아래로 달어났다

      나는 서글퍼서 서글퍼서 울상을 한다

       


      오리치 : 야생 오리를 잡으려고 만든 그물. 오리가 잘 다니는 물가에 세워 놓은 것으로 삼베로 노끈을 해서 만든 둥그런 올까미

      동말랭이 : 논에 물이 흘러 들어가는 도랑의 뚝.

      시악(恃惡) : 마음속에서 공연히 생기는 심술.

      매지 : 망아지.

      새하다 : 땔나무를 장만하다.

 

 

                    초동일(初冬日)

           

          흙담벽에 볕이 따사하니

          아이들은 물코를 흘리며 무감자를 먹었다

           

          돌덜구에 천상수(天上水)가 차게

          복숭아남ㄱ에 시라리타래가 말러갔다

      


          초동일 : 첫겨울날. 

          물코 : 물처럼 나오는 콧물. 

          돌덜구 : 돌절구. 

          천상수(天上水) : 하늘에서 빗물이 내려 고인 물. 

          복숭아남ㄱ에  : 복숭아 나무에 

          시라리타래 : 시래기를 길 게 엮은 타래.

 

 

                            하  답(夏沓)

         

      짝새가 발부리에서 날은 논드렁에서 아이들은 개구리의 뒷다리를 구어먹었다

      게구멍을 쑤시다 물쿤하고 배암을 잡은 눞의 피 같은 물이끼에 햇볕이 따그웠다

     

      돌다리에 앉어 날버들치를 먹고 몸을 말리는 아이들은 물총새가 되었다

       


         

      짝새 : 뱁새. 박새과에 딸린 작은 새. 

      눞 : 늪. 

      버들치 : 버들개. 

      물총새 : 하천, 산개울 등에 서식하며 물고기, 개구리, 곤충 등을 잡아 먹는 한국의 새.

 

 

             주 막 ( 酒 幕 )

     

      호박잎에 싸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

       

      부엌에는 빨갛게 질들은 팔(八)모알상이 그 상 위엔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만한 잔(盞)이 보였다

       

      아들 아이는 범이라고 장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 나와 동갑이었다

       

      울파주 밖에는 장꾼들을 따라와서 엄지의 젖을 빠는 망아지도 있었다

       


 

      붕어곰 : 붕어를 알맞게 지지거나 구운 것 

      질들은 : 오래 사용하여 반들반들한. 

      팔모알상 : 테두리가 팔각으로 만들어진 개나리소반. 

      장고기 : 잔고기. 농다리와 비슷하다. 

      울파주 : 대, 수수깡, 갈대, 싸리 등을 엮어 놓은 울타리. 

      엄지 : 짐승의 어미.

 

 

                       적  경(寂境)

         

          신살구를 잘도 먹드니 눈오는 아침

          나어린 아내는 첫아들을 낳었다

           

          인가(人家) 멀은 산(山)중에

          까치는 배나무에서 즞는다

           

          컴컴한 부엌에서 늙은 홀아비의 시아부지가 미역국을 끓인다

          그 마을의 외따른 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

 


       

      적경 : 인적이 드문 곳. 

      산국 : 아이를 낳은 산모가 먹는 미역국.

 

 

                   미명계(未明界)

           

      자즌닭이 울어서 술국을 끓이는 듯한 추탕(鰍湯)집의 부엌은 뜨수할 것같이 불이 뿌연히 밝다

       

      초롱이 히근하니 물지게꾼이 우물로 가며

      별 사이에 바라보는 그믐달은 눈물이 어리었다

       

      행길에는 선장 대여가는 장꾼들의 종이등(燈)에 나귀눈이 빛났다

      어데서 서러웁게 목탁(木鐸)을 뚜드리는 집이 있다

  


       

      미명계 :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땅. 

      자즌닭 : 자주자주 우는 새벽닭. 

      하근하니 : 희뿌옇게. 

      선장 : 이른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