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1

                                                                              -정지용-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 갔구나! 

 

             -<조선지광>(1930)-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주지적, 상징적, 감각적(시각적), 관조적

◆ 표현 : 감정의 절제 - 비정하리만큼 차가운 객관주의에 근거한 지적 훈련에 의해 이루어짐.

              감각적 묘사와 비유를 통한 선명한 시각적 심상.

              감정의 대위법 및 역설적 표현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유리창 → '죽은 아이'와 '시적 자아'를 가로막는 장벽인 동시에 이어주는 통로의 의미(단절과 교감)

* 차고 슬픈 것 → '죽은 아이'의 영상

* 열없이 → 유리로 차단되어 있고, 죽은 아이이기에 따뜻한 체온의 교감이 없이

                 자식을 잃은 뒤의 허전한 행위임을 나타내는 말로도 봄(맥없이, 기운없이)

* 언 날개 → '죽은 아이'의 영상

*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 사라져가는 자아의 입김 자국을 언 날개를 힘없이 파닥거리는 가냘픈 새로 표현함.

*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 아이가 자신으로부터 떠나가 버린 그 세계를 바라보고자 하는 의지

* 밤 → 죽음의 세계(알 수도 보이지도 않는 세계)

* 물먹은 → 죽은 아이의 영상을 바라보는 화자의 눈에 어려있는 눈물.

* → 죽은 아이의 영상

* 외로운 황홀한 심사

   → 모순 형용, 역설적 표현

       자식을 잃은 데서 오는 외로움과, 유리를 닦으며 밤하늘의 별을 보고 귀여운 아들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이 느끼는 데서 생겨나는 황홀함이 얽힌 마음

       비애 속으로의 침잠 속에서 환상적으로 황홀한 아름다움을 체험한다는 것은, 삶의 신비를 관조하는 정신에 의해 형성됨.

*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 자식이 병(폐렴)에 시달리다 죽었음을 암시함과 동시에 자아가 지닌 극도의 비애를 드러냄.

* 산새 → 죽은 아이의 영상

   

제재 : 혈육(자식)의 죽음

◆ 주제 : 죽은 자식에 대한 상실의 슬픔

           상실의 슬픔을 관조하고 극복하고자 함.

[시상의 흐름(짜임)]

◆ 1∼3행 : 유리창에 비친 영상

◆ 4∼6행 : 창 밖의 밤의 영상

◆ 7∼8행 : 외롭고 황홀한 심사

◆ 9~10행 : 죽은 아이의 영상과 상실의 슬픔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시인은 능란한 언어 구사를 통해 선명한 이미지를 살린 감각적 이미지즘 시인으로 1930년대 전후의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하였다. 그러한 그의 초기 시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잃어 버린 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견고한 이미지로 그려 낸 작품으로, 시인이 29세 되던 1930년에 쓴 것으로, 자식을 잃은 젊은 아버지의 비통한 심경을 주제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절제된 언어와 시적 형상으로 객관화한 점이 인상 깊다. 밤에 유리창 앞에서 잃어 버린 자식을 그리워하는데,  유리창 너머의 '밀려와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는' 무한한 어둠의 세계와 시인은 허전하고 괴로운 마음으로 대결적으로 작용한다. 기운없이 불어낸 입김 자국이 쉽게 사라지는 모습에서 가냘픈 새의 모습을 연상하고, 그 '새'는 바로 허망하게 시인의 곁을 떠나 버린 아이의 비유적 형상이다.

잃어 버린 아이에 대한 시인의 지극한 슬픔은 그 어떤 것으로도 달랠 수 없을 것임에도, 시인은 그 슬픔의 감정을 엄격히 통제하고 절제하여 직접적으로 노출하지 않고,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로써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 이 시의 특징이다.  그래서 죽은아이를 직접 표현한 시어는 하나도 없이 모두 '언 날개, 물 먹은 작은 별, 산새' 등과 같이 감각적인 사물로써 죽은 아이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이 시는 죽은 아들을 환각으로 마주하고 있는 아버지를 시적 자아로 설정하고 있다. 그는 한밤 중 흐린 유리창에 어른거리는 죽은 아들의 환각을 보고는 아들의 모습을 보다 또렷하게 확인하려고 유리를 닦는다. 그러나 유리를 닦고 나면 아들의 모습은 간데없고, 창 밖에는 오로지 새까만 밤만이 펼쳐져 있을 따름이다. 밀려드는 슬픔에 시적 자아의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맺히고, 물기 어린 눈에는 죽은 아들인 듯 보석 같은 별이 비친다. 시적 자아는 슬픔을 접어 둔 채, 환각에서나마 아들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며 다시금 입김을 흐린다. 이 순간 환각 속에서 아들을 마주한 흥분과 기대는 아들을 잃은 엄연한 현실을 확인하는 슬픔과 교차하고 있다. 그리고 이 역설의 장면을 뚫고, 슬픔과 비애의 절규가 치솟아 오른다.

이렇듯 이 시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절제된 감정으로 담담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그렇기에 그 슬픔은 더욱더 애절하다. ‘외로운 황홀한 심사’라는 심오한 역설은 그와 같은 절제된 감정으로 인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그 뒤에는 더욱 큰 슬픔이 터질 듯 부풀어 있다.

- 김윤식 엮음 <김윤식의 시특강> (주)한국문학사 -

 

■ 감정의 대위법

대위법이란 원래 두 가지의 상대적인 분위기나 정경, 주제 등을 일부러 결합시켜 작품을 구성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의 감정을 표현한 구절은 ‘차고 슬픈 것’과 ‘외로운 황홀한 심사’ 두 군데뿐인데, 슬픔과 외로운 감정이 차가운 감각과 황홀한 심사와 어우러져서 표현되고 있다. 이처럼 대비되는 감각이나 심사(마음)를 슬픈 감정과 대위(對位)시킴으로써 감정을 절제한 것이 감정의 대위법이다.

 

[생각해 볼 거리]

1. 이 시는 '감정의 절제가 완벽에 가깝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떤 감정이 절제되어 있는지 설명하시오.

→ 폐렴으로 죽은 어린 자식에 대한 슬픔을 노래하면서도, 외면에는 슬픔이나 아픈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감정적 토로는 오직 '슬픔, 외로운' 정도의 단어밖에는 없다.

 

2. '물 먹은 별'의 내포적 의미를 설명하시오.

→ '별'은 아버지 곁을 떠나 하늘 나라로 간 자식을 의미하며, '물 먹은'은 아버지의 눈가에 맺힌 슬픔의 눈물과 연상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