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포의 기억

                                                                              - 문정희 -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소금기 많은 푸른 물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바다가 뿌리 뽑혀 밀려 나간 후

꿈틀거리는 검은 뻘밭 때문이었다.

뻘밭에 위험을 무릅쓰고 퍼덕거리는 것들

숨쉬고 사는 것들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먹이를 건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왜 무릎을 꺾는 것일까.

깊게 허리를 굽혀야만 할까.

생명이 사는 곳은 왜 저토록 쓸쓸한 맨살일까.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저 무위(無爲)한 해조음을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물 위에 집을 짓는 새들과

각혈하듯 노을을 내뿜는 포구를 배경으로

성자처럼 뻘밭에 고개를 숙이고

 

 

 

먹이를 건지는

슬프고 경건한 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시집<양귀비꽃 머리에 꽂고>(2004)-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서정적, 체험적, 사색적, 성찰적, 긍정적

특성

    * 단정적 어조로 화자의 의지를 드러냄.

    * 관찰 → 사색 → 성찰(각성)의 과정으로 시상을 전개함.

    * 유사한 통사구조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살림.

    *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시적 상황을 묘사함.

    * 상황에 대한 화자의 긍정적 인식이 드러남.

    * 색채의 대조(푸른색 ↔ 검은색)를 통해 시적 의미를 강조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 화자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행위

    * 소금기 많은 푸른 물 → 생명력 없이 푸르기만 한 바닷물('검은 뻘밭'과 대조됨.)

    * 1, 2행 → 11, 12행과 함께 유사한 통사 구조를 반복하고 있음.

    * 바다가 뿌리 뽑혀 밀려 나간 후 →뻘밭을 가리고 있던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썰물'

    * 꿈틀거리는 검은 뻘밭 →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푸른 물'과 대조됨.)

    * 뻘밭에 위험을 무릅쓰고 퍼덕거리는 것들 →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것들

    * 사람들은 왜 무릎을 꺾는 것일까 / 깊게 허리를 굽혀야만 할까

        → 뻘밭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찰과 사색

    * 생명이 사는 곳은 왜 저토록 쓸쓸한 맨살일까 → 뻘밭의 보잘것없는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

    * 무위한 해조음 → 아무것도 없는 밀물이나 썰물이 흐르는 소리

    * 각혈하듯 노을을 내뿜는 포구

        → 겉으로는 아름답지만 그 이면에 삶의 아픔과 고통이 도사리고 있는 곳

            바닷가 사람들의 삶의 터전

    * 성자처럼 ~ 슬프고 경건한 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 바닷가 사람들에 대한 화자의 긍정적 인식

            힘들지만 경건하게 살아가는 바닷가 사람들의 삶

 

주제바닷가 사람들의 생명력 넘치는 경건한 삶

[시상의 흐름(짜임)]

◆ 1 ~ 10행 : 뻘밭의 생명체 발견과 뻘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사색

◆ 11~17행 : 뻘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경건한 마음으로 바라봄.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시인 문정희는 실존의 의미와 삶에 대한 애정을 솔직하게 형상화하였는데, 이 작품에서도 뻘밭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의 모습을 통해 생명력과 삶의 경건함을 노래하고 있다. 이 작품은 율포(전남 보성)를 배경으로 뻘밭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과 그 곳에서 일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화자는 이들을 바라보며 생명에 대한 경건함을 느끼고 있다.

검은색은 일반적으로 '죽음, 어둠, 허무'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푸른색은 '생명, 희망' 등의 긍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생명력 없이 푸르기만 한 바다의 푸른색에 부정적 이미지를 담고, 생명이 꿈틀거리는 뻘밭의 색인 검은색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

이 시에서 주목할 점 중의 하나는 화자가 능동적으로 바닷가를 찾아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화자의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화자를 뻘밭으로 이끌었고, 그럼으로써 화자가 뻘밭의 진정한 모습을 스스로 발견하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평소에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채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기고, 무의식 속에서 넘어가고 마는 소중한 환경들을 다시금 깊이 있게 관찰함으로써 성찰의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나희덕 시인의 말

동해의 시퍼런 파도가 원시적 생명력을 불러일으킨다면,

서해의 검은 뻘밭은 신산한 삶의 짠내를 물씬 풍긴다.

동해에서는 인간이 한 개 점으로 보이지만,

서해에서는 뻘흙을 뒤집어쓰고 깜박거리는 작은 생명도 유난히 크게 보인다.

그래서 신을 느끼려면 동해로 가고, 인생을 배우려면 서해로 가라 했던가.

소금기에 맨살을 비비며 종종거리는 뭇 목숨들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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