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륜
(年輪)
                                                                              - 김기림 -

                                                       

 

 

 

무너지는 꽃이파리처럼

휘날려 발 아래 깔리는

서른 나문 해야

 

구름같이 피려던 뜻은 날로 굳어

한 금 두 금 곱다랗게 감기는 연륜(年輪)

 

갈매기처럼 꼬리 덜며

산호(珊瑚) 핀 바다 바다에 나려앉은 섬으로 가자.

 

비취빛 하늘 아래 피는 꽃은 맑기도 하리라.

무너질 적에는 눈빛 파도에 적시우리.

 

초라한 경력을 육지에 막은 다음

 

 

 

주름 잡히는 연륜(年輪)마저 끊어 버리고

나도 또한 불꽃처럼 열렬히 살리라.

 

              -<춘추>(1936)-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감각적, 상징적, 주지적

표현

    * 공간의 이동을 가정한 시상 전개

    * 비유, 영탄, 청유 등을 통한 화자의 정서와 의지 표출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무너지는 ~ 발 아래 깔리는 → 하강의 이미지로 '의미 없는, 가치 없는'

    * 서른 나문 해야 → 덧없는 서른 몇 해의 인생(추상적 시간의 시각화 표현)

    * 구름 → 천상의 이미지, 이상 · 소망 · 목표 등의 이미지···

    * 굳어 → 죽음과 하강의 이미지, 좌절 · 체념의 삶 · 활력을 잃은 삶을 의미 

    * 한 금 두 금 ~ 연륜 → 삶의 과정을 나이테에 비유(추상성의 구체화)

    * 곱다랗게 → 반어적 표현(꿈과 활력을 잃고 화석처럼 굳어버린 부정적 과거의 삶에 대한 인식)

    * 갈매기처럼 꼬리 덜며 → 현실을 떨치고 비상하는 화자

    * 산호 핀 → 아름다운

    * 섬 → 이상 세계, 미래 세계, 새로운 삶의 공간

    * 가자 → 외형상 청유형이지만 시적 화자 자신에게 하는 말로 다짐과 각오를 나타낸 말임.

    * 비취빛 하늘, 꽃, 눈빛 파도 → 육지(땅)에는 없는, 가치 있고 아름다운 존재들

    * 초라한 경력을 육지에 막은 다음 → 지나온 삶(과거)과의 단절 내지는 부정

    * 초라한 경력 → 연륜.  육지에서 쌓은 자랑스럽지 못한 초라한 경력, 곧 부정적인 삶의 자취

    * 주름 → 시련과 고난의 흔적(나이테)

   * 주름 잡히는 연륜마저 끊어 버리고 → 현실과의 단절

    * 나도 또한 불꽃처럼 열렬히 살리라 → 강렬하고도 새로운 삶에의 다짐과 소망

 

제재 : 연륜

주제열정적인 삶의 추구와 의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세상 속에서 무너지고 깔리는 서른 남짓한 화자의 삶

◆ 2연 : 이상을 펼치지 못한 채 굳어가고 있는 화자의 삶

◆ 3연 : 이상적 공간인 섬으로 날아가고픈 소망

◆ 4연 : 이상적 공간인 섬의 아름다움

◆ 5연 : 초라한 경력과 연륜을 끊어 버리고 열렬한 삶을 살려는 의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시의 화자는 서른 몇 해의 인생을 '무너지는 꽃이파리처럼 휘날려 발 아래 깔리는' 나이라고 제 1연에서 표현했다. 이는 덧없다는 뜻이다. 제 2연에 이르면 '구름같이 피려던' 뜻을 펼치지 못하고 굳어 나이테가 되고 있다고 했다. 이 시에서 연륜은 좋은 뜻이 아니다. 그것은 활력을 잃고 화석처럼 굳어져 버린 삶의 남은 자욱이 되고만 것이다. 그래서 제 3연에서 보듯이 시의 화자는 비약을 꿈꾼다. 그 비약의 꿈은 산호 핀 바다에 내려앉은 섬으로 떠나가는 것이다. 그곳에는 비취빛 하늘이 있고, 맑은 꽃이 피고, 눈빛 파도가 있다. 육지에서 쌓은, 자랑스럽지 못한 초라한 경력, 곧 연륜은 이곳에서 사라지고, 그곳에서 그것을 태우는 '불꽃처럼 열렬히 살리라.'고 다짐한다.

이론과 창작에서 두루 주지적 태도를 견지한 이 시인의 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이 시는 낭만주의적이다. 서른을 넘긴 나이에 느끼는 허무를 노래한 시는 그후 많았지만 김기림 시인의 이 작품 중에서는 그 효시라고 할 만하다. 뭍(육지)에서는 불꽃처럼 살 수 없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모든 낭만주의자에게 묻는 현실주의자의 아픈 질문이겠지만, 떠나지 않고는 도리가 없는 것일까. 떠나는 것은 왜 우리에게 한없는 꿈과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역마살, 순화하자면 방랑벽의 발로일 것이다. 정작 훌쩍 떠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드물 게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도 있다. 떠남을 꿈꾸는 데서 그치지 않으면 그는 또한 낭만주의자가 아닌 것이다.   [해설:이희중]

현실 <육지>

소망

이상 <섬>

무너지는 꽃 이파리처럼 휘날려 발아래 깔리는 삶

비취빛 하늘과 맑은 꽃. 눈빛 파도가 있는 섬에서 불꽃처럼 열렬히 사는 삶

갈매기처럼 꼬리 덜며

산호 핀 바다 바다에 나려앉은 섬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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