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오세영-

                                                       

 

 

 

세상의 열매들은 왜 모두

둥글어야 하는가.

가시나무도 향기로운 그의 탱자만은 둥글다.

땅으로 땅으로 파고드는 뿌리는

날카롭지만,

하늘로 하늘로 뻗어가는 가지는

뾰족하지만

스스로 익어 떨어질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

 

덥썩

한입에 물어 깨무는

탐스런 한 알의 능금

먹는 자의 이빨은 예리하지만

먹히는 능금은 부드럽다.

 

그대는 아는가,

모든 생성하는 존재는 둥글다는 것을

스스로 먹힐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상징적, 예찬적

특성

① 자연물을 통해 삶의 진리를 깨달음

② 원과 직선의 대립적 이미지를 통해 시상을 전개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열매 → 원만함과 충만한 사랑의 이미지

* 가시나무 → 날카롭고 섬뜩한 이미지

* 뿌리, 가지 → 열매와는 다른 직선의 이미지, 현실의 고난에 대항하는 모습

* 스스로 익어 떨어질 줄 아는 열매 → 자기희생을 통해 새 생명을 준비하는 '열매'의 사랑

* 모 → 날카로운 각이 진

* 먹는 자의 이빨 → 공격적이고 탐욕스러움의 이미지

* 먹히는 능금 → 자기희생적이고 사랑이 충만한

* 모든 생성하는 존재는 둥글다는 것을

     → 둥글고 부드러운 존재야말로 가장 숭고하며 가장 강하다는 의미

* 스스로 먹힐 줄 아는 열매 → 스스로 희생함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존재

 

주제열매의 모양에 담긴 원만한 삶의 자세와 생명력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뿌리, 가지와 달리 모가 나지 않은 열매의 모습

◆ 2연 : 먹는 존재는 이기적이지만 먹히는 존재는 희생적임.

◆ 3연 : 모든 생성하는 존재는 둥글고 모가 나지 않음.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열매의 모양이 둥근 것으로부터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깨닫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열매의 모나지 않은 모습과 부드러움 속에서 강한 생명력을 포착하고 있다. 시인의 성찰은 단지 눈에 보이는 열매의 모습에 국한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까지 상상하고, 열매에 담긴 생명력을 새롭게 포착해 내고 있다. 둥근 열매의 모습에서 모나지 않은 삶의 모습을 읽어 내는 것은 시인이 대상을 관찰하고 그 속성을 개성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가능한 일이다.

이 시는 원형의 이미지를 지닌 열매에서 다른 존재에 대한 사랑과 희생을 발견하고, 모든 생성하는 존재는 부드럽고도 모가 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노래하고 있다. 화자는 1연에서 '세상의 열매들은 왜 모두 둥글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한 뒤,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에 대한 관찰을 시작한다. 나무의 뿌리와 가지는 뻗어나가는 속성 때문에 날카로운 직선의 이미지를 지니지만, 열매는 스스로 익어 떨어질 줄 알기에 모가 나지 않은 원형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러한 사실에서 스스로 먹혀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존재는 곧 생성하는 존재라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즉, 화자는 열매로 상징되는 자기희생적 존재의 사랑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 더 읽을거리

'열매' 속에는 시작과 끝이 들어 있다. '열매' 속에는 겨울, 봄, 여름, 가을이 들어 있고 한 해의 자연 현상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둥근 열매는 원이 가지는 모든 속성을 지니고 있다. 만다라(Mandala)를 느끼게 한다. 융(Jung, 1875-1961)은 만다라가 지니는 우주적이며 영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원은 모든 인간에게 각인된 원형으로 통일체의 상징이며 정신적 성장을 위한 과정에서 꿈이나 그림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하였으며, 이런 만다라는 인간에게 침착함과 고요함, 일체감과 자아존중감을 준다고 하였다.

원은 인간이 살고 있는 자연과 주변 환경 모든 곳에 존재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둥글고, 우리는 태어나기 전 아늑한 원형 공간이 어머니의 둥근 자궁 속에서 열매처럼 익어가지 않았던가. 그러기에 둥글다는 것은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근원적인 모습으로 내재화되어 있는 것이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둥근 열매 하나에서 "모든 생성하는 존재는 둥글다는 것을 / 스스로 먹힐 줄 아는 열매는 / 모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통찰할 수 있다면 우리네 삶의 시작과 끝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문화저널 21 편집위원 서대선    

"둥근 열매는 맞춤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입이 동그랗게 생겼으니까 순하게 먹히는 것들은 모두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고. 입술의 둥근 괄약근이 오물오물 먹기 좋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으신 거라고. 앵두처럼 예쁜 아가씨, 능금처럼 예쁜 아가씨. 둥근 것에는 예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착하게 먹힐 수 있는 것들이어서 그렇다고." (시인 한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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