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이 타는 가을 강

                                                                              -  박재삼  -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춘향이 마음>(1962)-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전통적, 서정적, 감각적, 애상적, 회고적, 향토적

◆ 표현

* 판소리나 민요조의 종결어미(∼고나,  ∼것네)로 정감을 살림.

* 반복에 의한 점층 효과(불빛도 불빛이지만, 저것봐 저것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 공감각적 심상(저녁놀 ⇒ 울음 : 시각의 청각화)

* 물(눈물-강-바다)과 불의 이미지를 결합하여 소멸(죽음)의 이미지를 극대화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 → 안정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마음

*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 → 쓸쓸하고 안타까운 인생을 대유적으로 표현함.

* 등성이 → 가을 강을 볼 수 있는 곳이면서,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가 절정에 이르는 곳임.

*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

   → 육친에 대한 그리움과 일가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인 반가움을 담고 있는 불빛

*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 어린 시절에 겪은 슬픈 사랑의 추억과 현재의 고독과 삶이 덧없음에 대한 한을 지닌 화자의 눈에는 저녁 노을에 비친 강물이 울음으로 파악되고 있다.

* 울음이 타는 강

   → 저녁 노을이 물든 강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시구임.

       물의 이미지와 불의 이미지를 결합된 표현임.

      '사라져 가는 모든 것에 대한 슬픔'을 상징

* 2연 → 인간의 죽음과 자연물의 사라짐을 병치시킨 연

* 저것 봐, 저것 봐 → 저녁 노을이 물든 강에서 느끼는 경이감.

*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 인생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 찬 유년시절과 청년 시절이 지나감을 뜻함.

*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 인생의 희로애락을 어느 정도 경험하고 난 중년시절이 지나감을 뜻함.

*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 죽음을 눈 앞에 둔 노년의 모습으로, '미칠 일'이란 삶에 대한 한을 의미함.

* 소리 죽은 가을 강 → 인생의 유한성을 인식하며 슬픔과 한을 내면화한 모습

                                  내면의 슬픔이 고도로 절제된 모습

* 바다 → 죽음과 재생, 유한성과 무한성의 합일을 나타내는 원형적 이미지

◆ 주제

* 인생 본연의 유한성(有限性)과 한(恨)

* 인간의 본원적 사랑과 고독과 무상성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 → 인생의 고독과 서러움

◆ 2연 : 황혼 무렵 노을 진 가을 강 → 인생의 유한성과 슬픔

◆ 3연 : 노을 진 가을 강 → 보편적 자연현상을 통해 인생의 유한성과 희노애락과 한을 근원적인 것으로 내면화하고 심화함.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에서 화자는 제사를 치르기 위해 고향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마을 앞을 도도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그에 얽힌 어린 시절의 슬픈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그런데 이로 인해 나타나는 한(恨)의 정서는 단순히 관념화되고 보편화된 정서가 아니라, 사랑의 실패와 관련하여 화자의 생활 속에 녹아들어 있는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산등성이에서 강물을 바라보며 옛 생각에 슬픔을 참지 못하는 섬세한 감정의 흐름을 강물의 흐름과 교차시키는 화자의 태도는 분명히 낭만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연적 배경이 단순히 토속적인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고 개인의 삶과 세월에 대한 담담한 성찰을 돕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지닌 현대적 서정의 측면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보것네'와 같은 판소리조의 어미와 구어체를 중심으로 한 평이한 언어의 구사,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인 이미지의 결합에 의한 시적 대상의제시 등은 이 시가 보편적인 정서를 노래하면서도 현대적인 개성을 지닐 수 있도록 하는 밑바탕이 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살아가는 일의 한스러움, 사랑하는 일의 한스러움이 아름다운 토속적 말씨로 표현된 작품이다. 고향을 찾아가는 마을 앞에 흐르는 노을 진 가을 강을 보며 인생의 유한함과 정한을 노래한 작품이다.

◆ 원형적 이미지로서의 "강(바다, 물)"

물(강, 바다)의 원형적 이미지는 "창조의 신비, 탄생, 죽음, 소생, 정화와 속죄, 풍요와 성장" 등이다. 일반적으로 '강'의 이미지가 인생의 순환의 변화상을 나타내는 것에 비해, '바다'의 이미지는 영혼의 신비와 무한성, 무궁과 영원 등을 나타낸다.

이 시에서의 '강'은 우선적으로 인생의 변화와 그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그에 비해 '바다'는 무궁함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의 '바다'는 유한성과 무한성의 합일 혹은 인간의 삶과 자연의 합일이라는 큰 의미를 지닌다.

◆ 새로 쓰는 박재삼론

박재삼의 시에는 짙은 한(恨)의 정조가 깔려 있습니다. 방황으로 갈피를 못 잡는 울적한 마음으로 친구의 서글픈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며 산길을 걷다 보면 산등성이에 이르러 눈물에 젖고 마는 시적 화자의 모습을 봅니다. 이는 아마도 자신의 삶의 굴에에 대한 설움이 친구의 아픈 마음에 공감하는 형태로 표출된 것이라 하겠지요. 우리도 이따금씩 자신의 고민을 친구의 것인양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듯이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시적 화자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산등성이에서 그리운 불빛도 불빛이지만 같은 색으로 불타고 있는 가을 강을 문득 만나게 됩니다. 이는 박재삼 시인 본인의 이야기에 의하면 가난하게 자랐던 생활 체험 속의 응어리와 인간 본연의 사랑의 슬픔과 고독과 무상성에 대한 한을 지닌 화자의 눈에 저녁노을이 '울음'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강은 처음 시원한 산골짜기에서의 사랑으로부터 바다에 이르는 여정으로 집약이 됩니다. 이러한 강의 이미지를 자신의 인생 여정과 교묘하게 접목을 하여 사랑의 시작과 성숙 그리고 소멸에 이르는 정서를 노래합니다. 이러한 박재삼 시인의 서정은 우리의 전통적인 한과 그 궤를 같이 하는데 이는 시인이 어린 시절을 보낸 삼천포 시절의 가난했던 체험에 기인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서 노을에 물든 가을 강의 시각적 이미지가 울음소리의 청각적 이미지로 교묘하게 병치되는 공감각적 심상의 절묘한 하모니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모니는 소월이나 영랑 혹은 목월 등에 비해 그 서정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박재삼 시인의 시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광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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