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명(月明)

                                                                              - 박제천 -

                                                       

 

 

 

한 그루 나무의 수백 가지에 매달린 수만의 나뭇잎들이 모두 나무를 떠나간다.

수만의 나뭇잎들이 떠나가는 그 길을 나도 한줄기 바람으로 따라나선다.

때에 절은 삶의 무게 허욕에 부풀은  마음의 무게로 뒤처져서 허둥거린다.

앞장서던 나뭇잎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쩌다 웅덩이에 처박힌 나뭇잎 하나 달을 싣고 있다.

 

 

 

에라 어차피 놓친 길 잡초 더미도 기웃거리고 슬그머니 웅덩이도 흔들어 놀밖에

죽음 또한 별 것인가 서로 가는 길을 모를밖에.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초월적, 종교적

표현 : '제망매가'의 현대적 재수용

              불교적 인생관을 바탕으로 시상을 전개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나무 → 총체적 삶

    * 나뭇잎 → 개별적 삶, 유한한 생을 살아가는 인간 개개인

    * 모두 나무를 떠나간다 → 죽음을 의미함.

    * 나도 한줄기 바람으로 따라 나선다. → 운명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

    * 한줄기 바람 → 육신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근원적 모습

    * 때에 절은 삶의 무게 허욕에 부풀은  마음의 무게

         → 삶의 고달픔과 허망함, 일상적 삶의 무게, 현세에 대한 미련

    * 웅덩이 → 속된 생각과 요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 에라 어차피 ~ 흔들어 놀밖에

         → 낙천적 태도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떨쳐 버리고 생에 대한 달관을 극적으로 표출하는 부분

            '달을 싣고 있는 나뭇잎'을 통해 깨닫게 된 삶에 대한 인식이 담긴 부분

    * 달 → 삶과 죽음에 대한 깨달음과 인식, 순환과 반복

    * 죽음 또한 별 것인가 → 죽음에 대한 초월과 달관

  

주제 : 삶에 대한 성찰과 달관

[시상의 흐름(짜임)]

◆ 1~2행 : 나뭇잎과 바람으로 형상화된 인간 존재의 모습

◆ 3~4행 : 허둥거리는 '나'와 웅덩이에 처박힌 달(인식의 순간)

◆ 5~6행 : 죽음에 대한 인식과 달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제망매가>의 핵심적 대립 구조를 차용하고 있는 작품으로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자연 현상의 일부로 받아들이겠다는 순응과 달관의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월명>과 <제망매가>를 비교해보면,

두 편의 시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삶과 죽음의 허무한 경계 앞에서 그 인식을 함께 하고 있지만, 시적 전개에서 서로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제망매가>는 '한 가지에 나고도 가는 곳을 모르는 낙엽'처럼 죽음의 세계는 알 수 없고 두렵지만, 서방 정토에서 누이를 다시 만날 것을 확신하면서 죽음의 허무함을 극보하고 있다. <월명>은 수만의 나뭇잎들이 모두 나무를 떠나가야만 하는 죽음의 세계를, 한줄기 바람으로 따라나서야 하는 개체의 운명으로 인식하며 죽음을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적인 현상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순응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즉, 삶의 허무함과 죽음에 대한 초극을 주제로 삼고 있지만, 월명사가 종교적인 신념으로 이를 극복하려고 한 데 비해, 시인은 우리가 삶의 의미를 모른 채 살아가듯 죽음 역시 마찬가지라는 초연하고 순응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 감상을 위한 더 읽을거리

<월명>은 고승 월명사와 그의 시 <제망매가>를 소재로 하여 삶의 덧없음을 노래하고 있다. <제망매가>의 중심 이미지인 길 · 바람 · 나뭇잎은 그대로 <월명>의 시상을 이루고 있으며, 주제인 죽음과 삶의 문제도 직접적인 연관성을 지닌다. 먼저 첫번째 비유인 '나무' · '나뭇잎'은 각각 총체로서의 생과 개별로서의 인생을 의미한다. '한 그루 나무 · 수백 가지 · 수만의 나뭇잎'이라는 점층적 심상의 전개가 바로 생이라는 전체성 속에 분화되어 가는 개인의 생애를 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뭇잎은 단독자로서 유한한 생을 살아가는 우리들 하나하나의 표상이 된다. 나뭇잎으로 비유되는 인생에는 이미 덧없음 · 부질없음으로서의 삶에 대한 탄식이 깃들어 있다.

이러한 ‘나뭇잎’으로서 떠나가는 인생은 한 줄기 바람으로 비유적 전이를 이루게 된다. 나뭇잎이라는 공간적 이미지가 바람이라는 시간적 이미지로 변모함으로써 공간적 존재인 동시에 시간적 존재인 인간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뭇잎들이 떠나가는 그 길'을 따라나서는 바람으로서의 '나'는 생의 길을 걸어가는 육신의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원적 모습을 반영한다. 여기에서 "때에 절은 살의 무게/ 허욕에 부푼 마음의 무게" 등과 같이 오욕칠정에 사로잡혀 때묻은 현실을 살아가는 삶의 고달픔과 그에 대한 허망함이 드러나게 된다. "살의 무게 · 마음의 무게"라는 귀절 속에는 인간의 육신과 정신이 모두 물질적 구속 속에 존재한다는 삶의 숙명성에 대한 인식이 깃들어 있다. 그러므로 "나뭇잎들 사라지고 / 나뭇잎 하나 달을 싣고 있다"처럼 시간 속에 사라져가는 인간의 숙명성과 함께 '달빛'과 같이 빛나는 인식의 한 순간을 살아가는 생의 본질이 극명히 제시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의 시간적 존재성과 순간성에 대한 자각은 죽음에 대한 투시로 연결된다. "죽음 또한 별것인가 서로 가는 길을 모를 밖에"라는 결구 속에는 죽음의 극복, 무의 초극의지가 담겨 있다. 이 귀절은 「제망매가」의 "生死路는 예 이샤매 저히고"를 변용한 것으로서 죽음 역시 삶의 이면에 불과하여 생성과 소멸을 무수히 되풀이하는 대자연의 순환적 질서의 한 현상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시는 물질적 존재, 현상적 존재로서의 삶에 대한 자각과 함께 그 덧없음의 인식, 그리고 덧없음의 인식을 통한 무의 초극에 핵심이 놓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 김재홍(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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