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시(遠視)

                                                                              - 오세영 -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의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다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1992)-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상징적, 역설적, 관념적, 관조적

표현 : 이별과 늙음이라는 현실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수용하는 담담한 어조

              이별 뒤에 사랑하는 사람을 더 잘 볼 수 있기에 이별이란 긍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봄.

              동일 구문을 변형, 반복함으로써 화자의 정서를 강조하고 주제를 부각시킴.

             '원시'를 '멀리 바라봄'과 '늙어서 생긴 원시안'이라는 중의적 의미로 활용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멀리 있는 것은 / 아름답다. → 멀리 있다는 것은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대상 자체의

                         본질이 훼손되지 않고 무소유와 불간섭을 통해 사랑의 완성과 내면적 성숙에 이르게 됨.

    * 무지개, 별, 벼랑에 피는 꽃 → 관조의 대상, 물리적 거리감으로 인해 아름다움을 갖게 되는 대상

    *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 침범하거나 훼손하거나 소유할 수 없는 까닭에

    *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 멀리서 보는 것이 비로소 가능해짐.

    * 마지막 편지 → 헤어지자는 이별의 편지

    * 돋보기 → 가까운 것을 보게 하는 수단이며, 관조하는 태도가 가능하게 되었음을 암시

                     나이가 들면 가까운 것은 볼 수 없기에 돋보기가 필요하지만, 멀리 있는 것은 돋보기가 없이도

                               볼 수 있으며, 이것은 곧 삶의 완숙을 의미함.

    * 머얼리서 바라다볼 줄을 / 안다는 것이다. → 이별에 대한 성숙한 인식

 

제재 : 이별

화자 : 이별을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멀어지는 것이라고 보는, 이별에 대한 성숙한 인식을 드러냄.

주제사랑과 이별에 대한 원숙한 인식과 깨달음

           나이가 들어 갖게 된 사랑에 대한 관조적 자세

[시상의 흐름(짜임)]

◆ 1 ~6행 : 멀리 있는 것이 아름다운 이유

◆ 7 ~ 11행 : 이별의 의미

◆ 12 ~ 19행 : 늙음의 의미, 사랑과 이별에 대한 원숙한 인식과 깨달음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멀리 봄(遠視)'이라는 행위를 통해 인식론과 존재론에 대한 사유를 비유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시다. 멀리 보는 행위는 대상과 주체 사이에 관조할 수 있는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관조하는 주체는 대상을 침범하거나 훼손할 수 없으며, 완전히 소유할 수도 없다. 그러한 거리 속에서 대상은 대상 자체의 빛을 발하고, 그 자체의 본질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멀리서 바라봄의 미학으로부터 존재론적인 성숙에 이르는 길이 나타난다. 대상으로부터 떨어져 있음, 홀로 있음은 미적인 관조를 가능하게 하면서, 동시에 실존적인 탐구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고독은 세계에 내던져진 인간 실존의 조건이다. 늙음이나 이별은 그러한 고독을 더욱 깊게 하는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에는 연인과의 이별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지만, 그것을 서러워하지 않는다. 이별이 헤어짐이 아니라 멀리서 바라보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이별은, 타인을 소유하는 사랑이 아닌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더 큰 사랑을 위한 것이 된다. 이러한 역설적인 깨달음을 통해서 내면적인 성숙에 도달하는 것이다. 결국 이 시에 나타나는 미적인 거리 두기는 사물의 본질을 보는 방식이자 인간의 존재 조건을 깨닫는 일이며, 사랑을 완성하는 방법을 배우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관조적 태도란, 대상과 거리두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갖추기 위해서는 외적 상황에 연연해 하지 않고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마음의 평정 상태가 요구된다. 마치 물결이 고요해야 그곳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올바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이로써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깨달음을 얻고 그 가치를 내면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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