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독

                                                                              -  이승훈  -

                                                       

 

 

 

램프가 꺼진다. 소멸의 그 깊은 난간으로 나를 데려가 다오. 장송(葬送)의 바다에는 흔들리는 달빛, 흔들리는 달빛의 망또가 펄럭이고, 나의 얼굴은 무수한 어둠의 칼에 찔리우며 사라지는 불빛 따라 달린다.

오 집념의 머리칼을 뜯고 보라. 저 침착했던 의의(意義)가 가늘게 전율하면서 신뢰(信賴)의 차건 손을 잡는다. 그리고 시방 당신이 펴는 식탁(食卓) 위의 흰 보자기엔 아마 파헤쳐진 새가 한 마리 날아와 쓰러질 것이다.

 

 

 

 

                            -<현대시 13집>(1967)-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초현실적, 무의식적, 자의식적, 주지적,  비대상(非對象)의 시

◆ 표현 : 내면세계를 대상으로 한 자동기술법

              무의식의 심상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램프가 꺼진다 → 어떤 상황으로 이끄는 환기 작용

                                밝음에서 어둠으로 변화되는 상황

                                내면세계의 어둠이 표출되는 상태

    * 장송의 바다 → 음산하고 적막한 분위기

    * 흔들리는 달빛 → 적막한 분위기

    * 오, 집념의 머리칼을 뜯고 보라 → 내면적 감정의 급격한 용솟음

    * 당신 → '나'의 객관화된 상황

    * 파헤쳐진 새 → 처절하고 참담한 내면상황

 

◆ 주제현실의 참담한 상황에 대한 무의식적 저항

              자의식의 어두운 주관적 내면

제목 <위독> → 이 시는 무의식의 내면 세계를 심상으로 나타낸 것이지만, 그 내면 세계가 참담, 처절, 고독 등의 정서적 분위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한 참담, 처절, 고독 등의 정신 상황은 당대의 역사적, 사회적 현실 상황에 대한 무의식적 반응이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위독'이라는 말은 시의 분위기를 제목으로 붙인 것이며, 동시에 현실에 대한 진단의 뜻도 있다.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제 1호에서 제 9호까지의 연작시로 이루어져 있는 것 중 제 1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들 각 편이 의미의 맥락을 갖는 것이 아니고, 다만 '위독'이라는 말의 '심상'을 공통적 모티프로 삼고 있을 뿐이다. 이 시는 내면 세계의 처절하고 참담한 감정적 분위기를 순간순간 떠오르는 언어들의 상호 충돌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를 통해 우리가 체험해야 하는 것은 이들 언어들이 상호 충돌을 통해 이룩해 내는 내면적 분위기 속에 함께 빨려들어가 그 상황 속에서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시는 현실의 실제적 상황에 부딪혀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한 실존의 내면의 무의식적 환상를 심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의 그 처절하고 참담한 정서적 상황은 곧 현실의 참담한 상황의 무의식적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에 보이는 시어(램프, 난간, 장송의 바다, 달빛, 망또, 어둠의 칼, 불빛, 집념의 머리칼, 차건 손, 식탁, 흰 보자기 등등)는 어떤 의미 질서의 맥락 위에 놓이는 것이 아니고 무의식적 내면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자의식의 어두움, 또는 깊숙이 배어 있는 절망이나 고독의 감정을 제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단편적 사물들이다. 따라서, 이러한 시어들은 무의식적 내면 공간 속에  떠도는 것들이고, 그 떠도는 것들은 시인의 개인적 내면인 어두움, 고독, 절망 등에 의해 발생된 것들이다. 따라서, 이 시는 어떤 의미 있는 한 덩어리의 말을 하고 잇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비유적 표현 기법을 가지지 않고, 다만 서술적 기법에 의해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시를 비대상(非對象)의 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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