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구자명 씨

                                                                              - 고정희 -

                                                       

 

 

 

맞벌이 부부 우리 동네 구자명 씨

일곱 달 아기 엄마 구자명 씨는

출근 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아침 햇살 속에서 졸기 시작한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경적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옆으로 앞으로 꾸벅 꾸벅 존다.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꼭

부처님처럼 졸고 있는 구자명 씨.

그래 저 십 분은

간밤 아기에게 젖 물린 시간이고

또 저 십 분은

간밤 시어머니 약 시중 든 시간이고

그래 그래 저 십 분은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일 거야.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잠 속에 흔들리는 팬지꽃 아픔

식탁에 놓인 안개꽃 멍에

그러나 부엌문이 여닫기는 지붕마다

여자가 받쳐든 한 식구의 안식이

아무도 모르게

죽음의 잠을 향하여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

 

           -<또 하나의 문화>(1987)-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서정적, 현실비판적

표현 : 여성의 힘든 삶에 연민을 담은 목소리

              영화의 오버랩 기법처럼 시상을 전개함.

              출근버스 속에서 여성이 처한 삶의 고단함을 상상적으로 유추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경적 소리에도 ~ 꾸벅 꾸벅 존다 → 피곤에 찌들어 정신없이 조는 모습

    *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 고단한 삶이 일년 동안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냄.

    * 간밤 아기에게 젖 물린 시간 → 가사노동

    * 간밤 시어머니 약 시중 든 시간 → 가사노동

    *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 → 가사노동

    * 잠 속에 흔들리는 팬지꽃 아픔 / 식탁에 놓인 안개꽃 멍에

      → 가정의 평온함을 위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의 아픔과 고통을 구체적인 사물에 투영하여 형상화

          잘 정돈된 집안의 아름다움 뒤에 숨어 있는 여자(주부)의 희생과 아픔

    * 여자가 받쳐 든 한 식구의 안식 → 여자가 희생됨으로써 누릴 수 있는 식구들의 안식

    * 죽음의 잠 → 너무 피곤하여 죽음처럼 깊이 잠이 듦.

                          피곤함이 마치 죽음으로 삶을 갉아 먹음.

    *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 → 너무 피곤하지만 잠조차도 제대로 잘 수 없는 정말적 상황을 나타냄.

    * 구자명 씨 → 직장 생활과 가사 노동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우리 시대 기혼 직장 여성을 대변하는 인물

   

제재 :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여성의 삶과 희생

주제여성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여성의 고단한 삶에 대한 연민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출근 버스에서 졸고 있는 구자명 씨

◆ 2연 : 구자명 씨의 고단한 일상에 대한 추측

◆ 3연 :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현실에 대한 인식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가사 노동과 직장 생활이라는 두 가지 일에 시달리는 어느 여성의 고된 하루 일과를 그린 시이다. 아침 일찍 먼 곳으로 출근하면서 출근 버스 안에서 졸고 있는 모습, 퇴근 후에도 쉴새 없이 일하는 '구자명 씨'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집안 일과 직장 일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 여성의 모습이다. 그러한 여성을 고통을 '잠'이라는 소재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남성 중심의 억압적 구조 속에서 이중으로 고통 받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구자명 씨는 7개월 된 아이가 있는 맞벌이 주부로 그녀는 날마다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는 직장 여성이면서 가정의 일도 돌보느라 이중고에 시달린다. 그래서 그녀는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버스 안에서 졸고만 있다. 졸고 있는 동안의 십분, 십분이 '간밤에 시어머니 약시중'을 들거나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남편을 위해 버린 시간이다. 때문에 이 시에서 나오는 '아침'은 구자명 씨가 피곤에 지쳐 졸고 있는 시간으로서 부정적인 의미이다. 또한 여기서 남성은 무책임하고 비생산적인 존재, 방해하고 귀찮으며 돌봐주어야 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으며,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이란 시어가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그녀는 쉴 새 없이 가정과 직장을 오가며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다. '안개꽃 멍에'란 작지만 무수한 꽃을 피우는 안개꽃과 멍에를 동일시하며 구자명 씨의 고통 상태를 잘 나타내고 있다.

 

■ 고정희(1948 ~ 1991) : 퍼온 글

1. 서론

시인 고정희는 해남군 삼산면에서 출생하여 독신녀로 치열한 현실 인식과 여성해방주의, 기독교 정신과 지리산을, 그리고 해남을 떠올리게 했던 시인이었다. 실천문학사 일을 보던 소설가 김영현이 본 고정희의 마지막 모습은 종로에서 있었던 국민대회 때 거리에 가득한 최루탄 속에서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었다.

부당한 현실에 분노하고 개혁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며 시를 쓰던 시인은 우아하고 고상한 여류문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해남 그의 생가는 시인이 생전에 사용하던 물품과 손때 묻은 책들을 그대로 보존한 방을 비워두고 있고 그 곳을 찾아간 사람들은 그의 생전의 지향점과 흔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또 고향집 뒷동산에 늘 정갈하고 푸르게 관리되는 그의 묘소에 참배까지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각별하고 지극하게 기억되는 걸까. 그의 시작품들을 통해 시세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2. 존재의 이유와 구원의 시작(詩作)

시인의 시혼이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열정적이었음은 일단 다작의 시집들과 각 시집의 독자성에서 알 수 있다. 그가 남긴 10권의 시집에는 시대와 사회와 삶에 대한 성찰과 고뇌뿐 아니라 어둠을 뚫고 나아가 새벽을 깨우려는 의지로 충만해 있다. 최초의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1979)를 출간한 것을 비롯하여 10권 정도 되는데, 1979년부터 1991년까지 1~2년 사이에 꾸준히 한 권의 시집을 출간하였다. 유고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1992)와 한국대표시인 100인 선집 중 90번 째 시선 <뱀사골에서 쓴 편지>(1991)가 있다. 고정희는 놀랄 만한 다산성 시인이면서도 결코 어느 하나 함부로 창작해 내지는 않았다고 평가된다. 오직 '시를 쓰기 위해서 살았던' 것 같은 그에게 시는 존재의 결과이자 이유였고 구원이었다.

3. 남다른 열정과 사회활동

그의 삶이 남다른 열정과 순수로 점철된 탁월한 것이었음은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평가이다. 그는 자신과 주변 사람, 사회와 세상과의 관계를 선명히 파악한 사람으로서 인생을 일관성 있게 그리고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인생에서 우리가 소망하고 또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실천한 사람 중의 하나이며 시와 삶이 거의 일치한 보기 드문 시인이었다.

기독교 신문사, 크리스찬 아카데미 출판 간사,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거쳐 여성 문화운동 동인 <또 하나의 문화>에서 열심히 활동하였는데 이런 활동들은 그의 시를 '정한(情恨)'이나 '슬픔' 등과는 거리가 먼, 활기와 강인함으로 가득 차게 한 계기가 되었다.

그의 시는 사유나 관념을 통해서 창작된 것이 아니고 현실 생활을 통해서 창작되었고 그래서 늘 살아 움직여 역동성과 다양성을 지녔던 것이다. 그 생애의 치열함에는 수유리 종교의식과 광주의 역사의식, 그리고 여성의식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새벽 다섯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시를 쓰거나 묵상에 잠기는 생활을 했던 그는 분명 시를 통해 구원에 이르려 한 시인이었다.

4. 어둠의 시대와 불기둥의 시(詩)

시인의 초기 시편들은 막막한 광야를 인도하는 불기둥을 지향하고 있다. '불기둥'은 구약성서에서 '구름기둥'과 짝을 이루는데 모세를 좇아 애굽의 노예생활을 벗어나 새로운 땅을 찾아 광야를 헤매이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이 보내신 가이드가 바로 불기둥과 구름기둥이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에게서 고정희는 구름기둥이 아닌 불기둥을 취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낮이 아닌 밤이요, 어둠과 암흑의 땅이며 바로 '실락원'이라는 인식 때문이었으리라.

시인의 정신과 영혼이 '불의 상상력'에 근거해 있음을 절감해 왔다는 정효구 교수의 지적과 같이 그의 초기 시집들은 이 '불기둥'이 장악하고 있으며 성서의 비유와 상징을 즐겨 사용하고 있어 서구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그의 첫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술틀 밟는 여자'의 이미지로 채워져 있다. 포도주를 만들기 위한 술틀을 밟는다는 행위 자체가 지중해 연안의 이국적 정서를 유발할 뿐 아니라 짜라투스트라, 카타콤베, 브라암스, 파블로 카잘스 등의 제목에서도 서구적 정서를 느끼게 해 이런 주제들이 어쩐지 시인의 몸에 잘 맞지 않는 어딘지 겉도는 옷처럼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실락원 기행>이야말로 더더욱 불길의 뜨거움으로 휩싸여 있다. 춥고 어두운 땅과 인간들을 녹일 수 있는 질화로의 뜨끈함, 밤과 암흑의 시대를 밝힐 수 있는 램프의 밝은 빛, 꿈의 불기둥을 꿈꾸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적 자아의 지향은 끊임없이 불을 붙여 어둠을 밝혀야 한다는 <나찜 히크메트(Nazim Hikmet)>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시대의 아벨> 시편들에서 두드러지는 것도 시대의 어둠에 대한 인식이다. 카인에게 무고하게 살해된 아우 아벨을 찾는 하나님의 물음과 질타가 고정희의 시를 통해 우리에게 쏟아지고 있다. 안락과 번영과 평안을 위해 우리가 저버린 아벨은 누구인가? 아벨은 바로 억압받는 민중이며 억울하게 숨져간 광주의 원혼들이다.

80년대 초 우리 사회를 무고한 아벨을 죽인 어둠의 시대로 인식하였지만 춥고 어두운 겨울의 무덤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희망과 용기를 간직하는 것만이 오직 어둠을 이기는 비결이라고 생각했다.

5. 살림의 굿, 마당굿 시

모태신앙인으로 자라나 기독교 정신이 충일하던 고정희는 한국적 전통의 계승과 남도 가락의 재현을 시인으로서 부여받은 최대 과제로 인식했다. 대한민국 문학상을 수상한 시집인 <초혼제>는 고정희의 시세계를 본격적인 수준에 오르게 한 장시집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종교적이며 상징적인 방법을 통해 씻겨 줌으로써 저승으로 천도할 수 있도록 하는 무속적 제의인 '씻김굿'을 차용한 이 시집에서 그는 죽음과 부활을 다루었는데, 총5부 중 특히 <사람 돌아오는 난장판>과 <환인제>를 마당굿시로 창작하였다. 이는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씻김굿이 시대의 어둠과 절망에 짓눌려 죽은 영혼을 천도하는데 적합한 제의라는 것을 수용한 반기독교로의 전환인 동시에 우리의 전통적 가락을 오늘에 새롭게 접목시키려 한 관심사의 결과였다.

이에 비해 6년 후에 출간한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에서 우리는 좀더 본격적인 '굿시'를 대할 수 있다. 이 시집은 부당한 역사에 대한 회개에서 치유와 화해에 르는 씻김굿을 그 주요한 창작의 근간으로 삼고 있으며, 그 굿의 효과적인 정서적 공감대 형성의 토대로서 어머니라는 주의 한을 어머니의 가슴으로 품어 역사속에서 희생당한 뭇 민중여성의 넋에 접맥시키려는 여성민중주의를 표방한 점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5월의 광주를 절규하거나 새기는 많은 시인들이 있었지만 그 상처와 한을 역사 속에서 이름도 없이 희생당하고 숨져간 민중 여성과 관련시킨 예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위로하면서 또한 민주화에 방해가 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여성의 리스트를 열거하기도 하였다. 이 땅의 여성 중 이 화살을 비껴갈 만한 여성이 있을까? 이 같은 현실을 넘어서서 우리가 지어야 할 '살림의 집' 아름답고 이상적인 집이 그려지기도 하였다. 원래 마당굿판을 위한 대본으로 쓰여진 이 시집으로 실제 공연을 하면서 그 현장성을 점검했더라면 훨씬 더 감칠맛 나고 거침없는 그리고 화자의 청중들이 그야말로 하나가 되어 한 판 어우러지는 그런 시로 향상될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6. 눈물의 시와 광주

고정희의 시세계는 흔히 첨예한 현실인식과 준열한 역사의 증언을 줄기차게 해댄 '메시지 강한 목적시'로 인식되지만, 80년대 후반에 이르면서 그의 시에서 처연한 슬픔과 절망, 고독이 점차 짙어지고 '불기둥'으로 서기보다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 바다'에 침잠함을 볼 수 있다. 이는 늘상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것'을 좇으며 살아온 열정적인 그의 삶 속에서 눌려 있던 눈물많고 낭만적인 섬세한 심성이 시대의 무게를 떨쳐내면서 자연스레 점차 자신의 시세계를 장악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개인적으로는 고향을 상징하는 어머니의 부음과 독신자로서 맞게 되는 40대의 회한 등이 결핍과 갈망을 한층 강화하게 된 때문이라 이해된다.

해남에서 태어나 70년대 말 광주 YWCA 간사로 일한 적 있는 그에게 광주는 마음의 고향이었고, 그래서 광주의 고통은 뼈저리게 다가왔다. <눈물꽃>, <지리산의 봄>,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 <광주의 눈물비> 등의 시집에 이르면 온통 흘러내리는 눈물이 가득하다. <눈물꽃>에서 가장 처절한 세계인식이 드러난 시는 <프라하의 봄. 8> 시편들이다. 산발하고 눈물 핏물 뒤집어 쓴 채 젖가슴 도려낸 흉악한 꼴로 두 눈에 쌍불 켜고 오는 '미친 년'이 바로 5월의 원혼이다. 처참하게 죽어 구천을 헤매는 영령들은 '하나님께 삿대질하며, 하늘의 동맥에다 칼을 꽂는' 미친 짓을 하는데, 이는 바로 절망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요 절규이다. 하지만 눈물 범벅이 된 속에서도 고정희의 시는 여전히 뜨겁고 강하다. 상처를 그냥 덮어두고 쉬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잊어서는 안 된다고 외치는 그의 모습은 '광야의 선지자'와 같았다.

눈물에 젖어 세계를 향해서 외치는 시인의 음성은 한없이 강인하고 절박하면서도 섬약하고 투명해서 '불의 혼'과 '물의 심성'으로 시 작품에 스며들어 단일성을 거부하는 폭넓은 시세계를 형성할 뿐 아니라 리얼리즘시와 서정시의 화해를 가능케 하였다.

7. 지리산과 고향 그리고 어머니

지리산은 고정희의 정신적 고향이었다. 고단하고 외로울 때 그에게 사랑과 희망을 충전시켜 품어주던 지리산은 늘 시혼을 일깨워주던 그리운 곳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가 최후에 안긴 곳이 되고 말았다.

아름다운 철쭉이 파도치는 지리산을 울음을 참으며 그리움을 품고 절망의 능선을 넘어가는 시인의 모습은 왠지 비장하기까지 하다. 가슴 속의 불을 뿜어내고 나약해져 가는 육신을 다독이며 지리산 자락에서 위안과 책망을 얻는 것이다.

시인의 말처럼 시도 때도 없이 두 눈을 타고 내려와 내 완악한 마음을 다숩게 저미는 눈물, 세상에 남아 있는 것들과 세상 밖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게 하는 눈물 그 눈물이 '지리산의 봄' 시편들에 한껏 배어 있다. 그의 시를 '리얼리즘의 시'로 특징지으면서 그녀의 시에는 시적 자아와 세계와의 갈등 양상이 리얼하게 드러나 있고 시적 자아의 진리에의 염원이 잘 나타나 있다고 지적한 송현호 교수는 고정희의 시가 서정시 중심의 우리 시단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여 우리 시의 폭을 넓혔다고 그 의의를 평가하였는데 이 는 고정희에게 지리산과 고향인 해남, 어머니가 늘 자리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여겨진다.

고향의 주인이신 어머니는 고정희에게 있어서 영원한 안식처이자 우주의 자궁이며 해방 사회의 이상적인 인간형이기도 하다. 그 어떤 어머니가 가슴 저리게  그립지 않으리오만 '부음'을 받고 달려가 '수의를 입히며' 바람개비처럼 가벼운 어머니를 '하관'해 땅에 묻고, '유채꽃밭을 지나며' 회상하는 과정 과정마다 눈물겨운 시작품들이 뒤따름은 그의 삶의 중심축에 어머니가 자리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의 시에서 어머니는 눌림받은 여성의 대명사이며 잘못된 역사의 고발자요 증언의 기록이며 동시에 치유와 화해의 미래이다.

그래서 시인은 인간 세계의 본을 어머니의 자궁으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그가 운동가가 아닌 시인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지리산과 고향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고향정신'은 시세계의 서정적 원천이 되어 리얼리즘시에 서정성을 부여하는 긍정적 축으로 작용하였다고 생각된다.

8. 일생마침

우리나라 여성해방운동과 여성문화운동에 있어서 고정희의 궤적은 큰 발자취로 남겨졌다. 그의 시집명대로 '여성해방출사표'를 던지면서 시작된 그의 여성해방운동과 글쓰기는 우리 여성사와 문학사에 길이 기억될 만한 것이다.

이 시집에서 우리는 여성해방사상만을 목소리 높게 외쳐대는 구호성 시와는 다른 차원의 시다운 시를 접하게 되는데, 여성사에 대한 남다른 이해를 바탕으로 역사와 시의 새로운 결합을 꾀한 점, 여성들 간의 벽을 충분히 인식해 계층간의 차이나 결혼 여부를 뛰어넘는 대동단결을 호소한 점, 사람의 근본과 돌아갈 곳을 '어머니'의 모성으로 상징화한 점 등이 탁월하다.

고정희 시인은 시인이며 구도자이며 운동가이자 학자이고 싶었던 그의 삶이 지향하는 대로 늘 치열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에게 있어 시와 삶은 하나였던 것이다. 그런데 시인다운 통찰력으로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던 것일까? 사후에 그의 책상 위에서 발견된 시 <독신자>는 그로부터 며칠 후 있을 자신의 장례식 광경을 미리 본 것처럼 묘사하고 있어 많은 사람을 경악케 하였다.

 

    환절기의 옷장을 정리하듯

    애증의 물꼬를 하나 둘 방류하는 밤이면

    이제 내게 남아 있는 길

    내가 가야 할 저만치 길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크고 넓은 세상에

    객사인지 횡사인지 모를 한 독신자의 시신이

    기나긴 사연의 흰 시트에 덮이고

    내가 잠시도 잊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달려와

    지상의 작별을 노래하는 모습 보인다.

     

    뒤늦게 달려온 어머니가

    내 시신에 염하시며 우신다.

    내 시신에 수의를 입히시며 우신다.

    저 칼날 같은 세상을 걸어오면서

    몸이 상하지 않았구나 다행이구나

    내 두 눈을 감기신다.           -<독신자>중 일부-

 

해남 가는 길에 동행했던 벗들에게 시인은 이렇게 자기 삶을 정리하는 시를 남겼다. 1991년 6월 9일 즐겨 찾던 지리산에서 안 좋은 일기에 감행한 산행 도중 실족사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정례식은 광주 기독 병원에서 치루어졌다. 중년의 문턱에서 마감한 짧은 생애 동안 현실과 여성을 끊임없이 일깨우며 자신을 부단하게 채찍질하던 여성 시인 고정희는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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