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늪 왁새

                                                                              -배한봉-

                                                       

 

 

 

득음은 못하고 그저 시골장이나 떠돌던

소리꾼이 있었다, 신명 한 가락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그만이던 흰 두루마기의 그 사내

꿈속에서도 폭포 물줄기로 내리치는

한 대목 절창을 찾아 떠돌더니

오늘은 왁새 울음 되어 우항산 솔밭을 다 적시고

우포늪 둔치, 그 눈부신 봄빛 위에 자운영 꽃불 질러 놓는다.

살아서는 근본마저 알 길 없던 혈혈단신

텁텁한 얼굴에 달빛 같은 슬픔이 엉켜 수염을 흔들곤 했다.

늙은 고수라도 만나면

어깨 들썩 산 하나를 흔들었다.

필생 동안 그가 찾아 헤맸던 소리가

적막한 늪 뒷산 솔바람 맑은 가락 속에 있었던가.

소목 장재 토평마을 양파드이 시퍼런 물살 몰아칠 때

일제히 깃을 치며 동편제 넘어가는

저 왁새들

완창 한 판 잘 끝냈다고 하늘 선회하는

그 소리꾼 영혼의 심연이

 

 

 

우포 늪 꽃잔치를 자지러지도록 무르익힌다.

 

               -<우포늪 왁새>(2002)-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상징적, 생태적, 관조적

특성

① 시각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시상을 감각적으로 전개함.

② 우포늪에 사는 왁새 울음소리를 소리꾼의 목소리에 빗댐.

③ 우포늪의 생명적 가치를 소리꾼의 진정한 소리를 통해 형상화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1~3행 → 우포늪의 왁새를 빗대기 위해 화자가 상상한 인물이다. 막걸리 한 사발이면 그만이라는 말에서 소박하고 털털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흰 두루마기는 왁새와의 시각적 유사성을 드러내기 위한 소재이다.

* 폭포 물줄기로 내리치는 → 절창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함.

* 한 대목 절창 → 소리꾼이 찾아 헤매는 진정한 소리. 득음

* 6~7행 → 소리꾼의 영혼이 왁새가 되어 우포늪에서 울고 있는 장면이다. 중요한 것은 그 울음을 통해 봄날의 자운영이 꽃불처럼 피고 있다는 것이다. 왁새의 울음이 솔밭과 자운영에게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 오늘은 왁새의 울음 되어 → 소리꾼의 영혼이 오늘은 왁새가 되어

* 자운영 꽃불 질러 놓는다 → 자운영(봄에 피는 자줏빛의 꽃)이 불을 질러 놓은 것처럼 피어나는 모습

* 혈혈단신 → 소리꾼의 외로운 처지를 나타냄.

* 텁텁한 얼굴에 달빛 같은 슬픔이 엉켜 수염을 흔들곤 했다 → 소리꾼의 슬픔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함.

* 어깨 들썩 산 하나를 흔들었다 → 소리꾼의 신명나는 판소리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함.

* 12~13행 → 평생 동안 진정한 소리를 찾아 헤맸던 소리꾼이 우포늪의 뒷산 솔바람에서 진정한 소리를 발견하고 있다.

* 늪 뒷산 솔바람 → 우포늪 전체와 교감할 수 있는 시인의 섬세한 감각과 깊은 통찰력이 반영된 표현

* 소목 장재 토평마을 → 우포늪 주변의 마을 이름

* 양파들 → 우포늪에서 재배하는 작물

* 시퍼런 물살 몰아칠 때 → 시퍼런 양파줄기가 한창 익어갈 때(5~6월)

* 동편제 → 판소리의 한 유파로 호남의 동쪽에서 발달했으며, 그윽한 우조를 바탕으로 함.

* 17~19행 → 우포늪에서 발견한 진정한 소리를 통해 우포늪의 동식물들이 무르익도록 생명력을 부여함.

* 그 소리꾼 영혼의 심연 → 우포늪이 가진 원시적 생명력의 힘

* 우포늪 꽃잔치를 자지러지도록 무르익힌다 → 온몸에 짜릿한 느낌을 가지도록 무르익게 함.

 

제재 : 우포늪의 왁새

주제우포늪이 가진 생명적 가치

[시상의 흐름(짜임)]

◆ 1~7행 : 전생의 소리꾼이 왁새 울음되어 우포늪에 나타남.

◆ 8~13행 : 소리꾼이 우포늪에서 평생 동안 찾아 헤맨 소리를 찾음.

◆ 14~19행 : 소리꾼이 우포늪에서 진정한 소리로 완창을 하며 생명을 무르익게 함.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우포늪에 살고 있는 시인이 '살아 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라 불리는, 우포늪이 가진 원시의 생명력을 통해 생명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작품이다.

우포늪에 가면 여기 저기서 어렵지 않게 왁새(왜가리)를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의 시상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왁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전생에 득음을 못한 채로 생을 마감한 한 소리꾼을 떠올린 것이다. 물론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라 화자의 상상 속에서 나온 인물이다. 시골장에서 막걸리 한 사발이면 만족하는 소탈한 소리꾼이지만 평생 동안 폭포 물줄기로 내리치는 것 같은 진정한 소리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우포늪에 와서 왁새의 울음이 되어 우포늪의 솔밭과 자운영에 퍼지는 것이다.

소리꾼의 입장에서 보자면, 소리꾼은 평생 혈혈단신으로 슬픔을 안고 살았다. 가끔 늙은 고수를 만났을 때 소리 한 번 해 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던 그가 우포늪에서 왁새 울음이 되어 평생을 꿈꾸어 오던 완창을 하게 된 것이다. 그건 우포늪의 원시 생명력이 소리꾼의 영혼의 심연을 끌어 올렸기 때문이다. 소리꾼 안에 잠재되어 있던 생명의 힘을 건져 올렸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시인은 이렇듯 우포늪이 가진 원시 생명력의 힘이 지구를 살아가는 모든 생명공동체의 심연 속에 내재되어 있는 생명의 힘을 이끌어 낼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 시의 구조 ◆

이 시에서 우포늪의 왁새는 평생 득음을 못한 소리꾼으로 비유된다. 왁새가 된 소리꾼은 우포늪에서 근원적인 생명의 힘을 얻음으로써 영혼의 심연에서 나오는 진정한 소리를 만나게 된다. 원시 생명력을 가진 우포늪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 태어난 소리꾼의 완창 소리는 우포늪을 비롯한 생명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게 된다. 즉 이 시는 한 소리꾼이 진정한 소리를 찾아 완창하는 과정을 통해 우포늪이 갖고 있는 원시생명력의 힘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우포늪 시생명제 ◆

'우포늪 시생명제'는 2001년부터 시작된 행사로 이 시를 쓴 배한봉 시인이 주관하여 운영해 오고 있다. 이 행사는 시의 생명, 생명으로 시로써 우포늪이 가진 상징성과 생명성을 널리 알리고, 또 우포늪 보존에 앞장서고자 하는 뜻있는 시인과 독자들이 만들어 가고 있다.

제8회 '우포늪 시생명제'에서는 한국의 습지시 주제 강연 및 참가 시인들의 시낭송, 시인과 독자의 만남, 우포늪 문학기행, 창녕문화재 탐방 등 다채로운 행사가 이루어졌으며, 우포늪을 체험하며 문학적 영감을 얻는 생태문학 기행까지 이루어졌다. 이 행사에서 배한봉 시인은 "우포늪은 사람과 자연을 하나로 묶는 1억 4000만 년의 신비를 갖춘 생태계의 보고"라며 "자연의 경이와 아름다움을 체험하고 시와 음악을 통해 평생의 추억을 만드는 행복한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생태시의 의미 ◆

생태시란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전체를 지향하는 생태학적 관점에서 생명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보여 주는 시를 말한다. 생태시는 생명 자체를 노래함으로써 생명의 본질과 가치를 추구하며, 동시에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명의 가치와 위상, 생명 고양의 조건을 살피어 그 중요성을 시적 상상력 속에 구체화한다.

생태시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롯된 환경 파괴와 생태계의 위기에서 발생한 문학이다. 생태시가 구현하는 내용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지만 손상된 환경의 실상에 대한 고발과 이런 결과를 초래한 인간의 욕망과 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을 노래하는 환경시나 문명비판시, 생명 그 자체의 본질과 가치, 그리고 생명의식을 노래하는 시 등이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