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신(送信)

                                                                              - 신동집 -

                                                       

 

 

 

바람은 한로(寒露)의

음절을 밟고 지나간다.

귀뚜리는 나를 보아도

이젠 두려워하지 않는다.

차운 돌에 수염을 착 붙이고

멀리 무슨 신호를 보내고 있나.

 

어디선가 받아 읽는 가을의 사람은

일손을 놓고

한동안을 멍하니 잠기고 있다.

귀뚜리의 송신(送信)도 이내 끝나면

 

 

 

하늘은 바이 없는

청자(靑瓷)의 심연이다.

 

          -시집<송신>(1973)-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관념적, 묘사적

표현 : 귀뚜라미 울음의 청각적 이미지

              유한한 존재와 무한한 존재의 대조를 통해 주제를 부각시킴.

              죽음과 조락의 이미지를 함축한 '가을'을 배경으로 하여 시적 분위기를 형상화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송신 → 주로 전기적 수단을 이용하여 전신이나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 따위의 신호를 보냄

    * 한로 →  24절기의 하나로 10월 8일경임.  늦가을에서 초겨울 무렵까지의 이슬

                   귀뚜라미의 죽음이 임박한 시기

    * 귀뚜리 → 곧 죽음이 임박했음을 화자에게 알리는 송신자

    * 이젠 두려워하지 않는다. →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가올 죽음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 무슨 신호 →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알리는 귀뚜라미의 울음

    * 가을의 사람 → 수신자(화자)

    * 한동안을 멍하니 잠기도 있다. → 화자 또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음을 의미함.

    * 하늘 → 변함없는 자연의 모습을 지닌 무한의 존재

    * 바이 없는 → 어쩔 수 없는

    * 하늘은 바이 없는 / 청자의 심연이다. → 유한적 존재와 대비되는 자연의 초연한 모습

 

제재 : 귀뚜리의 송신

화자 : 유한한 존재로서의 비애와 무상감을 느낌.

주제죽음을 피할 길 없는 유한한 존재가 느끼는 비애와 무상감

           시간의 순환과 죽음(유한한 존재의 비애)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죽음을 예감하는 귀뚜라미의 송신(송신의 상태 → 귀뚜리(자연) → 두려워하지 않음 → 가을)

◆ 2연 : 귀뚜라미의 송신을 수신하는 화자(수신의 상태 → 가을의 사람(인간) → 멍하니 있음 → 겨울)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가을날 돌담 아래서 우는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를 통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존재의 비애와 숙명을 담담하게 노래한 작품이다.

이 시는 발신자와 수신자라는 전달의 양자관계를 바탕에 두고 이루어진 시이다. 제1연에서 발신자(송신자)는 바로 가을이 깊었음을 알려주는 귀뚜라미이다. 한로(깊은 가을)임을 알려주는 바람, 계절을 알려주는 귀뚜리, 그 귀뚜리는 사람의 인기척만 들어도 소리를 그치게 마련인데, 그런 귀뚜리가 더 이상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더 이상 나를 두려워하지 않고 무슨 신호인가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왜 그럴까? 그 해답은 한로에 의해서 드러나는 시간적 의미에서 찾을 수 있다. 깊은 가을은 마지막, 죽음, 조락의 이미지를 갖는다. 이 시는 생명의 시효가 끝나는, 죽음이 임박해 있는 시간이다. 그러니 귀뚜리는 인간이란 존재가 두렵지 않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슨 신호란, 죽음이나 종말을 알리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제2연에서 이런 귀뚜리의 신호를 받고 있는 사람 역시 가을의 사람이다. 특히, 인생의 황혼 단계에 있는 노인일 것이다. 이런 노경에 이른 그는 귀뚜리의 죽음의 신호를 들으면서 일손을 놓고 망연해 한다. 귀뚜리의 송신을 매개로 멀잖은 삶의 종말을 예감했기 때문에 일손을 놓고 깊은 생각에 잠기는 것이다. 이윽고 귀뚜리의 울음이 끝나고 나면 세상에는 적막만이 남는다는 것을 '하늘은 바이 없는 / 청자의 심연이다.'라는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다. 귀뚜라미의 애절한 울음소리, 또는 그가 겪어야만 하는 죽음과는 전혀 상관없이 하늘은 그 청자의 오묘한 색감같이 더욱 푸르러질 뿐이라는 자연의 영원함과 신비로움을 강조함으로써 유한자적 존재의 무상감이 상대적으로 부각되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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