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를 치면서

                                                                              - 정희성 -

                                                       

 

 

 

쇠를 친다

이 망치로 못을 치고 바위를 치고

밤새도록 불에 달군 쇠를 친다.

실한 팔뚝 하나로 땀투성이 온몸으로

이 세상 아리고 쓰린 담금질 받으며

우그러진 쇠를 치던 용칠이

망치 하나 손에 들면 신이 나서

문고리 돌쩌귀 연탄집게 칼 낫

온갖 잡것 다 만들던 요술쟁이

고향서 올라온 봉제 공장 분이년을

생각하면 오금이 저리다던 용칠이

어서 돈벌어 결혼하겠다던 용칠이

밀린 월급 달라고 주인 멱살 잡고

울분 터뜨려 제 손 찍던 용칠이

펄펄 끓는 쇳물에 팔을 먹힌 용칠이

송두리째 먹히고 떠나 버린 용칠이

용칠이 생각을 하며 쇠를 친다.

나혼자 대장간에 남아서

고향 멀리 두고 온 어머니를 생각하며

식모살이 떠났다는 누이를 생각하며

팔려 가던 소를 생각하며

추운 만주벌에서 죽었다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밤새도록 불에 달군 쇠를 친다.

떡을 칠 놈의 세상, 골백번 생각해도

이 망치로 이 팔뚝으로 내려칠 것은

쇠가 아니라고 말 못 하는 바위가 아니라고

문고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밤새도록

 

 

 

불에 달군 쇠를 친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비판적, 회고적, 사실적, 서사적

표현 : 서사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시상을 전개함.

              화자의 심리를 직접적으로 표출함.

              비유적인 표현을 통해 대상이 처한 상황을 암시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쇠를 친다 → 화자의 정황을 제시한 말이자 세상에 대한 분노를 나타냄.

    * 4~6행 → 용칠이의 험난했던 노동자로서의 삶을 압축적으로 제시

    * 7~9행 → 용칠이의 성실한 성격과 노동 숙련도를 비유적으로 제시

    * 10~12행 → 용칠이의 소박한 소망과 순수한 성격을 구체적으로 제시

    * 13~16행 → 부조리한 노동 현장의 모습과 용칠이의 비극적인 삶을 비유적으로 제시

    * 떡을 칠 놈의 세상 → 세상에 대한 직접적인 분노의 표현

    * 불에 달군 쇠를 친다 → 잘못된 세상에 대한 화자의 분노가 구체적 행동으로 드러남.

 

화자 : 대장간 노동자(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하는 이)

주제부조리하고 모순된 세상을 향한 노동자의 분노

[시상의 흐름(짜임)]

◆   1  ~  3행 : 대장간에서 쇠를 치는 화자

◆   4 ~ 17행 : 용칠이에 대한 회상

◆ 18 ~ 23행 : 고향의 가족에 대한 회상

◆ 24 ~ 28행 : 모순된 세상에 대한 분노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대장간에서 쇠를 치는 일을 하는 화자는, 주인과의 다툼 끝에 팔을 잃고 대장간을 떠난 용칠이를 생각한다. 성실한 노동으로 순수한 삶을 살았던 용칠이의 불행을 생각하며 이 세상은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화자가 쇠를 치는 행위는 세상을 향한 분노를 나타내는 것이다.

대장간에 홀로 남은 화자는 용칠이를 생각하면서 자신이 살아왔던 가난한 삶과 고향에 두고 온 가족으로 생각을 넓힌다. 이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하더라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고 행복하게 살 수도 없는, 불우하고 소외된 어머니, 아버지, 소, 누이인 것이다. 화자는 땀투성이가 된 몸으로 쇠를 치며 지금 세상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분노를 표출하고 부조리한 삶을 비판하고 있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노동 현장의 부조리한 모습을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다. 대장간 노동자를 화자로 설정하여 밀린 월급으로 인해 주인과 싸우기도 하고 쇳물에 팔을 잃고 떠난 동료 용칠이의 일을 떠올리기도 하고, 가족이 겪은 불행한 일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세상에 대한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 시에서는 '쇠를 친다'라는 표현이 5회 반복된다. 2회까지는 화자가 일을 하는 장면을 묘사하였지만, 두 번째 '쇠를 친다'가 나온 이후에는 대상에 대한 화자의 생각을 서술한 후에 '쇠를 친다'가 이어진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이에는 그 대상이 '용칠이'이고, 세 번째와 네 번째 사이에는 '가족과 소',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사이에는 그 대상이 '세상'을 향하고 있다. '용칠이'와 '가족과 소'에 대해서는 화자가 연민의 감정으로 대하지만, '세상'에 대해서는 분노의 감정으로 대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7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정희성의 시에는 신화의 세계도 자연의 존재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시 속에 인간을 끌어들이고 , 인간의 삶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는 시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보다 밀착되어 그 간격을 극복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의 시는 시적 상상력의 세계에서부터 점차 일상의 삶과 그 현실적 조건을 직접적으로 문제삼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무렵 정희성은 자기 신념의 표출이라는 비교적 단조로운 방식과, 경험적 진실성을 추구하기 위한 일상성의 시적 변용을 동시에 시도하게 된다. 시적 신념이 희망의 언어로 자리잡고, 경험적 진실성이 실천적인 의미를 포괄하는 열정적인 시들이 발표되고 있는 것이다.('새벽이 오기까지는' '쇠를 치면서' '이곳에 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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