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소

                                                                              - 이대흠 -

                                                       

 

 

 

자신의 뿔로 들어가기 위해 소는

뒷다리를 뻗는다 서귀포에서 부산에서

뿔로 들어가 단단한 힘이 되어

세상의 고름을 터뜨리리. 소는 온몸을

뿔 쪽으로 민다 소의 근육을 따라 툭툭

햇살은 튕긴다 앞다리 들어 펄쩍

들어가고 싶다 소가 뛰면

뿔도 뛴다 젠장 명동에서 종로에서

뿔로 들어가고 싶은데 뿔은 또

저만치 앞서 있다 참을 수 없어 소는

속력을 낸다 뿔은 또

멀리 달아나고 뿔로 들어가고 싶어

 

 

 

소는, 나는

일생을

 

  -시집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1997)-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비유적, 점층적, 의지적

표현 : 그림 속 소의 의미를 재해석함.

              뿔을 향한 소의 역동적 움직임을 점층적으로 보여줌.

                 (뒷다리를 뻗음. → 온몸으로 밂. → 근육에 힘을 더함. → 앞다리를 들어 힘을 줌. → 뿔을 향해 뜀. → 속력을 냄.)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뿔 → 소가 지향하는 대상

               모순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도구 상징

    * 서귀포에서 부산에서 → 전국에서

    * 세상의 고름을 터뜨리리 → 세상의 썩은 곳(모순된 현실)을 치유하기를 바람.

    * 명동에서 종로에서 → 시위가 많이 일어나는 현장

    * 뿔로 들어가고 싶은데 뿔은 또 / 저만치 앞서 있다 → 소와 뿔의 모순된 관계

    * 소는, 나는 → 소와 화자의 동일성

    * 일생을 → 현실 극복 의지를 언제까지고 굽히지 않겠다는 마음이 담김.

 

제재 : 이중섭의 소 그림

주제현실 극복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역동적인 삶에 대한 동경

[시상의 흐름(짜임)]

◆  1 ~ 2행 : 자신의 뿔로 들어가려고 돌진하는 소

◆  3 ~ 9행 : 모순된 현실에 저항하고자 함.

◆ 10~14행 : 현실 극복 의지를 버리지 않겠다는 다짐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중섭의 '소'라는 그림을 모티프로 하여,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저항과 극복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소가 돌진하려고 뒷다리에 힘을 주는 역동적인 모습을 '뿔로 들어가려고 하는 모습'으로 상상하여,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끊임없이 힘차게 추구하는 태도로 그려내고 있다.

뿔로 들어가 세상의 고름을 터뜨리겠다는 것은 부정적인 현실 상황을 극복하겠다는 시적 화자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뿔에 닿을 수 없어도 계속 속력을 내는 소처럼, 시적 화자는 일생 동안 이러한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 시에서 '소'는 뿔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한다. 소는 뒷다리를 뻗고 있는 힘을 다해 뿔을 향해 뛴다. 그러나 뿔은 소의 몸에 붙어 있는 것으로, '자신의 뿔'은 자기의 일부이므로, 아무리 소가 있는 힘을 다해도 뿔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뿔'은 자신 내부의 이상과 의지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 부분을 보면, 소는 멀리 달아나는 뿔을 좇아 속력을 내고, 그것이 일생동안 반복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소와 뿔은 본질적으로 닿을 수 없도록 규정된 존재이기는 해도, 또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해도, 소는 뿔을 향해 일생을 달려가며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특히, 소를 '나'와 동일시하여 소의 일생을 시적 화자의 일생으로 규정함으로써,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그러한 끊임없는 역동적 추구의 과정임을 드러내고 있다.

 

<감상을 위한 읽을거리>

새해 첫날부터 남쪽에 큰눈이 내렸다. 눈에 덮인 산야가 언뜻 이중섭의 '흰소'를 연상시킨다. 땅을 박차고 일어서서 콧김을 뿜어대는 백두 대간의 위용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격이다. 튼튼한 다리와 다부진 골격, 강물처럼 굽이치는 꼬리, 거친 숨을 내쉬며 꿈틀거리는 생명의 호흡이 벅찬 압도감으로 다가온다.

이중섭의 소 그림은 시인의 묘사대로 화면 밖을 찌를 듯한 뿔을 돋을새김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산정의 꼭짓점처럼 전신이 뿔을 향하여 집중하고, 온 힘이 뿔로부터 확산되어 나오고 있는 듯하다. '앞다리 들어 펄쩍 / 들어가고 싶'은 그 뿔은 어둠을 들이받아 세상의 고름을 터뜨리는 단단한 힘과 같기에 항상 닮고 싶은 그 무엇이다. 하지만 뿔은 늘 저만치 얼마쯤 떨어져 있어서 하나가 될 수 없는 안타까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비록 뿔과 일체가 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일생을 꿈에 집중하는 그 정신이 어쩌면 소와 같은 강한 생명력을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몇 년째 이중섭이 머물던 제주에서 근근히 품을 팔며 외롭게 살고 있는 시인에게 새해 인사 전화를 했더니, 시인은 마침 눈 덮인 한라산을 보고 있다고 했다. 예부터 흰소는 영물 중의 영물이라고 했는데, 눈부신 이 영물의 '뿔'이 어둠을 들이받고 꽃 피는 '풀'이 되어 돋아나길 기원해 본다.

-손택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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