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시
(序詩)
                                                                              -  윤동주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성찰적, 고백적, 의지적

표현 : 자연적 소재(하늘, 바람, 별, 잎새)의 상징화

             시간의 이동에 따른 시상 전개(과거 - 미래 - 현재)

             고백적 어조와 의지적 어조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하늘 → 윤리적 판단의 주재자(절대적 영역),  삶의 지향점, 자아성찰의 매체

    * 부끄럼 → 해야할 것을 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

    * 잎새에 이는 바람 → 정직한 삶을 살아가려는 시적 자아의 마음에 일어나는 심리적 동요나 외부적 자극

    * 나는 괴로워했다 → 결백한 삶을 살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자책감

    * 별 → 희망과 이상의 세계. 순수한 자아와 양심의 세계

    * 모든 죽어가는 것 → 생명체, 일제하 우리 민족, 억압받고 고통받는 생명체

    * 나한테 주어진 길 → 자아에게 주어진 삶의 운명

                                       (독립운동가로서의 삶, 순교자로서의 삶, 예술가로서의 삶 …)

    * 오늘 밤 → 현실적 상황, 식민지적 상황, 암담한 상황

    * 바람 → 자아의 순수하고 순결한 삶을 방해하는 현실적 시련이나 장애 요인

 

주제부끄럼 없는 삶에 대한 다짐과 현재적 상황

[시상의 흐름(짜임)]

◆ 1연(1∼4행) : 부끄러움 없는 삶에 대한 다짐과 삶의 괴로움

◆ 1연(5∼8행) : 미래의 삶에 대한 결의(사랑의 실천과 주어진 운명에의 순종)

◆ 2연( 9행 ) : 현실적 어려움에 시달림을 당하는 자아의 양심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를 읽으면 도덕적 완성을 추구하는 치열한 정신의 소유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한 순수한 열정과 신념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다.  시적 자아의 치열한 정신을 우리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라는 고백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잎새에 이는 바람'이란 극히 미세한 도덕적 갈등을 가리킨다. 더구나 그것이 절대적 존재인 '하늘'을 기준으로 삼은 '부끄럼'과 연결되어 있음을 감안할 때, 그의 고백은 지극히 사소한 도덕적 결점조차 스스로 용납지 않으려는 영혼의 소유자임을 증명해 준다.

그러한 삶의 연장선 위에서 자아는 미래에 대한 삶의 결의를 다진다. 확신과 의도를 나타내는 종결어미를 씀으로써 자아의 의지는 더욱 준열하기만 하다. 식민지 치하에서 고통받는 모든 생명체를 사랑하는 것, 어떠한 상황 속에서라도 자신이 마땅히 해야하는 것이라면 양심이 명령하는 바에 따라 살아가겠다는 것, 이러한 의지가 미래지향적인 어조 속에서 시적 자아의 적극적인 실천 의지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한 행으로 처리된 제2연에 이르게 되면, 시적 자아의 관심은 다시 현실적 상황으로 돌아온다. 그는 지금 어둠(밤) 속에 서 있으며, 순수함의 표상인 '별'을 지켜나가기란 너무도 힘들어 보인다. 결국 이 작품은 식민지 상황에 처해 있는 젊은 지식인의 고뇌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표백(表白)한 시다. 그래서 더욱 진솔(眞率)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고백적인 시가 감상에 흐르거나 관념에 빠지기 쉬운데, 이 시는 적절한 시각적 심상을 활용하여 서정시로 승화시키고 있다.

 

[감상을 위한 읽을거리]:한국 현대시를 찾아서  -김흥규-

이 시는 자신의 전 생애에 걸쳐서 철저하게 양심 앞에 정직하고자 했던 한 젊은이의 내부적 번민과 의지를 보여 준다.

앞의 두 행에서 시인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그의 소망을 말한다. 이것은 인생을 오래 살아본 사람의 달관한 말이 아니다.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어 본 나이 지긋한 사람이라면 감히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돌이켜보면서 사람이 부끄럼 없이 산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자신 역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을 많이 저질렀는지를 알 터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불완전하며 갖가지 그늘과 어둠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쉽사리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버리고 세속적 삶에 타협하게 한다. 이 작품의 서두는 바로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단호한 거부의 선언이다. 그것은 젊은이의 순수한 열정과 결백한 신념에서 나온다.

그러나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더욱이 삶 자체가 치욕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식민지의 상황 아래서 그것은 가능할 수 있는 것인가? 윤동주는 이에 대해 날카로운 반성의 언어로서 답한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그의 괴로움은 자신이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서 생겨난다. 부끄러움이란 잘못을 저질러서만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을 하지 못하였을 경우에도 올 수 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결백한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에게 있어서 부끄러움이란 그의 양심의 뜨거움에 비례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것에서조차 괴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이 시가 보다 높은 경지를 이루는 것은 여기에 다음의 넉 줄이 이어짐으로써이다. 밤 하늘의 맑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들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걷겠다는 담담한 결의는, 자칫 무모한 번민에 그칠 수도 있는 양심적 자각을 성숙한 삶의 의지로 거두어 들인다. 그것은 극히 담담하면서도 의연한 결의와 태도를 느끼게 한다.

별도의 연으로 따로 떨어진 마지막 행은 이와 같은 결의를 시적으로 승화시킨 이미지이다. `오늘 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했을 때, 이 별의 암시적 의미는 어둠과 바람 속에서도 결코 꺼지거나 흐려질 수 없는 외로운 양심에 해당한다. 그것은 윤동주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젊은 이성의 상징이다. 바로 이 한 줄이 덧붙여짐으로써 양심의 결백함에 대한 그의 외로운 의지는 어두운 밤 하늘과 별, 그리고 바람이라는 사물들의 관계를 통해 더욱 또렷해지는 것이다.

[생각해 볼 문제]

1. 이 시의 근원이 되는 사상이나 정신을 말해 보자.

→ 윤동주는 그의 전기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기독교적 가정에서 성장하였으며, 그의 다른 여러 시에는 기독교적 상상력이 나타나 있다. 이 시에서도 하늘, 바람 등 천체적 이미지와 부끄럼 의식이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 시의 근원적 사상은 기독교에 바탕을 둔 사랑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2. 이 시에서 운명에 대한 극복과 초월의 의지가 드러난 구절을 찾아 보자.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3. 이 시에는 3가지 중요한 시적 대상물이 나온다. 그 시적 대상물에 투영된 시적 자아의 심리적 상태를 각각 말해 보자.

→ 하늘에는 부끄럼 의식이 투사되어 있고, 바람에는 괴로움 혹은 고뇌, 그리고 별에는 사랑의 의식이 투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윤동주의 생애와 시] : 평론가 / 임헌영

1. 윤동주가 시를 썼던 시대인 1936~43년은 온 인류가 시를 외면한 시대였다. 그가 릴케와 프랑시스 잠을 노래했을 때는 포연이 장미의 향기를 쫓고 나귀등에다 탄환을 운반하던 때였다. 그가 즐겨 바라보던 하늘과 바람과 별의 허공엔 공습 경보가 요란하게 울리던 시절이었다.

인간의 역사 중 사람의 생명이 가장 값싸게 거래되었던 시대였고, 자유, 평등, 박애가 군국주의의 넝마주이 집게에 집혀서 오물 처리장으로 실려가던 때였다. 철학자에게는 복종의 철학이 강요되고, 음악인에겐 군가 작곡이 명령되며, 시인에게는 원고지와 펜으로 탄환을 만들 것을 강요하던 시대였다.

이 시대엔 고향을 애절하게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성립되었고, 친한 벗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것까지도 감시를 받았다. 하물며 창씨 개명도 하지 않은 '순이'에 대한 추억이나 '흰 옷'과 '살구나무'와 '희망의 봄'이야 영락없는 불온이었다.

1940년 전후 - 지구는 군가와 화약냄새로 가득 차서 모든 약소 민족은 겟슬러 총독 아래서의 윌리엄 텔처럼 두 개의 화살을 가지고 사과를 겨누고 있었다. 1876년 이후 유럽열강과 미국은 매년 24만 평방마일의 땅을 얻어왔다. 그 결과 1914년에 이르자 지구상엔 거의 모든 약소 민족이 어느 강대국의 한 식민지로 변하고 말았으며, 이것은 194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그래서 이 시대의 문학은 본의든 아니든 식민 종주국의 이익을 옹호하던가 아니면 민족독립운동을 돕던가 둘 중 하나에 봉사하게 된다는 양자 택일의 갈림길에 서야만했다.

한국 문학사는 이 시대를 '암흑기'로 말한다. 시와 소설의 발행고가 가장 낮은 시대였을 뿐만 아니라 그 질적인 면에서도 예술적 여과를 거치지 못했으며,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나마도 식민 종주국의 이익에 보탬을 준 것이 많아서, 암흑기란 시대적 명칭은 자연스럽게 사용되어 왔다.

시인 윤동주는 바로 이런 암흑기의 몇몇 유성 중 뛰어난 시인의 하나이다. 이 시대에 우리는 어학자 이윤재와 시인 이육사 그리고 윤동주를 함흥과 북경과 후쿠오카의 옥중에서 잃었다.

고문, 영양실조, 동상 그리고 정신적 고뇌 등으로 일관된 하루하루의 옥중생활을 윤동주도 1943년7월, 체포이후 1945년 2월16일, 죽는 날까지 반복했을 것이다. 이 시인의 동생 윤일주의 기록에 따르면 1944년 6월 이후 월 1매의 엽서 쓰기가 허락되었다고 하는데, 아마 이때가 형이 확정된 때로, 그 이전엔 모든 외부와의 연락이나 독서가 금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후 주사를 맞았다고 하는데, 그 내용물은 아직도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으며, 최후의 순간에 큰 소리를 치며 죽었다는 간수의 증언도 그 내용은 알 수가 없다. 이 모국어의 순수 시인이 우리말로 고함 지르고 죽은 심정이야 이해가 가지만 왜 간수에게 일어로 한마디를 남기지 않았을까!

 

2. 흔히들 시인 윤동주를 저항의 시인이라 부른다. 원래 저항이란 순수 예술의 한 속성이 된다. 일반적으로 저항의 예술과 순수예술을 이원론 적으로 분리시키는 경향이 최근 우리 문단을 지배하고 있는데, 예술이란 그 순수성 자체가 가장 강력한 저항을 나타낸 것임을 수긍해야 될 것이다.

예술적 창조란 말할 필요도 없이 개성의 표현이다. 이 '개성'이란 곧 타아와의 조화와 갈등을 동시에 지닌 것으로 이는 바로 모든 '자기 개성'의 반대자에 대한 조화를 위한 저항이 되는 것이며, 이것이 순수 예술의 본질이 된다.

따라서 저항은 고대 원시예술의 시발점부터 순수예술이 지닌 한 속성이 되어 왔다. 즉 자연에 대한 저항을 나타낸 동굴의 벽화로부터 종교에 대한 저항을 표현한 르네상스시대, 이어 권력과 사회에 대한 근대화예술과 비인간화해 가는 과학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는 현대예술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음을 우리는 본다. 이런 세계사적 보편성으로서의 저항의 문학이 1940년대 암흑기의 한국에서도 독특한 양상으로 나타났으며, 그 중 윤동주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위에서 본 저항문학의 주제에 의한 분류와는 달리 이는 문학인의 기능이나 대사회적 자세로 나누어보면 다음 세 가지의 형태를 보게 된다.

첫째는 문학인 자신이 단체나 결사 등에 직접 가담하는 경우로, 이때 그 문학인의 작품은 오히려 매우 서정적일 수도 있다.

둘째는 일시적인 의무나 지원 세력으로 어떤 단체나 운동에 뛰어든 경우가 있다.

마지막 셋째는 직접운동권에 가담하거나 지원하지는 않으면서도 순수한 문학작품으로 정서적인 저항을 시도하는 예가 있다.

이런 세 가지 형태의 저항적 자세는 세계 문학사에서 얼마든지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의 짧은 문학사에서도 첫 번째에 해당하는 예로는 이육사를 들 수 있는데, 그는 지하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지극히 서정적인 작품을 남긴 좋은 본보기가 된다. 두 번째 경우는 이상화, 한용운이 항일운동에 참여한 것을 들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바로 윤동주나 김소월 같은 시인으로, 자칫하면 이런 시인에 대한 저항의지를 묵과해 버릴 수도 있을 만큼 그 작품은 깊은 서정과 민족 정서에 뿌리를 박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우리는 윤동주에게 왜 윤봉길이나 안중근처럼 되지 못하고, 아니 하다 못해 이육사처럼 비밀 결사에라도 참여하지 못했느냐는 추궁은 할 수 없으며, 이런 시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재음미, 평가하는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옥사 그 자체가 윤동주의 시문학 전체를 대변해 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의 순수한 시가 곧 역사적 저항의지의 표현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인류사에서 가장 혹독했던 짜르 치하에서 가장 찬란했던 문학이 창조되었듯이, 1940년대의 혹독한 식민 통치 아래서 우리의 순수 저항시는 태어났던 것이다.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이루어진 저항의 시는 진정한 영혼의 고통을 겪는 사람만이 아는 순수한 고뇌의 절규가 스며 있으며, 그 끝간데 모를 고뇌의 깊이 속에 '순수 저항시'의 참된 가치가 스며있다. 이런 시는 누구를 선동하지는 않으나 감동을 주며, 울리지는 않으나 가슴을 찌르며, 취하지는 않으나 각성제가 된다.

윤동주의 저항시도 바로 이런 각도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이 원하는 삶의 최소공약수를 빼앗긴 시대를 배경으로 나온 것이었다. 따라서 혁명이니, 평등이니, 자유니 하는 어마어마한 이상들은 내일의 시인에게 남겨 두고서 그는 오직 하나의 평범한 약소 민족의 생활인으로서 열심히 살고자 했을 뿐이었다.

이 평범한 꿈-"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며, 별과 어머니와 소녀와 서정 시인을 그리며 살고자 하는 꿈이 허락되지 않았을 때 그는 하는 수 없이 저항시인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 윤동주의 이런 순수한 약소 민족의 서정적인 삶의 추구 자세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가장 쉬운 해답을 우리는 멀리 북간도에서 찾을 수 있다. 1886년, 증조부 때부터 북간도로 이주해 간 윤동주는 짧은 생애 중 모국이라고는 학창 시절 4~5년 정도밖에 있어 보지 못한 영원한 방랑자 였다.

 

새봄이 다 가도록 / 기별조차 없는 님

가을밤 응신까지 / 또 어찌 참을래요

두만강 눈 얼음은 / 다 풀리어 간다는데

새봄은 아니오라 / 열 세 봄 넘어와도

못참을 나랴마는 / 가신 님 날 잊을까

강남의 연자들은 / 제집 찾아 다 왔는데

                    (간도 이민 민요 '기다림')

 

기온의 차이가 극심한 대륙, 근대 이후 배일 사상의 온상지였던 땅, 일본력이 아닌 단군기원을 공공연히 사용하며 헌옷을 입고 추위에 동포들이 떨며 청국인 지주와 일본 군인들에게 이중으로 혹사당하던 원한과 설움과 서정과 꿈과 웅지의 옛 땅 -- '총독부 문서 1912년 청국 국경 부근 관계 사건철'에는 간도로의 조선인 이주 원인을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즉 토지가 비옥해서 생활난을 타개하기 위하여 가는 것, 항일 및 망명 이주, 기독교 연구 전파 등등.

할아버지 때부터 기독교를 믿었다고 전하는 윤동주는 이런 독특한 환경 속에서 민족 고유의 순수한 정서를 그리워하면서 자랐을 것이며, 특히 문학 청년 시절에 백석의 '사슴'을 통하여 한민족의 서정을 익혔기 때문에 나중 일본에 가서도 민족 정서를 잊을 수 없었으리라.

 

3. 이처럼 행동적 저항보다 순수한 민족 정서로서의 저항시인인 윤동주는 시를 통하여 1) 조국만가와 조국 부재의식, 2) 민족적 피해의식 3) 민족적 저항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굳이 따진다면 이 세 가지는 다 민족적인 정서의 순수 저항으로, 독립이나 조국에 대한 열망에까지 확대 해석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바람이 부는데 /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불어'에서)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별헤는 밤에'에서)

 

위의 인용에서처럼 시인 윤동주는 '시대를 슬퍼한 일도'없고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하늘의 별을 헤일 수 있는 약소 민족의 이방인의 한 민감한 청년으로 살았다. 따라서 그의 시를 너무 도식적으로 해석하여 '흰 옷'은 민족의 저항을 '봄'은 해방을 상징한다는 식의 풀이는 버려야 할 것이다. 이런 단견적인 비평은 자칫하면 우리의 민족이 지닌 보다 근원적인 정서의 저항성을 속류화 시킬 소지가 없지 않다. 따라서 윤동주가 지닌 시 세계에서의 저항의식은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북간도 이주민의 윤택하지 못한 생활 정서를 노래함으로써 우리 민족 정서의 한 영역을 확보해 주었다. 시계도 없는데 애기가 울어서 새벽을 안다는 '애기의 새벽'이나, 장에 가는 엄마를 내다보려고 손가락에 침을 발라 문을 쏘옥쏘옥 뚫는 '햇빛.바람'등은 평범하면서도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소년적 정서를 잘 전해주고 있다. 또 프랑시스 잠의 영향을 많이 받은 당나귀와 시골 풍경의 차분한 묘사는 북간도의 추위를 녹여주는 가작들이다.

특히 이와 같은 생활적인 서정시 속에서 우리가 높이 평가해야 될 점은 궁극적으로는 허무주의가 아닌, 생에 대한 애정과 긍정적 자세가 스며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소년적인 정서의 탈을 벗고 보다 민족적 정서의 원천적인 시로서의 저항의 세계로 돌입하는 모습이 다음에 나타난다.

 

한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무서운 시간'에서)

 

이런 자괴와 겸허속에서 이 시인은 민족의 슬픔을 깊숙이 맛보며 현실과의 대결에서도 항상 자성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쉽게 씌어진 시'에서)

 

라고 하면서도,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자세로 '나팔소리 들려올 ' 새벽과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 흘릴 날을 기다리면서 지조 높은 개가 어둠을 짖는 소리를 들으며 짧은 생을 끝냈다.

이처럼 동주의 시는 간도로 간 조선인의 정서와 식민지 조선인의 서정을 노래한 것으로, 그 저항의식을 나타냈다. 그의 저항시가 가진 특징 중 우리가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기독교와 관련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크게 노출시키지 않았다는 점과 복고주의적인 정서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 기독교는 물론 우리나라 민족의 저항세력에 도움을 주기는 했으나 근본적으로 민족적 전통의 정서와 많은 갈등을 겪어왔는데, 윤동주는 이를 극복하여 종교보다 민족적 정서를 우위에 둔 훌륭한 시인이었다. 또 복고주의 역시 간도로 이민간 사람들 속엔 상당히 간직되었고 당시의 군국주의적 식민지 치하에서도 공공연히 자행되었건만, 이를 극복하며 새 시대의 민족적 정서를 노래해 주었다. 그러기에 윤동주의 시가 오늘의 독자에게도 신선감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4. 그렇다면 윤동주의 시와 그의 저항은 우리 문학사에서 어떤 위치에 서게 될까. 위에서 본 것처럼 그는 저항의 자세 중 순수한 서정적 작품으로 저항을 시도한 이른바 예술적 저항의 시인으로서 한 표본을 이룬다. 이런 계열에 속하는 다른 시인으로는 김소월을 들 수 있는데, 윤동주는 소월에 비하면 보다 진한 저항의 체취가 묻어 나온다. 다만 민족적 공동운명체로서의 정서는 소월이 단연 으뜸이며, 이 점에서는 동주는 그에 뒤진다.

원래 예술에서의 저항이란 가장 전염력이 강하려면 서정성을 지녀야 되는 것이다. 흔히들 전투적 선동성을 저항문학의 제일로 삼는 예가 있으나, 대중적 내지 민중적 저항의 유발엔 짙은 서정이 더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다. 코자크 부대가 폴란드를 침략했을 때 쇼팽의 피아노를 박살내어 땔감으로 쓴 것은 가냘픈 그의 음악이, 그 환상적이고 아름다우며, 서정적인 선율이 어느 독립군가보다도, 폴란드 인에게 애국심을 강력히 호소했기 때문이다.

윤동주가 오늘의 독자에게 깊은 감동과 호소력을 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의 서정성에 있다는 사실은 오늘의 민중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 설정에 많은 암시를 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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