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리 아낙네들

                                                                              - 고은 -

                                                       

 

 

 

먹밤중 한밤중 새터 중뜸 개들이 시끌짝하게 짖어댄다.

이 개 짖으니 저 개도 짖어

들 건너 갈뫼 개까지 덩달아 짖어댄다.

이런 개 짖는 소리 사이로

언뜻언뜻 까 여 다 여 따위 말끝이 들린다.

밤 기러기 드높게 날며

추운 땅으로 떨어뜨리는 소리하고 남이 아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의좋은 그 소리하고 남이 아니다.

콩밭 김칫거리

아쉬울 때 마늘 한 접 이고 가서

군산 묵은 장 가서 팔고 오는 선제리 아낙네들

팔다 못해 파장떨이로 넘기고 오는 아낙네들

시오릿길 한밤중이니

십릿길 더 가야지.

빈 광주리야 가볍지만

빈 배 요기도 못 하고 오죽이나 가벼울까.

그래도 이 고생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못난 백성

못난 아낙네 끼리끼리 나누는 고생이라

얼마나 의좋은 한세상이더냐.

그들의 말소리에 익숙한지

 

 

 

어느새 개 짖는 소리 뜸해지고

밤은 내가 밤이다 하고 말하려는 듯 어둠이 눈을 멀뚱거린다.

 

                         -<만인보>-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감각적(청각과 시각), 긍정적

표현

* 고단한 인생에 대한 시인의 긍정적 관점

* 청각적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개 짖는 소리, 기러기 울음소리, 아낙네들의 마소리)

* 시상의 전개 방식(청각 → 시각, 시끄러움 → 잠잠해짐, 힘들고 고됨 → 정겨움)

* 선제리 아낙네들 = 못난 백성

     → 어둠의 역사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민중의 모습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먹밤중 → 먹을 칠한 듯 캄캄한 밤중(시간적 배경)

* 새터, 중뜸, 갈뫼 → 토속적 지명

* 언뜻언뜻 까 여 다 여 따위 말끝이 들린다.

     → 종결어미만으로 아낙네들의 대화 장면을 표현한 것임.

         '보이지 않는 아낙네들의 모습'을 말의 내용을 드러내지 않고 종결어미만으로 제시함.

* 밤 기러기 드높게 날며 / 추운 땅으로 떨어뜨리는 소리하고 남이 아니다.

    → 자연과 아낙네의 일체감(조화)

        기러기들의 울음소리와 아낙네들의 말소리를 조응시킴으로써 기러기들이 무리지어 날아가는 모습과 아낙네들이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대응시키고 있다. 자연물과 인간의 조화로운 풍경을 제시한다.

* 팔다 못해 파장떨이로 넘기고 오는 아낙네들 → 아낙네들의 가난하고 고달픈 삶의 모습

* 빈 배 요기도 못 하고 오죽이나 가벼울까.

    →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장사하는 가난하고 고달픈 아낙네들의 삶의 모습을 반어적으로 표현

* 그래도 이 고생 ~ 얼마나 의좋은 한세상이더냐.

    → 주제의식의 내포

        민중의 삶에 대한 긍정적 인식

       고달픈 삶을 사는 민중들의 공동체적 정서와 유대감이 나타남.

* 어느 새 개 짖는 소리 뜸해지고 / 밤은 내가 밤이다 하고 말하려는 듯 어둠이 눈을 멀뚱거린다.

    → 시끄러운 개 짖는 소리로 시작했던 시가 그 소리가 잠잠해지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이는 시에서 포착한 삶의 양상이 '힘들고 고됨'에서 '정겨움'으로 변화되는 것과 어울린다. 이미지가 청각에서 시각으로 전환되는 양상 또한 나타나 있다.

* 어둠이 눈을 멀뚱거린다. → 어둠 속에서 별이 빛을 발하는 모습(활유법)

 

주제 : 고단하면서도 정겨운 선제리 아낙네들(=민중)의 삶

           고달픈 생활이지만 의좋게 살아가는 민중의 삶

[시상의 흐름(짜임)]

◆ 1~8행 : 선제리 아낙네들이 밤에 장에서 돌아오는 장면

◆ 9~20행 : 선제리 아낙네들의 고단한 삶과 정겨운 마음씨

◆ 21~23행 : 아낙네들의 정겨운 모습 위에 깔리는 밤길의 정경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자연 풍경에 어우러진 인간의 모습을 묘사해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선제리 아낙네들이 밤에 장에서 돌아오는 장면을 개 짖는 소리, 기러기 울음소리, 아낙네들의 말소리 등을 통해 감각적으로 제시한다. 아낙네들은 비록 가난하고 고달픈 삶을 살고 있지만, '이 고생 혼자 하는 게 아니라'며 고생을 '끼리끼리' 나누면서 의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난하고 고달픈 생활 가운데서도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아낙네들의 삶의 모습에 대해 시인은 이를 긍정하며 신뢰를 보내고 있다.

이 시에 나오는 선제리는 시인의 고향인 전북 군산시 옥구읍 미룡리와 읍을 같이 하고 있는 이웃이다. 시인은 고향의 아낙네들과도 같은 정겨운 인물들의 삶을 관찰하고 이를 청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 더 읽을거리

이 시에서는 민중의 꾸밈없는 생활의 한 부분인,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서민적인 삶의 모습이 잘 형상화되어 있다. 즉 중소 도시의 변두리에서 근대화의 혜택보다는 피해만 입으며 살아온 인생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함께 어우러져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시인은 유연한 가락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런 민중적 삶의 모습은 우리들과 가장 친근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어두운 밤길을 걸으면서 무서움과 지루함을 쫓으려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아낙들과 그들을 마중 가는 남정네들의 모습마저도 눈에 선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물건을 다 팔고 난 텅 빈 바구니의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고, 텅 빈 배를 냉수로 채우면서 길을 재촉하는 아낙의 모습이 어머니의 얼굴과 겹쳐 서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짖어대는 개와 기러기 '어둠의 눈(별)'들은 이들에게 적의와 친근감을 동시에 주는 장치로 작용한다. 아울러 이런 장치를 통하여 민중의 삶이 외로운 것만은 아님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이처럼 시에 형상화된 생활의 진실한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주변의 삶에 대한 또 다른 애정을 확인하고, 그들과 같은 삶 속에 우리 자신을 다시 위치시키는 행위를 반복한다.

특히 이 시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어느 측면에서는 일상적인 삶의 형상화를 통하여, 시대의 어두운 현실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역사적 전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역사의 한밤중을 저주하기보다는 '못난 백성', '못난 아낙네'들이 모여서 함께 나누는 '의좋은 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에 형상화된 민중은 확실한 역사의 전망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캄캄한 어둠을 밝히는 눈(별)의 멀뚱거림을 위안 삼아 길을 가고 있다. 자신들의 생활에 대하여 막연하나마 '밤은 내가 밤이다'라는 새로운 사실을 자각하면서도, 도중에서 그만둘 수 없는 역사의 현장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는 선제리의 아낙네 이야기가 주는 객관적인 정서와 그들의 이야기가 객관화된 시적 대상으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런 시적 서술 구조는 서정 장르가 주로 의존하는 주관성과 주관의 진술이 주는 서정의 순간성이 어느 정도 극복되면서, 나름의 서술적인 구조가 주는 서사적 총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객관성을, 시라는 장르를 통하여 구현한다. 이런 경우에 독자의 감흥도 직접적으로 시인의 정서에 동화되지 않고, 시 자체가 주는 객관의 정서에 독자가 감흥을 하는 방식을 보인다. 즉 시에 서술된 사건이나 이야기에 대하여 독자가 어느 정도의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받아들이는 형태를 취한다.                    

 -윤여탁 외, '시와 함께 배우는 시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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