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나무

                                                                              - 유치환 -

                                                       

 

 

 

내 언제고 지나치는 길가에 한 그루 남아 선 노송(老松) 있어 바람 있음을 조금도 깨달을 수 없는 날씨에도 아무렇게나 뻗어 높이 치어든 그 검은 가지는 추추히 탄식하듯 울고 있어, 내 항상 그 아래 한때를 머물러 아득히 생각을 그 소리 따라 천애(天涯)에 노닐기를 즐겨하였거니, 하룻날 다시 와서 그 나무 이미 무참히도 베어 넘겨졌음을 보았나니.

진실로 현실은 이 한 그루 나무 그늘을 길가에 세워 바람에 울리느니보다 빠개어 육신의 더움을 취함에 미치지 못하겠거늘, 내 애석하여 그가 섰던 자리에 서서 팔을 높이 허공에 올려 보았으나, 그러나 어찌 나의 손바닥에 그 유현(幽玄)한 솔바람 소리 생길 리 있으랴.

 

 

 

그러나 나의 머리 위, 저 묘막(渺漠)한 천공(天空)에 시방도 오고 가는 신운(神韻)이 없음이 아닐지니 오직 그를 증거할 선(善)한 나무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로다.

 

                         -<예루살렘의 닭>(1953)-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비판적, 관조적, 산문적

표현 : 자연물을 의인화하여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냄.

              호흡이 긴 산문적 문장과 예스런 문체 사용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노송 →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

    * 바람 있음을 ~ 탄식하듯 울고 있어 → 노송을 통해 바람의 존재감을 확인함.

    * 추추히 → 슬프게 우는 소리, 두런거리는 소리

    * 그 소리 → 바람에 흔들리는 노송 가지의 소리

    * 천애 → 하늘의 끝, 까마득하게 멀리 떨어져 있는 곳

                  소리가 미치는 범위(무한대)

    * 나무 그늘을 길가에 세워 바람에 울리느니 → 존재 자체로서의 가치, 정신적 가치, 존재적 가치

    * 빠개어 육신의 더움을 취함 → 나무가 쪼개어져서 육신을 따뜻하게 해 주는 기능.  기능적, 물질적 가치

    * 유현한 → 그윽한

    * 묘막한 천공 → 넓고 아득한 하늘, 아직도 '신운'이 남아 있는 공간, 곧 자연의 신비가 존재하는 공간

    * 신운 → 자연과의 교감(바람의 존재를 느끼는 기운)

    * 선한 나무 → 신운을 전달해 주는 순수한 존재,  정신적 가치 상징

   

제재 : 베어져 넘어진 노송

주제 : 자연 파괴적인 현실에 대한 비판

           삶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베어진 노송의 발견(슬픔)

◆ 2연 : 자연과의 교감을 매개했던 노송에 대한 추억

◆ 3연 : 노송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자연을 바라보고 즐기려는 태도가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자연을 파괴해서라도 물질적 욕망을 채우려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화자는 세속적인 인간들과 달리 자연을 바라보고 즐기려 한다. 그러나 세상은 자연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 한다. '빠개어 육신의 더움을 취함'이라는 시구는 자연을 파괴하여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인간들의 행태를 단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시는 결국 자연의 순수성을 즐기기보다 자연을 이용해 거기서 자신들의 물질적인 욕망을 채우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이 시는 길가에 서 있던 노송이 땔감으로 베어져 버린 사건을 통해 자연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는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바람이 부는지 알 수 없는 날에도 길가에 서 있는 노송 가지의 탄식하는 듯한 떨림을 통해 바람의 존재를 느끼고 그 떨리는 소리를 따라 자연을 즐기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노송이 베어져 있음을 보게 된다. 시적 화자는 나무를 길가에 세워 두는 것보다 잘라 내고 빠개어 육신을 데우는 땔감으로 쓰는 것이 더 유용하다는 세속적인 가치 판단을 인정하면서도, 노송의 절명(絶命)을 안타까워하며 노송처럼 허공에 팔을 높이 들어 바람에 떨리는 소리가 들리기를 기대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시적 화자에게 노송은 세속적 가치 이전에 자연의 신비한 기운을 느끼게 해 주는 매개체였던 것이다.

이 시는 섬세한 감수성을 유지함으로써 자연과의 교감이 가능했던 그런 순수한 삶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던 시적 화자가 그것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노송'은 '천공의 신운'을 스스로 감지하고 시적 화자와 공감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이다. '노송'이 이러한 존재일 수 있는 근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생명력에 있다. 시인의 또 다른 작품인 <노송>을 보면,

    아득한 기억의 연령을 넘어선 여기 / 짐승같이 땅을 뚫고 융융히 자랐나니

    이미 몸뚱이는 용의 비늘을 입고 / 소소히 허공을 향하여 여울을 부르며

    세기의 계절 위에 오히려 정정히 푸르러 / 전전반측하는 고독한 지표의 일변에

    치어든 이 불사의 원념을 알라.

여기서 시인은 '노송'을 '아득한 기억의 연령을 넘어선' 초시간적 존재, '땅을 뚫고 허공을 향하는' 초공간적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