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에꽃

                                                                              - 최두석 -

                                                       

 

 

 

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 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 다니며 보고

다시 꽃 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 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성에꽃>(1990)-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현실 참여적, 상징적, 회화적(감각적)

표현 : 촉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로 성에를 아름답게 묘사함.

              서민들의 삶과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 싸우는 친구를 통해 1980년대의 암울한 사회상을 비판함.

              서민에 대해서는 애정을, 친구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의 정서를 드러냄.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찬란한 치장 → 성에를 성에로만 보지 않고, 차창에 핀 꽃으로 봄.

    * 엄동혹한 →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대 상황

    * 엄동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 성에꽃은 따스한 봄날에 자연이 피워 낸 꽃이 아니다. 겨울과 같은 팍팍한 세상 속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리 넉넉지 못한 서민들이 피워 낸 꽃이다. 역설적 아름다운 지닌 꽃이다.

    * 어제 이 버스를 탔던 ~ 기막힌 아름다움

       → 유리창에 서린 성에꽃에서 고단한 몸짓으로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또한 성에꽃의

                   모습을 기막히게 아름다운 것으로 표현함으로써 서민들의 삶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 있음.

    *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 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 화자는 성에꽃을 보며 그것을 피워 낸, 소외된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강한 생명력을 상상한다.

        서민들의 막막한 한숨과 그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삶에 대한 열정이 만들어 낸 것이 성에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 성에꽃을 정성스레 지우는 행위를 통해 삶의 고단함과 애환을 함께 느끼는 공감의 세계로 나아간다.

    *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 화자는 새벽 시내 버스의 유리창에서 개미처럼 성실히 살아가는 서민들의 아름다운 몸짓을 본다.

        하지만 그 상상은 차가 덜컹거리는 순간 돌연 장면이 바뀌면서 차단당하고,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의 푸석한 얼굴이 그 한숨과 정열의 아름다움을 가로막고 만다. 진정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친구가 화자와 단절돼 있는 상황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며 안타까움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 친구 → 민주화의 길을 함께 했던 친구

 

제재 : 성에꽃(고달픈 현실에서도 삶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성실히 살아가는 서민들의 아름다운 몸짓)

주제80년대의 시대적 아픔과 동시대 서민들의 삶에 대한 애정

[시상의 흐름(짜임)]

◆ 1~4행 : 차창에 핀 성에꽃

◆ 5~10행 : 성에꽃의 아름다움

◆ 11~16행 : 성에꽃의 아름다움에 취함

◆ 17~22행 : 함께 길을 걸었던 친구를 떠올림.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고달프고 힘든 현실 속에서도 삶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서민들의 형상을 노래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시내 버스 차창의 성에꽃을 중심으로 누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노래하면서 '엄동 혹한',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를 통해 차갑고 고통스런 사회 현실을 형상화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성에를 꽃처럼 아름답게 인식하는데, 서민들의 '한숨'과 '숨결', 즉 삶의 고뇌와 삶에 대한 열정이 이러한 성에꽃을 탄생시켰다고 여긴다. 이렇게 시적 화자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고단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시의 뒷부분에서는 이러한 시상의 흐름에 변화가 나타난다. 덜컹거리는 창에 면회마저도 금지된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고, 화자는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느끼게 된다. 화자와 친구는 왜곡된 사회 현실에 맞서 싸워 왔으나 친구는 사회로부터 격리된 상태에 놓인 것이다. 이 시는 이처럼 서민들의 고달픈 삶과 친구에 대한 애정을 노래하는 작품으로 1980년대의 어둡고 고통스런 사회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더 생각해 보기]

1. 이 작품에서 '창'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시에서 '창'은 흔히 바깥 세상의 풍경을 내다보는 매개체로 등장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이른 새벽 성에가 낀 버스의 창은 세상을 바라보는 통로가 된다. 그 창에 비친 세상의 풍경은 얼룩져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막막하다. 그러나 그 막막하고 팍팍함에서 오는 슬픔을 '성에'를 통해 잊게 된다. 왜냐하면 '성에'는 동시대인들의 숨결과 입김으로, 공동체 의식 그 자체의 의미를 띠기 때문이다.

 

2. '성에꽃'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자.

▶ 성에꽃에는 시대 현실에 대한 화자의 차게 얼어 붙은 의식이 녹아들어 있다. 그러나 화자는 사적인 감정에 빠져들지 않고 이리저리 오가며 성에꽃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성에꽃을 정성스레 지우는 행위를 통해 삶의 고단함, 애환을 함께 느끼는 공감의 세계로 나아간다. 따스한 봄날 자연이 피워 낸 꽃이 아니고, 한겨울의 팍팍한 현실 속에서 이웃들이 피워 낸 꽃이기에 차창의 성에꽃은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3. 정지용의 <유리창 1>과 비교해 보자.

▶ 이 시는 정지용의 <유리창 1>과 발상이나 형상화의 수법에서 흡사한 면이 있다. 창을 통해 시상을 불러일으키고, 또 이 창을 통해 무언가를 보려 한다는 점에서 시적인 맥락이 비슷하다. 정지용의 <유리창 1>이 자식을 잃은 슬픔을 절제된 언어로 내면화했다면, 최두석의 <성에꽃>은 사회적인 의미를 획득하며 이를 내면화했다. 그리고 시인의 민중적인 시선은 이 성에꽃을 고통과 희망의 복합체로 여기며 엄동설한과 같은 80년대의 우울한 사회 분위기를 서정적인 가락으로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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