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령(死靈)

                                                                      
        -  김수영  -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도 저 돌벽 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纖細)도

행동의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郊外)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달나라의 장난>(1959)-

 

해        설

[개관 정리]

◆ 성 : 주지적, 비판적

◆ 표현 : 수미쌍관적 구성,  시각적 심상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반짝거리면서 → 진정한 가치를 발하는 대상임을 나타냄

    * 나의 영은 죽어있는 것이 아니냐 → 마땅히 이루어야 할 가치 실현을 위한 행동을 하고 있기 못함.

    * 벗 → 자유를 말하는 활자

    * 고개 숙이고 듣는 것 → 공감은 하면서도 행동(실천)의 일치를 보이지 못하는 부끄러운 상태

    * 황혼, 돌벽 아래 잡초, 담장의 푸른 페인트빛, 고요함 → 거짓된 고요와 거짓된 평화에 불과한 것들

    * 행동의 죽음 → 행동(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공허함과 무의미함.

    * 욕된 교외 →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행동의 이상을 실천하지 못하고 안이한 태도로 살아가는 화자의 부끄럽고 혐오스러운 삶의 공간(자유와 정의가 부재하는 타락된 공간)

    * 우스워라 → 자조적 웃음

 

주제 소시민적 무기력함에 대한 반성

             자유를 실천하기 위한 행동적 결단 촉구

     #소시민 - 사회적 지위, 재산, 사상 따위가 자본가와 노동자의 중간계층에 속하는 사람

     #소시민적 -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 계층도 아니고 피착취계층도 아니기에,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

                   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방관 내지는 안일한 삶을 살아가려는 성향을 지닌 것.

◆ 시적 자아의 태도 : 자유의 숭고한 이념에 동의는 하면서도, 자유의 이념을 현실화하기 위한 행동을

        결행하지 못하는, 자신의 소시민적 무기력함에 대해 자조하고 부끄러워하는 지식인의 삶의 태도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활자로만 존재하는 자유와 죽어있는 나의 영혼

◆ 2연 : 침묵만 지키고 있는 자아에 대한 불만

◆ 3연 : 거짓된 고요와 평화에 대한 불만

◆ 4연 :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만

◆ 5연 : 죽어 있는 나의 영혼에 대한 부끄러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작품의 시적 상황을 살펴 보면, 시적 자아는 자유에 대한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 책을 보고 있다. 그는 이 책 속에 쓰여 있는 자유의 가치와 필요성에 대해 공감은 하면서도,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그 자유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자신의 영혼이 죽어있는 것이 아니냐며 스스로 조소하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현실에서 마땅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가치와 그 실천의 가능성이 동떨어진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생겨나는 고민, 그리고 자기 자신의 무기력함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이 작품의 상황이다.

인간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책임에 대한 자각이 없이 그날그날을 안일하게 살아가는 데 몰두하는 이들을 소시민이라고 부른다. 소시민은 자신의 조그만 이익에는 민감하지만, 사회의 공동적 선을 지키는 데는 근본적인 관심도, 행동도, 의지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시인은 바로 그러한 소시민적 삶을 혐오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그 순간 자신이 바로 그 소시민의 안이한 태도에 빠져 있는게 하는 괴로운 느낌을 경험하게 된다. 책과 관념속에 자리한 자유의 숭고한 이념, 머리 속에서만 살고 있는 자유란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것은 죽은 영혼이나 다를 바 없는 것 아닌가?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며 고민하고 자조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자가 희망하는 자유와 정의가 보장된 사회는 실현될 수 없는 것일까? 제1연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반복하면서 종결되는 이 시의 결구는 화자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 준다. 그것은 나와 우리의 영혼이 죽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음으로써 현실 개혁의 운동에 앞장서자는 비판적 지식인의 솔직한 자기 반성의 태도이다. 이런 자기 반성적 태도가 전제될 때, 비로소 자유와 정의는 서적 속의 관념에서 현실의 가치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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