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리(舍利)

                                                                              - 유안진 -

                                                       

 

 

     

    가려 주고

    숨겨 주던

    이 살을 태우면

     

    그 이름만 남을 거야

    온몸에 옹이 맺힌

    그대 이름만

     

    차마

    소리쳐 못 불렀고

    또 못 삭여 낸

     

    조갯살에 깊이 박힌

    흑진주처럼

     

    아아 고승(高僧)의

    사리(舍利)처럼 남을 거야

 

 

 

    내 죽은 다음에는.

     

     -<달빛에 젖은 가락>(1985)-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애상적, 구도적

표현 : 도치법과 영탄법을 사용하여 화자의 심리를 표출함.

              비유적 시어를 사용하여 화자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함.

 

요시어 및 시구풀이

    * 가려 주고 / 숨겨 주던 → 임에 대한 나의 그리움을 비밀스럽게 감춰 주던

    * 이 살을 태우면 → 내가 죽고 나면

    * 온몸에 옹이 맺힌 → 아픔으로 기억되는

    * 옹이 → 사랑과 그리움으로 인한 고통

    * 차마 /  소리쳐 못 불렀고 / 또 못 삭여 낸

             → 임에 대한 나의 사랑을 마음대로 드러내지도, 또 삭이지도 못한

    * 흑진주 → 사랑으로 인한 상처와 고통이 안으로 깊어져서 보석처럼 단단하게 된 결정체

    * 고승의 / 사리처럼 → 임에 대한 사랑의 고통과 인내의 과정을 고승의 구도 과정으로 받아들임.

    * 사리 → 화자가 느끼는 사랑의 고통과 인내의 결정체

    

제재 : 사리

화자 : 마음속 깊숙히 가려 두고 숨겨둔 채 표현하지 못하는 임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겪는 고통과 인내의

                과정을 하나의 구도 과정으로 받아들임.

주제표현하지 못한 사랑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마음속에 남아 있는 임에 대한 그리움

◆ 2연 : 그리움의 고통이 옹이처럼 가슴에 맺힘.

◆ 3 ~ 4연 : 삭이지 못한 사랑이 흑진주처럼 가슴에 박힘.

◆ 5연 : 사리처럼 남을 사랑의 고통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말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 다른 이의 뜻을 이해하지만 언어 자체가 불충분한 것이거나 상황이 여의치 못하여 마음에 간직한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마는 예가 허다하다. 전하지 못하는 말이 사무치는 그리움의 언어일 경우 짙은 회한의 아픔으로 남기도 한다.

유안진의 시 '사리'는 미처 다하지 못한 채로 심중에 남아 있는 그리움의 언어를 소재로 한다. 이 시에서 보다 중점을 두는 것은 그리움의 언어를 다 전하지 못한 아쉬움이 아니라 그 아쉬움과 서러움의 정서를 다스리는 방식이다. 소리쳐 불러 보지도 못하였고 삭여낼 수도 없었던 그리움의 언어를 시의 화자는 애써 밖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고 안으로 감추어들인다. '불러보지 못한 이름', 그리움의 단어들은 심중 깊이 남아 '옹이'가 된다. 애써 숨기던 사랑이나 그리움이 나무의 목질 부분 중 옹이처럼 단단한 물질로 육화되고 이것은 다시 조개 속의 진주처럼 박히게 된다. 회한에 찬 이름이 옹이에서 다시 진주로 전화되는 과정은 아픔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진주란 조개에 생긴 상처로부터 빚어진 영롱한 아름다움이 아닌가. 아픔은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더 깊어져서 보석처럼 단단한 결정화(結晶化)의 과정을 겪는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여 모든 육신의 살이 태워졌을 때 고승의 사리처럼 남기를 희구한다. 고승의 사리란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세상에 남기는 구도자(求道者)의 유물이다. 불러보지 못한 이름으로 인해 겪는 고통과 인내의 과정을 시의 화자는 하나의 구도의 과정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할 수 있는 사랑이 반드시 참다운 애정은 아닐 것이다. 미처 다하지 못한 절절한 말을 시적 언어로 변용해 낼 수 있는 그리움이라면 아쉽고 쓸쓸하기는 하지만 좀더 여운이 있는 게 아닐까. (해설:유지현)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