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山門)에 기대어

                                                                              -송수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 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 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 옴을.

 

                  -<문학사상>(1975)-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상징적, 관념적, 정한적, 시각적

표현 : '눈썹'의 이미지의 변주를 통한 시상 전개

              대화의 형식으로 전개되지만 실제는 독백임.

              상징적인 시어의 사용과 설의법, 돈호법

              시각적 이미지로 대상에 대한 그리움을 표출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산문 → 절, 혹은 절의 바깥문.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경계의 문으로 윤회와 부활을 상징함.

    * 누이야 → 죽고 없는 누이를 부름으로써, 직접 말을 건네는 형식을 취하여 누이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애상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

    * 눈썹 → 죽은 누이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 혹은 누이의 혼의 현현(顯現)

    *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 가을산의 스산함과 그림자가 주는 어두운 이미지와 결합하여 누이의 죽음을 아련하게 떠올리게 함.

    *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 의문문의 구조로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누이가 오래 전에 죽었음을 알 수 있음.

    * 정정한 눈물 → 누이와 내가 공유했던 한스러운 경험을 상징함. 누이의 죽음으로 인해 흘리는 눈물.

    * 돌 → 화자의 회한을 억제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적 태도를 나타내는 이미지. 정신적 견고함 상징.

        * 돌로 눌러 죽이고 → 누이의 죽음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고 일어서려는 결연한 의지

         * 돌로 살아서 →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삶에 대한 신념, 즉 윤회와 인연에 대한 믿음이 담김.

    *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는 것을 → '즈믄 밤의 강'은 모든 것을 잠재우고 어둠 속에 묻어 버린 대상으로

             죽음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그 강이 '일어서는 것'을 보는 것이므로 '죽음-재생'의 형식으로 강이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 고뇌의 말씀 → '눈물'과 유사한 의미를 함축함.

    * 돌 → 죽은 누이의 부활

    * 살아오던 것을 → 억제되거나 극복되지 않고 다시 살아오는 삶의 고통과 슬픔

    *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심상

    *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 없이 건네이던 것을

        → 삶과 죽음의 경계에 방해받지 않고 재회를 함.

            꽃을 건네는 것은 부활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으로 불교의 윤회론에 바탕을 두고 있음.

    * 산다화 → 동백꽃

    * 건네이던 것을 → 주어가 불분명하나 과거의 누이라고 추정할 수 있음.

    * 기러기 → 눈썹과 외형적으로 유사함.

    * 부리고 → 내려놓다.

    * 기러기가 /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 화자가 강과 기러기를 보면서 과거(누이)를 떠올리고 있음.

    *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 두고 → 누이와의 슬픈 제의를 되풀이하는 행위를 통해 화자가 느끼는

                   비극적 현실 인식이 담겨 있으며, 재회에 대한 기대가 담김.

    *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 그렇게 만나는 것을

        → 허무와 적막을 뚫고 불현듯 나타나듯이 누이와의 재회를 믿는 심정으로(동양적 윤회의 세계관)

    * 눈썹 두어 낱이 /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 옴을

        → 눈썹이 누이의 분신과 같은 의미를 갖게 되었고, 화자는 누이가 살아오는 듯한 느낌 속에 빠져 있음.

    * 못물 → 재생과 생성의 공간

   

제재 : 그리움

주제죽은 누이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정신적 만남에 대한 의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 돌로 눌러 죽여도 살아오던 눈물과 고뇌, 죽은 누이에 대한 그리움과 한

◆ 2연 :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눈썹

       → 술을 마시며 달래는 슬픔과 그리움, 죽은 누이와의 재회에 대한 기대

◆ 3연 : 못물 속에 비쳐 오는 눈썹

       → 누이가 살아오는 듯한 느낌의 그리움, 죽은 누이와의 재회에 대한 확신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세상을 떠난 누이에 대한 그리움을 유장하고 처연한 가락에 실어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의 핵심 이미지는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이다. 일단 그것을 누이의 눈썹, 즉 이승을 떠돌고 있는 누이의 영혼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면 1연은 '누이야 너는 지금도 살아서 네 혼이 떠도는 것을 보느냐'라고 묻는 셈이 되는데, 이 설정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따라서, 이 '눈썹'은 죽은 누이의 대리물이 아니라, 누이를 떠올리게 만드는, 화자와 죽은 누이가 예전에 함께 공유했던 어떤 소중한 풍경을 고도로 추상화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1연에서 화자는 그 눈썹을 중심으로, 눈썹에서 촉발된 누이와의 여러 추억을 회상하면서, 누이와 관련되어 있는 여러 이미지들을 연쇄적으로 제시한다. 이 이미지들이 전달하는 바는, 간단히 말해 '눈물을 아무리 돌로 눌러 죽여도 그것들은 끊임없이 되살아 왔다'는 사실이다.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삶의 슬픔과 회한을 화자와 누이는 함께 나누었을 것이다. 시인의 전기적 사실을 참고한다면, 군에서 제대하고 돌아와 자살한 동생을 누이로 대체시켜 누이의 눈썹이 가을 산 그림자에 묻혀 떠돌고 있는 이미지로 부각시켜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시인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무주고혼으로 인간이 이승에서 못 다 풀다 간 한의 덩어리이다. 그러나 그가 힘의 역학을 추구하면서 한의 덩어리가 승화되기를 누누이 강조한 점을 고려해 볼 때, '눈썹'이란 죽음이자 부활되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2연과 3연에서 서술어들은 현재형으로 바뀌고, 화자는 누이 없이 혼자 보고 있는 풍경들을 나열한다. 1연에서의 그 '눈썹'을 이번에는 기러기가 강물에 떨어뜨리고 가는데(2연), 이는 누이에 대한 화자의 그리움이 더 절실해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화자는 슬픔과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서 술을 마신다.

화자의 그리움은 고조되고, 3연에 이르면 화자는 마치 환영처럼 그 눈썹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 옴을' 보게 된다. 1연에서 눈섭이 정적이고 2연에서는 동적이라면, 3연에 이르러 그것은 생동하는 것이 된다. '비쳐 옴'이라는 표현이 바로 지금 어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듯한 생생한 실감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1, 2연과 달리 3연에서는 '누이야 보는가'가 '누이야 아는가'로 바뀌어 있다. 이는 3연에서 눈썹과 누이의 혼이 하나로 융합되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이 시에서 '눈썹'이라는 중심 이미지가 1, 2, 3연을 통해 조금씩 변주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3연을 통해 변하지 않는 것은 화자가 누이에게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너도 보고 있느냐'고 묻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할 누이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의 질문은 더욱 간절하고 애절하다.

 

■ 생각해 보기

1. 이 작품에 쓰인 상징적 시어 '눈썹'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 이 시는 '눈썹'으로 표상되는 죽은 누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가장 오래도록 썩지 않고 남는 것이 머리카락이나 눈썹 같은 터럭이다. 이 시에서 그러한 '눈썹'이 '빠져 떠도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은 누이의 죽음으로 인한 한의 응어리가 그만큼 강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이 시의 핵심적인 이미지는 '물'에 의해 환기된다. 시적 화자는 죽은 누이를 히상하며 '눈물'을 흘리는데, 이는 누이의 죽음으로 인한 비극적 현실 인식의 결과이다. 그러나 '눈물'은 다시 '강물'로 변용되는데, 이 때 '강물'은 눈물이 흐르고 있는 심상이자 기러기가 '눈썹(죽은 누이)'을 떨어뜨려 흐르게 함으로써 재회를 기대하게 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강물'은 죽음과 재생 사이를 연결해 주는 희망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강물'은 3연의 마지막 행에 이르러 '못물'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는 물이 샘솟는 이미지와 연결되면서 새로운 생명 혹은 재회를 상징하게 된다. 이 외에도 '돌' 역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정정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에서는 누이의 죽음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떨쳐 버리고 일어서려는 굳은 의지 및 죽음에 대한 거부 의식이 반영되어 있으며,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에서는 재회와 윤회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다.

 

2. 이 작품에 나타난 '돌'과 '물'의 상징적 이미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 '돌'은 화자의 굳은 의지와 믿음, 즉 정신의 견고함을 상징한다. '정정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에는 누이의 죽음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떨쳐 버리고 일어서려는 결연한 의지와 죽음에 대한 거부와 부정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에는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생에 대한 신념, 즉 윤회와 인연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다.

'물'은 무정형의 액체로서 부드러움과 유연함의 의미를 담고 있다. '눈물'은 누이의 죽음에 따른 비극적 현실 인식의 결과이며, 눈물의 시적 의미가 변용되어 제시된 '강물'은 눈물의 흐름이자 기러기가 눈썹을 떨어뜨려 흐르게 하는 대상, 즉 죽음과 재생 사이를 연결해 주는 희망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못물'은 '샘물'의의미로서 새로운 생성의 상징이다.

 

3. 이 작품의 배경에 대해 생각해 보자.

불교적 윤회관과 한의 정서

이 시에서 '눈썹'은 죽은 누이의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제시된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가장 오래도록 썩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머리카락이나 눈썹과 같은 터럭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시에서 눈썹이 빠져 떠도는 상태라는 것은 그만큼 누이의 죽음으로 인해 빚어진 한맺힘의 응어리가 강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4. 이 작품에서 '누이야'라는 호칭이 화자의 심리 상태나 정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말해 보자.

⇒ 이 시에서 '누이야'라는 호칭은 시의 화자가 시적 대상인 '누이'를 청자로 설정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된다. 즉 지금은 없지만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부름으로써, 화자가 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간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 또한 누이와의 추억을 직접 말 건네는 형식으로 서술해 나감으로써 애상적이고 회한 어린 정서를 불러 일으킨다.

 

[ 감상을 위한 더 읽을거리 ]

이 시에는 가을 산과 가을 강의 아름다움이 있고, 사람의 아름다움이 또한 있다. 그래서 아름답다. 사실 이 시에서 언어들이 모이고 흩어지게 하는 언술의 뼈대는 매우 간단명료하다. 그 뼈대는 어떤 사람이 어떤 다른 사람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물음을 받는 사람은 누이인데, 그녀는 지금 시의 화자 곁에 있지 않은 듯하다. 물음의 내용은 무엇을 살아서 보는가, 그리고 무엇을 아는가인데, 목적어와 술어는 일관되게 도치되어 있다. 이 가운데 시인이 치중하는 부분은 목적어이다. 이 부분이 이 시의 아름다움을 거의 대부분 감당해 내고 있다.

그러나 이 시의 언술들이 가지는 구체적 모습까지 간단명료하다고 할 수는 없다. 시의 아름다움은 무턱대고 간단명료함이나 투명함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때로 모호함에서 오기도 한다. 세상과 삶의 실상이 어느 정도 모호하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진실에 가깝다.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섭 두어 낱'은 무엇인가. 왜 눈섭은 가을 산 그리메에 빠졌을까. 그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감동의 흔적인가, 또는 그에 대비되는 삶의 서글픔의 증거인가.

 

[시인의 말]

나는 어느 지면에서나 늘 고답적으로 말해왔듯이 서정적 울림 위에서만 시는 가능하다고 믿으며 지금까지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훌륭한 시, 특히 고전적 성취의 시가 보여 주는 것은 첫째로 시의 완결성이 있고, 둘째로 민족 정서가 세련되어 있으며, 셋째로 언어가 조악하지 않고 정련되어 있으며, 넷째로 리듬이 유려하며, 다섯째로 울림의 공간이 증폭되어 속되거나 혐오감이 없다는 점이다. 또 패배감이나 무력감으로 떨어지지 않고, 읽는 이로 하여금 한없이 성스러운 경지로 끌어 올려 준다. 이렇게 될 때 시는 향수자에게 정신의 구원처를 마련해 준다.

여기에서 한 시인의 염결성, 더 나아가서는 민족의 청결성을 보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나라의 말, 즉 국어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높은 수준의 경지로 이끌어 올린다. 나는 이것을 우리 시가 내장한 미적 고유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 편의 시가 고전화되어 있느냐 되어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은 꼭 옛것의 고전이 아니라 어휘 구사와 작품이 추구하는 경지가 가장 개성적이고 모범적이라는 뜻이다.

- 송수권, '나의 시, 나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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