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리과원

                                                                              -  서정주  -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한강수(漢江水)나 낙동강(洛東江) 상류와도 같은 융융(隆隆)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낱낱의 얼굴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도 같은 굉장히 즐거운 웃음판이다.

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트리는 몸뚱아리들이 또 어디 있는가. 더구나 서양에서 건너온 배나무의 어떤 것들은, 머리나 가슴패기뿐만이 아니라 배와 허리와 다리 발꿈치에까지도 이쁜 꽃숭어리들을 달았다. 멧새, 참새, 때까치, 꾀꼬리, 꾀꼬리새끼들이 조석(朝夕)으로 이 많은 기쁨을 대신 읊조리고, 수십 만 마리의 꿀벌들이 왼종일 북치고 소고치고 마짓굿 울리는 소리를 하고, 그래도 모자라는 놈은 더러 그 속에 묻혀 자기도 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當然)한 일이다.

우리가 이것들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묻혀서 누워 있는 못물과 같이 저 아래 저것들을 비취고 누워서, 때로 가냘프게도 떨어져 내리는 저 어린것들의 꽃잎사귀들을 우리 몸 위에 받아라도 볼 것인가. 아니면 머언 산(山)들과 나란히 마주 서서, 이것들의 아침의 유두 분면(油頭粉面)과, 한낮의 춤과, 황혼의 어둠 속에 이것들이 잦아들어 돌아오는   아스라한 침잠(沈潛)이나 지킬 것인가.

하여간 이 하나도 서러울 것이 없는 것들 옆에서, 또 이것들을 서러워하는 미물(微物) 하나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섣불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설움 같은 걸 가르치지 말 일이다. 저것들을 축복(祝福)하는 때까치의 어느 것, 비비새의 어느 것, 벌 나비의 어느 것, 또는 저것들의 꽃봉오리와 꽃숭어리의 어느 것에 대체 우리가 항용 나직이 서로 주고받는 슬픔이란 것이 깃들이어 있단 말인가.

 

 

 

이것들의 초밤에의 완전 귀소(完全歸巢)가 끝난 뒤, 어둠이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과 산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 때가 되거든, 우리는 차라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제일 가까운 곳의 별을 가리켜 보일 일이요, 제일 오래인 종(鐘)소리를 들릴 일이다.

 

                                            -<현대공론>(1954)-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산문시.

표현 : 산문적 형태

             방언(호남방언)의 적절한 활용

             풍부한 시어(말의 잔치)와 비유적 표현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상리과원 → 상리(마을이름)에 있는 과수원

    * 융륭 → 물의 양이 많고 높게 가득히 흐르는 모양

    * 유두분면 → 기름 바른 머리와 분을 바른 얼굴로 흔히 부녀자의 화장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꽃의 아름다운 모습을 비유

    * 제일 가까운 곳의 별 → 꿈과 이상의 대상

    * 제일 오랜 종소리 → 삶의 지혜

 

주제슬픔을 넘어선 삶의 찬란한 희열

[시상의 흐름(짜임)]

◆ 1단락 : 과수원의 만발한 꽃의 정경(순진무구한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

◆ 2단락 : 과수원의 찬란한 희열의 세계(생동감 넘치는 과수원의 모습)

◆ 3단락 : 자연과 합일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 → 서경에서 서정으로의 전환

◆ 4단락 : 멀리해야 할 설움(기쁨과 행복이 충만한 세상에 대한 소망)

◆ 5단락 : 인간의 구원(현실을 극복할 꿈과 지혜의 중요성) → 주제단락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과수원의 만개한 꽃들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우리의 삶이 힘겨움 속에서도 즐거울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6·25 때 소위 자살 미수를 겪은 후 깨달은 바 있는 범신론적(汎神論的) 낙천주의와 만개한 과목(果木)에서 발견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결합됨으로써 태탕한 봄과 같은 생의 기쁨을 토로하고 있다.

이 시의 창작 시기가 6·25 직후인 것을 고려한다면, 전후의 허무적이고 비극적인 현실 인식 태도를 불식시키고, 더 나아가 '상리과원' 같은 기쁨이 충만한 미래 지향적인 삶을 고취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이 시를 창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범용한 일상어에 의한 산문의 원숙한 매력이 뒷받침되어 건강하고 낙천적인 시상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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