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꿈1
- 나무의 꿈

                                                                              - 정현종 -

                                                       

 

 

 

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 맞추며

나무는 그의 힘을 꿈꾸고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비비며 나무는

소리 내어 그의 피를 꿈꾸고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생(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사물의 꿈>(1972)-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상징적(비유적), 자기 성찰적

표현 : 대상을 의인화하여 의미를 전달함.

              관념적 의미를 감각적 표현을 통해 드러냄.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비비며 나무는 / 소리 내어 그의 피를 꿈꾸고

   → '나무의 피'는 나무의 수액을 비유한 것으로, 여기서 '비, 피'는 생명의 근원인 물의 이미지를 지님.

* 자기의 생(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 '햇빛'과 '비'와의 접촉을 통해 '힘'과 '피'를 구현하는 나무가 '바람'으로 대표되는 대자연과의 교감과 상호 침투 과정을 통해 '자기의 생이 흔들리는 소리(생명이 실현되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자기 존재에 대한 자의식을 갖게 됨을 표현한 것이다.

* 햇빛, 비, 바람 → 나무의 생명을 구현하게 해 주는 존재. 대자연(우주)과 생명력을 상징

  

제재 : 햇빛, 비, 바람과 교감하며 살아가는 나무(생명력을 지닌 나무) = (화자 자신)

화자 : 자기 실현을 꿈꾸는 이

주제자연(생명력)과의 일체감을 통해 자기 실현(자기 존재감)을 느끼고 싶은 소망

[시상의 흐름(짜임)]

◆ 1~2행 : 나무와 햇빛의 교감

◆ 3~4행 : 나무와 비의 교감

◆ 5~6행 : 나무와 바람의 교감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햇빛과 비, 바람과 일체가 된 나무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는 자신을 둘러싼 것들과 하나가 되려는 나무의 꿈인 동시에 그러한 나무와 같은 존재가 되려는 시인의 꿈이 형상화된 것이다. 즉, 나무와 나누는 교감과 일체감 속에서 소외의 고뇌를 넘어서고자 하는 소망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정현종 시인의 시적 경향

인간은 어느 날 일상의 틀이 갑자기 낯설어지는 순간을 겪는다. 이럴 때 개인은 사물과 타인,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해 낯설음을 느끼게 된다. 단절감과 소외 의식 속에서 세계가 도무지 알 수 없는 거대함과 막막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나무의 꿈', '구름의 꿈' 등의 부제를 갖고 발표된 연작시 <사물의 꿈>에서 시인은 그와 같은 소외에서 비롯되는 고뇌를 '사물'과의 친화와 교감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정현종은 박남수의 사물 이미지 추구와 김춘수의 존재 의미 천착 경향을 결합해 놓은 듯한 독특한 시풍을 가진 시인이다. 그는 인간성과 사물성, 주체성과 도구성 사이의 정당한 의미망을 나름대로 추구함으로써 그 동안 인간들의 아집과 욕망에 의해 더럽혀지고 훼손된 사물 본성의 회복 가능성을 타진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온갖 사물들이 자기의 기능과 직분을 다하면서 다채롭고 조화로운 화해의 세계를 만들기를 소망한다.

그의 초기시는 전후의 허무주의나 토착적 서정시를 극복하고, 시인의 꿈과 사물의 꿈의 긴장관계 속에서 현실의 고통을 넘어설 수 있는 초월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그의 시는 '고통 / 축제', '물/불', '무거움/가벼움', '슬픔/기쁨' 등과 같은 상반되는 정서의 갈등과 불화를 노래하면서도 현실을 꿈으로, 고통을 기쁨으로 변형시키고자 하는 정신의 역동적 긴장을 탐구한다. 그러던 그가 80년대 말부터는 현실과 꿈의 갈등보다는 생명 현상과의 내적 교감, 자연의 경이감, 생명의 황홀감을 노래하면서 화해의 세계를 지향하는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초기 시 세계를 대표하는 이 시는 부제에서 명기된 것처럼, 사물 중 나무의 꿈을 평이한 시어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나무의 꿈이란 나무가 자신의 생명을 실현하려는 꿈이다. 그 꿈은 우주와의 에로스적인 친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즉, 나무는 '햇빛'과 '비'와 '바람'과의 접촉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구현한다. 나아가 나무는 이렇듯 우주와의 교감과 상호 침투 과정을 통해 '자기의 생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자기 존재에 대한 자의식을 갖게 된다. 나무는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지만, 물, 햇빛, 공기, 바람 등과의 관계 속에서만 생장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나무는 우주의 생태적 질서의 한 중심이다. 다시말해, 우주적인 존재로서의 나무이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나무의 꿈은 시인의 꿈으로 환치될 수 있다. 표면적으로 이 시에 나타나는 것은 나무와 햇빛, 비, 바람의 단순한 교섭이지만, 그것은 생명과 우주, 인식과 세계의 상호 교섭이라는 보다 큰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렇듯 이 시는 시적 대상인 나무를 통해 우주적인 공동체 안에서 생명의 자기실현에 관한 꿈을 꾸고 있는 시인의 열망을 드러낸 작품이다. [해설:양승국]

 

더 읽을거리

정현종이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자연과 예술에 대한 인식은 본질적으로 노장적 세계 인식과 접맥된다. 만물은 하나라는 것이 장자의 일관된 사상이며, 노자 역시 만물이 그 근본으로 돌아가 하나가 되는 도(道)를 이야기한다. 정현종에게 시는 삶의 숨결이고 자연의 숨결이다. 우주의 숨은 바람이며 시의 숨결은 원초적 자아가 회생하는 공간이다.

 첫 시집 <사물의 꿈>에서 보이는 정현종의 주된 관심은 사물과의 친화력에 주어진다. 그 자신이 사물이 된다는 꿈이 바로 그것이다. 슬픔을 녹이고 사물을 녹이듯이 정신과 육체를 하나로 무화(無化)시키겠다는 시적 의지는 정현종의 초기시 <사물의 꿈> 시편들에서 계속된 것이다.

이 시에서 화자는 나무 그 자체가 되고자 한다. 햇빛과 입 맞추며, 내리는 비와 뺨 비비고, 가지에 부는 바람에서 나무 스스로 자기의 생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나무의 꿈이 화자의 꿈이었던 것이다. 아니 나무를 통해 자신의 꿈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서 우리는 '나 자신 내가 노래하는 그것이 될 수 없다는 사정 때문에 한때 나는 매우 슬퍼했고 그것이 또 시인의 비극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실은 이 지점에서 시는 탄생합니다.'라는 정현종의 고백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는 그 자신이 노래하는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슬픔을 비극적으로 인식하지만, 그것이 곧 시가 생겨나는 자리임을 깨닫는다. 그는 다시 사물들의 화음을 들을 수 있게 되며, 그 환희에 찬 교감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6행에 불과한 이 짧은 시에는 주위의 사물들과 어우러져 혼연일체가 된 싱그러운 나무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한 곳에 뿌리를 박고 살아야 하는 나무는 원래 움직임이 없는 정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나무는 햇빛과 비와 바람과 더불어 교류하며 움직임을 가진 하나의 소우주가 된다. '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 맞추며''힘을 꿈꾸'는 나무는 얼마나 활기차고 역동적인가. 실제로 빛은 나무의 성장에 빼놓을 수 없는 자양분이기도 하다. 또한 '비와 뺨 비비며 나무는 / 소리내어 그의 피를 꿈꾼다.' 비와 피는 모두 물의 이미지로 생명의 근원과 연관된다. 비는 나무에 스며들어 '나무의 피(수액)'가 되는데, 이 '피'의 이미지는 나무의 뜨거운 생명력을 생생하게 연출하고 있다. 끝으로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 자기의 생(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나뭇잎들이 서적이는 소리를 '생이 흔들리는 소리'라고 표현한 시인의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 나무는 주위의 세계와 교류하며 커 가는 소우주일 뿐 아니라, '자기의 생'을 부여받은 의미 있는 존재로 자리매김 된다. 시인과 나무와의 뜨거운 교감이 없었다면 쓰이지 않았을 이 시는 교감의 진정성을 행간에 감추어 둔 채 독자의 시선을 기다리고 있다. [해설 : 최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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