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 앉는다.

     

           -<월간중앙>(1981)-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낭만적, 현실비판적, 풍자적

표현 : 대조적인 상황 설정(새↔우리)으로 암울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함.

              현실에 대한 냉소적인 어조

              반어적 표현을 적절히 구사하여 절망적인 상황을 노래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하는 우리

         → 권위주의와 엄숙주의가 팽배하던 당대의 상황이 연상됨.

             군사 독재 정권 아래에서 맹목적인 삶을 부동 자세로 취하고 따라야 했던 당시 민중들의 모습 표상

             맹목적인 애국심을 강요받았던 민중들의 모습

   * 애국가 가사(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 냉소적 현실 인식을 드러내는 비극적 아이러니로 사용됨.

   * 을숙도 →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곳

   * 새 → 이러한 현실 세상을 철저히 거부하는 극적 대상물로 볼 수 있음. 즉, 새들은 인간들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을 비웃으면서 자기들만의 세상을 향해 세상 밖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 극적 효과를 자아내는 표현

              자유를 구가하는 새들의 울음

   * 세상 밖 → 자유와 평화가 보장되는 유토피아적인 이상향

   *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 주저앉는다.

        → 영화 화면과 연관된 시상이 마무리되고 객석의 현실로 돌아오는 부분임.

   * '주저앉는다'의 이중적 의미

          → 가능성(자유는 다른 곳이 아닌 이 땅에서 획득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행위)

              소망의 좌절(작은 소망마저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냉혹한 독재 현실과 그로 인한 극도의 좌절감과

                                              허무감에서 비롯된 행위)

 

주제암울한 현실에 대한 좌절감과 허무 의식

           현실적 삶의 위선과 억압에 대한 비판과 자유로운 삶에 대한 희구

[시상의 흐름]

◆ Ⅰ( 1 ~  2행) : 애국가를 경청하는 우리

◆ Ⅱ( 3 ~10행) : 새들의 자유로운 비상

◆ Ⅲ(11 ~  끝) : 이상의 추구와 좌절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시작하기 전 '애국가'와 '대한 뉴스'를 상영했었던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 시는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나오는 애국가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짧은 순간의 묘사를 통해, 80년대의 폭압적 현실상황에 대한 환멸과 극도의 좌절감을 풍자적 수법을 통해 형상화한 작품이다. 애국가의 가사를 인용하여 진지해야 할 행위를 경박한 행위로 바꿔 놓으며, 영화 관람이라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행위를 시대와 현실에 대한 인식이라는 엄숙한 교훈성으로 확대시켜 놓음으로써 현실의 왜곡된 면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풍자를 보여 준다.

이 시의 공간적 배경이라 할 수 있는 '불꺼진 캄캄한 극장'은 암흑처럼 어둡고 침침한 암울한 현실 상황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화면에 비치는 '새떼'들의 자유로운 비상을 바라보면서 자유에 대한 갈망을 잠깐이나마 가져보지만, 애국가가 끝난 후에는  다시 주저앉을 수밖에 없어진다. '새'와 '우리'의 대조적인 상황 설정이 돋보이기도 한다.  즉, 새는 비상하는데 왜 우리는 그러지 못하는가라는 의문이 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다가, 결국 새들처럼 세상 밖 어딘가로 떠나지 못하고 제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는 것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시는 당시 군사 정권의 억압적인 사회 현실 속에서 자유로운 삶을 바라는 지식인의 비판적 태도와 현실적 절망감을 영화관 속의 한 상황을 묘사함으로써 암시하고 있다.

시를 '당대에 대한, 당대를 위한, 당대의 유언'으로 쓰고자 했던 작자가 바라본 1980년대는 죽음과 절망으로 가득찬 곳이자, 차라리 초월해 버리고 싶은 환멸의 공간이었다. 이 작품은 바로 그러한 현실 인식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폭압적 현실 상황에 대한 극도의 좌절감을 풍자적 수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즉 자신이 태어난 조국이 정말로 살고 싶지 않은 곳이라는 환멸적 인식과 함께,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다는 자괴감이 형상화되어 잇는 것이다.

 

■ 시인 황지우(1952~)

시인. 전남 해남 출생. 서울대 미학과 졸업. 1980년 <문학과 지성>에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기존의 시 형식을 탈피하고 일상적인 언어를 과감하게 시화하여 해체시의 틀을 제시하였다. 시집으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 <겨울 - 나무로부터 봄 - 나무에로(1985)>, <나는 너다(1987)>, <게 눈 속의 연꽃(1991)>,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1999)> 등이 있다.

 

■ 참고자료 : "황지우 시인의 풍자 정신과 모더니즘"

아마도 오늘의 독자들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는 사전의 어떤 의식 없이 곧바로 시작을 알리는 벨소리와 함께 영화를 관람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가 쓰여진 80년대의 정치적 권위주의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영화를 감상하기에 앞서 치르는 의식이 있었다. 애국가의 연주 소리가 시작되면 모든 관객들은 일시에 의자에서 일어나 스크린에 방영되는 영상을 보며 애국가의 연주가 끝날 때까지 기립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좋은 의미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과 사랑을 헌정하는 의식 또는 경배라 할 수 있다. 대개는 조국의 번영과 국토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미래에 대한 꿈을 보여 줌으로써 관객들의 애국심을 의식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이지만, 이 작품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낙동강 하류의 철새 도래지 을숙도의 경관을 보여 주는 영상이다. 수만 마리의 아름다운 철새들이 을숙도의 갈대밭을 차고 푸른 가을 하늘로 날아오르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며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과 조국의 번영과 평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보여 주는 데 유감이 없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바로 이와 같은 영화 감상의 풍속을 시적 공간으로 끌어들여 독특한 풍자로서 당대의 우리 삶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클라크에 의하면 풍자란 진지한 것과 경박한 것, 사소한 것과 교훈적인 것, 극히 유치한 것과 고도로 세련되거나 우아한 것 사이를 왕복하면서 우행(愚行)의 폭로와 사악(邪惡)의 징벌을 기도하는 언술이며 넓은 의미로 위트, 아이러니, 비꼬기, 조소, 냉소, 욕설 등이 이 영역에 들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풍자의 기법으로 쓰여진 것이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시의 화자는 객석에서 기립하여 애국가의 경청과 함께 스크린에 떠오르는 영상을 본다. 그의 눈에는 마침 을숙도에서 철새들 수만 마리가 하늘로 비상하는 장면이 들어온다. 그러나 이 광경에서 화자는 본 영화 상영 전의 이 같은 의식이 의도하는 바, 국토의 아름다움이나 조국의 번영, 혹은 안식이 느껴지기보다는 문득 비상하는 저 철새들처럼 자신도 자유롭게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가 멀리 떠나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 시적 진술인 까닭에 직접적인 언급은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화자의 이와 같은 의식에는 조국에 대한 사랑이나 충성심보다 혐오감이나 배신감이 팽배해 있음을 독자들은 쉽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 오세영, '20세기 한국 시의 표정'에서 -

[교과서 학습활동]

1. 이 시는 어떤 상황을 표현하고 있는지 설명해 보자.

  → 이 시는 80년대 당시 영화 상영 전에 화면을 통해 애국가가 연주되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화면 속의 장면들을 멀뚱멀뚱 바라보아야 했던 당시 우리 삶의 왜곡된 사회상을 묘사하고 있다. 작자 내면에는 답답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꿈꾸지만, 연주가 끝나면 허무하게 다시 자리에 앉아 버리는 어색한 순간을 장면화하여 그리고 있다.

2. 시적 화자의 심리 상태를 염두에 두고, 다음 시구가 함축하는 의미는 무엇인지 말해 보자.

  • 우리도 우리들끼리 / 낄낄대면서 / 깔쭉대면서 → 새들이 끼룩거리는 장면을 바라보는 일반 대중들 역시 자신들만의 자유로운 소통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 굴레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화자의 내면적 욕망을 표출하고 있다.
  • 주저앉는다 → 당대 현실의 암울한 상황에 무기력함을 느낀 채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는 허무 의식을 드러낸다.

3. 작자가 이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 이 시의 화자는 조국의 현실과 그곳에서 영위되는 삶이 혐오스럽고 치욕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오욕스럽고 혐오스러운 조국의 삶은 치유 불가능한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 이 오욕스러운 삶을 버리고 떠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4. 이 시는 매우 일상적인 언어로 쓰였지만, 시적인 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

  → 이 시의 화자는 자신을 포함해 행위 당사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주관적으로 서술하면서도 시적 상황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즉 냉소와 조소, 비꼼과 같은 어조를 동반하여 평범한 말의 이면에 작자의 날카로운 풍자 의식이 스며들 수 있도록 냉정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일상적인 언어 속에 함축적이고 의도적인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세상과 삶에 대한 모순을 발견하고, 삶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반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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