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을

                                                                              -  김수영  -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거대한 뿌리>(1974)-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의지적, 격정적, 실천적, 상징적

◆ 표현 : 푸름과 붉음의 색채의 대조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푸른 하늘 → 자유의 공간

    * 노고지리의 자유 → 대가나 희생을 치루지 않은 자유

    * 어느 시인이 저지른 오류 →노고지리의 현상적 비상에 주목하여 자유의 이미지를 발견

                 (서정적 자아의 관점 :  그 자유를 획득하기까지의 고난의 과정에서 자유의 의미를 포착 )

    * 비상하여 본 → 투쟁하여 본 . '무엇을'이라는 분명한 목표와 '피'로 대유된 투쟁, '고독'을 함축

    * 자유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 진정한 자유의 획득을 위해서는 고통과 희생이 전제되어야 함.

    * 혁명은 왜 고독해야하는가

         → 혁명은 고독하다.

             혁명에 수반되는 허탈감이나 승리의 기쁨 같은 일체의 감정을 배제함은 물론, 실패에서 오는 좌절

                                까지도 견뎌낸다는 굳건한 의지가 담겨 있는 표현

 

주제 : 자유를 위한 투쟁(혁명)의 어려움 - 혁명은 고독하다

            자유를 향한 자의 고독한 의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희생을 치르지 않은 자유의 무의미함

◆ 2연 : 자유를 위해 투쟁해 본 사람은 피의 냄새와 혁명의 고독함을 알 것임.

◆ 3연 : 혁명의 고독함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1960년 4·19혁명 직후에 씌어진 작품으로 '혁명'과 '피'가 이 시의 무게를 이룬다. 이 시는 자유를 위한 투쟁의 어려움을 절규하고 있으며 자유의 표면으로부터 알맹이로 들어가 '자유 정신'을 포착한 데에 의의가 있다.

자유는 타인이나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수동적·소극적인 개념이 아니라,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적극적·실천적 개념임을 확신하고 있는 시인은 노고지리 비상만을 보고 자유를 노래하는 기존 시인들의 온건적·순응적 태도를 비판함은 물론, '푸른 하늘'이라는 높고 아름다운 자유를 향한 비상은 '피의 냄새'라는 구체적이고도 실천적인 투쟁과 노력을 통해서 근접할 수 있음을 푸름과 붉음이라는 색채의 대조를 통해 뚜렷이 제시하고 있다. 노고지리를 비약과 상승의 시적 이미지로 생각한 사람은 바슐라르다. 김수영은 노고지리를 통해 '혁명'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노고지리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다. 김수영의 '노고지리'는 '밝음 - 자유 - 비상'의 이미지를 '불탐 - 혁명 - 피'의 이미지로 변용함으로써 시적 상상력을 확장시킨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4 · 19 직후에 쓰여진 것으로 혁명의 본래적 의의에 대한 환기이며 그것을 이루고 있지 못하고 있는 4.19의 진행과정에 대한 냉정한 경고.(혁명에는 전체적 자기 변혁이 수반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자기 변혁은 자신의 완전한 파괴와 새로운 구성을 요구한다. 자유에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혁명이 고독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철저한 자기변혁을 위한 고통과 극기를 스스로 감당해내야 하니 외롭지 않을 수 없다.)   

4 · 19 이후 2개월 만에 씌어진(1960.6.25) 이 시의 주제를 우리는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다."와 "혁명은 고독하다."로 잡을 수 있다.

여기에서 4.19를 염두에 둘 때 첫 명제는 쉽게 이해되는 것처럼 보인다. 4.19는 학생과 시민의 피값을 대가로 성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그 명제는 "올바른 사회가 수립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희생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혁명에는 전체적 자기 변혁이 수반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자기 변혁은 자신의 완전한 파괴와 새로운 구성을 요구한다. 자유에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혁명이 고독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철저한 자기 변혁을 위한 고통과 극기를 스스로 감당해내야 하니 외롭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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